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를 피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때였으니까 한 15살 정도 부터다. 좌우간 중고등학교 시절은 어쩌면 그렇게 신통하게 하지 말라는 것 만 하고, 가지 말라는 데 만 가고, 보지 말라는 것 만 보고, 먹지 말라는 것 만 먹고(피우고 마신다는 표현이 더 적절) 지냈던 것 같다. ㅡㅡ; 대부분 사내들이 그렇게 커 왔는지는 모르겠지만…ㅎ ㅎ
나중에는 얼마나 담배를 피워댔는지 끊기 몇 년 전에는 하루에 2.5갑 정도를 피운 기억이 난다. 이렇게 되면 성냥이나 라이터가 필요없다. 왜냐하면 워낙 줄로 피우기에 피던 담배를 끄기 전에 담배끝에 새 담배를 대고 빨면 점화가 바로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20여년 전 큰 아이를 임신하고 아내가 “우리 아이를 위해 담배 끊으면 안 돼?”하는 거다. 정말 많은 노력을 했지만 두 어 달 절연에 성공하고 다시 되돌아 가고 하는 것의 반복이었을 뿐 도저히 나의 의지로는 힘들어 보였다.

아내가 그 부탁을 한 몇 달 후, 어느 날 운전을 하다가 성공회목사님 한 분이 미해병대 군목시절에 있었던 간증을 하는 방송을 들었다. 한 병사가 상담을 위해 찾아 왔다. 그 병사는 싱글거리며 “저, 담배좀 끊게 기도해 주실래요?”. 단 번에 그가 군목을 놀리려고 장난삼아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너 장난이지?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그렇다고 믿는 신자도 아닌 그리고 기도결과를 아주 처음부터 부인하려고 온 이 사람을 놓고 기도하기도 좀 그런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목사님은 이 병사와 함께 금연을 위해 간절히 기도를 마쳤다. 기도를 마치자 마자 이 병사가 다시 예의 그 비웃는 웃음을 지으며 “그럼, 한 번 시험해 볼까요?”하며 주머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 불을 당겼다. 그러곤 “어? 기도도 다 소용없네?!” 하면서 낄낄댔다. "바로 당신들 같은 기독교인들이 받드는 신이 없다는 증거야!" 하는 말을 남기고 그 병사는 의기양양하게 군목실을 나섰다. 목사님은 처절한 심정이 되어 그 자리에 굳어 버린 것 처럼 않아 있었다. 한 3분이 지났을까? 그 병사가 눈물 콧물에 뒤범벅이 되어 뛰어 들어 오면서 소리치는 거였다. “목사님, 나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하면서 목사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를 일으켜 세우며 영문을 몰라 하는데 병사가 설명을 한다. “사실 전 오늘 목사님을 곯려주려고 왔었어요. 그런데 문을 나서자 마자 갑자기 담배냄새 때문에 구역질이 나면서 토하고 말았어요. 이게 웬 일인가 싶어 다시 담배를 물고 한 모금 빨아봤죠. 다시 심한 구역질이 나서 또 토하고…이젠 담배를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서 꼴도 보기 싫어요!”
여기서 힌트를 얻었다. 방송을 들었던 그날 밤, 잠자기 전에 뭐 길게도 아니고 약 십여 초 기도를 해봤다. “아무리 여러 번 시도해 봤지만 제 의지만으로는 그게 잘 안 되네요. 애당초 담배 끊길 원치 않는 사람조차도 억지로 기도 한 번 덜렁 했다고 끊어 주기도 하시니 저도 쫌 도와주세요.” 하곤 잠자리에 들었다. 담배피우는 분들은 알겠지만 담배와 라이터가 집안 몇 군데에 있어야 마음이 놓이는 법이다. 화장실, 베란다, 침실(이건 간이 좀 부은 경우^^), 자동차 등. 특히 화장실에서 큰 일을 볼때는 필수다. 그런데 그 날 아침은 아무 생각없이 큰 일을 마치고 아무 일 없이 화장실을 나왔고 담배를 피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점심을 먹고도 식후연초생각이 나질 않아 웬 일이지? 했다. 그 다음 날 아침도, 그 다음 날도… 일부러 끊으려고 했을 때는 참는게 그렇게 고통스러웠는데 이건 아예 안 피워도 별 거 아닌 것 같은거다. 그냥 그렇게 끊었다. 담배와 라이터를 그 후 한 2년 간 왼쪽 앞 가슴주머니에 늘 넣고 다녔다. 피고 싶으면 언제든 피우려고…하지만 필요없었다. 지금도 옆으로 스쳐가는 사람이 과일향기가 그윽한 여송연 연기를 뿜으며 지나 가기라도 하면 슬쩍 코를 벌룸거려 향을 즐기기는 하지만…
장속에 숨겨놓았던 옛 기억 하나를 여기에 꺼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