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0분 전쯤 출근길에 있었던 일.
새벽예배를 마치고 직장으로 향하는 길에 커피생각이 나서 WaWa라는 편의점에 들렸다. 요즘 경쟁이 붙어서 많은 곳에서 고급스러운 커피를 싼 가격에 파는데 게중 내 입맛에 제일 좋게 느껴지는 커피가 바로 이 가게 커피. 향이 진한데도 신맛, 쓴맛이 거의 없다. 아내역시 이 집 커피를 무지 좋아한다.
16온스짜리 컵에 담아 돈을 내려고 줄을 섰다. 내 앞에 역시 출근길에 있어 보이는 중년의 백인여성이 커피를 들고 있었고, 뒤에는 젊은 백인남성이 카페인음료와 도넛 한개를 들고 있는 것이 얼핏 보였다. 근데 앞의 여성이 계산을 하고 나간 후 내 차례가 되어 계산을 하려고 지갑을 꺼내 들었더니 점원 왈 "어? 앞의 여자분이 계산을 이미 해 주시고 갔는데요?" 지갑을 이미 꺼냈길래 점원에게 이야기 했다. "그럼 제 뒤의 분 것을 제가 내지요." 그렇게 이야기하는 내 목소리가 좀 컸나보다. 그 젊은 청년이 듣고 "고맙긴한데 당신의 커피 한 잔 값 보다 제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훨씬 액수가 큽니다. 사양하겠습니다."한다. 한 번 더 offer를 해도 극구 사양하는 청년의 뚝심에 밀려 지갑을 거두고 가게를 나왔다.
그렇게 다음 사람을 위해 말도 없이 커피 한 잔 값을 내어준 사람의 마음과, 돈을 대신 내준다는 사람의 손해를 극구 막아주려는 사람의 배려. 난 벌써 행복하고 즐거운 하루를 시작했다. ^^
p.s. 지난 번 의 Pay it forward에 관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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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3/2011
6/23/2011
엄마를 보내드리고
엄마를 하나님품으로 보내드린지 나흘이 지났다.
한국과 미국각지에 흩어져 있던 모든 형제와 그 자녀손들이 모두 모여 엄마를 위해 찬송과 기도를 드리는 중 주무시듯 너무 편안한 모습으로 소천하셨다. 그것도 모인 가족 한사람 한사람이 엄마를 안아드리고 마지막인사를 드리는 걸 마칠때까지 기다려주셨다가 마지막 가족이 인사를 마침과 동시에 떠나셨다.
마음은 무너지지만 그래도 참 잘 살으셨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좋다. 여느 어머니라도 그러셨겠지만 다섯형제를 모진 고생끝에 건강하게 키워내고, 모두 대학보내고, 시집장가 보내고, 손주들까지 당신 손으로 모두 키워내셨고, 온 식구를 믿음의 사람으로 이끄셨으니 누가 아무리 유명한 사람의 전기를 내게 들이 밀어도 내게는 엄마만큼 위대한 분이 없다.
한편으론 무섭고 엄한 분 이셨다. 내가 혼날 짓을 하루도 거르는 날이 없기도 했지만 그 벌은 혹독했다. '쌩'소리를 내며 날아오는 도대체가 피할길이 없었던 굵직한 나무 빗자루의 손잡이는 늘 내 몫 이었고. 내 머리가 좀 크고 엄마연세가 조금 더 드셨을 땐 한 손으로 날라오는 빗자루를 탁 잡으면서 "거 좀 그러지 맙시다, 내가 이젠 뭐 애도 아니고." 하면서 엄마를 타일렀던 기억이 나기도 하고. ^^
그렇게 무서운 분 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던 어느 날 엄마를 조금 알게 된 일이 있었다. 중학3학년쯤 됐을라나...나하고 어디 좀 가봐야 할 데가 있으니 앞장서라고 하셨고, 평소 우리 형제들에게도 잘 사주시지 않던 맛난 사탕과 과자, 아이들 옷가지와 양말등을 바리바리 사서 내게 지워갖고 찾아간 곳은 지체부자유/정신박약아동들만 있는 고아원이었다. 보모들에게 선물 나눠주는 걸 부탁하시고 바로 두 팔을 걷어 붙이시고 아이들 목욕시키시기를 시작하시는데 한 두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여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슬쩍 물어봤다. "엄마, 여기 가끔 와?" "이 아이들은 엄마아빠가 없단다. 그래서 명절이 가까와지면 이렇게 찾아 보려고 하는데 그게 그리 쉽지 않아..." 그 일은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하며 나누며 살아야 한다는, 몸소 보여주신 엄마의 가르침으로서 내 마음속에 새겨져 있다.
며칠 전 리치몬드에 있는 셋째 누나로 부터 처음 들은 이야기. 오래 전 서울장로회신학대학교에 엄마가 장학금을 기탁하셨었는데 그 당시 그 혜택을 받았던 가난한 신학생이 후일 목사님이 되어서 이야기 한 것을 전해들었다고 하면서 그 목사님이 자신이 학업을 포기해야만 할 절박한 상황중에 그 장학금을 받았었노라고 하는 말을 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식구들도 몰랐던 이야기다.
살아계실제 효도를 했어야지 돌아가신 다음에 이렇게 고인을 칭찬하며 기리는 것이 무슨 소용이랴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이렇게라도 기록을 해 두지 않으면 이런 이야기들을 잊어 버릴수도 있겠다는 마음에 적어논다...
한국과 미국각지에 흩어져 있던 모든 형제와 그 자녀손들이 모두 모여 엄마를 위해 찬송과 기도를 드리는 중 주무시듯 너무 편안한 모습으로 소천하셨다. 그것도 모인 가족 한사람 한사람이 엄마를 안아드리고 마지막인사를 드리는 걸 마칠때까지 기다려주셨다가 마지막 가족이 인사를 마침과 동시에 떠나셨다.
마음은 무너지지만 그래도 참 잘 살으셨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좋다. 여느 어머니라도 그러셨겠지만 다섯형제를 모진 고생끝에 건강하게 키워내고, 모두 대학보내고, 시집장가 보내고, 손주들까지 당신 손으로 모두 키워내셨고, 온 식구를 믿음의 사람으로 이끄셨으니 누가 아무리 유명한 사람의 전기를 내게 들이 밀어도 내게는 엄마만큼 위대한 분이 없다.
한편으론 무섭고 엄한 분 이셨다. 내가 혼날 짓을 하루도 거르는 날이 없기도 했지만 그 벌은 혹독했다. '쌩'소리를 내며 날아오는 도대체가 피할길이 없었던 굵직한 나무 빗자루의 손잡이는 늘 내 몫 이었고. 내 머리가 좀 크고 엄마연세가 조금 더 드셨을 땐 한 손으로 날라오는 빗자루를 탁 잡으면서 "거 좀 그러지 맙시다, 내가 이젠 뭐 애도 아니고." 하면서 엄마를 타일렀던 기억이 나기도 하고. ^^
그렇게 무서운 분 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던 어느 날 엄마를 조금 알게 된 일이 있었다. 중학3학년쯤 됐을라나...나하고 어디 좀 가봐야 할 데가 있으니 앞장서라고 하셨고, 평소 우리 형제들에게도 잘 사주시지 않던 맛난 사탕과 과자, 아이들 옷가지와 양말등을 바리바리 사서 내게 지워갖고 찾아간 곳은 지체부자유/정신박약아동들만 있는 고아원이었다. 보모들에게 선물 나눠주는 걸 부탁하시고 바로 두 팔을 걷어 붙이시고 아이들 목욕시키시기를 시작하시는데 한 두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여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슬쩍 물어봤다. "엄마, 여기 가끔 와?" "이 아이들은 엄마아빠가 없단다. 그래서 명절이 가까와지면 이렇게 찾아 보려고 하는데 그게 그리 쉽지 않아..." 그 일은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하며 나누며 살아야 한다는, 몸소 보여주신 엄마의 가르침으로서 내 마음속에 새겨져 있다.
며칠 전 리치몬드에 있는 셋째 누나로 부터 처음 들은 이야기. 오래 전 서울장로회신학대학교에 엄마가 장학금을 기탁하셨었는데 그 당시 그 혜택을 받았던 가난한 신학생이 후일 목사님이 되어서 이야기 한 것을 전해들었다고 하면서 그 목사님이 자신이 학업을 포기해야만 할 절박한 상황중에 그 장학금을 받았었노라고 하는 말을 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식구들도 몰랐던 이야기다.
살아계실제 효도를 했어야지 돌아가신 다음에 이렇게 고인을 칭찬하며 기리는 것이 무슨 소용이랴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이렇게라도 기록을 해 두지 않으면 이런 이야기들을 잊어 버릴수도 있겠다는 마음에 적어논다...
4/02/2011
Pay it forward
집을 청소하다가 옷장 깊숙한 곳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물건이 나왔다.
사용했던 기억은 커녕 가지고 있는 줄도 몰랐던 카메라 망원렌즈. 버릴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나에게는 쓸모없는 물건이지만 혹 필요한 사람이 있나 찾아보기로 결심했다. 나의 이웃블로거 중 사진찍기에 깊은 관심이 있는 분들이 너댓분 계시는 걸 기억하고 그 분들께 이메일로 아니면 그 분들의 블로그를 통해 연락을 취함.
거의 30년을 끼고 있었던 셈이라 확실하게 30년 이상된 구닥다리. 요즘 나오는 DSLR엔 맞지 않을 것은 틀림없고, 그 중 한분이 자세하게 알아본 바 특정카메라에만 마운트가 맞게 되어 있을거라기에 연락드렸던 대부분의 블로거이웃들이 정중하게 거절하셨다.
그 중 어떤 분이 혹 사용가능할 지 모르겠다 하셔서 어제 오전에 우편으로 보내 드렸는데 어제 저녁 그 분 께서 이메일을 보내주시길 필요한 서적같은 것이 있으면 답례로 보내 주시겠다는 거였다. 그래 다음과 같이 답신을 보내 드렸다.
"제게 뭘 해주시려는 것 대신 주위에 도움이 필요한 분이 보이신다면 조건없이 한 번 도와주시면 어떨까 싶네요. 그런 일이 계속 돌고 도는 전염처럼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
"Pay it forward"란 영화도 있었지만 Pay it forward라는 표현이 이런 개념이 아닌가 한다. 세상의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나와 나를 아는 사람들 만이라도 이걸 실천해 나간다면 우리의 다음 세대는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살게 되지 않을까? :-)
사용했던 기억은 커녕 가지고 있는 줄도 몰랐던 카메라 망원렌즈. 버릴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나에게는 쓸모없는 물건이지만 혹 필요한 사람이 있나 찾아보기로 결심했다. 나의 이웃블로거 중 사진찍기에 깊은 관심이 있는 분들이 너댓분 계시는 걸 기억하고 그 분들께 이메일로 아니면 그 분들의 블로그를 통해 연락을 취함.
거의 30년을 끼고 있었던 셈이라 확실하게 30년 이상된 구닥다리. 요즘 나오는 DSLR엔 맞지 않을 것은 틀림없고, 그 중 한분이 자세하게 알아본 바 특정카메라에만 마운트가 맞게 되어 있을거라기에 연락드렸던 대부분의 블로거이웃들이 정중하게 거절하셨다.
그 중 어떤 분이 혹 사용가능할 지 모르겠다 하셔서 어제 오전에 우편으로 보내 드렸는데 어제 저녁 그 분 께서 이메일을 보내주시길 필요한 서적같은 것이 있으면 답례로 보내 주시겠다는 거였다. 그래 다음과 같이 답신을 보내 드렸다.
"제게 뭘 해주시려는 것 대신 주위에 도움이 필요한 분이 보이신다면 조건없이 한 번 도와주시면 어떨까 싶네요. 그런 일이 계속 돌고 도는 전염처럼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
"Pay it forward"란 영화도 있었지만 Pay it forward라는 표현이 이런 개념이 아닌가 한다. 세상의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나와 나를 아는 사람들 만이라도 이걸 실천해 나간다면 우리의 다음 세대는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살게 되지 않을까? :-)
3/07/2011
Gleaning/Gleaners
나도 안다. 이전에 방문 잘 하시던 이웃블로거 몇 분은 내가 종교적인 글을 올리는 것을 보고 발길을 딱 끊었다는 걸.
이해가 간다. 너무 많은 기독교인들이 본을 보이기는 커녕 일반 사회인들보다 못한 발언이나 행동으로 같은 기독교인들 조차 고개를 돌리게 하고 있으니 가뜩이나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거나 비종교인들은 오죽하겠나 싶다. 나자신이 기독인의 한 사람으로 참으로 많은 반성이 필요한 요즘.
하지만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이런 '사람적인' 일 들을 떠나서 내가 섬기고 우러르는 하나님이 어떤 분 인가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나에게 있고, 아무리 '불편하고 재수없는(요즘 반기독교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인 줄 압니다)' 기분이 들더라도 좀 객관적으로 기독교인들의 하나님이 원래 어떤 분 인가는 안 믿는 사람들도 좀 알아두면 좋겠다는 생각에 우선 딱 한 가지만 소개하기로.
"밭에서 난 곡식을 거두어들일 때에는, 밭 구석구석까지 다 거두어들여서는 안 된다. 거두어들인 다음에, 떨어진 이삭을 주워서도 안 된다. 포도를 딸 때에도 모조리 따서는 안 된다. 포도밭에 떨어진 포도도 주워서는 안 된다. 가난한 사람들과 나그네 신세인 외국 사람들이 줍게, 그것들을 남겨 두어야 한다. 내가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레위기 19장 9절-10절. 새번역)
이집트를 떠나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백성에게 "명령하신 법'이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나 싶다. 그냥 우리의 원래 성정으로는 남에게 베푸는 것이 잘 안될 줄을 아시니 아예 법으로 못을 박아 놓으신, 하나님을 믿거나 안 믿거나 상관없이 어려운 사람들을 안타깝게 생각하시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이 명령으로 인해 먹을 것 없는 어려운 사람들이 도둑취급을 받을 걱정 안하고 떳떳하게 남의 밭에 들어가 떨어진 이삭과 열매를 수확해 연명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꽤나 괜찮은 분 아닙니까? 믿는다고 하면서 나쁜 모습을 보이는 나 같은 사람이 문제지 기독교인의 하나님은 원래 이런 분 이세요. ^^
(p.s. 아직도 이스라엘에는 이런 풍습이 남아있고, 남아있는 이삭이나 과실등을 거두는 일을 Gleaning이라고 한다. 물론 현대의 우리 대부분은 농사를 짓지 않으니 여러 후원단체를 통해 어려운 이웃과 나누거나 하는 다른 방법이 있겠지만.)
이해가 간다. 너무 많은 기독교인들이 본을 보이기는 커녕 일반 사회인들보다 못한 발언이나 행동으로 같은 기독교인들 조차 고개를 돌리게 하고 있으니 가뜩이나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거나 비종교인들은 오죽하겠나 싶다. 나자신이 기독인의 한 사람으로 참으로 많은 반성이 필요한 요즘.
하지만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이런 '사람적인' 일 들을 떠나서 내가 섬기고 우러르는 하나님이 어떤 분 인가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나에게 있고, 아무리 '불편하고 재수없는(요즘 반기독교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인 줄 압니다)' 기분이 들더라도 좀 객관적으로 기독교인들의 하나님이 원래 어떤 분 인가는 안 믿는 사람들도 좀 알아두면 좋겠다는 생각에 우선 딱 한 가지만 소개하기로.
"밭에서 난 곡식을 거두어들일 때에는, 밭 구석구석까지 다 거두어들여서는 안 된다. 거두어들인 다음에, 떨어진 이삭을 주워서도 안 된다. 포도를 딸 때에도 모조리 따서는 안 된다. 포도밭에 떨어진 포도도 주워서는 안 된다. 가난한 사람들과 나그네 신세인 외국 사람들이 줍게, 그것들을 남겨 두어야 한다. 내가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레위기 19장 9절-10절. 새번역)
이집트를 떠나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백성에게 "명령하신 법'이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나 싶다. 그냥 우리의 원래 성정으로는 남에게 베푸는 것이 잘 안될 줄을 아시니 아예 법으로 못을 박아 놓으신, 하나님을 믿거나 안 믿거나 상관없이 어려운 사람들을 안타깝게 생각하시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이 명령으로 인해 먹을 것 없는 어려운 사람들이 도둑취급을 받을 걱정 안하고 떳떳하게 남의 밭에 들어가 떨어진 이삭과 열매를 수확해 연명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꽤나 괜찮은 분 아닙니까? 믿는다고 하면서 나쁜 모습을 보이는 나 같은 사람이 문제지 기독교인의 하나님은 원래 이런 분 이세요. ^^
(p.s. 아직도 이스라엘에는 이런 풍습이 남아있고, 남아있는 이삭이나 과실등을 거두는 일을 Gleaning이라고 한다. 물론 현대의 우리 대부분은 농사를 짓지 않으니 여러 후원단체를 통해 어려운 이웃과 나누거나 하는 다른 방법이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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