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우리교회에 방문하신 선교사님이신데 앞으로도 북한땅을 들락거려야 하시는 상황이라 성함과 사진이 온라인에 남겨지는 걸 원치 않으셨다.
그 선교사님의 사촌누님께서 동행하셨길래 방을 두개 준비해 주무시게 해 드리고 그 다음날 주일에 우리교회에서 설교말씀을 전하셨다. 교회에서 설교하시는 시간을 너무 짧게 드려야 하는 상황이라 많은 자세한 이야기는 교회에서 설교중 못 하셨고 오히려 우리집에 도착하신 밤과 그 다음 날 아침 식사시간을 통해 나와 아내에게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셔서 우리내외는 너무 좋았고.
북한선교를 하시는 선교사님들께 숙식을 제공하면서 짧은 대화였지만 모두 선교하시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선교사님들은 굉장히 극적으로 그 일들을 감당하신다. 말씀하실 때 "탈출, 잠입, 목숨걸고, 고문, 생명을 초개같이" 라는 이야기가 자주 언급되고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첩보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 분들께는 성경배급과 전도가 구제보다 먼저다. 어떨 땐 구제는 헛수고며 낭비라고도 하신다. 이런 선교회를 후원하는 교회나 성도들이 많아 재정도 든든하고 여러명으로 구성된 팀으로 움직이시는데 북미에서의 이동도 주로 비행기다.
그와 달리 이번에 방문하신 선교사님은 북한과 접경해 북한땅이 바로 코앞에 보이는 중국의 어느 마을에 사시면서 한달에 한번씩 북한을 들어 가시는데 탁아소 아이들이 필요한 옷가지, 신발, 식량등을 바리바리 차에 싣고 떳떳하게 들어가셔서 떳떳하게 나누어 주시고 탁아소원장이 필요하다고 하면 여기저기 탁아소건물을 수리도 해 주시고 어떤 지역의 탁아소는 건물이 너무 오래되고 썩어서 새로 지어주시기도 한다. 식수가 부족하다고 하면 우물을 파서 동네사람들이 마실 수 있도록도 하고. 이 분들은 사랑으로 나누고 베푸는 것이 선행되면 굳이 믿으라고 안 해도 결국에는 주님의 사랑을 가슴으로 느끼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영접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 확신하신다. 시간이 좀 걸릴지라도. 이 분은 말씀하실 때 "그저 주는 거지요, 허허... 속는다고 치고 돕는거지요, 그래도 그 관리들이 아이들한테 가는 것들을 속여서 가로채지는 않습디다. 저는 그저 짐 나르는 노새입니다" 라고 하신다. 그렇게 혼자 슬슬 북한을 넘나드시면서 그 일을 하신다. 이 선교사님은 후원교회가 많지 않아 북미로 방문을 오시게 되면 우리교회와 같이 중소교회들을 다니시면서 각 교회에서 나오는 헌금 몇백불씩을 소중하게 모으고 모아 그 일을 감당하시는데 절대로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 쓰지 않으신다고 동행하신 누님이 선교사님이 곁에 안 계실때 속삭여 주셨다. 북부에서 우리집까지 오시는 20여 시간 꼬박 하루 길도 비행기나 기차, 그레이하운드 고속버스가 있지만 메가버스라는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싸구려 버스(북미지역 여행수단으로 비행기가 제일 비용이 높고 그 다음이 기차, 그리고 그레이하운드버스인데 이 메가버스는 그레이하운드의 반 이하 가격. 과속/졸음운행 등으로 조금 위험하다고 들었다)를 이용해서 도착하셨다.
어느 한 쪽으로 마음이 더 가기는 하지만 모두 다른 방법일 뿐 북한을 선교하기 위해 애쓰시는 건 다 같은 것 아닐까 싶다.
(참고로 이 선교사님은 목회를 십수년 잘 하셔서 교회가 든든하게 성장해 자리를 잡자 미련없이 내려 놓으신 후 훌쩍 북한선교를 떠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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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2017
7/24/2017
미동부 밀알 아가페캠프 2017
매년 여름이면 미동부의 각 도시에 있는 밀알선교회 지단, 지소들이 뉴저지의 큰 호텔에 모여 2박 3일의 아가페캠프를 갖는다. 우리처럼 비교적 멀지 않은 6-7시간 거리에서 오는 밀알지단, 캐나다 혹은 시카고 등지에서 15-18시간을 운전해 오는 밀알지단들도 있다.
이 여름 아가페캠프는 장애우들이 1년동안 너무너무 기다리는 행사. 늘 정상인들로 둘러싸인 생활을 하다가 이곳에 모인 몇백명의 장애우들과 있게되면 도리어 장애가 있는 것이 정상이다. 그래서 그 장애자들에겐 편하고 자연스럽고 어색하지 않다. 주최측이 준비하는 각종 신나는 프로그램과 수영, 게임, 그리고 콘서트수준의 음악등이 또한 그들에게 너무 좋고.
평소에 리치몬드지역 밀알의 자원봉사자로 장애우들의 차량이동을 맡고 있는 나는 이 캠프에 올때 역시나 운전수다. 우리교회에서 버스를 매년 사용하게 허락해 주셔서 참석자들이 아주 편안하고 안전하게 다녀오곤 한다. 하지만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난 그들과 헤어져야 하고 다른 임무가 주어진다. 다름아닌 밥돌이. 30여명의 다른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600여명의 하루 세끼 식사를 책임지는 일.
근데 밥을 직접 짓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일이 아니다. 7:30에 시작하는 아침식사를 위해서는 5시에 일어나 샤워하고 준비하고 5:30에 나와, 4개의 대형 커피팟을 주방으로 가지고 가 씻고 물을 담아 가지고 와서 커피를 올리고 나면 6:00.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는 주방봉사자들께 일을 조금씩 맡겨드리고 나면 주변의 음식공장에서 주문한 음식배달이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그 시간이 6:30. 음식들을 테이블에 셋업하다 보면 어느덧 긴 줄이 서 있고 그러다 보면 배식을 시작하게 된다. 1시간 30분여에 걸쳐 배식이 다 끝나면 얼마 남지않은 음식물을 봉사자들이 조금씩 나누어 2-3분간 허겁지겁 먹고는 바로 청소가 시작된다. 잠시 숨을 돌린 다음 점심을 위해 준비를 한다. 커피팟을 주방으로 가져가 청소를 하고, 점심배달을 받고...이렇게 하루 종일 세끼 식사를 위해 똑같은 일들을 반복하게 된다. 그렇게 배식과 청소를 반복하면서 2박3일을 지내다보면 어느 덧 캠프는 끝나게 되고...
둘째날 점심식사후 청소를 마친다음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큰 대자로 퍼져 누우면서 잠시 이런 의문이 들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쉼없이 일만 해야하는 이 상황에서 난 뭔가? 나는 무엇을 얻게 되는건가?"
봉사를 하러 왔으면 당연히 그리고 기꺼이 일을 하는게 맞기는 한데 살짝 투정섞인 생각이 드는 거였다.
봉사를 하러 왔으면 당연히 그리고 기꺼이 일을 하는게 맞기는 한데 살짝 투정섞인 생각이 드는 거였다.
곰곰히 이런 생각을 하며 깜박 잠에 빠져드는데 다음과 같은 생각이 마음에 들어왔다.
"얘, 네가 내 손이 되어주지 않았니?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그 아이들에게 맛있는 밥을 꼬박꼬박 먹이지 않았니? 또 그들을 위해 땀흘리며 섬기는 다른 봉사자들도 네가 정성으로 먹이지 않았니?"
몸이 힘든 중에 약간 차오르던 불만이 눈 녹듯 쏙 사라지며 마음이 이내 고요해졌다.
"절 믿고 이렇게 사용하시는군요...그렇게 인정해 주시니 기쁜 마음으로 더 열심히 할께요..."
7/30/2015
사랑방이야기4 - 김희석교수
지난 밤 에는 한국에서 오신 김희석교수님과 일행이 묵고 가셨다.
우리교회에서 어젯 밤에 콘서트를 여시고 밤 늦게(11시경) 오셨기에 바로 방으로 들어가 쉬시게 해 드리느라 무슨 이야기를 나눌 겨룰도 없었고, 더구나 아침엔 우리 내외가 새벽같이 일을 가야해서 뵙지도 못하고 보내드려 죄송한 마음이다. 아침에 떠나시는 교수님 일행을 목사님께서 모시고 가셔서 아침식사대접을 하실 예정이라니 그나마 다행이었고.
오늘 퇴근후 집에 와 교수님께서 묵으셨던 방에 들어가보니 침대위에 뭔가 잔뜩 놓여있었다. 자세히 보니 메세지와 함께 많은 앨범들을 선물로 남겨주고 가셨다. 갑자기 더 죄송한 마음뿐...
고국에서 워낙 유명하신 분이라 그냥 한국매체에 나온 기사(http://www.newswire.co.kr/newsRead.php?no=753342)를 여기에 일부 인용해 본다.
"크로스오버 뮤지션 김희석 교수, 공연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다
- - 트로트에 담긴 정서, 칸초네의 감수성으로 재해석
- 중장년층 발걸음을 공연장으로 이끌어내는 저력. 문화계 뜨거운 반향
서울--(뉴스와이어) 2014년 06월 09일 -- “클래식은 수면제였는데 내 취향도 덩달아 고급스러워져서 좋더라.” “속이 뻥 뚫리는 시원한 라이브에 한 주 스트레스가 다 사라졌다.”
6월 8일 열린 음악회, 김희석 교수의 무대를 시청하던 많은 기성세대 관객들의 반응이다.
2014년 상반기, 여러 사건들로 인해 많은 공연들이 취소되고 공연예술계가 잠잠한 와중에 오히려 열린 음악회, 콘서트 7080, 기업과 함께하는 VIP 콘서트 등 방송과 공연계의 러브콜이 쇄도하는 음악인이 있다. 아픈 세상을 향해 따뜻한 노래로 터치하는 감성 뮤지션, 대중을 만나기 위해 강단 아래로 내려온 교수 등 바쁜 스케줄만큼 다양한 타이틀로 불리는 김희석 교수(백석대교수, 뮤지컬 전공)가 그 주인공이다.
6월 8일 열린 음악회, 김희석 교수의 무대를 시청하던 많은 기성세대 관객들의 반응이다.
2014년 상반기, 여러 사건들로 인해 많은 공연들이 취소되고 공연예술계가 잠잠한 와중에 오히려 열린 음악회, 콘서트 7080, 기업과 함께하는 VIP 콘서트 등 방송과 공연계의 러브콜이 쇄도하는 음악인이 있다. 아픈 세상을 향해 따뜻한 노래로 터치하는 감성 뮤지션, 대중을 만나기 위해 강단 아래로 내려온 교수 등 바쁜 스케줄만큼 다양한 타이틀로 불리는 김희석 교수(백석대교수, 뮤지컬 전공)가 그 주인공이다.
<김희석 교수 소개>
연세대학교에서 성악학을 전공하고, 맨해튼 음악대학을 장학생으로 졸업했다. 백석대학교에선 기독교음악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태리 아카데미아 뮤지컬 일 세미나리오에서 최고연주자과정(크로스오버뮤직 박사)을 졸업했다.
현재 백석대학교 뮤지컬 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국과 일본을 정기적으로 순회하며 공연을 펼치고 있다. 열린 음악회, 콘서트 7080등 굵직한 프로그램에 출연하였고, ‘제10회 대한민국 환경문화 대상(가수부분)’을 수상했다. ‘쉼’ ‘님바라기’ ‘어린아이 마음처럼’ ‘음성’ 등 총 4장의 개인앨범을 발표하고, 현대백화점, 신세계 백화점과 KT 등 다양한 기업공연과 쉼 콘서트 등으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
현재 백석대학교 뮤지컬 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국과 일본을 정기적으로 순회하며 공연을 펼치고 있다. 열린 음악회, 콘서트 7080등 굵직한 프로그램에 출연하였고, ‘제10회 대한민국 환경문화 대상(가수부분)’을 수상했다. ‘쉼’ ‘님바라기’ ‘어린아이 마음처럼’ ‘음성’ 등 총 4장의 개인앨범을 발표하고, 현대백화점, 신세계 백화점과 KT 등 다양한 기업공연과 쉼 콘서트 등으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
7/27/2015
사랑방이야기3 - 김성기선교사
지난 토요일밤엔 쿠바에서 10여년 선교활동을 해 오시는 김성기목사님께서 주무시고 갈 수 있도록 집 위층의 방을 제공해 드렸다. 그 다음 날인 어제 주일예배시 설교해주시는 것이 이번 방문의 주 목적이셨고.
아침식사를 나누는 동안 단편적으로 들려주신 이야기는...쿠바는 사회주의국가라 북한과 같이 배급제가 있어 한달에 쌀 5킬로그램, 계란 9개, 콩 1킬로그램, 치약 1개 등을 받아 생활하게 되고, 직장도 국가를 위해 일하는 형식으로 선생은 $15, 청소부 $25, 의사 $30 등의 월급을 받는다고 한다. 특히 많은 전문직과 마찬가지로 의사는 아예 어렸을 적부터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생물학, 수학성적이 좋고 적성에 맞는 학생을 선택해 훈련을 시켜 양성해 낸다고 하니 의사가 되고 싶어 되는 것도 아니고 한편 일반 노동자와 비슷한 수준의 월급이니 죽어라고 의사가 되겠다는 사람도 없다는 것.
역시 같은 공산주의국가라 북한의 노동당과 같이 당원이 되어야 삶이 덜 고되고 어느 정도의 출세도 보장되기에 누구나 당원이 되려고 한단다. 예를 들어 당원이 냉장고를 하나 산다고 할때 당원증을 제시하면 당원이 아닌 사람이 사는 가격의 1/20 가격에 살 수 있다고 설명하시는 걸 보면 그 특혜가 엄청난 것임은 틀림없다. 그런데 원래 카톨릭이 주 종교인 이나라에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북한처럼 투옥하거나 모질게 다루지는 않지만 나름 기독교인들에 대한 차별은 존재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당원이 되려면 기독교신앙을 버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고. 물론 신앙을 버린다고 거짓말을 하고 당원이 된 후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계속해 나가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그런 거짓말 하는 것 조차 원치않아 대부분 불이익을 감수하고 당원이 되는 걸 버리고 신앙을 지키는 선택을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항상 밝고 정직하고 남을 배려하는 이 성도들의 삶 때문에 안믿는 사람들의 존경과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고, 그 결과 지난 10년간 기독교인의 수가 50만명(나라 총인구 1200만) 증가했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신약시대 초기 세상사람들의 칭찬과 존경을 받던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과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는 얘기.
부럽고 그러지 못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내가, 우리가 부끄러울 뿐...
아침식사를 나누는 동안 단편적으로 들려주신 이야기는...쿠바는 사회주의국가라 북한과 같이 배급제가 있어 한달에 쌀 5킬로그램, 계란 9개, 콩 1킬로그램, 치약 1개 등을 받아 생활하게 되고, 직장도 국가를 위해 일하는 형식으로 선생은 $15, 청소부 $25, 의사 $30 등의 월급을 받는다고 한다. 특히 많은 전문직과 마찬가지로 의사는 아예 어렸을 적부터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생물학, 수학성적이 좋고 적성에 맞는 학생을 선택해 훈련을 시켜 양성해 낸다고 하니 의사가 되고 싶어 되는 것도 아니고 한편 일반 노동자와 비슷한 수준의 월급이니 죽어라고 의사가 되겠다는 사람도 없다는 것.
역시 같은 공산주의국가라 북한의 노동당과 같이 당원이 되어야 삶이 덜 고되고 어느 정도의 출세도 보장되기에 누구나 당원이 되려고 한단다. 예를 들어 당원이 냉장고를 하나 산다고 할때 당원증을 제시하면 당원이 아닌 사람이 사는 가격의 1/20 가격에 살 수 있다고 설명하시는 걸 보면 그 특혜가 엄청난 것임은 틀림없다. 그런데 원래 카톨릭이 주 종교인 이나라에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북한처럼 투옥하거나 모질게 다루지는 않지만 나름 기독교인들에 대한 차별은 존재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당원이 되려면 기독교신앙을 버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고. 물론 신앙을 버린다고 거짓말을 하고 당원이 된 후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계속해 나가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그런 거짓말 하는 것 조차 원치않아 대부분 불이익을 감수하고 당원이 되는 걸 버리고 신앙을 지키는 선택을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항상 밝고 정직하고 남을 배려하는 이 성도들의 삶 때문에 안믿는 사람들의 존경과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고, 그 결과 지난 10년간 기독교인의 수가 50만명(나라 총인구 1200만) 증가했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신약시대 초기 세상사람들의 칭찬과 존경을 받던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과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는 얘기.
부럽고 그러지 못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내가, 우리가 부끄러울 뿐...
10/05/2014
사랑방이야기2 - 박상원목사
큰아이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독립해 살고, 둘째아이는 아직 대학생활중이라 학교근처의 아파트에 살고 있기에 집에 비어있는 방들이 있다.
우리교회를 방문하는 선교사님 혹은 부흥회강사 같은 손님들이 오시게 되면 교회에서 호텔을 예약해 주무시게 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을거다 라는 생각이 들어 아내에게 그런 분들을 집에 모셔 잘 대접하고 편히 주무시게 해 드린다면 집에 있는 방들도 활용하고 교회의 재정적부담도 줄일 수 있지 않겠냐고 이야기했고, 아내가 흔쾌히 그러자고 동의를 해 줬다.
그런 결정이후 맨처음 손님이 최인혁 찬양전도사. 고국에서 오랜세월 찬양사역을 해오는 동시에 세계곳곳을 찾아다니며 찬양으로 사람들의 영혼을 하나님앞으로 이끄는데 생명을 내어놓은 사람. 나의 고등학교친구다. 지난 가을 제수씨(반주를 하며 듀엣을 같이 하기도 하는)와 같이와서 미동부의 여러 교회들에서 있던 콘서트를 통해 은혜를 끼치고 갔는데 우리내외와 집에서 참 좋은 시간을 가졌었다.
참고링크: http://floridakorea.co.kr/news.php?mode=view&num=5018
그 이후엔 여기서 2시간 떨어진 리버티신학교에 다니시면서 우리교회를 섬기시는 부목사님가족이 사정이 있으실때 마다 묵으셔서 도합 2주정도 지내셨던것 같고.
그리고는 지난 주인 10월 마지막주에 선교보고를 오셨던 박상원 목사님. 북한에서 간부로 있다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지하선교를 위해 힘쓰다 의문의 죽임을 당한 김길남형제의 일기를 책으로 펴내 그 책(굶주림보다 더 큰 목마름)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중국과 북한의 국경지역에서 선교를 하며 빵공장을 통해 북의 일부 어린이들을 먹이는 사역을 하고 계신 분. 목사님이 저녁을 함께먹으며 우리내외에게 비하인드 스토리를 많이 해 주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김길남형제가 했다는 말. 한국으로 갈 수 있게 주선해 준다고, 한국에 가 편히 살지 않겠냐고 박목사님이 권하니 그 형제는 두 번 생각도 하지 않고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고 대답했다는 것. 다시 그 위험한 북녘땅으로 빨리 돌아가 지하교회성도들을 만나는 일이, 더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것이 자신에겐 훨씬 가치있고 중요한 일 이라고 했단다.
참고링크: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2340582
앞으로 이렇게 하나님을 위한 일을 하는 분들을 집에 모시는 걸 우리내외의 사역이라 여기면서 지속할 생각이고 짧지만 그 분들과 지내는 동안 나누게 될 이야기들을 '사랑방이야기'로 적어 올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
우리교회를 방문하는 선교사님 혹은 부흥회강사 같은 손님들이 오시게 되면 교회에서 호텔을 예약해 주무시게 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을거다 라는 생각이 들어 아내에게 그런 분들을 집에 모셔 잘 대접하고 편히 주무시게 해 드린다면 집에 있는 방들도 활용하고 교회의 재정적부담도 줄일 수 있지 않겠냐고 이야기했고, 아내가 흔쾌히 그러자고 동의를 해 줬다.
그런 결정이후 맨처음 손님이 최인혁 찬양전도사. 고국에서 오랜세월 찬양사역을 해오는 동시에 세계곳곳을 찾아다니며 찬양으로 사람들의 영혼을 하나님앞으로 이끄는데 생명을 내어놓은 사람. 나의 고등학교친구다. 지난 가을 제수씨(반주를 하며 듀엣을 같이 하기도 하는)와 같이와서 미동부의 여러 교회들에서 있던 콘서트를 통해 은혜를 끼치고 갔는데 우리내외와 집에서 참 좋은 시간을 가졌었다.
참고링크: http://floridakorea.co.kr/news.php?mode=view&num=5018
그 이후엔 여기서 2시간 떨어진 리버티신학교에 다니시면서 우리교회를 섬기시는 부목사님가족이 사정이 있으실때 마다 묵으셔서 도합 2주정도 지내셨던것 같고.
그리고는 지난 주인 10월 마지막주에 선교보고를 오셨던 박상원 목사님. 북한에서 간부로 있다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지하선교를 위해 힘쓰다 의문의 죽임을 당한 김길남형제의 일기를 책으로 펴내 그 책(굶주림보다 더 큰 목마름)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중국과 북한의 국경지역에서 선교를 하며 빵공장을 통해 북의 일부 어린이들을 먹이는 사역을 하고 계신 분. 목사님이 저녁을 함께먹으며 우리내외에게 비하인드 스토리를 많이 해 주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김길남형제가 했다는 말. 한국으로 갈 수 있게 주선해 준다고, 한국에 가 편히 살지 않겠냐고 박목사님이 권하니 그 형제는 두 번 생각도 하지 않고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고 대답했다는 것. 다시 그 위험한 북녘땅으로 빨리 돌아가 지하교회성도들을 만나는 일이, 더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것이 자신에겐 훨씬 가치있고 중요한 일 이라고 했단다.
참고링크: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2340582
앞으로 이렇게 하나님을 위한 일을 하는 분들을 집에 모시는 걸 우리내외의 사역이라 여기면서 지속할 생각이고 짧지만 그 분들과 지내는 동안 나누게 될 이야기들을 '사랑방이야기'로 적어 올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
4/26/2013
사랑방이야기1 - 최인혁전도사
중고등학교 시절, 가을만 되면 동네의 크고 작은 교회에서는 '문학의밤'이라는 행사를 열어 동네 학생들을 불러모아 해당교회 학생들이 멋진 자작시를 낭송하기도 하고, 정성스럽게 준비한 연극을 베풀거나 성가/가곡을 부르며 가을밤을 보내곤 했다.
그럴때면 큼지막한 통기타를 등에 메고 무게 팍팍 잡으면서 나타나는 게스트싱어가 하나쯤은 있게 마련. 여학생들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선망의 대상이자 남학생들에게는 부럽고, 주눅들고, 무력함 내지는 패배감을(?) 느끼게 만들던 그런 남학생. ㅎ ㅎ
고등학교 동창이던 그 친구가 이젠 뜨거운 가스펄싱어가 되어 내 앞, 이 지역 리치몬드에 나타났다. 바로 최인혁전도사. 그리고 그 친구의 반주자이자 듀엣싱어인 동역자아내, 또 나에겐 제수씨인 김지애사모.
박종호, 송정미 등과 한국CCM의 시작을 주도했던 친구로 나가수를 통해 잘 알려진 소향의 첫 음반 제작자로, 멘토로, CBS방송의 진행자로, 교수로, 작은 교회를 세워주는 콘서트로 바쁜 삶을 살았다는 건 이번에 알게됐고.
미동부 투어로 뉴욕에서 시작, 워싱턴디씨, 리치몬드, 뉴폿뉴스, 그리고 캐나다에서의 일정을 소화하고 내일 토요일이면 귀국하는 친구가 우리 집에 3일간 머무르던 시간은 꿈과 같이 지나갔다. 워낙 이 지역의 목사님들과 지인들이 서로 식사대접을 하겠다는 바람에 정작 우리집에서는 따뜻한 밥 한끼 못먹여 보냈지만 그 친구내외와 짧지만 속깊은 이야기들을 나눈 시간은 참으로 귀하다. 덕분에 고등학교때 같이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승현, 명욱)과도 연락이 가능해지는 경사도 생겼다.
콘서트는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많은 감동을 준 감격 그 자체였고, 끝난후 준비한 음반이 모자라 미처 구입하지 못한 사람들이 아쉬워하며 돌아가는 일도.
친구야, 이번에 꼭꼭 숨겨놓고 공개하지 않은 제수씨의 노래 다음에 올 때 꼭 들려주기 바라네! 자네의 Love Songs 음반을 들으니 제수씨의 실력이 자네보다 출중한 듯 허이. ㅋ ㅋ ㅋ
그럴때면 큼지막한 통기타를 등에 메고 무게 팍팍 잡으면서 나타나는 게스트싱어가 하나쯤은 있게 마련. 여학생들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선망의 대상이자 남학생들에게는 부럽고, 주눅들고, 무력함 내지는 패배감을(?) 느끼게 만들던 그런 남학생. ㅎ ㅎ
고등학교 동창이던 그 친구가 이젠 뜨거운 가스펄싱어가 되어 내 앞, 이 지역 리치몬드에 나타났다. 바로 최인혁전도사. 그리고 그 친구의 반주자이자 듀엣싱어인 동역자아내, 또 나에겐 제수씨인 김지애사모.
박종호, 송정미 등과 한국CCM의 시작을 주도했던 친구로 나가수를 통해 잘 알려진 소향의 첫 음반 제작자로, 멘토로, CBS방송의 진행자로, 교수로, 작은 교회를 세워주는 콘서트로 바쁜 삶을 살았다는 건 이번에 알게됐고.
미동부 투어로 뉴욕에서 시작, 워싱턴디씨, 리치몬드, 뉴폿뉴스, 그리고 캐나다에서의 일정을 소화하고 내일 토요일이면 귀국하는 친구가 우리 집에 3일간 머무르던 시간은 꿈과 같이 지나갔다. 워낙 이 지역의 목사님들과 지인들이 서로 식사대접을 하겠다는 바람에 정작 우리집에서는 따뜻한 밥 한끼 못먹여 보냈지만 그 친구내외와 짧지만 속깊은 이야기들을 나눈 시간은 참으로 귀하다. 덕분에 고등학교때 같이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승현, 명욱)과도 연락이 가능해지는 경사도 생겼다.
콘서트는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많은 감동을 준 감격 그 자체였고, 끝난후 준비한 음반이 모자라 미처 구입하지 못한 사람들이 아쉬워하며 돌아가는 일도.
친구야, 이번에 꼭꼭 숨겨놓고 공개하지 않은 제수씨의 노래 다음에 올 때 꼭 들려주기 바라네! 자네의 Love Songs 음반을 들으니 제수씨의 실력이 자네보다 출중한 듯 허이. ㅋ ㅋ ㅋ
5/13/2012
Laboring in the field at an early age
얼마전 지인의 블로그를 읽고 있는데 막내가 방으로 들어오더니 관심있게 들여다 보고는 누구냐고 나에게 물었다.
남미의 어느 도시에서 그 지역 교회를 평신도사역자로 섬기시면서 한편으로는 장터에 나가 알콜중독무숙자들을 보살피는 젊은 한국 분. 요즘 우리 한인교회의 예배실마다 아니면 교실마다 흔히 볼 수 있는 프로젝터 하나 없이 온교인이 큰 종이에 쓴 찬송가사를 보면서 예배를 드리는 그 분 블로그 사진을 보더니 막내가 마음이 동한 모양이다.
그래서 둘이 뭘 좀 해 보자고 같이 이야기를 하고는 일을 꾸미기 시작. 프로젝터와 노트북컴퓨터, 그리고 프로젝터에 연결해 쓰는 document camera정도 있으면 좀 다양하게 예배나 성경공부를 이끌 수 있겠다 싶었다.
1. 이번에 시집가는 메릴랜드의 조카가 원래의 노트북이 잘 작동이 안되어 새로 하나 장만했는데 원래의 것을 고쳐서 내가 쓸 수 있으면 쓰고 아니면 버리라고 가져온 것이 생각나 프로그램청소를 좀 하고 가지고 있던 메모리를 조금 더하니 꽤 쓸 만 했다. 그리고 그 선교사님께 보내도 되겠냐고 조카에게 물어보니 원래 버리려고 했던 건데 하나님을 위해 쓰인다고 하니 너무 잘됐다고 흔쾌히 허락했다.
2. 우리 교회에 지난 3-4년 간 한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document camera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어 목사님께 여쭸고, 목사님이 당회원들께 물어 보시고는 그것도 흔쾌히 기증하는 걸 허락하셨고.
3. 프로젝터는 사야하는데 쓸만한 것 중 제일 싼 게 $300정도 해 구입비용이 들 거라고 아들에게 이야기했더니 자기가 이제는 안갖고 노는 XBOX, Gamecubes, Playstation2등과 그에 따르는 게임들을 팔아서 비용을 일부 충당하고 싶다고 함(What a brilliant idea in poor dad's point of view!) 단 돈 얼마라도 나오면 내가 조금 보태서 구입할 수 있겠다 싶어 녀석의 물건들 사진을 모두 찍어 어제 밤 Craigslist에 올렸는데 사겠다는 사람 몇이 이메일을 밤새 보내왔다.
한 구입희망자는 차가 없으니 좀 가져다 주면 '깍지 않고' 사겠다고 해서 주소를 받고 방금 가져다주고 오는 길인데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30분간의 나들이였다. 우리집에서 외곽인 깡촌으로 한 15분 정도 더 나가는 곳에 위치한 백인들이 모여사는 트레일러홈 이었는데 밭에서 아빠와 우리 막내와 비슷한 나이의 아들, 그 아래 국민학교정도의 아들, 딸 모두 넷이 땀을 뻘뻘흘리며 밭일을 하고 있다가 내가 운전해 들어오는 걸 알아 보곤 제일 큰 아이가 뛰어온다.
"제가 구입하는 건데요?"
"해보고 잘 안되면 연락해라. 다시 돈 물러 줄테니"
물건을 건네주고 그 아이가 그동안 일불짜리를 한장 한장 모아온 듯 보이는 돈다발을 받아 들고 운전해 나오는데 가슴 한 구석이 찡 해 온다. 이 아이들과 이 가족에게는 그것이 삶이고 당연한 일 일텐데...모자란 것 하나 없이 원하는 건 부모에게 말 한마디만 하면 모두 손에 쥐면서 여전히 불평인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데...참...
4. 제일 큰 문제는 운송비다. 총 무게가 30 LBS정도 박스를 미국에서 니카라과까지 보내는데 UPS, USPS, FedEx 모두$600-$1,200까지의 요금이 나온다. 이런 경우 공항에 가서 그 지역으로 가는 항공사를 통해 짐을 보내면 좀 싸게 보낼 수 있었는데 9/11 이후론 그것도 금지되었다고 하니 어디 인편으로라도 보낼 수 있는지 좀 알아 봐야겠다. 그 분이 막내의 마음을 움직여 시작하신 일이니만큼 어떻게든 길을 열어주시리라. 제 눈을 열어 보게하소서...
남미의 어느 도시에서 그 지역 교회를 평신도사역자로 섬기시면서 한편으로는 장터에 나가 알콜중독무숙자들을 보살피는 젊은 한국 분. 요즘 우리 한인교회의 예배실마다 아니면 교실마다 흔히 볼 수 있는 프로젝터 하나 없이 온교인이 큰 종이에 쓴 찬송가사를 보면서 예배를 드리는 그 분 블로그 사진을 보더니 막내가 마음이 동한 모양이다.
그래서 둘이 뭘 좀 해 보자고 같이 이야기를 하고는 일을 꾸미기 시작. 프로젝터와 노트북컴퓨터, 그리고 프로젝터에 연결해 쓰는 document camera정도 있으면 좀 다양하게 예배나 성경공부를 이끌 수 있겠다 싶었다.
1. 이번에 시집가는 메릴랜드의 조카가 원래의 노트북이 잘 작동이 안되어 새로 하나 장만했는데 원래의 것을 고쳐서 내가 쓸 수 있으면 쓰고 아니면 버리라고 가져온 것이 생각나 프로그램청소를 좀 하고 가지고 있던 메모리를 조금 더하니 꽤 쓸 만 했다. 그리고 그 선교사님께 보내도 되겠냐고 조카에게 물어보니 원래 버리려고 했던 건데 하나님을 위해 쓰인다고 하니 너무 잘됐다고 흔쾌히 허락했다.
2. 우리 교회에 지난 3-4년 간 한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document camera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어 목사님께 여쭸고, 목사님이 당회원들께 물어 보시고는 그것도 흔쾌히 기증하는 걸 허락하셨고.

한 구입희망자는 차가 없으니 좀 가져다 주면 '깍지 않고' 사겠다고 해서 주소를 받고 방금 가져다주고 오는 길인데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30분간의 나들이였다. 우리집에서 외곽인 깡촌으로 한 15분 정도 더 나가는 곳에 위치한 백인들이 모여사는 트레일러홈 이었는데 밭에서 아빠와 우리 막내와 비슷한 나이의 아들, 그 아래 국민학교정도의 아들, 딸 모두 넷이 땀을 뻘뻘흘리며 밭일을 하고 있다가 내가 운전해 들어오는 걸 알아 보곤 제일 큰 아이가 뛰어온다.
"제가 구입하는 건데요?"
"해보고 잘 안되면 연락해라. 다시 돈 물러 줄테니"
물건을 건네주고 그 아이가 그동안 일불짜리를 한장 한장 모아온 듯 보이는 돈다발을 받아 들고 운전해 나오는데 가슴 한 구석이 찡 해 온다. 이 아이들과 이 가족에게는 그것이 삶이고 당연한 일 일텐데...모자란 것 하나 없이 원하는 건 부모에게 말 한마디만 하면 모두 손에 쥐면서 여전히 불평인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데...참...
4. 제일 큰 문제는 운송비다. 총 무게가 30 LBS정도 박스를 미국에서 니카라과까지 보내는데 UPS, USPS, FedEx 모두$600-$1,200까지의 요금이 나온다. 이런 경우 공항에 가서 그 지역으로 가는 항공사를 통해 짐을 보내면 좀 싸게 보낼 수 있었는데 9/11 이후론 그것도 금지되었다고 하니 어디 인편으로라도 보낼 수 있는지 좀 알아 봐야겠다. 그 분이 막내의 마음을 움직여 시작하신 일이니만큼 어떻게든 길을 열어주시리라. 제 눈을 열어 보게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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