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한 꿈이다, 오늘 새벽의 꿈은.
일평생 살아오며 꿈을 단 한번도 기억해 본 적이 없을 뿐더러 그 꿈 안에서 있었던 대화를 기억한다는 건 더더욱 생각치 못하던 일. 내용자체도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것이었고 대화도 생뚱맞게 영어였다.
장면은 어느 젊은시절. 의대의 한 과목을 수강하는 친구를 따라 강의실로 들어가 도둑청강을 했다. 뭔가 한참 어려운 내용을 가르친 교수가 강의를 마치면서 내가 있는 곳으로 시선을 옮기며 젊잖게 한마디 했다.
교수: "I suggest you who happened to be here without the registration shouldn't attend my class from now on."
(잠시 멋적어하는 나에게 이번에는 내 눈을 똑바로 마주보며 빠르게 한마디 더한다)
교수: "The value of the cross is still recognized everywhere!"
나(한숨도 지체하지 않고): "Of course!"
이게 기억하는 다인데 꿈을 깨고 일어났는데도 너무나 또렷하게 그 디테일이 생각났다. 지난 번 북한선교하시는 이삭목사님이 오셔서 간증하시는 가운데 북쪽 판문점을 방문했던 경험을 이야기하셨었다. 북한관리들 그리고 가이드와 북측의 판문점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판문점에 노동을 하러왔던 노동자들인지 혹은 단체관광으로 온 북한서민들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한 그룹의 북한사람들이 버스를 타고 출발하려는 찰라 많은 사람들로 인해 미어 터지는 그 버스안에 이삭목사님쪽을 항해 서 있던 한 남성과 눈이 마주쳤단다. 그런데 뭔 이유인지는 몰라도 꼭 그래야 한다는 욕구가 생겨 목사님의 양손 검지로 급하게 십자가를 만들어 그 남성에게 보였다는 것. 물론 옆의 북한관리들에게 보이지 않게 몰래.
그랬더니 버스안의 그 남성도 옆에 있는 사람들을 홱 둘러 보더니 주위사람들 눈에 띄지않게 양손가락으로 급히 십자가를 만들어 목사님께 보여줬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많은 사람들이 북한에 무슨 종교가 있냐고 하지만 바로 이런 것이 아직도 목숨걸고 하나님을 몰래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냐고 하셨다.
아마 이런 기억들이 오버랩 되어 그 의대교수와 짧은 말로 (서로 크리스천이라는 걸 알아봤다는) 비밀신호를 주고 받은 것이리라 억지 추측을 해본다. 참 이상한 꿈이다...
지난 얼마간 몇가지 은사를 구하며 기도해오고 있는 중이었는데 아마 그런 간구보다는 세상사람들이 너의 삶과 행동을 보기만 해도 네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되고, 그 사람들로 하여금 나도 하나님을 믿어 볼까나 생각하게 만들수 있는 삶이 더 중요하다는 메세지를 응답으로 주신 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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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4/2017
10/31/2016
넌 소원이 뭐니
토요일이면 나가서 돕는 장애인선교단.
그 선교단의 단장목사님이 근래에 바뀌면서 자리를 잡느라 아직 정식으로 모임을 갖지는 않고우선 장애우들을 방문해 도시락을 전해주는 일을 하고있다. 여러가지 일로 바뻐 근 한달 참석하지 못하고 있다가 지난 토요일 처음으로 목사님과 장애우들을 방문할 수 있었고.
맨 마지막으로 우리집 둘째 나이정도 먹은 처자를 방문하면서 도시락을 전해주고 그 그룹홈의 부엌에 앉아 잠시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처자는 그 옛날부터의 모임에서 정상인과 차이를 못 느낄만큼 지적이면서 조신하고,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에서 배려심이 많은걸 느낄 수 있었고, 토요일 모임에서 식사후 테이블을 치우고 닦는 등 일도 열심히 하는걸 봐왔다. 차라리 내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하거나 아프게 하는 많은 정상인들보다 훨씬 정상인같아 오히려 주위의 정상인들이 전문의의 검진을 받으면 더 중증인 사람들로 판명이 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동행한 목사님이 영어가 서투르고 그 처자는 우리말을 전혀 모르기에 목사님이 오래 망설이다가 질문을 하셨다. 갑자기 나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해도 즉시 대답하지 못할 것같은...
목사님: What is your vision?
처자: Um...(좀 당황스러워 하며 말설임)
목사님: What is your dream? (질문을 좀 쉽게 다시 주셨다)
처자: First one is going to school and the second is to study just like everyone else. (이제 망설임 하나없이 자기가 정말 소원하는 일을 이렇게 두가지로 정리해 또박또박 이야기했다)
목사님과 나: .......
가슴이 턱 막히며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남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누리는 일들을, 더 나아가 누리면서 하기 싫어하기조차 하는 일들을 그 처자는 자기의 너무 간절한 꿈이라고.
그 그룹홈을 나서면서 처자에게 "네가 앞으로 학교에 가서 열심히 공부도 하고 직장에 취직해 돈도 벌고, 좋은사람 만나 시집도 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앞으로 기도할께."라고 이야길 해주고 나오는데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처자를 보살피던 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신후 재혼을 위해 아빠가 그 처자를 그룹홈에 거의 버리듯이 놓고 가 버린 것을 아는 나로서는.
5/29/2014
버켓 리스트
한 오년 전 쯤 위와 대장 내시경검사를 한 적이 있었다. 검사를 마친 의사가 다 좋은데 위벽에 좀 심하게 붉은색을 띈 부위가 보여서 조직을 떼어내 검사하는 곳으로 보냈으니 일주일 후 전화해서 검사결과를 확인하라고 했다. 검사결과 암조직은 아니나 5년후 다시 검사해 보는게 좋겠다는 권고가 있었고.
그 후 5년이 흐른 지난 화요일 다시 위와 대장검사를 한 결과는 5년 전 들었던 검사결과의 판박이. 역시 붉은 부위때문에 조직검사를 했고 결과 역시 normal tissue. 때문에 음식을 너무 맵게 먹기 때문이라고 믿는 아내가 밉지않게 눈을 살짝 흘겼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삶에 대해 더 겸허해 지는 듯 싶고 우리의 사는 것과 죽는 것이 하나님께 달렸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하나님께서 나를 더 살도록 허락하신다면 아이 셋 모두의 결혼식을 지켜주고 싶고, 그 아이들이 낳는 손자손녀들도 만나고 싶은 바램이 있는데 꼭 그런 은혜를 베풀어 주시길 간구하는 중.
요즘 한 열 개 정도의 바램들을 담은 버켓리스트를 떠올리고 있고, 1번은 지난 번에 올렸더랬는데 이제 그건 2번째로 밀려 내려와야 할 바램이 생겼다. 이름하여 "Cousins' Camp".
우리 슬하의 세 아이들이 모두 시집장가를 가면 이 근처에 모여살 확률보다는 미전국에 뿔뿔이 헤어져 살게될 확률이 크고, 그렇게 되면 자연 얼굴 볼 기회도 거의 없게된다. 또 그 애들은 나름 각자 배우자와 맞벌비하는 바쁜 생활과 자녀들 키우는 일에 치여 중년이 될 때까지 제대로 느긋하게 쉴 시간도 없을거고. 그들의 2세들 역시 우리가 자라던 시절의 할아버지 할머니와 가졌던 따뜻하고 포근한 추억도, 사촌들과의 사귐도 거의 없게 될 것이 뻔하기에 생각해 본 것.
매년 여름 손자손녀들을 모두 우리내외가 살고있는 곳으로 불러 모아 일주일을 보내게 해 주는 것인데 제 엄마아빠가 아이들을 내려놓고 어디 휴가라도 한 일주일 호젓하게 단둘이 다녀올 수 있게 배려하고, 손자손녀들은 우리 내외가 일주일 데리고 있으면서 오랬동안 못 봤던 사촌들과 함께 신나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는 동시에 우리내외와도 사귐을 갖는 다는 컨셉인데 키워드는 역시 "추억"이 아닐까 싶고. 그 귀엽고 한편 시끄럽고 말썽꾸러기일 아이들과 참 많은 걸 하고 싶다. 우선 15인승 밴을 하나 빌려야 하겠고, 재미있는 성경이야기도 매일 가르치는 한편 수영장이나 동물원, 박물관, 극장 등을 떼거리로 방문하고, 엄마아빠에게 보낼 감사편지도 쓰게하고, 캠프파이어도 하고, 산으로 가 밤하늘의 별도 세어보게 하고...등등 하고 싶은 게 참 많다. 해가 거듭해 가면서 좀 큰 아이들은 보조교사로 할머니할아버지를 도울 수 있을 테고...
이렇게 생각을 해 보고 인터넷을 뒤져보니 꽤나 많은 할아버지할머니들이 비슷한 동기로 이런 캠프를 하는 것 같다. 부모된 마음은 다 같은 모양.
하여간 "Cousins' Camp" is #1 in my bucket list now.
#2 item in the list: Walking St. James' way which is 650 miles long journey.
그 후 5년이 흐른 지난 화요일 다시 위와 대장검사를 한 결과는 5년 전 들었던 검사결과의 판박이. 역시 붉은 부위때문에 조직검사를 했고 결과 역시 normal tissue. 때문에 음식을 너무 맵게 먹기 때문이라고 믿는 아내가 밉지않게 눈을 살짝 흘겼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삶에 대해 더 겸허해 지는 듯 싶고 우리의 사는 것과 죽는 것이 하나님께 달렸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하나님께서 나를 더 살도록 허락하신다면 아이 셋 모두의 결혼식을 지켜주고 싶고, 그 아이들이 낳는 손자손녀들도 만나고 싶은 바램이 있는데 꼭 그런 은혜를 베풀어 주시길 간구하는 중.
요즘 한 열 개 정도의 바램들을 담은 버켓리스트를 떠올리고 있고, 1번은 지난 번에 올렸더랬는데 이제 그건 2번째로 밀려 내려와야 할 바램이 생겼다. 이름하여 "Cousins' Camp".
우리 슬하의 세 아이들이 모두 시집장가를 가면 이 근처에 모여살 확률보다는 미전국에 뿔뿔이 헤어져 살게될 확률이 크고, 그렇게 되면 자연 얼굴 볼 기회도 거의 없게된다. 또 그 애들은 나름 각자 배우자와 맞벌비하는 바쁜 생활과 자녀들 키우는 일에 치여 중년이 될 때까지 제대로 느긋하게 쉴 시간도 없을거고. 그들의 2세들 역시 우리가 자라던 시절의 할아버지 할머니와 가졌던 따뜻하고 포근한 추억도, 사촌들과의 사귐도 거의 없게 될 것이 뻔하기에 생각해 본 것.
매년 여름 손자손녀들을 모두 우리내외가 살고있는 곳으로 불러 모아 일주일을 보내게 해 주는 것인데 제 엄마아빠가 아이들을 내려놓고 어디 휴가라도 한 일주일 호젓하게 단둘이 다녀올 수 있게 배려하고, 손자손녀들은 우리 내외가 일주일 데리고 있으면서 오랬동안 못 봤던 사촌들과 함께 신나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는 동시에 우리내외와도 사귐을 갖는 다는 컨셉인데 키워드는 역시 "추억"이 아닐까 싶고. 그 귀엽고 한편 시끄럽고 말썽꾸러기일 아이들과 참 많은 걸 하고 싶다. 우선 15인승 밴을 하나 빌려야 하겠고, 재미있는 성경이야기도 매일 가르치는 한편 수영장이나 동물원, 박물관, 극장 등을 떼거리로 방문하고, 엄마아빠에게 보낼 감사편지도 쓰게하고, 캠프파이어도 하고, 산으로 가 밤하늘의 별도 세어보게 하고...등등 하고 싶은 게 참 많다. 해가 거듭해 가면서 좀 큰 아이들은 보조교사로 할머니할아버지를 도울 수 있을 테고...
이렇게 생각을 해 보고 인터넷을 뒤져보니 꽤나 많은 할아버지할머니들이 비슷한 동기로 이런 캠프를 하는 것 같다. 부모된 마음은 다 같은 모양.
하여간 "Cousins' Camp" is #1 in my bucket list now.
#2 item in the list: Walking St. James' way which is 650 miles long journey.
3/06/2014
막내
녀석이 군인이 자신이 원하는 길이라고 또렷하게 밝힌 건 채 7-8개월도 되지 않는 듯 싶다.
어릴때 꿈을 계속 유지하면서 결국엔 그 꿈을 이루고 마는 사람들이 가끔씩 있기는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나면서 그 꿈이 변해가는 건 차라리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싶다. 나역시 초등학교시절엔 부모님의 세뇌로(?) 나는 꼭 대통령이 돼야만 하는줄 알았고, 공이 안 보이는 깜깜한 저녁이 될때까지 코가 닳아 엄지 발가락이 다 삐져나온 신발을 신고 동네아이들과 하는 축구에 재미가 들 즈음에 차범근선수가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말레이시아에게 1:4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7분만에 혼자 3골을 연달아 넣어 동점을 만들었을 땐 훌륭한 축구선수로 그 꿈이 그 자리에서 바뀌었었다.
막내도 컴퓨터게임을 열심히 하던 국민학교와 중학교시절엔 컴퓨터게임을 만드는 게임프로그래머가 되겠다는(아마 이것도 제 어미가 녀석 머리에 슬쩍 넣어준 걸 게다) 꿈을 이야기하더니, 조금 자라서는 실제비행기를 운행하듯 여러 기기들을 컴퓨터영상을 통해 조작하는 비행훈련프로그램을 열심히 하며 파일럿이 되겠다고 심각하게 우리내외에게 이야기 한적도 있고.
그런데 그 꿈이 이제 군인으로 바뀌었다. 이번에는 막연히 군인이 되겠다고 말하기 전에 군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길이 있는지, 어떤 자격을 갖추어야 하는지도 많이 알아보고, 자기의 현재 성적도 돌아보는 시간이 있었던 것 같고. 해사(USNA)를 목표로 삼고 졸업과 동시에 해병대장교가 되겠단다. 근데 합격자들의 학교성적기록 및 SAT성적에 대한 통계를 보더니 이제까지의 성적으로는 지원조차 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는 집에 와서 밥먹는 시간도 아까와 할 정도로 무섭게 파고들기 시작했다. 물론 해사보다는 조금 들어가기가 쉽다는 육사(USMA, 우리가 West Point라고 부르는)를 차선책으로 정하고.
시간이 차츰 지나면서 성적표에서 가끔 보이던 C와 D가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고. 허나 문제는 이제까지 관리해 오지 않아 지금 아무리 잘해도 최종 졸업평균을 낼 때 결국은 녀석의 발목을 잡게 될 지난 성적들. 왜 진작 성적에 관심을 갖고 잘 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후회로 제 머리통을 두드리는데 안스러운 마음이 드는 한편 안심도 된다. 달리 뭐라고 이야기한 것도 없는데 이제라도 자기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모습에...
아들과 딸을 모두 해사에 보낸 지인이 계셔 어제 전화통화를 해봤는데 군사학교라 우리가 보통 관심을 두지 않아서 그렇지 매년 나오는 미전국대학순위에서 상위권이라는 그분의 말씀에 찾아보니 크게 틀린 말은 아닌듯 싶다. 그런데 지원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지역구의원들의 추천을 얻는 일이 쉽지 않고, 특히 팀스포츠를 2개 이상 이미 해오고 있었어야 했다는 이야기에 가슴이 턱 막혀왔다. 팀스포츠는 어렸을때 부터 많이 권해봤고 본인이 싫다는 걸 강제로 하게 하기 싫어서 자신이 좋아서 하는 권투만 시켜왔을 뿐인데... 합격자 대부분이 팀스포츠를 한 사실을 넘어 팀의 주장을 했었다는 통계가 있다고, 그런 이유는 군장교생활이 팀웍을 강조하고 지도자경험을 중시하기 때문이란다.
그래도 예외라는게 있으니 나름 열심히 준비하고 우리도 부모로서 의원들에게 연락하고 추천서를 부탁하는 일, 아이를 데리고 사관학교들을 방문해 견학을 시키고, 여름캠프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기특한건...동기부여를 준다고 그 집 자녀들의 연봉이 꽤 된다고 막내녀석에게 이야기해줬더니 콧방귀를 픽 뀌면서 하는 얘기는...돈 때문이 아니라고, 아빠가 자기를 너무 모르는것 아니냐고, 자기가 사관학교를 가려는 진짜 이유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젊음의 한 때를 바쳐보겠다는 마음때문이라는 거다. 쩝...그래...네 똥이 훨씬 굵다, 녀석아!
아빠로서, 어른으로서 아들보기가 창피했던 순간...
어릴때 꿈을 계속 유지하면서 결국엔 그 꿈을 이루고 마는 사람들이 가끔씩 있기는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나면서 그 꿈이 변해가는 건 차라리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싶다. 나역시 초등학교시절엔 부모님의 세뇌로(?) 나는 꼭 대통령이 돼야만 하는줄 알았고, 공이 안 보이는 깜깜한 저녁이 될때까지 코가 닳아 엄지 발가락이 다 삐져나온 신발을 신고 동네아이들과 하는 축구에 재미가 들 즈음에 차범근선수가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말레이시아에게 1:4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7분만에 혼자 3골을 연달아 넣어 동점을 만들었을 땐 훌륭한 축구선수로 그 꿈이 그 자리에서 바뀌었었다.
막내도 컴퓨터게임을 열심히 하던 국민학교와 중학교시절엔 컴퓨터게임을 만드는 게임프로그래머가 되겠다는(아마 이것도 제 어미가 녀석 머리에 슬쩍 넣어준 걸 게다) 꿈을 이야기하더니, 조금 자라서는 실제비행기를 운행하듯 여러 기기들을 컴퓨터영상을 통해 조작하는 비행훈련프로그램을 열심히 하며 파일럿이 되겠다고 심각하게 우리내외에게 이야기 한적도 있고.
그런데 그 꿈이 이제 군인으로 바뀌었다. 이번에는 막연히 군인이 되겠다고 말하기 전에 군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길이 있는지, 어떤 자격을 갖추어야 하는지도 많이 알아보고, 자기의 현재 성적도 돌아보는 시간이 있었던 것 같고. 해사(USNA)를 목표로 삼고 졸업과 동시에 해병대장교가 되겠단다. 근데 합격자들의 학교성적기록 및 SAT성적에 대한 통계를 보더니 이제까지의 성적으로는 지원조차 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는 집에 와서 밥먹는 시간도 아까와 할 정도로 무섭게 파고들기 시작했다. 물론 해사보다는 조금 들어가기가 쉽다는 육사(USMA, 우리가 West Point라고 부르는)를 차선책으로 정하고.
시간이 차츰 지나면서 성적표에서 가끔 보이던 C와 D가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고. 허나 문제는 이제까지 관리해 오지 않아 지금 아무리 잘해도 최종 졸업평균을 낼 때 결국은 녀석의 발목을 잡게 될 지난 성적들. 왜 진작 성적에 관심을 갖고 잘 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후회로 제 머리통을 두드리는데 안스러운 마음이 드는 한편 안심도 된다. 달리 뭐라고 이야기한 것도 없는데 이제라도 자기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모습에...
그래도 예외라는게 있으니 나름 열심히 준비하고 우리도 부모로서 의원들에게 연락하고 추천서를 부탁하는 일, 아이를 데리고 사관학교들을 방문해 견학을 시키고, 여름캠프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기특한건...동기부여를 준다고 그 집 자녀들의 연봉이 꽤 된다고 막내녀석에게 이야기해줬더니 콧방귀를 픽 뀌면서 하는 얘기는...돈 때문이 아니라고, 아빠가 자기를 너무 모르는것 아니냐고, 자기가 사관학교를 가려는 진짜 이유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젊음의 한 때를 바쳐보겠다는 마음때문이라는 거다. 쩝...그래...네 똥이 훨씬 굵다, 녀석아!
아빠로서, 어른으로서 아들보기가 창피했던 순간...
12/06/2012
지난 며칠간의 단상
i.
직장으로 부터 이번에 새로 나온 iPhone 5를 받았다. 여지껏 쓰는 개인용 Droid Razr가 꽤 괜찮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전화를 며칠 써보니 좀 과장해서 '속아 살았다'는 느낌이다. 뭐 전체적인 성능은 아직 비교해 볼 시간조차 없었지만 평소에 Droid Razr를 쓰면서 "아이씨 이건 왜 이런 기능이 없는거야!" 하던 것 들을 차분히 모두 해결해 놓은 전화가 iPhone 5라는 생각. 대표적인 예가 회의나 교회예배중 깜빡잊고 소리를 죽이지 못했을 때. 소리를 없애기 위해 버튼을 두세번 누르지 않아도 되게 이녀석은 자그마한 스위치를 만들어 놓았다. HD화질의 비디오녹화도 깔끔하고, 나같이 뇌세포가 2/3는 이미 굳어버린 꼰대들이 쓰기에도 어렵지 않게 메뉴가 되어있고.
ii.
매년 이맘 때면 작지만 내가 담당한 학교들을 청소하시는 분들의 성탄선물을 마련해 드린다. 이번학기 들어 일하는 지역을 다른 직원과 맞바꾸느라 학교갯수가 늘어서 금년엔 선물이 28개. 최선을 다해 청소하는 이분들 노고 덕분에 내가 청결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선생들을 위해 학부모회나 교육부에서 시끌벅적한 년말잔치나 선물을 해 줄 때 이분들은 눈에 띌세라 안보이는 곳에서 숨어지내시기에 이분들도 마땅히 누군가로 부터 감사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시작한 일.
iii.
막내가 권투를 갔다 오는 길에 심각하게 털어 놓는다.
"아빠, 너무 허탈하고 허무해."
"왜? 뭐가 그리 허탈해?"
"무슨 목표와 기대를 갖고 지내다 그것을 이루고 나면 허무하고 또 다른 목표와 기대를 가져야 하기에 세상이 뭐 이런가 싶어."
"음. 예를 들면?"
"지겨운 학교에서 집에와서 쉴 생각만 하다가 막상 집에 와서 얼마간 있다가는 잠자고 나서 또 학교로 가야 한다는 것. 아빠가 준비하는 맛있는 저녁을 잔뜩 기대하면서 그 생각으로 하루를 버티다가 그 저녁을 먹고나서 배가 부르게 되면서 느끼는 허탈함. 뭐 그런 것들 말야."
"응, 아빠도 네 나이때는 그랬어. 그래서 훌륭한 사람들은 늘 '큰 꿈과 목표를 가져라!' 그러쟎아. 그래야 작은 목표와 기대가 금방 이루어져도 더 큰 꿈을 바라보고 허탈해 하지 않을 수 있는 건가봐."
뭐 이런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럼 내 꿈과 목표는 뭐냐고 아들놈이 물어 보면 뭐라고 해야 하나...
직장으로 부터 이번에 새로 나온 iPhone 5를 받았다. 여지껏 쓰는 개인용 Droid Razr가 꽤 괜찮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전화를 며칠 써보니 좀 과장해서 '속아 살았다'는 느낌이다. 뭐 전체적인 성능은 아직 비교해 볼 시간조차 없었지만 평소에 Droid Razr를 쓰면서 "아이씨 이건 왜 이런 기능이 없는거야!" 하던 것 들을 차분히 모두 해결해 놓은 전화가 iPhone 5라는 생각. 대표적인 예가 회의나 교회예배중 깜빡잊고 소리를 죽이지 못했을 때. 소리를 없애기 위해 버튼을 두세번 누르지 않아도 되게 이녀석은 자그마한 스위치를 만들어 놓았다. HD화질의 비디오녹화도 깔끔하고, 나같이 뇌세포가 2/3는 이미 굳어버린 꼰대들이 쓰기에도 어렵지 않게 메뉴가 되어있고.
ii.
매년 이맘 때면 작지만 내가 담당한 학교들을 청소하시는 분들의 성탄선물을 마련해 드린다. 이번학기 들어 일하는 지역을 다른 직원과 맞바꾸느라 학교갯수가 늘어서 금년엔 선물이 28개. 최선을 다해 청소하는 이분들 노고 덕분에 내가 청결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선생들을 위해 학부모회나 교육부에서 시끌벅적한 년말잔치나 선물을 해 줄 때 이분들은 눈에 띌세라 안보이는 곳에서 숨어지내시기에 이분들도 마땅히 누군가로 부터 감사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시작한 일.
iii.
막내가 권투를 갔다 오는 길에 심각하게 털어 놓는다.
"아빠, 너무 허탈하고 허무해."
"왜? 뭐가 그리 허탈해?"
"무슨 목표와 기대를 갖고 지내다 그것을 이루고 나면 허무하고 또 다른 목표와 기대를 가져야 하기에 세상이 뭐 이런가 싶어."
"음. 예를 들면?"
"지겨운 학교에서 집에와서 쉴 생각만 하다가 막상 집에 와서 얼마간 있다가는 잠자고 나서 또 학교로 가야 한다는 것. 아빠가 준비하는 맛있는 저녁을 잔뜩 기대하면서 그 생각으로 하루를 버티다가 그 저녁을 먹고나서 배가 부르게 되면서 느끼는 허탈함. 뭐 그런 것들 말야."
"응, 아빠도 네 나이때는 그랬어. 그래서 훌륭한 사람들은 늘 '큰 꿈과 목표를 가져라!' 그러쟎아. 그래야 작은 목표와 기대가 금방 이루어져도 더 큰 꿈을 바라보고 허탈해 하지 않을 수 있는 건가봐."
뭐 이런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럼 내 꿈과 목표는 뭐냐고 아들놈이 물어 보면 뭐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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