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장으로 치룬 아버님장례는 어제 장지에서의 예식을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심각한 상태에서 회복이 되시는 듯 해 모두 기뻐하고 있던 중 이었는데 지난 24일 토요일 저녁에 소천하심. 병실에서 먹고 자며 지키고 있다 워싱턴디씨에서 온 누님이 대신 봐 줄테니 집에 가서 샤워하고 옷도 갈아입고 오라고 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떠나셨다. 참...
가족들이 하나 둘 각자 삶의 터전으로 모두 돌아가고 나 역시 오늘 직장으로 복귀해 근무하기 시작.
잘 해 드리지 못한 것... 지루해 하실 때 짤막한 대화라도 더 나눠드리지 못한 것... 좀 자주 모시고 나가지 못한 것... 몇 푼 안하는 좋아하시던 음식 더 사다드리지 못한 것...그저 후회로 꽉 찬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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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2012
2/19/2012
Regrets
어머니가 돌아 가시기 며칠 전 호스피스전문의와 간호원이 우리 가족에게 이야기 해 준 것이 있다.
눈은 가끔 뜨고 계시지만 의식이 있어서 그러시는 건 아니고, 앞으로 장기가 하나 둘 정지하기 시작하면서 급격히 생명의 불꽃이 사그러 들 거라는...그렇지만 듣는 기능만은 마지막 순간까지 있으실 거니 가족들끼리 이야기를 하더라도 말을 조심해야 하며 어머니에게 정상인 분 처럼 이야기를 계속 해 드리라고 했다.
그래 가족이나 교인들이 방문이라도 하면 누가 왔다고 어머니 귀에 대고 설명을 해 드리곤 했고, 어머니 병세나 상태에 관해서 다른 사람과 이야길 할 땐 복도에 나와 이야기를 하곤 했었다.
어머니 호흡이 가빠지시면서 몹시 불규칙해 졌던 마지막 몇 분...가족들이 돌아가면서 어머니 할머니를 안아드리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라고 내가 지시했고 아이들까지 모두들 작별인사를 끝낸 후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안아드리고 귀에 대고 속삭였다. "엄마...이제 저희들 걱정 마시고 편히 가세요. 주님께 먼저 가 계시면 저희들도 곧 갈께요. 사랑해요!"라고. 내가 말을 마치자 마자 어머니가 크게 숨을 한 번 내쉬시고는 온 힘을 모아 마지막 한 마디를 하셨다. "xx아!" 그리곤 바로 호흡을 멈추셨다.
오랜시간 의식이 없으셨기에 무슨 말씀을 하실 거라고는 모두 기대를 안 하기도 했고, 듣는 것에 집중을 안하고 있던 터라 그게 무슨 말씀이셨는지 순간 확실치 않았다. 하지만 그게 내 이름을 부르신 거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누님들이 "얘, 네 이름을 부르신 것 같다"라고 해 줬다.
내 이름을 부르신 건 정말 소리를 인지하고 계셨다는 건가...
근데...이런 기억을 떠올리며 가슴이 무너져 내린 건...호스피스 전문의와 간호원이 들으실 수 있다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해 주기 전에 그걸 모르고 이미 실수를 했다는 것. 누가 방문을 해서 상태를 물어보면 이제 우리와 함께 며칠 더 못 계실 거라는 이야기를 해 주곤 했는데 어머니가 당연히 못 들으실 거라는 생각에 어머니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했던 기억이 나는 거였다.
얼마나 섭섭하셨을까? 멀쩡한 나를 앞에 두고 왜 저런 소리들을 할까 하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억장이 무너진다.
눈은 가끔 뜨고 계시지만 의식이 있어서 그러시는 건 아니고, 앞으로 장기가 하나 둘 정지하기 시작하면서 급격히 생명의 불꽃이 사그러 들 거라는...그렇지만 듣는 기능만은 마지막 순간까지 있으실 거니 가족들끼리 이야기를 하더라도 말을 조심해야 하며 어머니에게 정상인 분 처럼 이야기를 계속 해 드리라고 했다.
그래 가족이나 교인들이 방문이라도 하면 누가 왔다고 어머니 귀에 대고 설명을 해 드리곤 했고, 어머니 병세나 상태에 관해서 다른 사람과 이야길 할 땐 복도에 나와 이야기를 하곤 했었다.
어머니 호흡이 가빠지시면서 몹시 불규칙해 졌던 마지막 몇 분...가족들이 돌아가면서 어머니 할머니를 안아드리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라고 내가 지시했고 아이들까지 모두들 작별인사를 끝낸 후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안아드리고 귀에 대고 속삭였다. "엄마...이제 저희들 걱정 마시고 편히 가세요. 주님께 먼저 가 계시면 저희들도 곧 갈께요. 사랑해요!"라고. 내가 말을 마치자 마자 어머니가 크게 숨을 한 번 내쉬시고는 온 힘을 모아 마지막 한 마디를 하셨다. "xx아!" 그리곤 바로 호흡을 멈추셨다.
오랜시간 의식이 없으셨기에 무슨 말씀을 하실 거라고는 모두 기대를 안 하기도 했고, 듣는 것에 집중을 안하고 있던 터라 그게 무슨 말씀이셨는지 순간 확실치 않았다. 하지만 그게 내 이름을 부르신 거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누님들이 "얘, 네 이름을 부르신 것 같다"라고 해 줬다.
내 이름을 부르신 건 정말 소리를 인지하고 계셨다는 건가...
근데...이런 기억을 떠올리며 가슴이 무너져 내린 건...호스피스 전문의와 간호원이 들으실 수 있다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해 주기 전에 그걸 모르고 이미 실수를 했다는 것. 누가 방문을 해서 상태를 물어보면 이제 우리와 함께 며칠 더 못 계실 거라는 이야기를 해 주곤 했는데 어머니가 당연히 못 들으실 거라는 생각에 어머니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했던 기억이 나는 거였다.
얼마나 섭섭하셨을까? 멀쩡한 나를 앞에 두고 왜 저런 소리들을 할까 하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억장이 무너진다.
12/25/2010
Hardheaded me
두달이 넘는 여름방학때는 선생들과 달리 내가 속한 서포트그룹은 정상근무다. 하지만 겨울방학은 짧기에 지난 12월 16일 부터 1월 3일까지는 쉬게 해 준다. 그래 일년 중 가게가 한창 바쁜 때에 딱 맞추어 쉬게 되니 가게에 아내와 같이 나가 도울 수 있어 좋다. 아내도 2주 정도는 궂은 겨울길을 혼자 운전해서 나가고 들어오는 일 없이 내 옆에 앉아만 있으면 되니 좋아하고. 어제 아침에 같이 가게를 나오면서 아내가 “자기 기억나?” 하면서 시작한 내 똥고집에 관한 기억하기 싫은 옛 사건 들…
<케이스 1>
아내가 둘째를 임신해 배가 꽤 부를 당시의 일. 연료계의 마지막 눈금이 사라졌는데 마침 주유소 하나를 지나고 있었다. 아내가 잠시 멈춰서 개스를 넣는게 좋겠다고 하자 내가 괜찮다고, 원래 연료계의 눈금이 바닥으로 내려가도 연료가 좀 남아 있게 차연료통 셜계를 하니 집까지 가는 건 걱정없다고 큰소리를 쳤다.
둘이 티각태각하다가 급기야는 운전대를 잡은 놈 고집대로 주유소를 지나치고 한 500미터쯤 갔을까…차가 푸르륵 거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서고 말았다. 팔짱을 끼고 ‘빤히’ 내얼굴을 응시하는 싸늘한 아내의 시선을 오른쪽 볼따귀로 느끼면서 “에이 씨, 차가 고장인가봐. 아니 왜 갑자기 찐빠가 나지?” 했지만 얼굴이 화끈거리는 건 피할 수 없었다.
결국 난 운전사쪽 문을 연 채로 핸들을 돌려가며 차를 밀고, 배가 남산만 한 아내는 뒤에서 밀면서 다음 주유소를 향해 … 흑
<케이스 2>
처음 미국에 와서 800불 주고 산 올스모빌의 중고스테이션 웨건(지금은 길에서 사라진, 일반 세단의 뒷쪽을 넓혀서 6-8명을 앉히고 짐을 더 실을 수 있는)에 부모님을 포함한 온 식구를 태우고 뉴저지에 있는 이모댁을 방문했을 때의 일. 한참을 다니다가 길을 잃고 지도에 없는 길들 만 나오기 시작하면서 엉키기 시작. 잠깐 편의점이라도 들려 길을 확실하게 물어보고 가자고 하는 두 여성(아내와 오마니)의 하소연을 들은 둥 마는 둥 하면서 곧 지도에 나온대로 아는 길 이름이 나올꺼라고 직진으로 올인을 했는데 동네가 없어 지면서 컴컴한 들판을 지나고 있더라는. 다시 돌아가자는 아우성을 ‘또’ 무시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만 더 가 보자”고 한 나. 아부지는 여성들의 비난과 아들의 처절하고 무모한(?)노력 사이에서 눈을 지그시 감으시고 어느 한 쪽도 편들지 않는 지극히 현명한 자세를 유지하고 계셨고…ㅋ
결국 원래 가려고 했던 도시에서 45분 정도 떨어진 전혀 다른 도시에 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난 “왜, 진작 강력하게 말리지 않았어, 들!”하며 생떼를 썼다는…정말 내가 싫어지는 순간. ㅡ.ㅡ;;
어제는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 보게 됐다. 나만 이런 똥고집이 있는 걸까 아니면 화성인이라서?
<케이스 1>
아내가 둘째를 임신해 배가 꽤 부를 당시의 일. 연료계의 마지막 눈금이 사라졌는데 마침 주유소 하나를 지나고 있었다. 아내가 잠시 멈춰서 개스를 넣는게 좋겠다고 하자 내가 괜찮다고, 원래 연료계의 눈금이 바닥으로 내려가도 연료가 좀 남아 있게 차연료통 셜계를 하니 집까지 가는 건 걱정없다고 큰소리를 쳤다.
둘이 티각태각하다가 급기야는 운전대를 잡은 놈 고집대로 주유소를 지나치고 한 500미터쯤 갔을까…차가 푸르륵 거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서고 말았다. 팔짱을 끼고 ‘빤히’ 내얼굴을 응시하는 싸늘한 아내의 시선을 오른쪽 볼따귀로 느끼면서 “에이 씨, 차가 고장인가봐. 아니 왜 갑자기 찐빠가 나지?” 했지만 얼굴이 화끈거리는 건 피할 수 없었다.
결국 난 운전사쪽 문을 연 채로 핸들을 돌려가며 차를 밀고, 배가 남산만 한 아내는 뒤에서 밀면서 다음 주유소를 향해 … 흑
<케이스 2>
처음 미국에 와서 800불 주고 산 올스모빌의 중고스테이션 웨건(지금은 길에서 사라진, 일반 세단의 뒷쪽을 넓혀서 6-8명을 앉히고 짐을 더 실을 수 있는)에 부모님을 포함한 온 식구를 태우고 뉴저지에 있는 이모댁을 방문했을 때의 일. 한참을 다니다가 길을 잃고 지도에 없는 길들 만 나오기 시작하면서 엉키기 시작. 잠깐 편의점이라도 들려 길을 확실하게 물어보고 가자고 하는 두 여성(아내와 오마니)의 하소연을 들은 둥 마는 둥 하면서 곧 지도에 나온대로 아는 길 이름이 나올꺼라고 직진으로 올인을 했는데 동네가 없어 지면서 컴컴한 들판을 지나고 있더라는. 다시 돌아가자는 아우성을 ‘또’ 무시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만 더 가 보자”고 한 나. 아부지는 여성들의 비난과 아들의 처절하고 무모한(?)노력 사이에서 눈을 지그시 감으시고 어느 한 쪽도 편들지 않는 지극히 현명한 자세를 유지하고 계셨고…ㅋ
결국 원래 가려고 했던 도시에서 45분 정도 떨어진 전혀 다른 도시에 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난 “왜, 진작 강력하게 말리지 않았어, 들!”하며 생떼를 썼다는…정말 내가 싫어지는 순간. ㅡ.ㅡ;;
어제는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 보게 됐다. 나만 이런 똥고집이 있는 걸까 아니면 화성인이라서?
12/22/2010
올드랭사인 - 2010년이여!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한 해의 마지막을 눈앞에 두고 만감이 교차하는 중. 온갖 즐겁고 감사했던 일, 아쉽고 안타깝고 후회스러웠던 일들이 소리없는 기록영화처럼 눈앞을 스치며 지나간다.
새해에는 이 세상이 더 나아지리라는 기대는 하지도 않지만 내 자신이 좀 덜 후회하게 되고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혹, 이 글을 지금 읽고 계시는 분이 계신다면…즐겁고 평안한 성탄, 좋은 소식들이 가득 줄서서 기다리고 있는, 건강하고 풍성한 새해가 되시길 두 손 모아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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