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전 이민 초기에는 앞뒤 좌우 위아래로 꼭꼭 막힌 아파트에 살았어도 냄새가 진동하는 된장찌게, 김치찌게, 심지어는 청국장찌게까지 천연덕스럽게 끓여 먹는 무지함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냄새가 어디 실외로 나갈데가 없어 문틈을 통해 복도로, 천정을 통해 양쪽 옆집으로, 그리고 복도로 나간 그 독특한 향기가 계단을 타고 다른 층으로 퍼져 나갔었을 게 뻔하다.
그러곤 다음날 아침 주차장에서 만나는 이웃들의 한결같이 험(?)한 표정에 "왜 이렇게 좋은 아침에 인상들을 쓰는거지?" 하고 의아해 하곤 했었다. 그 사람들이 우리에게 이렇다 저렇다 직접 말을 못했던 건 심증만 있을 뿐이었기 때문이었고. 한참 나중에 안 사실은 김치찌게까지는 그런데로 참아줄만한 하지만 청국장끓이는 냄새는 미국사람들에게 거의 시체썩는 수준의 악취라는 것. 그 이유로 지난 20여년 넘게 청국장을 끓여먹기는 커녕 아예 집에 사다 놓지도 않았다.
참으로 먹고 싶었던 내 영혼의 음식, 꿈에 그리던 나의 '로망', 청국장.
며칠 전 사다 놓았던 한주먹 정도 사이즈로 포장된 청국장을 한꺼번에 훌훌 털어 넣고 오늘 드디어 진한 청국장찌게를 끓였다. 멸치국물을 내고, 야채송송, 김치몇점, 두부송송 해서 끓이고 있는데 막내가 뛰어내려와 이게 무슨냄새냐며 아래위층의 창문들을 열어놓는 난리를 친다. 냄새가 좀 그렇긴해도 한수저 떠먹어 보면 생각이 달라질걸 하면서 드밀었어도 "No, thank you". 청국장이 나에겐 soul food이지만 저녀석에겐 pizza 나부러기가 soul food 인걸 어쩌랴...
다른 반찬 아무것도 없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새로 지은 보리밥을 한입 배어 물은 후 뚝배기속에서 아직 펄떡펄떡 끓어 오르는 청국장찌게를 한술 떠 입으로 후 불어 입에 넣는데... 20년 넘게 잊고 있었던, 아니 단 한순간도 잊지 못했던 그 맛이 '훅' 되살아나 눈물이 핑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