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난 특히나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중학교 다닐 때만 해도 전교에서 몇 등을 놓치면 죽을 것 처럼 공부만 하다가(극한 대비를 위해 좀 과장한 면도 없지않삼), 고등학교에 들어간 후 왜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지면서 그저 세상을 좀 둘러보고 배우고 싶다는 욕구가 갑자기 생겼다. 그래서 돈이 있을리 만무한 고등학교 1학년생이 엄마지갑을 뒤져 배낭, 버너, 텐트, 등산화 등을 몰래 사 모으기 시작했고, 어느 화창한 봄 날을 택해 무작정 여행을 떠났다. 그것도 방학이나 공휴일이 아닌 다른 아이들 다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평일에 집에는 한 마디 이야기도 없이.
없어진 나 때문에 당황하실 부모님, 학교담임선생님, 그리고 돌아와서 당할 꾸짖음 등의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고 내 머리속은 하얗게 비어 있었다. 청량리에서 기차가 출발했고, 덜커덩 덜커덩 거리는 기차의 장단을 들으면서 창가에 얼굴을 기대고 받는 봄 햇살이 너무나 따스한 가운데 난 "바로 이거야" 라는 생각을 하며 만족스런 잠으로 스르륵 빠져 들었었다.
그 첫 여행이 3일인지 아니면 4일동안 이었는지 확실히 기억이 나질 않지만 집으로 돌아온 후, 딸 넷에 아들 하나인 우리집과 학교에서의 난리는 상상에 맡기기로 하고 좌우간 그 이후 한달이 멀다하고 이런 일탈이 반복되었다. 후회도 두려움도 없었고 망설임도 없었다. 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학급등수(전교등수가 아닌)가 54/60 이라고 쓰인 성적표를 받아들고 내가 씩 웃었던 건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도저히 안되는데 아마 중학교때 받은 스트레스에다 그런 부담을 준 부모와 학교와 사회에 대한 철 모르는 어린녀석의 보복어린 감정에서 나온 것이었을 듯...
하지만 지금은 어렵고 힘든 일들이 앞을 가로 막을 때 마다 그 기억들을 되살리면 마음이 후련해지고 무슨 두려움이 있겠나 싶은 생각이 들며 다시 웃음을 되찾게 된다. '그래서 후회는 없었다' 라는 생각과 '우리 아이들은 그러면 안되쥐' 라는 몹시 이중잣대적인 생각을 동시에 하면서. ^^
여행을 떠나기 전 배낭에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넣으며 가슴이 두근거리던 기억, 한없이 달리는 열차와 고속버스를 스치며 지나가던 푸른 숲과 눈덮인 산, 거친 능선을 열 몇 시간을 타며 내가 내쉬던 거칠고 하얀 입김, 지나치는 사람도 하나 없고 마치 귀가 먹은 것 같은 고요함속에 늠름하게 버티고 서 있던 겨울 산, 눈위에 텐트를 치고 들어가 눈을 녹여 지은 밥과 호박, 양파, 된장 고추장 넣어 끓여 먹던 찌게, 길잃어 헤메던 산에서의 밤, 대피소에서 만난 낮선 사람들과의 대화와 사귐, 그런 기억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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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2011
7/31/2010
목표를 정하고 – 잔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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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면 선이 보인다. 지나간 자욱. |
그것 까지는 눈치를 챘는데 아무리 똑바로 걷는다고 걸어도 다른쪽 끝으로 가서 보면 항상 삐뚤빼뚤 지렁이가 기어 간 것 같이 자욱이 나곤했다. 가까이에서 봐서 그 정도지 멀리서 보기라도 하면 그 꾸불거리는 것이 더 가관이었다. “참 이상도 하다. 아직 흔적이 남아있는 지난 번 깍아나간 선을 따라서 걸으면서 좀 구불어져 있던 곳은 분명히 정정해 나갔는데 이번에도 역시 꼬불이네?” 했다.
어느 날 다른 시도를 해 봤다. 이제는 지난 번의 흔적을 따라 간다던가 몇 발자욱 앞을 보고 걷는 대신 다른쪽 끝에 어떤 목표를 설정하고 그걸 응시하면서 걷는.
처음엔 기계를 밀고 걸으면서 동시에 먼 곳에 있는 목표를 보는게 그리 쉽지 않았다. 하지만 차츰 그게 익숙해 지면서 옆에 전에 있던 선이 어떻게 나 있던, 땅이 이리저리 불규칙하게 되어있던, 내 주의를 산만하게 할 어떤 상황이 주위에서 벌어져도 그 목표 하나만 응시하고 나아가면 “죽” 뻗은 일직선으로 가게 되더라는…
우리의 삶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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