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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7/2011

변화되는 삶

아침에 출근을 하다가 차에서 들은 Dr. Michael Youssef 의 설교중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자동차산업의 메카인 디트로이트, Michigan 에서 있던 일. Ford자동차회사에서 일하던 한 수리공이 어느 날 예수를 영접하고 세례를 받았단다. 디트로이트 강 에서 세례를 받은 이 수리공은 바르고 정식하게 살고자 하는 욕구가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고 자신이 과거에 저질렀던 잘못들이 깨달아지기 시작했다. 그 잘못 중 하나는 직장에 있던 수많은 수리공구들을 집으로 훔쳐내온 것 이었는데 이로 인해 잠시 딜레마에 빠짐. 직장상사에게 그 사실을 고백하기는 해야 하는데 만약 그렇게 되면 당장 해고당할 것이 뻔하기에. 하지만 무엇이 옳은 것인지를 깨달았기에 그는 지체하지 않고 직속상관을 찾아갔다.

사연을 들은 직속상관은 과거에 이런 경우가 없어놔서 자신이 판단하지 못하겠노라고 그를 공장장에게 데리고 갔다. 공장장 역시 대책이 서질 않아 사장인 Henry Ford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하고 그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 당시 Henry Ford는 새로 지은 공장을 둘러 보느라고 유럽에 체류하고 있는 중이어서 공장장은 장문의 전보를 날려야 했고 그 수리공의 예수영접사실, 디트로이트강에서 세례받은 일, 공구를 훔쳐 내어갔던 사실, 회개 후 공구를 모두 들고와 고백한 것 등을 아주 자세하게 알렸다. 조금 후 Henry Ford에게서 아주 간단명료한 답신이 왔다. "디트로이트 강물을 막아 댐을 만들고, 디트로이트의 모든 시민들이 세례를 받게 하시오!"

실제로 있었던 우스운 이야기인데, Michael Youssef목사는 여기서 요즘 시대의 크리스찬에 대한 언급을 하며 설교를 마쳤다. 예수를 믿고도 삶이 변하지 않은 채 구태의연한 삶을 살아가는 크리스찬들이 얼마나 많은가. 간통을 하다가 크리스천이 되어서도 그걸 뉘우치지 않고 계속 간통을 계속하는 간통크리스찬, 사기와 도둑질을 하다가 크리스천이 되어서도 그것을 계속하는 사기꾼/도둑크리스찬, 그 외에 알콜중독크리스찬, 동성애크리스찬 등등 전혀 변화되지 않고 세상과 다를 것 하나 없는 사람들로 가득찬 교회가 무슨 능력으로 무슨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겠다고 하는 거냐는 꾸짖음이었다.

비슷한 갑작스런 변화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 모태 신앙으로 나름 정직하고 괜찮은 크리스찬이라고 스스로 여기던 30대 후반의 어느 날, 읽다 보면 늘 평범하고 지루하기만 했던 성경책의 글자들이 갑자기 한 글자 한 글자 살아서 뛰쳐 나오는 듯 나를 세차게 때리기 시작했는데 아예 성경책을 펴기가 무서울 정도였다. 아무렇지도 않게 수십번은 읽었을 말씀들이 그 때는 무서운 꾸짖음으로 다가오면서 거기에 적혀있는 말씀들이 거울이 되어 나의 더러운 모습들, 삐뚤어진 모습들을 비쳐 보여주기 시작했고, 나의 기억에서 이미 까맣게 사라져 잊고 있었던 나의 잘못들 까지도 몸서리치게 기억나고 깨닫게 되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 기억난 과거의 잘못들의 대상인 피해자들(만나는 것이 가능한)을 하나 하나 찾아 다니면서 용서를 빌게 되었는데, 이건 뭐 귀를 잡아끌려 다니는 듯(내 의지와는 상반되게) 보이지 않는 힘에 끌려 다니면서 용서받음과 회복의 기회를 가졌었던 기억이 있다.

근데... Michael Youssef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걱정이 되었던건 지금 내가 마치 개가 자기가 토한 것을 다시 찾아가 아무렇지도 않게 핧아 먹듯이 그 생활로 다시 돌아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것...두렵다.

3/07/2011

Gleaning/Gleaners

나도 안다. 이전에 방문 잘 하시던 이웃블로거 몇 분은 내가 종교적인 글을 올리는 것을 보고 발길을 딱 끊었다는 걸.

이해가 간다. 너무 많은 기독교인들이 본을 보이기는 커녕 일반 사회인들보다 못한 발언이나 행동으로 같은 기독교인들 조차 고개를 돌리게 하고 있으니 가뜩이나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거나 비종교인들은 오죽하겠나 싶다. 나자신이 기독인의 한 사람으로 참으로 많은 반성이 필요한 요즘.

하지만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이런 '사람적인' 일 들을 떠나서 내가 섬기고 우러르는 하나님이 어떤 분 인가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나에게 있고, 아무리 '불편하고 재수없는(요즘 반기독교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인 줄 압니다)' 기분이 들더라도 좀 객관적으로 기독교인들의 하나님이 원래 어떤 분 인가는 안 믿는 사람들도 좀 알아두면 좋겠다는 생각에 우선 딱 한 가지만 소개하기로.

"밭에서 난 곡식을 거두어들일 때에는, 밭 구석구석까지 다 거두어들여서는 안 된다. 거두어들인 다음에, 떨어진 이삭을 주워서도 안 된다. 포도를 딸 때에도 모조리 따서는 안 된다. 포도밭에 떨어진 포도도 주워서는 안 된다. 가난한 사람들과 나그네 신세인 외국 사람들이 줍게, 그것들을 남겨 두어야 한다. 내가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레위기 19장 9절-10절. 새번역)

이집트를 떠나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백성에게 "명령하신 법'이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나 싶다. 그냥 우리의 원래 성정으로는 남에게 베푸는 것이 잘 안될 줄을 아시니 아예 법으로 못을 박아 놓으신, 하나님을 믿거나 안 믿거나 상관없이 어려운 사람들을 안타깝게 생각하시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이 명령으로 인해 먹을 것 없는 어려운 사람들이 도둑취급을 받을 걱정 안하고 떳떳하게 남의 밭에 들어가 떨어진 이삭과 열매를 수확해 연명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꽤나 괜찮은 분 아닙니까? 믿는다고 하면서 나쁜 모습을 보이는 나 같은 사람이 문제지 기독교인의 하나님은 원래 이런 분 이세요. ^^

(p.s. 아직도 이스라엘에는 이런 풍습이 남아있고, 남아있는 이삭이나 과실등을 거두는 일을 Gleaning이라고 한다. 물론 현대의 우리 대부분은 농사를 짓지 않으니 여러 후원단체를 통해 어려운 이웃과 나누거나 하는 다른 방법이 있겠지만.)

1/02/2011

새해 첫 주일오후의 단상

몸은 게으름을 피우고 싶어 늘어 지지만 그래도 새해 첫 주일인데 시작을 잘 해야 겠다는 마음에 시간이 허락하면 주일 오후에 나가곤 하는 그 자리에 갔다.

비가 와서인지 아니면 어제 먹은 설음식들이 많이 남아서인지 장보러 오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날씨가 좋을 땐 몰랐는데 그 가게 자동문의 센서가 비막는 지붕전체를 커버하고 있어 내가 지붕밑으로 비를 피해 들어가면 문이 열리고 찬바람이 가게안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지붕밖에서 내내 비를 맞고 서 있어야 했다. 날씨가 그리 추운 것도 아닌데 빗방울이 얼음같이 차겁게 느껴진다. 그런 와중에 이런 저런 생각이...

<하나>
내 속에서 두 목소리가 다투는 소리가 들린다. "야, 그렇게 한국가게 앞에 나와 전도하는 게 얼마나 효과가 있다고 그러니? 요즘 세상에 어디 그런 방법이 먹혀 든다고..." 그러면 다른 목소리가 "근데... 집에 누워 티비보는 것 보다는 이게 낫지 않겠냐?" 한다. "너, 그거 다른 교인들 보여주기 위해, 나 전도한다 광고하기 위해 나와 혼자 버티고 서 있는거지?"하니 다른 목소리가 이내 "아니, 나 이거 나 구원받은 것이 기쁘고 감사해서, 하루에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 만나 전하기 위해 하는 거지 누구 보라고 하는 거 아냐. 누가 본다고 날 상 줄 것도 아니고 뭐 부럽다고 할 것은 더더구나 아니고."

늘 이런 부정적인 목소리가 날 포기하게 하려 하고, 외식하는 자(hypocrite) 로 끊임없이 정죄한다. 삶이란게 원래 이런 갈등과 결단의 연속인가... 촛점을 잃지 말아야지.

<둘>
구역이 재 조정되어 젊은 부부들이 주로 있는 구역교사를 맡게 되었다. 워낙 똑똑하고 신실한 분들이라 부담이 적지 않다. 그 분 들을 가르친다는 것 보다는 같이 배워 나가며 같이 고민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성경말씀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는 요즘 안 믿는 사람들도 성경을 꿰고 있는데 믿는 사람으로서 성경말씀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 말씀을 아는 것에서 더 나아가 자신들의 삶의 현장에서 말씀 그대로 삶을 사는 것에 도전하고 또한 나 자신도 도전 받으며 갈 생각이다.

<셋>
우연히도 읽어오던 성경이 지난 2009년을 끝내는 마지막 날엔 구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서의 마지막 장 이였는데, 이번 2010년 마지막 날은 신약의 마지막인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장 이었다. 요한계시록은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속에 그 내용이 뚜렷하게 visualize되면서 두려움이 더해진다. 지금 온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 들도 예사롭지 않고.

후... 일년내내 신약만 붙잡고 씨름한 셈이니 그 양에 있어서 거의 세배나 되는 구약을 보려면 금년은 꾀 부리지 않고 부지런히 가야 할 듯.


아내에게 비옷을 하나 사 달래서 차에 지니고 다녀야겠다. 그래 오늘과 같이 비가 와도 떨지 않고 거뜬할 수 있도록...

12/01/2010

Reenactment

지난주일엔 우리반 아이들에게 룻기의 이야기를 가르쳤다. 그리고 돌아오는 주일에 그 내용을 가지고 연극을 하자고 하니 모두들 좋아라 한다. 그럴려면 대본이 필요한데 막상 인터넷을 뒤져보니 마땅한 것이 눈에 띄지 않아 허접하지만 원래 이야기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은 약간 코믹한 버전의 대본을 급조했다. 몇가지 복장을 준비해 가서 입히고 비디오로 찍어줄 참.  ㅎ ㅎ

구약의 룻기 줄거리를 요약하면, 모압지방에 사는 나오미라는 여인이 남편과 두 아들이 죽자 살길이 막막한 가운데 자신과 같은 미망인 처지가 된 두 며느리들, 룻과 오르바에게 너희족속으로 돌아가서 재혼해서 잘 살라고 당부 하지만 룻은 끝까지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자신에게는 낯선 타국인 이스라엘로 쫓아간다. 거기서 추수가 끝난 남의 밭에 들어가 찌꺼기를 거두며(Gleaning-밭주인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추수를 대충하고 일부러 조금 남겨두는 것을 거두는 것) 생계를 이어가던 룻이 그 밭의 주인 보아스의 눈에 띄고 급기야는 룻의 아름다운 마음씨에 감동한 보아스가 룻을 아내로 맞이하게 된다. 해피엔딩인데 이 보아스와 룻이 골리앗을 눕힌 다윗왕의 증조할아버지 할머니가 되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역시 이 가계에서 예수스리스도께서 태어나게(호적상으로) 된다. ㅋ ㅋ 녀석들이 여자는 안 하겠다고 해서 내가 천상 나오미 역할을 맡게 생겼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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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ipt for the story of Naomi and Ruth (based upon the Book of Ruth)

(Casts)
Narrator:
Naomi:
Ruth (daughter-in-law #1):
Orpah (daughter-in-law #2):
Bo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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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01) in Moab
Narrator: This story happened long before Jesus Christ was born 2000 years ago and has something to do deeply with the birth of King David and our lord Jesus Christ.
Naomi(in despair): Ruth and Orpah, now my husband and all of my sons are dead.
Ruth(desperately): How can we stay alive without our men from now on?
Naomi: That’s what I’m talking about! I will go back to my country and you girls go back to your families and remarry to the good men.
Orpah(crying): Oh, no! We don’t want to leave you alone, Naomi!
Ruth(also crying): Please, Naomi! Let us stay with you!
Naomi: No. You girls are still young and beautiful and I am old and ugly. Please leave me and go on with your own lives!
Orpah: OK, then I will go back to my family. Sorry, later girls!
Ruth: Naomi! I won’t leave you. I will go where you go and I will die where you die!
Naomi: Oh, Ruth! My precious child! Let’s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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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02) in Israel
Narrator: Now, Naomi and Ruth have moved to Israel and found a shelter.
Ruth: Naomi, I will go out the field today and glean to get some grain for dinner.
Naomi: Where are you going?
Ruth: Boaz’s corn field.
Naomi: Boaz? Oh, he is known to be a nice, generous, and God honoring man. Matter of fact, he is a relative of my late husb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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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03) Boaz’s corn field
Narrator: Ruth was picking grains among other poor people and Boaz was looking around his corn field.
Boaz(looking at Ruth): What is your name, dear?
Ruth: My lord. My name is Ruth, the daughter-in-law of Naomi.
Boaz(with surprise): Really? I have heard that you have stayed with that old woman and cared for her even though you could have left her. You are a beautiful woman, inside out! I know, I am going a little too fast but…would you marry me?
Ruth: My lord. What an offer! But I need some time to think about it and come back to you tomorrow.
Boaz: Well, then. Go in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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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04) at the shelter
Narrator: Naomi and Ruth are having dinner made of the grain that Ruth has collected at the corn field.
Ruth(with excitement): Naomi! I met the owner of the corn field, Boaz, today. He is a tall and good looking guy! He proposed to marry me!
Naomi: What? Baby, you just hit the jackpot! If you marry him, we don’t have to worry about the food and a place to sl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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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05) Boaz’s corn field
Narrator: Next day, Boaz was the first person at the corn field and started waiting for Ruth to show up.
Boaz(with big smile): Well, my dear. How are you today and have you thought about what I asked?
Ruth: My lord. YES!!!!! I will marry you!
Boaz(hugging Ruth): Oh, thank you, Ruth! I will take care of you and Naomi for the rest of your lives and make you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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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06) Boaz and Ruth’s mansion
Narrator: Few years after they got married, they had a baby.
Ruth( with new born baby in her arms and humming a lullaby): Honey! What name have you come up with for our baby boy, Boaz?
Boaz: How about ‘Obed’?
Ruth: That is a totally awesome name!
Narrator: Obed will have a son named ‘Jesse’ many years later. Jesse will have a son, ‘David’, who will be the King of Israel. But most importantly, Jesus Christ our Lord will be born from the descendant of this family many many years later. The END.

12/31/2009

The Floodgates of Heaven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말라기 3:10-12)

구약의 맨 마지막인 말라기서의 마지막 장을 올해의 마지막이 되는 날 읽게 되는 우연으로 새해는 신약읽기로 시작하게 됐다. 말라기서 내용 역시 나에게 새해에는 이렇게 살아라 하는 것으로 들렸다.

예외인 사람도 있겠지만 최근의 나쁜 경제로 인해 수입이 있어도, 식비와 할부금, 꼭 필요한 생필품에만 아껴 지출을 해도 빚이 쌓여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갈등이 생긴다. 크레딧카드를 긁어서라도 십일조를 해야 하나… 십일조가 그대로 빚으로 남게 되는데도 헌금을 해야 하는 건가… 십일조를 못 할 충분한 변명과 이유가 되지 않는가?

그럴 듯한 계산같은데, 또 눈 질끈 감고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데, 엄밀히 따지면 틀렸다는 것을 우리 모두 이미 알고 있다. 전부 하나님의 것 인 데도 불구하고 십분의 구를 우리가 갖게 해 주셨으니 십분의 일은 따로 떼어서 먼저 드리고 나머지로 생활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모자라면 한 그릇 먹던 밥을 사분의 삼 그릇, 혹은 반 그릇 으로 줄여 덜 먹어야 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 그렇게 믿고 드릴 용기가 나질 않는다. 그렇게만 하면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시는데 설마… 하는 마음이  먼저 드는 건 믿음이 없어서인가.

성경전체를 통틀어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구절은 여러 번 나와도 시험해 보라는 말은 말라기 3장 10절이 유일하다고 한다. 그만큼 하나님이 이 것 만큼은 개런티하신다는 말일게다. 물론 "복"이라고 하셨지 내가 당장 급하고 원하는 돈 혹은 재물이라고 하신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재물은 물론 가정생활에서의 복, 사회생활에서의 복, 일반적인 행복, 장수와 건강까지도 포함한 것이겠지.

2010년 새해에는 좀 그렇게 살아 보고 싶다. 그래서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에 대한 욕심이 있다. 물론 혼자 힘으론 안 되는 거 겠지만… 그러고 보니 이제 2009년이 몇 시간 남지 않았네.

12/07/2009

바로 제가 그 사람입니다.

스바냐서 1:6 의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를 멸절하리라"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나님을 거부/배반하거나, 우상을 섬기거나, 아니면 살인죄처럼 무슨 큰 죄를 진 거라면 모를까 그저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구하지도 않았다고 해서 다른 큰 죄들과 동일하게 취급하신다... 

요즘의 내 모습인 것 같아 더 충격이었다. 매일 아침 하나님 앞에 무릎꿇고 나아가지 않으면 무슨 큰 일이 날 것처럼 그러더니 이젠 이런 저런 어려운 일들과 여러가지 주변상황이 좀 그렇다는 핑계가 늘어 지금은 아예 언제 그런 적이 있었느냐는 듯이 담을 쌓고 지내는데 차라리 그게 편하다. 하루에 한 두장 읽는 알량한 성경읽기도 힘에 겨워 성경보다는 온라인 뉴스로 손이 먼저 가게 된다. 그럴 때 마다 마음속에서 "말씀 읽는 것에 먼저 시간을 드리고 나서 다른 일을 해도 해야 한단다."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손과 마음이 다른 것으로 가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다.

어떻게 해야 오던 길로 되돌아 가서 길바닥에 떨어 뜨리고 온 그 생활을, 그 뜨거웠던 마음을 되찾아 올 수 있는지... 도와 주심을 기다린다. 내 결심만으로는 버거워서.

8/01/2009

Yoke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태 11:28-30)

늘 대하는 구절인데 항상 의문이 있었다. 주님의 멍에를 매면 "쉽다"고 하신다. 목사님들도 그냥 주님이 주시는 멍에는 가볍다고만 하고 넘어가 버리신다. 그러면 난 내심 "그래도 멍에를 안 멘것 보다는 아무래도 좀 무거울텐데?..." 하곤 했다. 얼마전 운전중에 John MacArthur목사님의 방송설교를 듣다가 우리 한국의 소들이 지는 멍에와 다른 멍에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한국에서는 한 마리의 소가 멍에를 지게 되어있는데 반해 이스라엘에서는 두 마리의 소가 같이 하나의 멍에를 진다고 한다. Aha! 그래서 어떻게 생겼나 찾아봤다.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보게 되는 소 멍에






이스라엘의 소 멍에

그래서 여기에 보이는 소 두마리가 메는 멍에를 주님과 내가 같이 진다면 힘세고 크신 주님이 날 거의 반짝들고 다니실 것 아니냐, 난 발이 대롱 대롱 그저 허공에 매달린 채. 그래서 말이 멍에지 난 힘 하나도 들이지 않고 멍에를 지게 되는 것이라는 MacArthur목사님의 설명이셨다. 그리고 내가 가는 곳이면 주님이 어디던지 필수적?(나와 한 멍에로 엮어 있기에)으로 동행하시게 되고, 주님의 하시는 몸짓을 나도 그대로 따라 하게 됨으로 주님으로 부터 배우게 된다는 그런... 그럼 정말 주님이 주시는 멍에는 부담이 전혀 아니네? 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