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큰 아이의 전화를 받고 있는 아내옆에서 무슨 이야기들을 나누는지 들어보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내가 “악” 하면서 울상이 되는데 큰 아이가 어딘가에 귀를 부딛쳐 피가 났다는 이야기다. 순식간에 소름이 끼치면서 팔에 닭살이 돋았다. 나와 별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면 사망소식에도 별로 그런 신체적 반응이 오지 않다가, 아이가 다쳤다니까 그러는 걸 보면 피를 나눠준 아이들이 (두째나 막내가 다쳤을 때도 늘 그랬다) 나/우리에겐 특별하고, 귀하긴 귀한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학교 기숙사에 가 있는 큰 아이가 갑자기 보고 싶어졌다. 아내에게 주일 오후에 아이가 좋아할 만한 먹거리를 좀 사 가지고 아이보러 갔다오자고 했더니 아내 역시 그랬으면 좋겠다고 한다. 맘속으론 아이를 놀래키고자 하는 짓궂은 생각도 있었고…
하지만 왠걸…바로 그 토요일 밤 9시쯤. 둘째가 밖에 웬 차가 한 대 서있는데 이상하니 좀 나가보라고 한다. 문을 열자마자 “짠”하고 큰 놈이 집안으로 뛰어 들어 오면서 나한테 안긴다. 쿵쾅쿵쾅 뛰어 들어가서는 지 엄마도 안아주고. 차 가진 친구가 집에 오는길에 묻어 왔다는 것이다. 참 이상도 하다…아내와는 가끔 ESP(Some people can communicate using monocookie also known as ESP. Where one knows what the other is thinking without speaking aloud-Wikipedia)가 통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럼 딸도...? ㅎ ㅎ
정말 아무것도 하는 것 없이 아이들과 뒹굴뒹굴 자고, 먹고, 보고, 자고, 먹고, 보면서 먹고 하며 일요일 오후를 푹 쉬면서 보냈다. 저녁엔 피자가게에서는 맛 볼 수 없는 피자 2가지를 온갖 재료를 넣어 큰 아이가 만들고, 아내가 아이들 좋아하는 돼지구이를 해서 먹고는 큰 아이를 다시 그 친구에게 딸려 보냈다. 짦은 만남이라 아쉬웠지만 보고 싶던 아이를 보고나니 마음이 한결 놓였다.
다행히 귀는 크게 다친 건 아니였고. 무슨 머슴아 처럼 약도 안 바르고 그냥 딱지가 되게 말려서 왔길래 약을 발라주긴 했다. 제발 어디 아픈데 없이 잘 자라서 층만한 삶을 살아다오, 얘들아!
p.s. 저녁시간내내 아이들과 본 것은 디스커버리의 Life라는 최근의 기록영화였는데 온갖 희안한 물고기와 새들을 보여줬다. 해설자의 목소리가 "Oprah (Winfrey)"같다고 하니 아이들이 멈칫 하면서 눈만 한 번 동그랗게 뜨고 반응들이 없이 넘어간다. 나도 겸연쩍게 넘어가고. 한참을 있다가 둘째가 갑자기 까르르 웃기 시작하면서 "아빠, 아까 Oprah라고 한 거였어? 하하 우리는 "Opera"라고 들어서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린가 했는데. 이제야 알았어!"한다. 큰 아이와 아내도 배꼽을 잡고 깔깔. 아무리 오래 노력해도 우리는 2세와 같은 영어가 되지 않는다는 한계를 이런데서 느낀다. ㅡ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