자고나니 나이가 한 살 더 먹어있다.
평소엔 커피 한 잔으로 때우던 아침이지만 오늘은 웬지 나 자신에게 간단한 식사와 함께 등 두드려주며 "너, 사느라 참 수고가 많다"라고 해주고 싶었다. 출근길에 맥도널드에 들려 소시지그레이비&비스킷을 사 가지고 사무실로 와서 막 뚜껑을 여는 중.
한 조각 입에 넣으면서 "지금 잘 살고있는건가?"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본다.
가정과 가족관계, 직장, 교회, 친구들과의 관계 등등을 짦게나마 생각해 보니 아프고, 불행한 혹은 아쉬운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런 일이 정말 없었던건지 아니면 기억속으로 아예 사라져 버린건지는 모르겠지만 온통 기쁘고 행복한 기억으로만 꽉 차있는 듯 해 감사하다.
큰 사고 큰 병 없이 온전히 지켜져온 내 몸뚱아리, 말년을 평안히 지내시다가 신앙속에 안식으로 들어가신 아버지 어머니, 그런 부모님을 32년간 같이 잘 돌보아 드리며 싸움과 불평 한 번 없이 순종해 준 아내, 시시때때로 필요한 직장과 사업체를 허락해 주셔서 크게 부족함없이 생활하며 아이들을 잘 키울수 있었던 것, 고연봉 고위직은 아니지만 지난 20년간 정말 좋아하는 일을 "이렇게 재미있는 일을 돈까지 받아가면서 해도 되는건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나게 해올수 있었던 것, 사랑이 넘치는 사람들로 늘 둘러싸이게 되는 교회, 시간이 될 때 가서 섬길수 있고 그럴때마다 환하게 웃는 장애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 기쁜 밀알선교단과 그 외 자원봉사처, 각자 치열하게 자신들의 삶과 싸움을 하고 있는것이 부모의 눈에는 안타깝게 보이지만 그렇게 자신들의 길을 스스로 열어나가는 모습에는 저절로 박수가 나오게 되는 세 아이. 뭐 이것 뿐만이겠는가? 일일이 다 기억이 나지 않는 건 역시 나이때문이리라.
앞으로의 소망이 있다면 점점 쌓아져만 가는 버킷리스트를 더 늦기전에 하나씩 실천해 나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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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킷이 더 식기전에 먹어치우고 일 시작해야겠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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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4/2016
4/14/2014
진주혼
결혼기념일을 이야기할 때 1주년을 종이에 비유해 지혼(紙婚), 10주년은 주석혼(朱錫婚), 25주년은 은혼(銀婚), 50주년 결혼기념일은 금혼(金婚), 60주년은 금강혼(金剛婚) 혹은 회혼(回婚) 이라고 한단다. 세상에 존재하는 물질에 비유해 종이(紙)에서 은과 금을 거쳐 다이아몬드(金剛)까지 점점 더 단단해지며 희귀해지는 물질로 옮겨간다.
며칠있으면 사람들 입에 자주 언급되지는 않지만 진주(혹은 상아)혼이라 부르는 30주년.
결혼생활 거의 대부분은 아이들이 어려서, 아이들이 어느정도 커서는 편찮은 부모님이 계심으로,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둘 다 지치고 늙어, 두사람만 어딜 다녀오는 것이 엄두가 나질 않았었으나 이제라도 좀 이기적이 되어야겠다 싶어 금년엔 용기를 냈다.
<Day 1-3>
그래서 떠나온 첫 장소는 집에서 멀지 않은 버지니아비치라는 바닷가. 일해야 하는 걱정, 누굴 보살펴야 한다는 생각, 뭘 어떻게 해야 한다거나 뭘 하지 말아야 한다는 염려없이 그냥 뒹글거리다가 배 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시고, 배부르면 모래사장을 하염없이 걷고 하며 지내는 중인데 그러는 것이 괜히 불안하고, 일 안하고 놀고 먹는다고 뒷통수에 대고 누가 뭐라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떠나질 않는다.
오늘 아침은 눈이 조금 일찍 떠져서 아내가 일어날 때까지 베란다에 앉아 쏟아지는 아침햇살에 눈을 감고 잔잔하게 깨어지는 파도소리를 한참 듣고 있는데 옛날 생각이 영화장면들 처럼 지나가더라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버지니아비치를 출발해 5시간 반 정도 운전해 블루릿지마운틴을 넘어가게 되면 웨스트버지니아로 채 못가서 버지니아의 산속에 위치한 Hot Spring이란 마을이 나온다, 그 곳에 위치한 다양한 형태의 온천장들이 허리가 안좋은 아내에게 좀 도움이 될까 하는 바램으로 왔다. 비용은 좀 부담스러웠지만 앞으로 살아생전에 몇번이나 더 오겠냐 싶어 온천수로 된 실내외수영장등을 잘 갖춰논 Homestead란 이 호텔에서 여장을 풀기로. 오른쪽의 사진은 그곳에서 멀지 않은 Jefferson Pool. 워낙 역사가 짧은 미국이라 조금 오래된 구조물이나 장소는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보존 관리하는 이곳 사람들답게 Homestead호텔도 300년, Jefferson Pool도 250년간 잘 보존해왔다고 자랑들이 대단하다. 반만년역사를 가진 우리가 볼 땐 좀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하여간 도착당일 저녁과 다음날 아침에 걸쳐 내내 온천욕으로 시간을 보낼수 있어 좋았고. 때밀어주는 서비스도 있었으면 금상첨화였을 텐데 그게 내내 아쉬움으로...결혼기념으로 왔다고 하니까 100불짜리 음식쿠폰, 48불짜리 와인(메뉴를 보니), 카페에서 만드는 제대로 된 커피 2잔 등을 안겨주고 퇴실시간도 11시에서 오후 2시로 연기해 주는 등 받은게 많아 결과적으로 기존 호텔들보다 그리 많이 낸건 아니다 싶어 "격이 안 맞는 우리같은 사람들이 이런 고급스러운덴 뭣하러 왔누..."라고 내내 툴툴거리던 짠순이가 특히나 기뻐했다.
<Day 4-5>
2시간여 달려 둘째가 공부하고 있는 Charlottesville을 들려 둘째녀석을 불러냈다. 근래에 치과쪽으로 전공을 바꿔 스트레스가 심할텐데 이야기해 보니 잘 견뎌내고 있는듯 싶었고 같이 저녁을 맜있게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곳을 떠나 1시간 후 둘째가 온라인으로 찾아준 Glass House Winery를 찾아가 그곳에서 운영하고 있는 Bed & Breakfast에 체크인을 했고. 온통 포도나무밭으로 둘러싸인 한편 아담한 호수를 담은 이 산꼭대기의 집에서 운치있는 하루를 보내는데 가지고 간 랩탑에 뜬 속보에 나온 진도 수학여행선 참사가 눈에 들어와 온 저녁을 애를 태우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아내는 안타까와할 피해자 학부모들 생각에 내내 눈물만 흘리고. 투숙객들의 편의를 돕고 아침을 짓는 상냥한 아주머니가 내려 준 진한 향의 커피를 겸해 근사하게 차려놓은 아침상을 받아먹고는 떠나 2시간 후 그리던 집으로 돌아왔다.
결혼생활 거의 대부분은 아이들이 어려서, 아이들이 어느정도 커서는 편찮은 부모님이 계심으로,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둘 다 지치고 늙어, 두사람만 어딜 다녀오는 것이 엄두가 나질 않았었으나 이제라도 좀 이기적이 되어야겠다 싶어 금년엔 용기를 냈다.
<Day 1-3>
그래서 떠나온 첫 장소는 집에서 멀지 않은 버지니아비치라는 바닷가. 일해야 하는 걱정, 누굴 보살펴야 한다는 생각, 뭘 어떻게 해야 한다거나 뭘 하지 말아야 한다는 염려없이 그냥 뒹글거리다가 배 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시고, 배부르면 모래사장을 하염없이 걷고 하며 지내는 중인데 그러는 것이 괜히 불안하고, 일 안하고 놀고 먹는다고 뒷통수에 대고 누가 뭐라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떠나질 않는다.
오늘 아침은 눈이 조금 일찍 떠져서 아내가 일어날 때까지 베란다에 앉아 쏟아지는 아침햇살에 눈을 감고 잔잔하게 깨어지는 파도소리를 한참 듣고 있는데 옛날 생각이 영화장면들 처럼 지나가더라는...
17살 밖에 안된 앳되고, 한참 공부해야하는(고3) 처자였던 그녀를 밖으로 나데리고 다녔던 참으로 무책임했던 나, 그런 나를 싫은 기색없이 따라 나가지만 자신이 해야하는 공부는 열심히 해내던 모습, 나와 같은 과 친구였던 오빠와 하숙을 하며 부모님께서 보내주시는 빠듯한 지원이지만 알뜰하게 절약하며 거뜬히 오빠를 돌보던 모습, 대학진학을 하고 같은 또래의 학생들과 같이 가게되는 MT등은 나를 생각해서인지 스스로 포기하던 사람, 가끔 우리집이라도 방문해 부모님과 식사라도 할라치면 간단한 반찬거리를 사가지고 와 음식도 만들어 놓고 설거지도 하던 대학3-4년차, 미국으로 유학와 시집생활, 풀타임가게일, 풀타임 학교생활을 동시에 이어 나가면서도 군소리 한마디 없이 해내던 미국생활 초반, 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소천하실때 까지 최선을 다해 모시는 모습에 자식인 날 부끄럽게 하던 그녀...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그녀가 밑지는 장사같은데 다시 태어나도 날 만나겠다고 망설임없이 대답하는 그녀...
축하합니다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Day 3-4>

<Day 4-5>
2시간여 달려 둘째가 공부하고 있는 Charlottesville을 들려 둘째녀석을 불러냈다. 근래에 치과쪽으로 전공을 바꿔 스트레스가 심할텐데 이야기해 보니 잘 견뎌내고 있는듯 싶었고 같이 저녁을 맜있게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곳을 떠나 1시간 후 둘째가 온라인으로 찾아준 Glass House Winery를 찾아가 그곳에서 운영하고 있는 Bed & Breakfast에 체크인을 했고. 온통 포도나무밭으로 둘러싸인 한편 아담한 호수를 담은 이 산꼭대기의 집에서 운치있는 하루를 보내는데 가지고 간 랩탑에 뜬 속보에 나온 진도 수학여행선 참사가 눈에 들어와 온 저녁을 애를 태우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아내는 안타까와할 피해자 학부모들 생각에 내내 눈물만 흘리고. 투숙객들의 편의를 돕고 아침을 짓는 상냥한 아주머니가 내려 준 진한 향의 커피를 겸해 근사하게 차려놓은 아침상을 받아먹고는 떠나 2시간 후 그리던 집으로 돌아왔다.
12/24/2013
정성이 깃든 카드
한장의 성탄카드를 보고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감격했다. 내가 가르치는 주일학교반 아이중 다음학기부터는 중등부로 올라가는 학생이 성탄카드를 주길래 열어봤더니...겉봉투에 붙인 장식이며, 카드에 쓰인 글, 색색가지 재료를 잘라 만들어 붙인 장식들 모두 나에겐 감동 그 자체였다.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 기록으로 남긴다.
11/24/2012
Anniversary Giveaway
아내의 가게가 이제 개업 1주년이 막 지났다. 일하는 사람이 아파서 안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별 도움은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가게로 나갔다. 추수감사절 휴가라고 집에서 빈둥대는 잉여몸뚱이 그렇게라도 좀 써야겠다는 생각에.
가게정문을 들어서니 뭘 수북하게 쌓아놓은 게 보인다. 자세히 사인을 읽어보니 1주년 기념 사은경품들. 대형티비, 부엌용품세트, 200불 상품권 x명, 100불 x명, 헤어드라이어기...등등 장난이 아니다. 동업하시는 젊은 집사님의 아이디어인 듯. 참 잘한다. 손님들 입장에선 말로만 감사하단 것 보다는 크진 않지만 이익을 되돌려주려는 업주의 노력을 더 가상하게 여기리라. 그것이 고객의 마음을 다시 돌아오고 싶게 만드는 요인도 되겠고.
일평생 소규모사업만을 하던 팍팍한우리 기성세대로서는 엄두도 못낼 것들을 시도하는 과감하고 모험적인 젊은이 때문에 가게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며 동시에 발전하는 것을 보는 즐거움이 내겐 있다.
티비에 눈이 멀어 아내에게 물었다. "이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도 경품투표에 참가할 수 있을까?" (나도 오늘 몇시간 이곳에서 일을 하기에)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날라오는 아줌마의 외마디... 여기에 꼭 문자화 시킬 필요는 없겠지 싶다.
가게정문을 들어서니 뭘 수북하게 쌓아놓은 게 보인다. 자세히 사인을 읽어보니 1주년 기념 사은경품들. 대형티비, 부엌용품세트, 200불 상품권 x명, 100불 x명, 헤어드라이어기...등등 장난이 아니다. 동업하시는 젊은 집사님의 아이디어인 듯. 참 잘한다. 손님들 입장에선 말로만 감사하단 것 보다는 크진 않지만 이익을 되돌려주려는 업주의 노력을 더 가상하게 여기리라. 그것이 고객의 마음을 다시 돌아오고 싶게 만드는 요인도 되겠고.
일평생 소규모사업만을 하던 팍팍한우리 기성세대로서는 엄두도 못낼 것들을 시도하는 과감하고 모험적인 젊은이 때문에 가게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며 동시에 발전하는 것을 보는 즐거움이 내겐 있다.
티비에 눈이 멀어 아내에게 물었다. "이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도 경품투표에 참가할 수 있을까?" (나도 오늘 몇시간 이곳에서 일을 하기에)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날라오는 아줌마의 외마디... 여기에 꼭 문자화 시킬 필요는 없겠지 싶다.
2/12/2012
꼭 기억하고 싶은 두 가지
하나
지난 며칠간 직장에서 많이 힘든 시간을 보냈다. 내가 관리하는 세 학교로 들어오는 Verizon이란 인터넷서비스 회사의 광섬유라인에 문제가 생겨서 내리 3일간 일체의 인터넷이 불통되었고, 그로 인해 온라인으로 관리해야 하는 출석부, 성적표, 이메일, 심지어는 국가검증시험까지 모두 지장이 있었던 것.
그래서 모든 학교 스피커를 통해 전문적인 용어를 배제하면서 쉬운 말로 자세한 상황을 설명하고 그 회사에서 복구를 위해 애쓰고 있으니 좀 참고 기다리라고 부탁 했는데, 설명은 뻔히 들어놓고 인터넷이 안되는건 알겠는데 왜 자기 이메일이 안돼냐는 막무가내 선생들이 반 이상 이더라는...심지어 그 몇몇 사람들이 내 사무실로 찾아와서는 내가 능력이 없어 고치질 못하는 마냥 당장 해결해 놓으라고 떼를 쓰기도 했으니 참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러다 금요일 퇴근 무렵 라인이 복구되었고, 복구되자 마자 한 여선생이 이메일을 보내왔는데 너무 고마운 마음이 들어 여기에 기록해 기억하고 싶다.
"Thanks for communicating about the latest problems. As the wife of an engineer, who is also called on to ride herd on technical problems 24/7, I think I have a sense of how frustrated you must be by issues beyond your control. I have merely ordinary computer skills and you have helped me personally several times with my own operator errors. I am grateful.
Your calm and logical demeanor and your efforts to keep us informed are appreciated by many who understand that technology comes with complications....we love it when it's all good and we scream when it fails. I think you are very responsive .....which counts for a lot.
Thanks for your update."
두울
오늘 교회 분반공부 시간에 우리반 아이들 몇이 뭘 건네준다. 보니 감사카드와 발렌타인 카드 들이다. 집단으로 무슨 마음들이 들었는지 아니면 부모들이 등 떠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코가 찡해 오는 걸 느꼈다. 저 입체카드 만들려면 시간 좀 걸렸을텐데... 기억해 두고 싶은 순간들...
지난 며칠간 직장에서 많이 힘든 시간을 보냈다. 내가 관리하는 세 학교로 들어오는 Verizon이란 인터넷서비스 회사의 광섬유라인에 문제가 생겨서 내리 3일간 일체의 인터넷이 불통되었고, 그로 인해 온라인으로 관리해야 하는 출석부, 성적표, 이메일, 심지어는 국가검증시험까지 모두 지장이 있었던 것.
그래서 모든 학교 스피커를 통해 전문적인 용어를 배제하면서 쉬운 말로 자세한 상황을 설명하고 그 회사에서 복구를 위해 애쓰고 있으니 좀 참고 기다리라고 부탁 했는데, 설명은 뻔히 들어놓고 인터넷이 안되는건 알겠는데 왜 자기 이메일이 안돼냐는 막무가내 선생들이 반 이상 이더라는...심지어 그 몇몇 사람들이 내 사무실로 찾아와서는 내가 능력이 없어 고치질 못하는 마냥 당장 해결해 놓으라고 떼를 쓰기도 했으니 참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러다 금요일 퇴근 무렵 라인이 복구되었고, 복구되자 마자 한 여선생이 이메일을 보내왔는데 너무 고마운 마음이 들어 여기에 기록해 기억하고 싶다.
"Thanks for communicating about the latest problems. As the wife of an engineer, who is also called on to ride herd on technical problems 24/7, I think I have a sense of how frustrated you must be by issues beyond your control. I have merely ordinary computer skills and you have helped me personally several times with my own operator errors. I am grateful.
Your calm and logical demeanor and your efforts to keep us informed are appreciated by many who understand that technology comes with complications....we love it when it's all good and we scream when it fails. I think you are very responsive .....which counts for a lot.
Thanks for your update."
두울
오늘 교회 분반공부 시간에 우리반 아이들 몇이 뭘 건네준다. 보니 감사카드와 발렌타인 카드 들이다. 집단으로 무슨 마음들이 들었는지 아니면 부모들이 등 떠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코가 찡해 오는 걸 느꼈다. 저 입체카드 만들려면 시간 좀 걸렸을텐데... 기억해 두고 싶은 순간들...
11/23/2011
Thanksgiving
추수감사절을 맞이해 외지생활을 하던 아이들과 다른 식구들이 하나 둘 집에 도착했고, 아내가 준비한 Thanksgiving저녁식사를 온 가족이 함께 한 후, 이젠 다시 하나 둘 자신들이 속한 곳으로 떠나는 중이다.
혼자 멍하니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 있을 수 있는 시간들이 좀 있었는데 그 시간들이 어색하긴(뭘 하고 있어야 하거나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으니) 했어도 지난 일년을 천천히 돌아볼 수 있었다. 감사했던 일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한동안 손가락으로 꼽다가는 너무 많아 포기했고...
그리고는 이내 나를 어렵고 힘들게 하는 일들이 생각났다. 아니 생각이 났다기 보다는 늘 마음속에 담고 다니면서 수시로 꺼내어 괴로워하고 나 자신을 괴롭혔다는 표현이 맞을 듯. 헌데 갑자기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런 일들 조차도 감사해 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신병훈련소에서 받던 모진 훈련이 훈병에게는 야속해 보이고 힘들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늠름한 군인으로 거듭나지 않던가? 잘못하는 아이들을 매질과 훈계로 가르치지만 그 아이들이 결국에는 반듯하게 자라나지 않던가?
이런 도전을 내 자신에게 해 보자 다짐해 본다. 나를 어렵게 하는 일 들을, 사람들을, 환경을 이젠 감사함으로 받자. 나의 조막만 한 두뇌로 그 분의 master plan을 지금은 이해할 수 없지만 담금질을 통해서 나의 모난 곳을 깍아 내시고, 내 눈으론 볼 수 없는 내 얼굴에 묻은 검정을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보게 하시는 그분께서 결국에는 나를(지금의 좌절까지도) 선한 곳에 사용하시리란 것을 알기에 감사드린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18)
![]() |
Source: http://blog.jocosiding.com/fun- facts/thanksgiving-fun-facts/ |
그리고는 이내 나를 어렵고 힘들게 하는 일들이 생각났다. 아니 생각이 났다기 보다는 늘 마음속에 담고 다니면서 수시로 꺼내어 괴로워하고 나 자신을 괴롭혔다는 표현이 맞을 듯. 헌데 갑자기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런 일들 조차도 감사해 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신병훈련소에서 받던 모진 훈련이 훈병에게는 야속해 보이고 힘들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늠름한 군인으로 거듭나지 않던가? 잘못하는 아이들을 매질과 훈계로 가르치지만 그 아이들이 결국에는 반듯하게 자라나지 않던가?
이런 도전을 내 자신에게 해 보자 다짐해 본다. 나를 어렵게 하는 일 들을, 사람들을, 환경을 이젠 감사함으로 받자. 나의 조막만 한 두뇌로 그 분의 master plan을 지금은 이해할 수 없지만 담금질을 통해서 나의 모난 곳을 깍아 내시고, 내 눈으론 볼 수 없는 내 얼굴에 묻은 검정을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보게 하시는 그분께서 결국에는 나를(지금의 좌절까지도) 선한 곳에 사용하시리란 것을 알기에 감사드린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18)
9/08/2011
We are so thankful
준비중인 새 가게 |
시작매상도 예상했던 것 보다 만족스러운 액수로 시작을 한 것 같고, 시작 매상이 꾸준하게 유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 파트너되시는 집사님이 개업 첫날의 매상을 하나님께 첫 열매로 드리자는 제안을 하셔서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젊은 집사님에 앞서 그런 생각을 미처 못해 본 게 한편으론 창피하기도 했지만.
물건이 다 빠져버린 달러스토어 |
문을 그냥 닫았으면 근 몇만불의 재고를, 사람을 사고 트럭을 세내어 싣고 쓰레기장으로 가서 무게를 달아 돈을 내고 버려야 하는 것 이었는데...재고가 현재 5프로 정도만 남았을 정도로 재고처리가 잘 되었고, 이제는 선반등 가게 장비를 사겠다는 사람들까지 하나 둘 나서기 시작하는 중.
농부가 일찍 일어나서 밤늦도록 열심히 일을 하고 아무리 애를 써도 햇빛과 비를 주시고, 씨를 틔우고 키우시는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그 모든 수고가 소용이 없는 것 처럼...
이 모든 일이 우리가 똑똑하고 열심히 준비를 잘 해서, 내가 잘나서, 아내가 잘나서, 아니면 파트너가 잘나서 되어지는 일이 아님을 알기에, 무릎꿇고 나의 두 손을 하늘을 향해 벌립니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도소이다 내가 들어 말하고자 하나 주의 앞에 베풀 수도 없고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시편 40:5
12/22/2010
올드랭사인 - 2010년이여!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한 해의 마지막을 눈앞에 두고 만감이 교차하는 중. 온갖 즐겁고 감사했던 일, 아쉽고 안타깝고 후회스러웠던 일들이 소리없는 기록영화처럼 눈앞을 스치며 지나간다.
새해에는 이 세상이 더 나아지리라는 기대는 하지도 않지만 내 자신이 좀 덜 후회하게 되고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혹, 이 글을 지금 읽고 계시는 분이 계신다면…즐겁고 평안한 성탄, 좋은 소식들이 가득 줄서서 기다리고 있는, 건강하고 풍성한 새해가 되시길 두 손 모아 빕니다! ^^
12/15/2010
감사함을 듣게, 보게 해 주세요
선생들에 대해선 시시때때로 학부모회나 학교에서 상품권, 식사대접등 정기적으로 기억하고 감사해 한다. 근데 같은 학교에서 일을 하면서 항상 냄새나고 지저분한 일을 도맡아 하지만 숨듯이 그늘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
각 학교마다 배정되어 청소하는 분들. 국민학교 중학교에는 다섯에서 여덟명, 고등학교에는 열에서 열다섯명 정도. 우연인지는 몰라도 어느 학교를 둘러보던지 모두 흑인 분들이다. 한번은 학부모회에서 진수성찬으로 선생들을 위해 점심을 차려준 적이 있었는데, 선생들이 모두 먹고 간 후 남은 음식을 여유있게 먹을 요량으로(가끔 선생들을 가르치니 학교에서는 나도 선생으로 대접하기에 ㅎ) 식당에 갔다가 한 청소원 아줌아가 옆에 계셔서 그 분에게 물었다. “아줌마도 같이 좀 드실래요?” 그랬더니 선생님들만 초대한 거라서 그럴 수 없다는 거다. 교장에게 가서 물었다. 혼자 먹기 심심한데 음식도 많이 남았으니 어짜피 버릴 음식 청소원 분들을 모두 불러서 같이 먹어도 되냐고. 흔쾌히 그러라고 해 모두 같이 먹은 기억이 있다.
뭐, 그 분들이 그렇게 궁핍하다거나 불쌍한 사람들은 아니다. 그날도 점심으로 자기 도시락들을 모두 챙겨온 나와 같이 멀쩡한 직장인들이다. 근데…선생들과 달리 이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사람은 없는 듯 해 보였다. 그래서 그 이후부터 지난 몇년간 해온 게 자그마한 선물을 그 분들께 드리는 것. 내가 맡고 있는 세 학교의 청소원 수를 세어보니 24명, 그래서 금년에는 작년보다 조금 많은 24봉지를 준비. 내용물은 별 것 아니고 양말이니 털모자, 장갑, 캔디등을 카드 한장과 함께 넣어 드리는 건데, 눈물을 글썽이며 받는 분들도 계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경제가 힘들고 당장 우리가정 조차 내일이 불확실하다지만, 잔돈 몇 푼으로 환하게 밝아지는 이 분 들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굉장한 행운이자 특권이다. 다행이 우리가게 회장님(?)의 사려깊으신 협찬으로 인해 올해도 가능한 일 이었음을 여기에 밝힌다. ㅎ ㅎ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사는게 불우하거나 어려워서가 아니고 누구도 아는 척 안하고,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감사해 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 회의하고 가슴이 시린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아내남편부모형제자식 중 한 사람일 수 도 있고, 직장의 상관동료부하우편물전해주는사환회사입구에있는수위, 늘 마주치는 동네 구멍가게 아저씨일 수도 있다. 평소에 내가 마음으로는 감사해 하는 것을 넘어서서 직접 얼굴을 마주 대하고 고맙다고 말 한 마디 해 주거나, 작은 선물이나 카드 한장 전해 줄 만한 사람이 어디 더 없나 돌아보게 되는 계절이다. 그래야 쬐끔 더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어...
각 학교마다 배정되어 청소하는 분들. 국민학교 중학교에는 다섯에서 여덟명, 고등학교에는 열에서 열다섯명 정도. 우연인지는 몰라도 어느 학교를 둘러보던지 모두 흑인 분들이다. 한번은 학부모회에서 진수성찬으로 선생들을 위해 점심을 차려준 적이 있었는데, 선생들이 모두 먹고 간 후 남은 음식을 여유있게 먹을 요량으로(가끔 선생들을 가르치니 학교에서는 나도 선생으로 대접하기에 ㅎ) 식당에 갔다가 한 청소원 아줌아가 옆에 계셔서 그 분에게 물었다. “아줌마도 같이 좀 드실래요?” 그랬더니 선생님들만 초대한 거라서 그럴 수 없다는 거다. 교장에게 가서 물었다. 혼자 먹기 심심한데 음식도 많이 남았으니 어짜피 버릴 음식 청소원 분들을 모두 불러서 같이 먹어도 되냐고. 흔쾌히 그러라고 해 모두 같이 먹은 기억이 있다.
뭐, 그 분들이 그렇게 궁핍하다거나 불쌍한 사람들은 아니다. 그날도 점심으로 자기 도시락들을 모두 챙겨온 나와 같이 멀쩡한 직장인들이다. 근데…선생들과 달리 이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사람은 없는 듯 해 보였다. 그래서 그 이후부터 지난 몇년간 해온 게 자그마한 선물을 그 분들께 드리는 것. 내가 맡고 있는 세 학교의 청소원 수를 세어보니 24명, 그래서 금년에는 작년보다 조금 많은 24봉지를 준비. 내용물은 별 것 아니고 양말이니 털모자, 장갑, 캔디등을 카드 한장과 함께 넣어 드리는 건데, 눈물을 글썽이며 받는 분들도 계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경제가 힘들고 당장 우리가정 조차 내일이 불확실하다지만, 잔돈 몇 푼으로 환하게 밝아지는 이 분 들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굉장한 행운이자 특권이다. 다행이 우리가게 회장님(?)의 사려깊으신 협찬으로 인해 올해도 가능한 일 이었음을 여기에 밝힌다. ㅎ ㅎ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사는게 불우하거나 어려워서가 아니고 누구도 아는 척 안하고,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감사해 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 회의하고 가슴이 시린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아내남편부모형제자식 중 한 사람일 수 도 있고, 직장의 상관동료부하우편물전해주는사환회사입구에있는수위, 늘 마주치는 동네 구멍가게 아저씨일 수도 있다. 평소에 내가 마음으로는 감사해 하는 것을 넘어서서 직접 얼굴을 마주 대하고 고맙다고 말 한 마디 해 주거나, 작은 선물이나 카드 한장 전해 줄 만한 사람이 어디 더 없나 돌아보게 되는 계절이다. 그래야 쬐끔 더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어...
9/11/2010
230 year old champagne
핀란드 근해의 바닷속에 침몰된 지 230년 정도 된 선박이 발견되었다고.
그 안 에는 70여 병의 샴페인과 맥주가 잠자고 있었다고 하는데 샴페인 병을 열어 sommelier에게 소량을 시음하게 한 결과 그 맛이 훌륭했다 한다. 몇 개의 뉴스사이트를 읽어 보니 조금씩 다른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는 걸 봐서 서로 퍼나르다가 결국엔 내용들이 조금씩 변질된 듯 ㅎ (그 중의 하나).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은데…
Sommelier의 시음 평:
"과일향이 풍부했고 노란 건포도와 타바코향이 매우 그윽했는데 처음엔 단 맛이 좀 강하게 났고 뒤로 갈수록 상큼하고 스모키한 맛으로 변했습니다."
이 행운아는 그 귀중한 샘플을 아직도 냉장고에 넣어놓고 틈만 나면 꺼내서 향을 음미하고 있답니다.얼마나 완벽하게 보존되었는지 코르크마개의 중간부분이 말라 있을 정도로 수압에 의한 바닷물의 침투가 없었고 수심 60미터 깊이라 수온이 년중 섭씨 4도 정도로 계속유지되면서도 빛의 침투가 없어 최상의 보존조건하에 있었다고.
일단 년도측정과 마시는 것에 대한 안전성검사를 위해 연구소로 보내 졌지만 검사가 끝나면 경매에서 샴페인은 한 병에 최소 $68,000 에서 몇 백 만불까지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 속담에 ‘술과 친구는 오래될수록 좋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병마개를 열기만 하면 예의 그 향과 맛이 변하지 않은 채 그윽한 오랜 술 처럼 오랬동안 연락을 하지 못하고 지냈어도 다시 만나면 그 끈끈한 우정이 변치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친구들이 몇 있다는 것…행복한 일 이다.
더불어 이 곳을 찾으며 댓글을 주고 받는 분들도 이젠 제게 잘 숙성된 향기좋은 와인처럼 느껴지는 것 아실런지…? ^^
9/03/2010
Living as if it's the last moment of my life
“당신때문에 나 그 동안 너무 행복했어!”
어제 아내에게 한 말 이다. 주중에는 퇴근 후 가게로 와서 문 닫는 시간인 밤 8시까지 같이 있다가 같이 집으로 들어가곤 하는데 어제는 아내가 막내의 학교에 가서 돈을 내야하는 날 이어서 조금 일찍 들어갔다. 그런데 가게를 떠나는 아내에게 늘 하던 “이따가 봐!”나 “조심해 들어가!”를 안하고 생뚱맞게 이 말을 했다. 이 말을 들은 아내는 “고마와요. 나도 행복해요.”하며 환하게 웃으며 나갔지만 나의 엉뚱한 어투에 당혹한 표정이 역력했다. 어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길을 떠나는 듯 이야기 했으니 당연히 그랬을 것.
갑자기 이따가 다시 보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였다. 나이가 들어 가면서 죽음을 더 가깝게 느끼게 되어선가 아니면 점점 험해지는 운전자들에 비해 얌전하고 고지식하기만 한 아내의 운전 때문이던가…
이전에는 집에서 나설 때 어머니께 “다녀 오겠습니다!”하고 인사를 드리고 들어갈 땐 “잘 다녀왔습니다!” 하곤 했다. 그게 요즘엔 들어갈 땐 변한 게 없지만 나갈 땐 “저 갑니다!”로 바뀌었다. 다시 돌아 올 보장이 없는 게 맞다 싶어서…
그렇게 살아가길 원한다. 다시는 내일이 없을 것 처럼… 가족을, 지인을, 세상만물을 사랑하고, 감사해 하고, 귀해 하고, 위하면서 살고 싶다. 도대체가 미워하고 다투며 낭비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귀한 시간들이다…
어제 아내에게 한 말 이다. 주중에는 퇴근 후 가게로 와서 문 닫는 시간인 밤 8시까지 같이 있다가 같이 집으로 들어가곤 하는데 어제는 아내가 막내의 학교에 가서 돈을 내야하는 날 이어서 조금 일찍 들어갔다. 그런데 가게를 떠나는 아내에게 늘 하던 “이따가 봐!”나 “조심해 들어가!”를 안하고 생뚱맞게 이 말을 했다. 이 말을 들은 아내는 “고마와요. 나도 행복해요.”하며 환하게 웃으며 나갔지만 나의 엉뚱한 어투에 당혹한 표정이 역력했다. 어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길을 떠나는 듯 이야기 했으니 당연히 그랬을 것.
갑자기 이따가 다시 보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였다. 나이가 들어 가면서 죽음을 더 가깝게 느끼게 되어선가 아니면 점점 험해지는 운전자들에 비해 얌전하고 고지식하기만 한 아내의 운전 때문이던가…
이전에는 집에서 나설 때 어머니께 “다녀 오겠습니다!”하고 인사를 드리고 들어갈 땐 “잘 다녀왔습니다!” 하곤 했다. 그게 요즘엔 들어갈 땐 변한 게 없지만 나갈 땐 “저 갑니다!”로 바뀌었다. 다시 돌아 올 보장이 없는 게 맞다 싶어서…
그렇게 살아가길 원한다. 다시는 내일이 없을 것 처럼… 가족을, 지인을, 세상만물을 사랑하고, 감사해 하고, 귀해 하고, 위하면서 살고 싶다. 도대체가 미워하고 다투며 낭비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귀한 시간들이다…
8/05/2010
Hitting big Five O
어제는 하루종일 소화도 잘 안되고 몸과 마음이 무거웠다. 떠나가신 집사님때문이리라. 남편되시는 집사님(내가 형님이라고 부르는) 앞으로의 끼니걱정도 되고, 따님의 결혼식문제도 그렇고 걱정만 해서는 하나도 도움이 안되는 일들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며 걱정하느라 그랬는지. 그 형님 이젠 말리는 사람도 없으니 술을 다시 줄창 마시기 시작할 텐데... 그것 역시 걱정이다. 몇 년전 테네시주에 둘이 같이 가서 교회버스를 구입해 열 몇 시간 운전해 오는데 그때도 호텔에서 잠자기 전 한 잔 하시겠다는 걸 말리다 말리다 포기하고 그냥 드시게 한 기억이 난다.
저녁에 집으로 들어오니 내 생일이란다. 벌써… 그렇게 됐구나… 꽉 채운 나이 오십. 바로 얼마전 까지만 하더라도 누가 물어보면 ‘사십대’라고 대답했는데 이젠 ‘오십대’라고 해야겠네. ‘오십대 초반’이라고 대답하면 웃겠지 들? 속으로 “그렇게 얘기하면 기분이 좀 나은가?”하면서… 맞아 49세에 ‘사십대 후반’이라고 하지 않았으니 그냥 ‘오십대’라는게 양심상 맞는거겠지. ㅎ ㅎ
아내가 돼지로스구이를 맛있게 차려내어 주고, 큰 딸이 케잌 만들고, 둘째딸이 큰 아이와 합작으로 그림/액자를 만들어 선물하고, 막내녀석이 큼직한 생일카드 만들어 주고 하는 소란중에 기분이 많이 나아졌다. 이 나이에 자랑할 게 뭐 있겠는가? 예쁘게 구는 자식들 자랑밖에…해서 사진 몇 장 올려본다. ㅋ
저녁에 집으로 들어오니 내 생일이란다. 벌써… 그렇게 됐구나… 꽉 채운 나이 오십. 바로 얼마전 까지만 하더라도 누가 물어보면 ‘사십대’라고 대답했는데 이젠 ‘오십대’라고 해야겠네. ‘오십대 초반’이라고 대답하면 웃겠지 들? 속으로 “그렇게 얘기하면 기분이 좀 나은가?”하면서… 맞아 49세에 ‘사십대 후반’이라고 하지 않았으니 그냥 ‘오십대’라는게 양심상 맞는거겠지. ㅎ ㅎ
아내가 돼지로스구이를 맛있게 차려내어 주고, 큰 딸이 케잌 만들고, 둘째딸이 큰 아이와 합작으로 그림/액자를 만들어 선물하고, 막내녀석이 큼직한 생일카드 만들어 주고 하는 소란중에 기분이 많이 나아졌다. 이 나이에 자랑할 게 뭐 있겠는가? 예쁘게 구는 자식들 자랑밖에…해서 사진 몇 장 올려본다. ㅋ
큰 아이가 딸기, 블루베리, 복숭아등 온갖 과일을 바닐라푸딩과 함께 여러층으로 된 스펀지케잌 사이사이에 넣고 달지 않은 생크림으로 두른건데... ... 무지 맛있었다. 몇 번을 더 먹었는지 모를 정도로... 직장에도 싸 왔는데 지금 사무실냉장고 안에 잘 있다. ㅋ |
큰 아이가 자기들의 어렸을 적 사진을 연필로 스케치하고 둘째가 액자를 색깔있는 플라스틱재질로 만들어 넣었다. |
5/28/2010
청년에서 사회인으로
얼마 전 뜻 밖의 반가운 전화가 한 통 왔다. 나 누구누군데 기억하냐고. 처음엔 생각이 나질 않더니 잘 생각해 보니 주정부에서 일 할 때 Information Systems전공 대학졸업반학생들 중에 System Administrator가 되는 것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매 년 몇 명씩 나에게 맡겨져 1년간 견습을 하고 졸업과 동시에 떠나가곤 했었는데 그 중 하나였던 친구였다. 졸업 후 Verizon이라는 전화회사에 취직을 했었고 바로 얼마 전 이 지역의 지역담당자로 발령이 나서 왔는데 나에게 점심을 꼭 한 번 사고 싶다고 했다. 참 세월이 무상하다. (근데 이 녀석 말만했지 그 다음에 어디서 만나자는 연락은 없다. 고얀 놈 ㅋ. 하지만 뭘 바란 것은 원래 아니였으니까. ^^;;)
견습당시엔 다 아들, 딸 같아서 노상 데리고 다니며 네트워크 관리, 시큐리티 등에서 부터 엔드유저들을 대하는 태도등에 까지 내가 알고있는 모든 사항들을 가르쳐주고 점심시간이면 데리고 나가서 밥도 사주곤 했다. 가끔 집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라도 할라치면 집이 멀리 있는 친구들은 방학동안 기숙사에 죽치고 있어야만 하기에 전부 불러 들여서 먹이면 뛸 듯이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그저 자신들의 집에서 연말을 보내는 것 같이 지내게 해 줄려고 했던 일인데 아내도 그런 아이들을 정성껏 챙겨주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 얼굴들이 가물 가물하게 잊혀질 때 쯤 되면 하나 둘 연락이 오곤 한다. 이번에 장가 가는데 꼭 참석해 달라거나 집을 샀는데 집들이에 와 달라는 등의 연락. 그 중 에도 그 옛날 자기들이 학생으로 있으면서 먹는 것도 시원치 않을 때, 먹어도 먹어도 배 고플 때 내가 밥 사줬던 기억이 아직도 나서 이번에 취직이 되고 돈벌이를 시작했으니 나 한테 꼭 밥 한 번 사주고 싶다고 하는 전화가 제일 많다. 한 녀석은 이 곳 리치몬드 시장의 컴퓨터를 한 번 봐주고 눈에 들어 시장보좌관직을 꿰차고 시장이 바뀐 지금도 영구직으로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밥 먹으면서 해서 한 바탕 같이 웃기도 했다.
학생들 마다 제각기 특성이 있어 뛰어나게 총명하다거나 아니면 미련, 혹 부지런하거나 아니면 빤질 빤질 게으른 녀석 등 제 각각 이었는데 사회인이 된 지금은 모두 자기 밥벌이를 나름대로 잘 들 하고 있으니 이런 걸 보고 세상이 공평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불공평하다고 해야 하나…엄청난 차이가 있었는데 지금은 큰 차이없이 다 들 잘 살고 있으니 말이다. ㅎ ㅎ ㅎ. 그리고 나름대로 깨달은 진리 하나. 먹는 건 역시 나눠 먹어야 세상이 따뜻해 진다는...
견습당시엔 다 아들, 딸 같아서 노상 데리고 다니며 네트워크 관리, 시큐리티 등에서 부터 엔드유저들을 대하는 태도등에 까지 내가 알고있는 모든 사항들을 가르쳐주고 점심시간이면 데리고 나가서 밥도 사주곤 했다. 가끔 집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라도 할라치면 집이 멀리 있는 친구들은 방학동안 기숙사에 죽치고 있어야만 하기에 전부 불러 들여서 먹이면 뛸 듯이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그저 자신들의 집에서 연말을 보내는 것 같이 지내게 해 줄려고 했던 일인데 아내도 그런 아이들을 정성껏 챙겨주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 얼굴들이 가물 가물하게 잊혀질 때 쯤 되면 하나 둘 연락이 오곤 한다. 이번에 장가 가는데 꼭 참석해 달라거나 집을 샀는데 집들이에 와 달라는 등의 연락. 그 중 에도 그 옛날 자기들이 학생으로 있으면서 먹는 것도 시원치 않을 때, 먹어도 먹어도 배 고플 때 내가 밥 사줬던 기억이 아직도 나서 이번에 취직이 되고 돈벌이를 시작했으니 나 한테 꼭 밥 한 번 사주고 싶다고 하는 전화가 제일 많다. 한 녀석은 이 곳 리치몬드 시장의 컴퓨터를 한 번 봐주고 눈에 들어 시장보좌관직을 꿰차고 시장이 바뀐 지금도 영구직으로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밥 먹으면서 해서 한 바탕 같이 웃기도 했다.
학생들 마다 제각기 특성이 있어 뛰어나게 총명하다거나 아니면 미련, 혹 부지런하거나 아니면 빤질 빤질 게으른 녀석 등 제 각각 이었는데 사회인이 된 지금은 모두 자기 밥벌이를 나름대로 잘 들 하고 있으니 이런 걸 보고 세상이 공평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불공평하다고 해야 하나…엄청난 차이가 있었는데 지금은 큰 차이없이 다 들 잘 살고 있으니 말이다. ㅎ ㅎ ㅎ. 그리고 나름대로 깨달은 진리 하나. 먹는 건 역시 나눠 먹어야 세상이 따뜻해 진다는...
5/09/2010
어머니날
작년 말 쯤엔가 한 연구기관에서 발표한 것이 흥미있어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바깥에서 일 하지 않고 집만 지키는 가정주부의 일과를 따라 다니며 노동의 양을 측정하고 그것을 돈으로 환산한 결과, 30대 중반의 대졸성인남자의 미전국 평균연봉이 $47,000정도인데 반해 가정주부의 연봉이 $120,000 정도 되어야 한다는 발표를 했다. 속으로 와우 하면서 바로 고개를 끄떡이게 될 때 까지는 몇 초 걸리지 않았다.
새벽 6시에 일어나 둘째를 깨워주고, 7:30에는 막내를 깨우고, 아침 먹을 걸 챙기고, 남편 샌드위치싸고, 어머니 인슐린 놔 드리고, 저녁 반찬을 미리 만들고, 가게로 가면서 막내 학교에 내려주고, 가게 문열기 전에 물건 채우고, 하루 종일 카운터에 서서 손님 받고, 저녁에 내가 퇴근해서 가게로 가면 저녁 챙겨주고, 저녁 8시에 가게 문 닫고 집으로 와서 저녁 차리고, 상 치우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아이들 숙제 봐주고(난 아이들 중학교때 이미 가르치는 것을 포기 했는데 아내는 고등학교 둘째를 아직도 가르친다. 저번에 보니까 우리 고등학교때 디따 외우던 수학의 정석. 거기에 나오던 미적분 공식을 술술 외어서 가르치더라는... o.O), 요즘은 조금 뜸 하지만 어머니 1시간 정도 주물러 드리고 방에 들어 오면 밤 11시 혹은 11:30이 된다. 하루 도합 17시간을 쉬지 않고 일하는(그것도 주일만 뺀 매일) 아내를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난 차려주는 밥상 받아 먹고 그 후에는 길게 누워 텔레비젼을 보다 잠자리에 드는 우아한 생활을 하고 있는데... 다른 세상의 엄마들도 모두 이 정도의 일을 하고 계시겠지만...
우리 어머니는 어떠신가? 아버지가 가정을 잘 돌보지 않으실 때 한겨울 연탄불도 없는 얼음장같은 구둘장을 등에 지고 체온으로 아이 다섯을 덥혀가며 죽지않게 지키시고 모두 건강하게 잘 키우셔서 학교 다 마치게 하고, 시집장가 다 보내고, 손주손녀들까지 그 손을 거쳐가지 않은 녀석이 없으니 국가훈장이라도 수여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여기에 이 두 여성을 치하하며 한 마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둘째를 깨워주고, 7:30에는 막내를 깨우고, 아침 먹을 걸 챙기고, 남편 샌드위치싸고, 어머니 인슐린 놔 드리고, 저녁 반찬을 미리 만들고, 가게로 가면서 막내 학교에 내려주고, 가게 문열기 전에 물건 채우고, 하루 종일 카운터에 서서 손님 받고, 저녁에 내가 퇴근해서 가게로 가면 저녁 챙겨주고, 저녁 8시에 가게 문 닫고 집으로 와서 저녁 차리고, 상 치우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아이들 숙제 봐주고(난 아이들 중학교때 이미 가르치는 것을 포기 했는데 아내는 고등학교 둘째를 아직도 가르친다. 저번에 보니까 우리 고등학교때 디따 외우던 수학의 정석. 거기에 나오던 미적분 공식을 술술 외어서 가르치더라는... o.O), 요즘은 조금 뜸 하지만 어머니 1시간 정도 주물러 드리고 방에 들어 오면 밤 11시 혹은 11:30이 된다. 하루 도합 17시간을 쉬지 않고 일하는(그것도 주일만 뺀 매일) 아내를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난 차려주는 밥상 받아 먹고 그 후에는 길게 누워 텔레비젼을 보다 잠자리에 드는 우아한 생활을 하고 있는데... 다른 세상의 엄마들도 모두 이 정도의 일을 하고 계시겠지만...
우리 어머니는 어떠신가? 아버지가 가정을 잘 돌보지 않으실 때 한겨울 연탄불도 없는 얼음장같은 구둘장을 등에 지고 체온으로 아이 다섯을 덥혀가며 죽지않게 지키시고 모두 건강하게 잘 키우셔서 학교 다 마치게 하고, 시집장가 다 보내고, 손주손녀들까지 그 손을 거쳐가지 않은 녀석이 없으니 국가훈장이라도 수여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여기에 이 두 여성을 치하하며 한 마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오늘 오후 둘째와 함께 아내 몰래 The Desserterie라는 가게에 가서 Raspberry 치즈케잌을 하나 사는데 "아빠 미쳤어?" 한다. 워낙 엄마한테 절약하는 걸 훈련받아 그런 거 겠지만 수퍼에서 사면 보통 치즈케잌 다섯개 살 수 있는 돈으로 그걸 사는 걸 보고 낭비라고 생각하는 거다. 그래서 원래 엄마한테만 하는 거면 이렇게 하지 않노라고, 오늘은 엄마뿐만 아니라 할머니 그리고 고모도 오길래 엄마가 셋이나 되니까 괜찮다고 그래야 마땅하다고 설명을 했다. 얼만지 엄마한테는 절대로 말하지 않기로 다짐도 받고. 세상의 엄마들이여, 바깥분들이 표현은 잘 안해도 가슴으론 들 알고 있을겁니다. 여기 제가 드리는 치즈케잌 한 조각 드소. 정말 수고들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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