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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2015

수수께끼 같은 선물

이번에 시집간 딸아이가 언제 슬그머니 갖다놨는지 집 한구석에 포장한 선물이 있었고 엄마아빠이름을 포장지에 적어 놓았다.



포장을 열어보니 자신의 어린시절 사진이 양쪽으로 있고 가운데는 빈 칸이다. 왼쪽엔 엄마와 자신이, 오른쪽엔 아빠와 자신이 찍혀있는. 무슨 수수께끼처럼 설명도 없고 또 우리도 특별히 물어보지 않았다.

제 어미가 며칠을 끙끙 거린 후, 가운데 들어갈 사진을 찾아 액자속에 넣더니 나에게 벽에 좀 걸어달라고 한다.


내가 보기엔 정답이다. 말 한마디 안 나눠도 통하는그 어미에 그 딸. 샘난다 정말.

5/05/2015

Proposal

큰 딸아이가 이 사진을 문자로 보내왔다. 방금 그 친구로 부터 청혼을 받았노라고.

오늘이 교제시작 2주년이고, 저녁을 먹자고 딸을 데리고 간 곳이 교제 시작하는 날 갔던 식당이었다고,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결혼해 줄 수 있겠냐고 물으며 반지를 내놓았다는 떨림과 흥분이 채 가지시 않은 딸아이의 목소리.

그래 평생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을 결혼식을 잘 준비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길 바란다.

엄마아빠도 너무 행복하고 기쁘구나. 사랑한다, 딸아.

4/30/2015

한밤중에 찾아온 손님

나를 좀 만나봤으면 좋겠다고 하는 전화 저쪽의 목소리에 머뭇거림이 느껴졌다. 전화를 끊고 나서 생각해 보니... 여자친구의 아버지에게 전화하려면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건데.

그리곤 오늘 밤 혼자 우리집을 찾아왔다. 늘 큰 딸아이와 함께 오던 것과는 달리. 아내가 차를 내오고 이런저런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나누다 그 친구의 어색한 시간을 줄여주자는 생각에 "왠일로?"라는 질문을 아예 일찌감치 던져줬다.

망설임없이 "따님을 사랑하니 결혼하게 해주십시요"라고 바로 나왔다.

대충 짐작은 했지만 막상 그 소리를 들으니 뭐라고 대답해야하는 건지 잘 몰라 우리내외는 잠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리곤 어색함을 간신히 누르고 "그래, 그러렴"이라 대답했고 아내도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나도 좋단다"라고 했다.

평소에 우리내외끼리 그 아이가 똑똑하고, 열심히 교회를 섬기는 부모님 밑에서 신앙생활을 잘 하며 자라왔고, 딸아이에게 자상하고 진실하게 대하는 것 같고, 성격이 온순하고, 마라토너로서 극기와 인내는 증명된 셈이고, 직장과 직장에서의 위치도 그만하면 됐고, 나름 잘생겼고...하며 사위로서는 더할나위 없겠다 이야기해 오던 터라 '먹여살릴 준비는 갖춰놓고 그런 생각을 하느냐' 아니면 '딴짓 안하고 잘 살수 있겠느냐'등 여자부모로서의 걱정섞인 까탈스러운 질문들은 생략했다.

아내가 내온 유자차의 향기를 맡으며 몇 모금 더 들이키니 어느 정도 마음이 안정된 듯 해 이야기를 꺼냈다. 큰 아이가 엄마뱃속에 있을때 부터 우리내외는 그 아이의 배우자를 위해 기도해 왔노라고. 그리고 이제 그 기도의 응답을 받은 것 같아 기쁘다고. 그랬더니 자신의 부모님 역시 오랜 시간 자신의 배우자를 위해 기도해 오셨다는 이야기를 한다.

모두 아침일찍 출근해야하는 처지들이라 오래 이야기는 못하고 보내려는데 부탁을 한다. 곧 프로포즈를 하려 하는데 그때까지는 딸에게 모른척 해주실 수 있느냐고.

문을 나서는 그 아이에게 다시 물었다. "Are you really sure about this?"

웃자고 한 말이지만 인생에 있어서 제일 큰 결정중의 하나를 이 아이가 내린 것은 분명하다.


2/02/2014

The miracle worker

학교 졸업 후 독립해 나가 살면서 이곳 리치몬드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큰 아이가 연극표를 예매했으니 같이 가자고 우리내외에게 연락이 왔다.

우리 두사람 다 한목소리로 "살다보니 이런 호사를 다 누리는구나" 하며 결혼 후 30년 이상 가보지 못한 연극을(The miracle worker는 이 연극의 제목이었고) 어젯밤 갔었다. 워낙 잘 아는 내용이다보니 배우들의 연기에 녹아 들어갈 수 있었고 같이 울고 웃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다. 헬렌켈러의 마음의 눈을 뜨게 해준 설리번 선생의 이야기.

아, 몰상식하게 공연중 찍은 사진은 아니고 이 극장의 디렉터겸 배우인 Tom이 손님들에게 환영인사를 하는 모습.
나중에 무대뒤에서 만났을때 자신이 한국주둔중 있었던 재미있던 일화들을 이야기 해 주며 우리를 왕창 웃겨줬다. 

이런데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오래된 소극장이었는데 300년전 방앗간으로 지어져 지금은 극장으로 쓰이는 단단해 보이는 벽돌 건물. 큰아이의 친구와 그 청년의 부모, 그리고 우리가 나란히 앉아서 봤고, 그 청년의 3살 위 누나가 바로 이 연극의 주인공인 설리번선생역을 맡은 배우여서 연극이 끝난 다음에는 무대뒤로 우리를 데리고 가 출연진들과 인사도 시켜주고 무대장치, 소품 등을 둘러보기도 하는 특별대우도 받았다.

작은 돈이 아닌데 우리를 위해 표를 예매해 준 딸아이도 고마왔고, 우리가 불편하지 않도록 마음을 써준 딸아이의 친구, 그리고 불과 2-3주전 아버님 상을 당해 깊은 상심중에 있지만 우리 앞에서 내색을 안하려 애쓴 그 친구의 아버지... 모두에게 감사한 밤이었고 두 아이들이 아무쪼록 신앙안에서 좋은 관계를 계속 유지해 나가길 바라는 중.

6/04/2013

Fly the nest

어린 새는 자라서 날개에 힘이 어느정도 생기면 혼자 퍼덕거리면서 나는 연습을 하다가 혼자 날 수 있고 먹이를 찾아 먹을 수 있게 되면 마침내 둥지를 떠난다고 한다.

큰 딸이 한 달여 전 쯤 방을 구해 나갔다. 대학 다니면서 학교기숙사나 학교 인근의 아파트에서 지내던 4년의 시절이 날아가는 연습이었다고 한다면,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자기 벌이를 하는 지금은 둥지를 떠나 혼자 날면서 먹이를 구하고 있는 상태라고 해야 하나...

예쁘고 건강하고 착하게 잘 자라준 아이가 고맙고 이제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스스로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가는 모습이 부모로서 자랑스럽다.

하지만 우리 내외의 머리 뒷쪽에 자리잡고 있다가 한가히 앉아 있을 때 쯤 하나 둘 튀어 나오는 걱정들은 우리 내외가 살아 있는 한 사라질 것 같지 않다. 예를 들면,
점심은 사 먹는다고 하고 아침은 챙겨먹고 출근하는 건지 아니면 저녁엔 맨날 라면만 먹고 있는 건 아닌지, 밤에 춥게 자고 있지는 않은지,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늘 빈자리를 찾아 헤메야 하는데 고생스러운 건 아닌지, 늦게 귀가 하면서밤길을 걸을 때 위험한 건 아닌지...그나마 좋은 신랑을 만나 시집이라도 가면 우리의 이런 걱정들이 좀 나아질려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그것 또한 새로운 걱정들의 시작일거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

아무래도 녀석에게 줄 호신용 taser gun이나 pepper spray를 하나 알아봐야겠다.

11/19/2012

Few thoughts

일.
아내가 한동안 속이 안좋아 불편해 했다. 많이 안 먹었는데도 배가 부른 듯 하고 소화불량인 듯한 상태로 지내오길 한두 달. 가게일로 바쁘다곤 하지만 아무래도 그냥 놔두면 안될 것 같아 반강제로 소화기과의사와 약속을 하게 하고 위와 대장 두가지 내시경검사를 한꺼번에 받게 했다. 아내와 나 둘 다 오늘 하루 휴가를 내서 내시경검사를 막 다녀 오는 길. 다행히도 암으로 보이는 건 없었다고 하고 다만 장에 염증이 조금 보이니 먹으라고 약을 처방해 줬다. 참 감사한 일이다.

이.
큰 아이가 졸업을 하고 집에 있으면서 직장문을 계속 두드려 오던 중 이었는데 얼마 전 이 지역의 법률회사에 면접을 다녀와 응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병원을 다녀와 앉아 쉬고 있는데 윗층에서 갑자기 "꺅!!!!!!!하는 외마디 소리와 함께 제 엄마와 끌어안고 두 여자가 미친듯이 껑충껑충 뛰기 시작. 나도 윗층으로 올라가 이유도 모른 채 일단 같이 안고 뛰고 보았다. 그리고 진정이 된 후 물어 보니 그 회사의 인사처로 부터 채용통보를 방금 전화로 받았다는 것. 초봉치곤 꽤나 높은 연봉과 혜택을 구두로 제시하고 며칠 후 자세한 오퍼를 서면으로 보내겠다고 했다한다. 아이와 애 엄마를 안고 게속 더 뛰고 말았다.

삼.
둘째가 추수감사절방학을 맞아 몇 시간 후 집에 돌아온다. 한동안 불면증에 시달리고 힘들어 했는데 이번 일주일여의 방학을 맞아 잘 쉬고 힘을 축적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중. 오늘 밤은 감사한 일들이 겹쳐 잠이 안 올듯... 가족이 즐거운 추수감사절을 정말 '감사'하며 지내자꾸나.

사.
여러 구역식구들의 여의치 않은 사정으로 구역예배를 어제 교회에서 간단하게 드렸다. 말씀을 대하기 전 아이스브레이커로 한 질문을 던졌다. "당신의 살 날이 앞으로 한 달 밖에 없다면 그 많은 일 가운데 어떤 일을 제일 하고 싶으세요?" 모두 망설이지 않고 대답을 하는데 같은 대답이 나왔다. "가족들과 시간을 더 함께 하고싶고, 그 시간을 즐겁게 보내길 원합니다." 였다.

그래서 "그럼 마지막까지 기다리지 마시고 바로 오늘 부터 그 일을 시작하세요."라고 말씀드렸다.

9/16/2012

Few thoughts

1. 역시 지나다(?) 우연히 마주친 영화에 많은 눈물을 뿌렸다. 리처드기어 동상(생)과 아키타견 한 마리가 주연을 한 Hatchi라는 영화. 80년대에 일본에서 영화가 만들어 졌다고 하고 내가 본 이 영화는 미국판 리메이크. 원래는 20년대에 일본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라고 하는데...

도쿄대 교수였던 우에노 히데사부로 박사에게 선물로 주어진 하치코라는 이 개는 주인 출근길엔 배웅을 하러 같이 철도역으로 가고, 퇴근시간엔 마중을 나가 앉았다가 주인과 같이 귀가하곤 하던 영특한 개 였는데, 같이 생활한 지 채 2년이 안되어 주인이 심장마비로 강의중 사망하게 되고 교수 가족이 그 지방을 떠나간 후 걸식을 하면서도 매일 퇴근시간만 되면 어김없이 같은 자리에 나타나 주인을 기다리는 생활을 거의 10년을 하다가 그 곳 에서 숨을 거두었다는...지금은 그 자리인 시부야역에 그 개의 충심을 기념한 동상이 세워져 아직도 주인을 기다리고 있단다. 트레일러는 http://www.youtube.com/watch?v=ppC_YYu64uQ 에.


2. 50년대에 매릴랜드주 볼티모어시에 있는 Johns Hopkins의대 연구소에서 있었던 C. Richter박사의 실험.

쥐가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물이 담긴 목이 넓고 높은 유리관에 쥐를 두 그룹으로 갈라 첫번째 그룹은 물에 넣은 후 몇 초 간 꺼내었다 다시 물에 넣어 주는 걸 초반에 그저 몇 번 반복했고, 다른 그룹은 그냥 놔두었다 한다.

결과는... 그냥 놔 둔 그룹은 몇 분 만에 모두 익사했고, 초반 몇 번의 반복학습으로 곧 건져지리라는 기대/희망을 가지고 있던 첫번째 그룹의 쥐들은 3일을 계속 살아 있었다는 것.

소망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만들어 내는 큰 차이...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이야길 수도...


3. 첫째의 남자친구가 플로리다에서 올라와 우리 내외를 만나 인사를 드려야 하겠다고 해 며칠 전 집으로 오라고 해서 만나봤다. 아직까지는 그냥 친구라고 딸내미가 미리 귀뜸을 했기에 심각한 질문을 던진다던가 하는  '고문'은 못하고 그냥 소가 닭 쳐다보듯이 멀건 시사이야기만 해야 했다. 둘이 서로를 잘 알아가면서 관계를 건전하게 발전시켜나가길 빈다.

이럴 때 참 곤란한 것은...두 놈 다 앉혀놓고 '단정한 몸가짐...'하면서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 올라 오다 목에 탁 걸리고 만다는 것. 제 아빠 엄마가 그러지 못했으면서 어찌 아이들에게 강요할 수 있겠는가...

10/09/2011

Coming HOME

큰 아이 둘이 집에 왔다.

학기를 시작한지 약 6주만에 콜럼버스데이인 월요일이 낀 주말을 집에서 보내려 온 것. 신입생 신분으로 처음으로 집을 떠나 꿋꿋하게 잘 지낸 둘째와 이제 전공을 깊이 파고 들어야하는 졸업반으로서의 부담을 잘 견뎌낸 첫째였기에 우리 내외에겐 좀 특별한 귀가였다.

저녁에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퇴근후 부랴부랴 달러스토어에 가서 풍선과 배너등 몇 가지를 사 가지고(달러스토어를 할 땐 그냥 가게에서 쓱 집어 오면 그만이었는데 이젠 사야하는 입장이 되어버렸네 ㅠㅠ) 집 대문에다 한 40여초 만에 덕지덕지 붙여 놓고 금요저녁예배에 늦지 않으려고 교회로 향함.

집으로 돌아오니 식탁에 앉아 엄마와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두 아이가 "꺅~"하고 달려나와 아빠를 꼭 안아주는데 코끝이 찡하다. 집에 와서 대문을 보니 온 가족에게 환영을 받는 것 같아 좋았다고 한다.

둘째는 그간 집생각이 나서 많이 힘들었다고 자주 이야기 했는데 지금은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이사갈(1학년은 의무적으로 기숙사생활, 2학년이 되면 자유롭게)  집 보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는 둥 제법 적응이 된 듯 해서 마음이 놓였고, 첫째는  동생을 주말이면 아파트로 불러다 먹이기도 하면서 잘 돌봐주고 있는 한편 학업도 꾸준하게 뒤쳐지지 않고 잘 하고 있는 것 같기에 대견했다. 얼마되지 않는 기간이지만 와있는 동안 잠 보충/지방축적 좀 하고, 엄마아빠 사랑도 듬뿍  담고 가려무나.

너그들 참말로 수고했다.

9/30/2010

21st Birthday

며칠 있으면 큰 딸 아이의 21번 째 생일. 세상에 나와 첫 호흡을 위해 "응애"하고 일성을 터뜨리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다 커서 시집가도 될 처녀가 됐다(결혼때 아내가 21살 이었으니 그것에 근거하여 ㅎ). 다른 두 아이들도 마찬가지지만 참 예쁘게 잘 커줬다. 부모라고 이름만 부모지 뭐 제대로 해 준 것도 없는데... 맏이라고 늘 엄마아빠를 챙겨주려고 하고 잘 있는지 주기적으로 전화해 확인도 할 줄 아니 우리 부모들 보다 나은 셈.

한국에서 60, 70세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듯 미국에서 나서 자란 아이들은 여느 미국가정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생일이 있다. 16세와 21세가 그것.

16세엔 운전면허를 딸 수 있는 법적인 자격, 21세에는 술을 사거나 마실 수 있는 자격이 생기기 때문이다. 담배를 정식으로 사고 필 수 있는 18세도 있긴 한데 이젠 금연이 거의 상식으로 통하는 세상이라 별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지는 않고.

이제까지 주위 아이들을 보거나 부모들의 경험을 듣고 나름대로 생각하는 건 아이들 술마시는 유형이 대체로 두 세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고등학교때 부터 여기저기 파티를 쫓아 다니며 몰래 술을 마시는 그룹. 이 아이들은 21세가 되어도 뭐 크게 달라진 것이 없으니 음주도 나름 조절하며 마시는 듯. 두 번 째는 부모의 깐깐한 관찰아래서 금단의 열매로 여겨졌던 술을 전혀 접해보지 못하다가 대학을 가고 21세가 되면서 부모도 옆에 없겠다 성인이기도 하겠다 해서 걷잡을수 없이 술을 마시기 시작하는 그룹. 마지막으로 누가 뭐래도 아예 안 마시는 그룹. 문제는 두번째 그룹에 속한 아이들. 고등학교다니며 집에 있을 때는 술을 입에 대지도 않고 지내던 아이가 대학에 가서는  갑작스런 과음으로 죽기도 하고, 알콜중독을 겸한 party animal이 되어버렸다고 한탄을 하는 부모들을 가끔 보면서 나름 걱정을 하곤 했다.

난제다. 그렇다고 밖으로 나다니면서 음지에서 몰래 마시는 걸 방관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해서 지난 10여년 간 우리 집에서 해 온 건 추수감사절이나 성탄절같은 명절에 식구들이 모여 저녁을 하게 되면 와인을 국민학생이건 고등학생이건 한 두 모금 정도 잔에 따라 앞에 놓고 마셔보게 하는 것. 숨어서 말고 어른들 앞에서 떳떳하게 마시라는 거다. 물론 아이들이 많이 어릴때는 맛이 없어 “퇘”하고 마시지는 않았지만 고등학교쯤 되니 자기들이 책에서 읽은 대로 잔을 휘둘려서 냄새도 이리저리 맡아보고 혀를 굴려 입안에서 음미를 해 보려는 등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게 했다. 난 우리 아이들이 신앙인 이기에 수도원의 사제처럼 일평생 금욕생활만 하면서 사는 걸 원치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향기좋은 와인도 몇 잔 마실 줄 알고, 직장사람들과 하는 회식에서 폭주는 아니더라도 마지 못해 한 잔 정도는 받아줄 수 있고, 앞으로 자기 자손들이 생기면 손자손녀 모두 모였을 때 좋은 일을 축하하는 건배를 propose할 정도로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같은 신앙인의 눈으로 볼 때 “뭔 교회장로라는 작자가 국민학생자녀들을 앉혀놓고 술을 먹인데?” 할 지도 모르겠는데 이 이야기를 대함으로 시험드는 사람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 아이가 집에 있으면 저녁상이라도 정성스럽게 차려 줬을 건데 멀리 학교에 있으니 마음이 안되어 뭘 좀 보내자고 아내와 이야기했다. 온 가족이 사인한 카드와 함께 쵸콜렛 몇 가지, 와인 두 병(하나는 질좋은 캐나다산 icewine중 하나고 다른 하나도 역시 디저트와인 중 에서 골랐다. 디저트라는 말 그대로 벌컥벌컥 마실 수 없는 매우 단 종류의 와인이기에 저녁식사후 같이 사는 친구들과 사탕이나 케잌 혹은 과일 대신 한모금씩 나눠 마실 수 있는)을 잘 포장해 상자에 담아 보냈는데 미국에서 21세 생일선물로 와인만큼 상징적인 선물이 더 있겠나 싶어서였다. 사랑한다, 딸아!

8/21/2010

My precious, going away from home

아이가 내일이면 긴긴 방학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간다.

입학한 방학이 되어 처음 집으로 돌아올때는 집에 난리법석이 났었는데  대문에 웰컴홈 배너가 걸렸었고, 스테잌을 굽고 여러가지 이벤트가 준비되고 그랬다.

그런데그렇게 학교와 집을 오가는 횟수가 거듭됨에 따라 점점 강도가 시들해 가더니 이젠 왔니?”하는 정도가 되어버렸으니 좀 미안하다면 미안한 일 이다. -.-;;

이번에 돌아가면서 처음으로 자기 차를 가지고 가는데몇주 전에 오일을 교체하면서 얼핏 보니 앞바퀴 두개의 마모가 심해서 6개월 쓰면 갈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어제 아내가 애가 가기전에 그거 갈아줘서 보내야 하지 않겠냐고 묻는데 말을 들으니 너무나 당연한 얘긴걸 떠나기 이틀전인 여태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내가 한심했다.

아이 차는 스포츠카 라서 타이어가 색다르고 구하기도 쉽지 않은(당연히 값도 만만치 않은) 종륜데 그나마 타이어센터들이 이곳 지역엔 배가 부른지 토요일인 오늘 거의 닫는데 문제가 있었다. 새벽예배에 나오신 차량정비소 하시는 집사님께 사이즈를 말씀드리고 어떻게 안되겠냐고 부탁을 드렸더니 집사님이 리치몬드지역에 수배를 해서 타이어를 찾았으니 빨리 차를 가지고 오라고 하셔서 무사히 타이어를 달고 왔다. 토요일에는 문도 안 여는 분들인데 우리 사정 생각하셔서 정비소로 나오셨다는 거다. 죄송하고 고맙다... 서로에게 베푸는 성도들의 사랑이 어디가 한계인지 모를 정도로 크다...  

어제 밤에는 한참동안 목욕탕 대청소를 했는데 식구들이 한 밤중에  일 인가 했을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아이가 집이라고 오랜 만에 돌아오는데 것은 아니지만 아이가 집에 와서 처음하는 목욕을 반짝반짝하는 깨끗함 속에서 기분좋게 있게 하자고 마음먹었었는데 아이가 돌아오던 당시에는 그렇게 짬을 내지 못하고 말았었다. 그래 집에서 떠나기 전에 라도 그렇게 있도록 하자고 청소였던 .

써놓고 보니 웃긴다. 가장이라는 목욕탕청소야 기본으로 해야 하는 거고, 당연히 하면서 누굴 위해 특별히 하는 거라고 생색을 내고 있으니 말이다. 근데그냥 마음이 그렇다는 거다. 대접해 주고 위해주고 싶은데 특별히 사주거나 해서 표현할 있는형편도 못되는지라마음이라도

4/05/2010

Goosebumps

지난 토요일, 큰 아이의 전화를 받고 있는 아내옆에서 무슨 이야기들을 나누는지 들어보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내가 “악” 하면서 울상이 되는데 큰 아이가 어딘가에 귀를 부딛쳐 피가 났다는 이야기다. 순식간에 소름이 끼치면서 팔에 닭살이 돋았다. 나와 별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면 사망소식에도 별로 그런 신체적 반응이 오지 않다가, 아이가 다쳤다니까 그러는 걸 보면 피를 나눠준 아이들이 (두째나 막내가 다쳤을 때도 늘 그랬다) 나/우리에겐 특별하고, 귀하긴 귀한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학교 기숙사에 가 있는 큰 아이가 갑자기 보고 싶어졌다. 아내에게 주일 오후에 아이가 좋아할 만한 먹거리를 좀 사 가지고 아이보러 갔다오자고 했더니 아내 역시 그랬으면 좋겠다고 한다. 맘속으론 아이를 놀래키고자 하는 짓궂은 생각도 있었고…

하지만 왠걸…바로 그 토요일 밤 9시쯤. 둘째가 밖에 웬 차가 한 대 서있는데 이상하니 좀 나가보라고 한다. 문을 열자마자 “짠”하고 큰 놈이 집안으로 뛰어 들어 오면서 나한테 안긴다. 쿵쾅쿵쾅 뛰어 들어가서는 지 엄마도 안아주고. 차 가진 친구가 집에 오는길에 묻어 왔다는 것이다. 참 이상도 하다…아내와는 가끔 ESP(Some people can communicate using monocookie also known as ESP. Where one knows what the other is thinking without speaking aloud-Wikipedia)가 통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럼 딸도...? ㅎ ㅎ

정말 아무것도 하는 것 없이 아이들과 뒹굴뒹굴 자고, 먹고, 보고, 자고, 먹고, 보면서 먹고 하며 일요일 오후를 푹 쉬면서 보냈다. 저녁엔 피자가게에서는 맛 볼 수 없는 피자 2가지를 온갖 재료를 넣어 큰 아이가 만들고, 아내가 아이들 좋아하는 돼지구이를 해서 먹고는 큰 아이를 다시 그 친구에게 딸려 보냈다. 짦은 만남이라 아쉬웠지만 보고 싶던 아이를 보고나니 마음이 한결 놓였다.

다행히 귀는 크게 다친 건 아니였고. 무슨 머슴아 처럼 약도 안 바르고 그냥 딱지가 되게 말려서 왔길래 약을 발라주긴 했다. 제발 어디 아픈데 없이 잘 자라서 층만한 삶을 살아다오, 얘들아!

p.s. 저녁시간내내 아이들과 본 것은 디스커버리의 Life라는 최근의 기록영화였는데 온갖 희안한 물고기와 새들을 보여줬다. 해설자의 목소리가 "Oprah (Winfrey)"같다고 하니 아이들이 멈칫 하면서 눈만 한 번 동그랗게 뜨고 반응들이 없이 넘어간다. 나도 겸연쩍게 넘어가고. 한참을 있다가 둘째가 갑자기 까르르 웃기 시작하면서 "아빠, 아까 Oprah라고 한 거였어? 하하 우리는 "Opera"라고 들어서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린가 했는데. 이제야 알았어!"한다. 큰 아이와 아내도 배꼽을 잡고 깔깔. 아무리 오래 노력해도 우리는 2세와 같은 영어가 되지 않는다는 한계를 이런데서 느낀다.  ㅡㅜ

8/03/2009

독특하고 다양한 아이들 - 1 of 3

큰 아이가 어제 만들어 준 zen garden이라는 건데 사기그릇을 정성스럽게 칠하고 그 안에 고운 모래와 예쁜 자갈 몇 개, 소라, 조개등을 가지런히 넣고는 나무를 잘 다듬고 잘라 붙여서 만든 갈쿠리와 함께 줬다. 스트레스가 쌓일 때나 정신적인 안정이 필요할 때 갈쿠리로 모래를 이리 저리 옮겨 모으며 시간을 잠깐 보낸다면 조용한 바닷가에 나와 앉아 있는 듯이 금새 평화로운 느낌이 들 것 같다.

이 아이는 맏딸답게 어른스럽다. 학교기숙사에 가 있을 때나 집에 와 있는 지금이나 항상 엄마 아빠를 걱정해 주며 괜찮은 지를 확인한다. 아내가 3일간 시카고에 가 있는 사이인 어제나 오늘도 나머지 식구들을 위해 부엌에서 여러가지 음식을 만들어 먹이고 설겆이를 하는 데 어미몫을 한다. 머리는 제 아빠를 안 닮아서 총명한 것 같고 (분명 어미로 부터...흑흑), 손재주는 아빠로 부터 받은 것 같다. ㅋ ㅋ

이번 주말이면 새 학기를 위해 학교로 돌아가 아파트로 입주하게 되는데, 침대니 책상 등 필요한 가구들을 새로 사 달라지 않고 craigslist에서 싼 중고가구를 골라서 모은다. 넉넉치 못한 부모를 위한 마음일 거다. 참 고맙다. 단지 둘째에게 시시콜콜 잔소리를 하는데 어떤 때는 좀 심한 것 같다. 제딴에는 둘째가 잘못될까 그러는 것인 줄은 알겠는데 심하게만 하지 않으면 금상첨화일텐데. 요즘에는 허리가 아픈 엄마를 좀 쉬게 해 준다고 연일 가게에 같이 나가 캐쉬어를 봐 주는 든든한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