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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2014

19금 토크

적을까 말까 많이 망설이다가 나처럼 미국에 살면서 이런 황당한 경우를 당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좀 낮뜨거울수도 있는 이 이야기를 쓴다.  미성년 아이들은 모두 가라.

몇주전 내가 속한 팀원들이 한 고등학교에 모두 모여 작업을 하는 일이 있었다. 그 학교의 CAD Lab에 있는 30여대의 설계용 컴퓨터에 건축설계전문프로그램인 AutoDesk란 프로그램의 설치작업을 하던 중.

한 컴퓨터에서 그 작업을 하고 있던 동료하나가 하는 말.

동료1: "어, 왜 컴퓨터에서 소리가 안나는거지?"

: "그럼 사운드드라이버를 다시 설치해 봐!"

동료2: "맞아, 그 컴퓨터기종은 소리가 안날때 사운드드라이버 재설치가 정답이야!"

동료1(몇분 만지더니): "설치했는데 왜 소리가 나지 않는거지?"

: "설치하고서 테스트를 해봤어?"

동료1: "아니?"

:  "아니, 이런 친구를 봤나? 소리파일을 하나 찾아 스피커로 소리가 나는지 확인을 해봐야 할 것 아니야?" 라고 말하면서 사용한 영어가 "Make some noise!" 였다.

동료1, 2, 3, 4, 5 (일제히 빵 터지면서): "우하하하"

모두들 뒤집어지며 한 3분을 숨을 못 쉴 정도로 끼끼 대더라는...

동료3: "제임스, 너 우리중 제일 젊잖고 허튼소리 안하는 친구인지 알았는데 이제보니 괴짜구나?!! 우헤헤"




정말 왜들 그러는지 몰랐고 난 눈만 멀뚱거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모두들 아무일 없었다는 듯 작업계속. 작업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가서 옆에 앉은 친구들에게 살짝 물어봤다. 

: "야, 아까 내가 'Make some noise'라고 했을때 왜들 웃은거니?"

동료4: "아, 그거? 푸흐흡"

동료5: "너 정말 몰랐구나? 그 말 잠자리에서 쓰는 말이잖아? 상대에게 '신음소리좀 내 봐!' 하는"

(얼굴이 벌개지며): .....



7/15/2014

사람 병신만드는 문화적 차이

얼마 전 한 고등학교에서 서버를 점검하고 있는 중 이었다. 그 학교의 교감 (Assistant Principal)하나가 서버실로 날 찾아왔다. 혹시 한국말을 할 줄 아냐고. 그렇다고 했더니 좀 도와달란다. 사무실로 따라 갔더니 선생하나와 한국학생하나가 기다리고 있었고, 한국에서 온 지 몇 달 되지 않은 학생이라고 하는데 얼굴이 울상이다. 원래 내 일은 교무와 완전히 분리되어 내가 학생과 관련해 도움을 줄 일도 받을 일도 없게 되어 있다. 도리어 괜히 학교와 학생간의 일에 끼어드는 것을 늘 경계하도록 훈련을 받는 편이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어떤 학생이 온라인으로 무슨 성인사이트에 갔었는데 선생이 목격하고 그 학생쪽으로 달려가니까 얼른 브라우저를 닫고 로그아웃을 해 버려 징계를 위해선 증거가 필요하다고 교장이나 교감이 서면으로 정식요청하면 난 서버에 기록된 그 학생이 들렸던 사이트의 리스트를 주면 끝이다. 나에게 며칠 정학을 줄까 아니면 몇 주 정학을 줄까 물어온다면 대답은 “난 모르니 너희들끼리 결정해.” 해야지 “전번에 보니까 어느 학교에서는그런 경우 3일 정학을 주던데?”식으로 간섭하게되면 나중에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학생이 한국애라 처음부터 그냥 난 몰라라 할 수 없었다.

화가 많이 난 선생이 씩씩대며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는데 다음과 같다. 전날 숙제를 내 줬고 오늘 숙제를 검사하는 날 이었다고. 이 학생이 숙제를 내어놓질 않길래 물었단다. “You haven’t done your homework, have you?”(숙제 안 해왔지, 그치?) 그러니까 학생이 대답하길 “Yes”(한국에서 하던대로 "예, 안해왔어요"라는 의미로)했단다. 그래서 그럼 좀 보자고 선생하 재촉하니까("Yes"란 대답은 미국에서는 숙제를 해왔다는 대답이니까 당연히) 보여주질 못하고 있더란다. 그래서 같은 방법으로 다시 물었고, 학생은 역시 Yes라고 답하곤 여전히 숙제는 제시하지 못하더란 것이다. 그 여선생이 화가나도 무지났다. 아이가 자기를 다른 학생들 앞에서 무시하고 장난치는 걸로 생각하고 그 아이를 끌고 교감실로 찾아간 것이 사건전말.

아이에게 물었다.
“얘, 이름이 뭐니?”
“xx인데요?” “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줄 수 있겠니?”
“선생님이 숙제 안 해왔지, 그치? 해서 전 예 맞아요 안해왔어요 라고 대답한 것 뿐이데 자꾸 화를 내면서 숙제를 내 놓아 보라고 하는데 답답해 미치겠어요. 사실 숙제도 하기 싫거나 시간이 없어서 안 한게 아니예요. 숙제 자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해도 안되고 집에서 형이나 누나같은 번역해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도 없구요. 나 정말 숙제를 남들 처럼 잘 해오고 싶은데…”

나도 처음 미국에 와서 몇 번 겪었던 일이라 아이에게 간단하게 설명을 해 줬다. “앞으로는 한국에서 대답하던 방법은 잊어버리고 숙제를 안 해 왔으면 No, I did not do homework. 라고 하고, 해 왔으면 Yes, I did.라고 해야 한단다.”

선생과 교감에게 같은 질문에 정반대의 대답을 하는 문화적차이가 있는 걸 설명했더니 눈이 동그래지며 놀라는 표정이다. 앞으로도 새로 오는 한국학생들이 이런 문제를 겪을 텐데 그때마다 다른 선생들에게 잘 설명해 달라고 부탁하고 그 아이에게는 내 명함을 하나 건네 줬다. 잘 모르는 게 있으면 전화하거나 이메일로 물어보라고. 얼굴이 다시 밝아지는 그 아이를 보니 조금 마음이 놓였다. 한국에선 공부 잘 했어보이는 아인데…여기선 이런 황당한 경우를 당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모든 면에서 뛰어나게 잘 할꺼라는 건 알고 있지만 한 동안 피치못하게 이런 경험을 여기저기서 겪어나가야 하는 그 아이가 안쓰러웠다.

(년전에 올렸던 글)

5/26/2013

Mother-in-law

며칠 전 직장동료들과 모인 자리에서의 대화

나:  한국에서 장모님이 오셔서 두 달 정도 우리 집에서 지내시게 된단다.
동료들: Yikes!(합창하듯)  Poor James! We feel sad and depressed for you already by just hearing it.
나: 아니, 난 너무 좋은데?
동료들: What!!!? Are you losing your mind? Something's wrong with him! (고개들을 절레절레 흔들며)

이 곳 미국에서는 사위와 장모의 관계가 한국과 같이 아껴주고 위해주는 사이가 아닌 철천지원수의 관계로 정의된다. 마치 우리의 전통적인 고부간 관계처럼. 왜 그런지는 몰라도 연속극이나 실제 이웃에서 보면 장모는 언제나 사위의 흉을 보며 들들 볶고, 사위는 사위대로 장모가 뭐라고 하는 건 들어보지도 않고 반기를 들더라는...그것에 비하면 차라리 미국 고부간의 관계가 더 산뜻하고 바람직하다. 위의 동려들의 정색은 한 마디로 장모님께 밀리지도 말고 지지도 말고 맞서서 꿋꿋히 싸우라는 거다. 나로서는 이해가 안되는 참 이상한 관계고 반응이다.

부모님께서 살아계실 제 오랜 병석에 계셨기에 장모님을 모시고 올 엄두를 못 내었었고, 이제야 좀 막내딸 곁에 계시게 해 드려야 겠다라는 마음으로 모셔 오긴 했는데 문제는 이 곳 생활이 워낙 단조롭고 재미가 없다는 것. 아내는 토요일 밤까지, 난 금요일 오후까지 일을 해야 하기에 주중에는 꼼짝없이 감옥같은 집 안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셔야 한다. 이제 겨우 2주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말씀은 절대 안 하시지만 한눈에 지루하신 걸 알아 채리겠더라는. 얼마전 캐나다에 계신 처형댁에 가셨을 땐 워낙 잘돼있는 그곳 지하철과 버스시스템을 이용하셔서 가고 싶으신 곳을 마음껏 다니시면서 언어문제도 없이 (83세 신데 영어 일어를 유창하게 하시고 현재는 중국어 열공중이신 인텔리여성) 재미있게 지내셨다는데...죄송할 뿐이다.

그래서 아내와 이야기하길 토요일 하루 만이라도 내가 계획을 세워서 여기 저기 모시고 다니기로 하고 어제 처음으로 리치몬드구경을 시켜드리고(나도 처음) 여기에 조금 기록을 남긴다. 거의 30년을 이곳 리치몬드에서 살았는데 이런 곳이 있었나 할 정도로 가 볼 만한 곳이 있었다는...

Civil War Museum을 방문





이 곳 리치몬드 다운타운을 동서로 가르지르며 흐르는 James River. 여기에 있었다가 남북전쟁때 끊긴 다리가 바로 오른쪽 앞에 보이는 쇠로된 다리. 

Shockoe bottom이라는 곳에서 타는 관광선을 조정하는 선장할아버지. 입심이 엄청 좋으신 분. 40분을 숨 한번 고르지 않고 줄창 인근의 유적지를 설명해 주시더라는.




주지사, 시장, 가수 등 유명인들이 자주 드나들었다는 유서깊은 식당에서 점심을. 메뉴표지에 나와있는 초기 웨이터들 사진. 모두 식당주인의 아들들인데 지금은 이 지역의 호텔을 몇개씩 소유한 재력가들이라고 함. 방문 인증샷.

이 집에 오면 꼭! 먹어야 하는 Fish Boat. 튀긴 동태와 옥수수빵, 그리고 mashed potato가 아우러져 흡족한 한 끼를 즐길수 있음.

추우셔서 시킨 커피가 대야만한 그릇에 밥주걱만한 스푼과 같이 나왔다. ㅋ ㅋ

다음 토요일엔 근처 바닷가로 모시고 간 소식을 올릴 예정이오니 한국 식구들 꼭 다시 찾아 주셔서 어머님 근황을 확인하시길... ^^ 현재 건강하게 잘 계십니당.


5/05/2011

Losing a best friend

In memory of Avery Spence
둘째와 같은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고 이번 가을에 같이 졸업할 예정이던 친구가 안타깝게도 며칠 전 교통사고로 갑작스레 유명을 달리했다. 둘째와 오늘 그 장례식을 다녀왔는데 지난 며칠간 계속 우울해 하고 우는 아이를 특별히 달랠 도리가 없으니 아빠로서 무력감을 느끼는 중이다.

얼마나 친했던지 일주일에도 며칠을 그 아이가 우리집에 와서 자고, 우리 아이가 그 집에 가서 자곤 하면서 서로 'Best friend'라 부르며 죽고 못살던 사이. 학교 여자축구부 주장으로 운동도 열심히 하고, 공부도 잘하고, 봉사활동도 정말 열심히 해 친구들 사이에선 수퍼우먼으로 불리던 아인데...

학교 건너편의 교회에서 했는데 2층까지 꽉 채운 조문객이 1500여명은 되어 보였고, 우리 딸을 포함한 여러 친구, 선생들이 나와 생전의 그 아이를 떠올리면서 이야기들을 하는데 모두 웃다 울다 다시 웃다가 또 우느라 바빴다. 파워포인트로 보여주는 사진중에 우리 둘째와 같이 찍은 사진이 제일 많았다. 엄마아빠는 도리어 조문온 딸의 친구들을 일일이 안아주고 위로하고 있었는데 어쩜 저리 차분할까 싶었다. 가슴속은 찢어지고 있을텐데...


<혹 미국 장례문화를 알고 싶은 분이 있을까 참고로>

미국의 장례는 보통  Visitation Service(혹은 Viewing), Memorial Service(혹은 Funeral), 그리고 Burial Service의 세 서비스로 이루어 지는데, 오늘 다녀온 건 Memorial Service였다. 가족에 따라 Memorial Service가 끝난 후에 Luncheon을 준비해 조문객들을 초대 하기도 하지만 요즘은 많이 생략하는 편.

Visitation(Viewing) Service에는 고인을 깨끗하게 단장하고 관뚜꼉을 열어놓아 가족과 방문객이 고인을 기억하고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일반적으로 다음날 아침 있게되는 Memorial Service(Funeral) 전날 저녁에 비교적 간략하게 장의사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많은 한인들은 가게를 열어야 하는 사정으로 인해 다음날 아침에 있을 Memorial Service(Funeral)에 참석이 힘들어 밤 시간에 있는 이 Visitation(Viewing)에 가장 많이 참석하는데 미주한인들은 바로 이 서비스를 'Funeral'이라고 여기고 유족도 그리알고 준비한다.

Memorial Service(Funeral)는 고인을 평소에 다니던 교회등의 장소로 옮겨서 주로 예배형식으로 성직자의 집전하에 치루게 되는데 가족이나 친구중에서 조사를 읽고, 나머지 시간은 누구든지 나와서 예전의 고인의 좋았던 기억들을 짧게 이야기 할 수 있게 기회가 주어진다. 주로 고인으로 인해 재미있었던 일, 기뻤던 이야기들을 하면서 고인을 기념하는 하나의 축제와 잔치로 진행된다. 사진과 비디오등을 모아 파워포인트나 DVD로 보여주기도 하고. 많은 웃음이 있지만 역시 무거운 건 지울 수 없고. 여기서 유족이 '곡'을 하는 건 미국에서 만큼은 한국사람들 조차도 받아들이기 힘든 넌센스로 여기는 듯 하다. 미국사람들은 이 서비스에 제일 많이 참석하고 진행하는데 비해 한인들은 가족과 집례자, 아주 친한 친구들만 참가해 장지로 떠나기 전에 매우 간략하게 한다.

Burial Service는 장지에서 이루어 지는데 집전자의 간단한 설교나 기도에 이어 매장하는 절차를 친행한다. 묘지관리인들이 도르레를 이용하여 관을 바닥으로 내려 놓으면 가족과 참석자들이 꽃 한송이씩을 관위에 던져넣는 걸 마지막으로 장례절차가 완전히 마치게 되는데 나머지 흙을 덮는 일은 묘지관리인들만 남아서 하게 된다. Memorial Service(Funeral)를 마치고 장지로 이동할 때는 동네경찰차들 몇대가 동원되어(해당 경찰서에 수고비를 줘야 하는 것 맞고) 운구차를 앞세운 조문객들의 차량행렬이 신호등에서 끊어지지 않도록 사거리마다 막고 이동을 시키는데 조문객의 수가 많으면 길이 20-30분 막히는 수도 있고, 장례행렬이라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 낮에도 조문객들 차량의 헤드라이트를 모두 켜고 달리게 된다.

Luncheon에서는 Memorial Service(Funeral)를 진행한 교회나 장소, 혹은 고인의 집으로 가서 준비된 간단한 식사나 스낵을 먹게 되는데, 요즘 우리 한인들은 주로 한국식당을 빌리거나 미리 주문하여 준비한 김밥/도시락등을 장지에서 나눠줘서 해결한다.

7/16/2010

Double dip

오늘은 직장을 쉬는 금요일. 원래는 아침부터 아내와 가게로 나가 가게일을 도와야하는데 아내가 먼저 가게로 나갈테니 잔디도 깍고 지금 마이애미에서 놀러와 있는 조카와 다른 식구들을 데리고 나가 맛있는 점심도 사주고 가게는 오후 늦게나 나오라고 한다.

모두에게 어디가 좋겠냐고 물으니 멕시코음식이 두루 만족시킬 있는 공통분모. 자리를 잡고 앉으니 의례 그렇듯 전식으로 우선 Tortilla(옥수수칩)과 Salsa 내온다. 식사주문을 하고 모두 칩을 살사에 찍어먹기 시작하는데엄마가 칩을 찍어서 한입 베어 무시곤 조금있다가 손에 남은 나머지 칩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다시 살사에 찍어 드시는 거다. 그걸 조카와 아이들의 눈이 똥그랗게 된다.

그게 이상한 ? 할지 모르지만 여기선 절대 아니다. 우리 집안에서라면 식사할 때 고추장, 된장, 찌게 등을 그렇게 공유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가령 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베어먹고 조금있다가 한 입 베어먹고 남은 나머지 고추를 다시 고추장에 찍어 먹는다찌게도 마찬가지로 수저로 떠서 입으로 가져가고 조금있다가 수저로 찌게를 다시 뜬다. 한국에서도 요즘은 각자 자기 그릇에 덜어 먹는지 모르겠다. 여기선 살사나 소스, 아니면 찍은 등은 입에 그냥 먹어버려야지 일부 남겼다가 다시 찍으면 마치 옛날 학교에 도시락을 갔는데 친구들이 맛있는 반찬을 뺏어먹는 막기위해 침을 뱉어 아무도 건드리게 했던(에이, 정말 그랬을라고 할지 모르나 우리세대 정말 그랬다 . 그리고 뱉은 도시락을 천연덕스럽게 뺏어 먹던 놈이 .) 처럼 같이 먹는 살사/소스/딥에 침을 뱉은 마냥 야만인 취급을 받는다.

어디 밖에 나가 미국직장 동료나 친구들과 식사를 하게 되면 우리집에서의 습관은 완전히놔두고 나가야지 잘못하면 비교적 실수 범하게 된다 옛 친구인 미국아이들과 늦은 저녁까지 프로젝트를 하다 저녁을 먹으러 나갔던 기억이 난다. 때는 칩과 살사가 아닌 셀러리 당근등의 야챼와 하얀색의 치즈향이 강한 dip이었는데 ranch dip정도 되지 않았나 싶다. 내가 바로 이런 실수를 했는데 같이 열심히들 먹다가 갑자기 손을 일제히 놓더라는 그리 분위기가 ~~ 지면서 서로 얼굴들만 쳐다보는지 이상도 하다고 혼자 생각했다. 그리고 “아니, 벌써들 배부르니?” 하며 눈치도 없이 꾸역 꾸역 혼자 먹었다는그게 바로 ‘double dipping”이라는 나중에야 알았다.

우리아이들 눈이 똥그랗게 됐던 자기들은 집에서 그러니 익숙한 일인데 주위에 식사하고 있던 다른 손님들이 흉이라도 그런 이었을게다. 지금은 한국에서도 이런 문화적차이는 상식적으로 알고들 있겠지만 혹시나 해서 적어본다.

참고로 double/dip이라는 단어들은 새삼스러운것도 아니고 이런 미국사람들의 식생활에티켓은 원래 오랜 세월동안 존재하는 것이었겠지만 ‘double dip”이라는 숙어적 표현은 지금은 종영된 Sienfeld라는 코미디에서 George 라는 약삭빠르고 염치없는 대머리친구가 어느 파티에 가서 행위를 하다가 다른 참석자에게 걸리게 되면서 사용되기 시작한 신조어 이후 하나의 표현으 자리잡았으니 그 코미디의 대본을 쓴 작가가 원조라 할 수 있지 않나 싶. 여기에 가면 실제 클립이...  

아, 멕시칸음식점 같은 데서 나오는 칩들이 대개 엄청 큰 사이즈다. 한 번 살사에 담갔다가 한 입에 다 넣고 씹는게 입작은 동양사람들에게는 좀 무리. 그래 재치있는 사람들은 두 손으로 두조각을 낸 다음 한 손에 있는 반 조각을 찍어 먹고, 좀 있다가 다른 손에 있는 '침 안묻은 깨끗한' 반 조각을 마저 찍어 먹기도 하는데 이건 반칙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생각같으면 살사 한 그릇 따로 달라고 해서 혼자 앞에 끼고 내 맘대로 두번이고 세번이고 찍어서 먹으면 좋으련만... ㅡ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