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posts with label 둘째 아이. Show all posts
Showing posts with label 둘째 아이. Show all posts

2/25/2025

긴장되는 만남

둘째딸아이가 교제중인 남자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우리아이들도 보통 가족문자창이 아니면 엄마나 (특히)아빠에게 개인적으로 문자하는 경우가 드문데 하나 건너 딸의 남자친구가 보낸 문자를 받아보니 좀 의외다.

내용은 돌아오는 금요일저녁에 집에와서 이야기할 것이 있다는 것. 대충 감이 오기는 하나 바짝 긴장이 된다. 명절이나 생일날 가족들이 모일때면 늘 둘째와 와서 먹고 놀고가곤 했는데 그때 마다 아이가 착해보이고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아내도 같은 생각이었고.

이미 다 성인이 된 아이들이고 본인들이 결정하면 주위어른들은 따라가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는데 그래도 찿아와서 얼굴을 마주보고 격식을 갖추겠다는 마음이 참 고맙다.

우리둘째가 이런 말량광이었는데...


<후기>
그 친구가 찾아와서 이야기를 나눴다. 몹시 긴장해 있던데 아내가 과일과 쥬스를 내오는 사이에 많이 느긋해진 모습. 뭘 달리 말할게 없어 가족이 되기로 한걸 환영한다, 우리 잘 해보자, 뭐 그정도 이야기가 오간걸로 기억. 조건은 아니지만 될 수 있으면 크리스천결혼상담가에게 둘이 같이 가서 예비부부 카운셀링을 받으면 어떻겠냐 했고. 지금은 죽고 못살정도로 좋아 서로에 대한 흉이 안 보이겠지만 앞으로 어려운 순간들이 찾아오면 공통분모인 하나님께 나아가 무릎을 꿇라고 했다.

여기 지금은 맏사위지만 큰딸이 교체할 당시엔 남자친구였던 아이가 어느 날 저녁 집에 찾아왔던 기억이 떠오른다. https://oldman-james.blogspot.com/2015/04/blog-post_43.html


7/15/2013

빈 둥지 연습

어제는 장모님을 한국으로 보내드리고 오늘은 둘째와 막내를 독일로 보내는 바쁜 일정을 보냈다.

그것도 독일로 가는 비행기표가 너무 비싸 싸구려 표를 구입한 덕에 이곳에서 3시간여 떨어진 BWI(Baltimore-Washington International airport)까지 데리고 가 태워보내야 했는데 보통 가격보다 천여불 싸게 구입했으니 그 정도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지않나 싶다.

신랑이 독일주둔 미육군병원에서 근무하게 되어 독일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한 조카가 여름방학을 이용해 아이들을 보내면 유럽여행을 시켜주겠다고 하는 바람에 보내놓기는 했는데 너무 부담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다. 매일 출근해 일해야 하는 조카사위의 잠을 방해하는 소리를 밤에 낸다거나, 아침에 일어나지 않고 게으른 모습을 보인다거나 예의에 벗어나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두 녀석에게 여러 번 일렀는데 잘 지켜질 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앞으로 3주가 넘게 우리 내외만 훵한 집에서 지내야 하는데 세 아이가 모두 출가해 우리 내외만 달랑 지내게 되는 미래의 상황을 잠시나마 겪어보고 연습하는 시간이 되겠다.

5/25/2012

둘째의 여름방학 나기

둘째가 신입생으로서의 1년을 무사히 마치고 여름방학을 맞아 얼마 전 집으로 돌아왔다.

부족했던 잠을 보충이라도 하듯 3-4일간 내리 잠만 자더라는, 마치 동면에 들어간 개구리 마냥. 그러더니 부시시 일어나 앞으로의 긴긴 여름방학동안 할 일자리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세차장캐쉬어, 가정교사겸 베이비시터 등등 여러자리를 알아 봤지만 여의치 않거나 인터뷰에서 떨어지거나 였는데...

제 언니 졸업식에 가서 주 연사로 졸업축하 연설을 했던 Katie Couric 의 연설을 듣고는 감명을 받았고 그녀가 해 준 말대로 적극적으로 도전을 해 드디어 그저께 일자리를 얻게 됐다. 연방하원의원인 Randy Forbes의 사무실 인턴쉽. 둘째도 언니와 비슷한 Political Science쪽으로 전공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잘됐다 싶다. 지난 이틀 출근해 다녀 온 후기에 의하면 몹시 만족해 하는 듯 싶고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한다. 아무래도 정장을 입고 가야 할 거라고 하면서 엄마가 옷 살 돈을 주는 걸 봤는데 이 짠순이 분명 한 20불 짜리 싸구려정장을 사들고 올 게 뻔하다. ㅋ ㅋ

Forbes가 공화당원인 걸 알기에 내겐 전혀 거스림이 없었고, 이 사람이 주도하는 소위원회나 각종 회의때는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친다는 철칙이 있다 해서 더 마음에 들었다. 잘 배워서 전공을 공부할 때 도움이 되었으면, 인적네트워크를 잘 만들어 갔으면 하는 바램. 둘째 화이팅! 아, 그리고 thank you, Katie Couric!  ^^;;;

10/09/2011

Coming HOME

큰 아이 둘이 집에 왔다.

학기를 시작한지 약 6주만에 콜럼버스데이인 월요일이 낀 주말을 집에서 보내려 온 것. 신입생 신분으로 처음으로 집을 떠나 꿋꿋하게 잘 지낸 둘째와 이제 전공을 깊이 파고 들어야하는 졸업반으로서의 부담을 잘 견뎌낸 첫째였기에 우리 내외에겐 좀 특별한 귀가였다.

저녁에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퇴근후 부랴부랴 달러스토어에 가서 풍선과 배너등 몇 가지를 사 가지고(달러스토어를 할 땐 그냥 가게에서 쓱 집어 오면 그만이었는데 이젠 사야하는 입장이 되어버렸네 ㅠㅠ) 집 대문에다 한 40여초 만에 덕지덕지 붙여 놓고 금요저녁예배에 늦지 않으려고 교회로 향함.

집으로 돌아오니 식탁에 앉아 엄마와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두 아이가 "꺅~"하고 달려나와 아빠를 꼭 안아주는데 코끝이 찡하다. 집에 와서 대문을 보니 온 가족에게 환영을 받는 것 같아 좋았다고 한다.

둘째는 그간 집생각이 나서 많이 힘들었다고 자주 이야기 했는데 지금은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이사갈(1학년은 의무적으로 기숙사생활, 2학년이 되면 자유롭게)  집 보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는 둥 제법 적응이 된 듯 해서 마음이 놓였고, 첫째는  동생을 주말이면 아파트로 불러다 먹이기도 하면서 잘 돌봐주고 있는 한편 학업도 꾸준하게 뒤쳐지지 않고 잘 하고 있는 것 같기에 대견했다. 얼마되지 않는 기간이지만 와있는 동안 잠 보충/지방축적 좀 하고, 엄마아빠 사랑도 듬뿍  담고 가려무나.

너그들 참말로 수고했다.

6/06/2011

시상식

둘째의 졸업식이 며칠 앞으로 다가와서 며칠 전 아내와 같이 Award Ceremony를 다녀왔다.

요즘은 고국에서 고등학교졸업식을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 때는 학생대표 몇 명 만 나가서 상을 받곤 교장이 졸업이라고 선언하면 그냥 그렇게 졸업한 걸로 알고 쭐래쭐래 교문을 나섰는데, 여기 고등학교는 한 사람씩 순서대로 불려나가 졸업증서를 받는다. 그런 이유로 시간이 좀 오래 걸리는데 거기다가 무슨 이름을 걸고 나와서 축사하는 사람이 그리 많은지...해서 졸업식 전에 미리 상장 주는 날을 아예 따로 정해서 상을 준다.

사교(?)에 목숨걸고 놀기 좋아하는 둘째가 과연 공부를 제대로 할려나 걱정은 했지만 그래도 친구 많이 사귀고 건강하기만 하면 됐다 싶은 생각에 학업에 관해서는 일체 혼자 하게 놔 두었었다.

하지만 그 날은 아이에게 참 많이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데... 제대로 공부를 도와주거나 진로를 잡아주지 않았는데도 혼자 잘 해낸 것 같아서. 몇 안되는 아이들이 받은 대통령상, 주지사상, 그리고 무식한 우리 내외는 이름을 듣도보도 못한 셀 수 없는 상을 받는데 옆에 나란히 같이 앉은 친한 친구들의 부모들 보기가 민망하고 박수치는 것 조차 눈치가 보일 정도였으니...

얼마전 교통사고로 딸 Avery를 잃은 Spence내외도 와서 딸이 받을 예정이었던 장학금에다 자신들이 액수를 더 더해서 다른 졸업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기탁하고 시상을 하는 순서도 있었다. 대단한 부모라고 밖에는 더 생각나는 단어가 없다. 세 시간이 넘게 계속된 시상식이 끝나고 나오면서 잠시 만난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How are you guys(Avery 밑으로 어린 딸 둘이 있다) doing?"라고 물었더니 "We are holding up ok so far..."하는 끝에 입술을 앙다문다. 우리 딸을 보니 갑자기 욱 하고 올라오는 모양이었다. 성한 딸을 가진게 그렇게 미안하고 죄스러울 수가 없었다...

5/05/2011

Losing a best friend

In memory of Avery Spence
둘째와 같은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고 이번 가을에 같이 졸업할 예정이던 친구가 안타깝게도 며칠 전 교통사고로 갑작스레 유명을 달리했다. 둘째와 오늘 그 장례식을 다녀왔는데 지난 며칠간 계속 우울해 하고 우는 아이를 특별히 달랠 도리가 없으니 아빠로서 무력감을 느끼는 중이다.

얼마나 친했던지 일주일에도 며칠을 그 아이가 우리집에 와서 자고, 우리 아이가 그 집에 가서 자곤 하면서 서로 'Best friend'라 부르며 죽고 못살던 사이. 학교 여자축구부 주장으로 운동도 열심히 하고, 공부도 잘하고, 봉사활동도 정말 열심히 해 친구들 사이에선 수퍼우먼으로 불리던 아인데...

학교 건너편의 교회에서 했는데 2층까지 꽉 채운 조문객이 1500여명은 되어 보였고, 우리 딸을 포함한 여러 친구, 선생들이 나와 생전의 그 아이를 떠올리면서 이야기들을 하는데 모두 웃다 울다 다시 웃다가 또 우느라 바빴다. 파워포인트로 보여주는 사진중에 우리 둘째와 같이 찍은 사진이 제일 많았다. 엄마아빠는 도리어 조문온 딸의 친구들을 일일이 안아주고 위로하고 있었는데 어쩜 저리 차분할까 싶었다. 가슴속은 찢어지고 있을텐데...


<혹 미국 장례문화를 알고 싶은 분이 있을까 참고로>

미국의 장례는 보통  Visitation Service(혹은 Viewing), Memorial Service(혹은 Funeral), 그리고 Burial Service의 세 서비스로 이루어 지는데, 오늘 다녀온 건 Memorial Service였다. 가족에 따라 Memorial Service가 끝난 후에 Luncheon을 준비해 조문객들을 초대 하기도 하지만 요즘은 많이 생략하는 편.

Visitation(Viewing) Service에는 고인을 깨끗하게 단장하고 관뚜꼉을 열어놓아 가족과 방문객이 고인을 기억하고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일반적으로 다음날 아침 있게되는 Memorial Service(Funeral) 전날 저녁에 비교적 간략하게 장의사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많은 한인들은 가게를 열어야 하는 사정으로 인해 다음날 아침에 있을 Memorial Service(Funeral)에 참석이 힘들어 밤 시간에 있는 이 Visitation(Viewing)에 가장 많이 참석하는데 미주한인들은 바로 이 서비스를 'Funeral'이라고 여기고 유족도 그리알고 준비한다.

Memorial Service(Funeral)는 고인을 평소에 다니던 교회등의 장소로 옮겨서 주로 예배형식으로 성직자의 집전하에 치루게 되는데 가족이나 친구중에서 조사를 읽고, 나머지 시간은 누구든지 나와서 예전의 고인의 좋았던 기억들을 짧게 이야기 할 수 있게 기회가 주어진다. 주로 고인으로 인해 재미있었던 일, 기뻤던 이야기들을 하면서 고인을 기념하는 하나의 축제와 잔치로 진행된다. 사진과 비디오등을 모아 파워포인트나 DVD로 보여주기도 하고. 많은 웃음이 있지만 역시 무거운 건 지울 수 없고. 여기서 유족이 '곡'을 하는 건 미국에서 만큼은 한국사람들 조차도 받아들이기 힘든 넌센스로 여기는 듯 하다. 미국사람들은 이 서비스에 제일 많이 참석하고 진행하는데 비해 한인들은 가족과 집례자, 아주 친한 친구들만 참가해 장지로 떠나기 전에 매우 간략하게 한다.

Burial Service는 장지에서 이루어 지는데 집전자의 간단한 설교나 기도에 이어 매장하는 절차를 친행한다. 묘지관리인들이 도르레를 이용하여 관을 바닥으로 내려 놓으면 가족과 참석자들이 꽃 한송이씩을 관위에 던져넣는 걸 마지막으로 장례절차가 완전히 마치게 되는데 나머지 흙을 덮는 일은 묘지관리인들만 남아서 하게 된다. Memorial Service(Funeral)를 마치고 장지로 이동할 때는 동네경찰차들 몇대가 동원되어(해당 경찰서에 수고비를 줘야 하는 것 맞고) 운구차를 앞세운 조문객들의 차량행렬이 신호등에서 끊어지지 않도록 사거리마다 막고 이동을 시키는데 조문객의 수가 많으면 길이 20-30분 막히는 수도 있고, 장례행렬이라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 낮에도 조문객들 차량의 헤드라이트를 모두 켜고 달리게 된다.

Luncheon에서는 Memorial Service(Funeral)를 진행한 교회나 장소, 혹은 고인의 집으로 가서 준비된 간단한 식사나 스낵을 먹게 되는데, 요즘 우리 한인들은 주로 한국식당을 빌리거나 미리 주문하여 준비한 김밥/도시락등을 장지에서 나눠줘서 해결한다.

10/13/2010

Believing in what you do

지금은 도산해서 문을 닫았지만 Circuit City라는 가전제품사에서 파트타임 일을 한 적 이 있다. 혹시 가계에 도움이 될까 해서. 그 Circuit City의 컴퓨터코너에 가면 Fire Dog이라는 테크니션들이 컴퓨터나 프로그램을 사는 사람들에게 제품에 대해 자세한 설명도 해 주고 문제가 있는 컴퓨터는 손을 봐 주기도 하는데 그런 일 이었다. Best Buy라는 가게의 컴퓨터코너에 가면 있는 Geek Squad하고 성격이 같은 일.

이런 가전제품사들 간의 가격경쟁이 치열해 지고 이젠 월마트까지 끼어들어 이윤이 박해지는 바람에 이젠 제품만을 팔아서는 수익이 거의 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제품에서 나는 수익보다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워렌티판매에 힘을 쏟고 있으며 직원들에게 워렌티판매를 적극적으로 하도록 훈련하고 있다.
(여름아이 summerkid 님께서 댓글을 다셨길래 적어봅니다: 예, 품질보증기간 맞습니다. 고국에서는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여기선 차량은 보통 3년이 기본으로 따라오는 품질보증기간이고 원하면 3년 이후에 추가로 몇 년 해서 그 연장이 가능하고 햇수에 비례해 워렌티를 사는 비용도 올라갑니다. 가전제품은 일반적으로 구입일자로 부터 보통 1년이 기본이고 그 이후는 손님이 원하면 추가로 구입가능한데 제품원가에 비례해 몇십불에서 몇백불까지 내고 품질보증기간을 선택적으로 2년, 3년 연장시킬 수 있지요.)

근데 그 곳 에서 한동안 일을 했음에도 나나 같이 일하던 동료들도 워렌티를 몇 개 못 팔아봤다. 이와는 달리 지금 고등학교졸업반인 둘째딸이 학업등의 이유로 관두긴 했지만 작년까지 학교가 끝나면 Best Buy에서 가서 저녁시간 파트타임으로 한동안 일을 했었는데, 그 곳에서 일 하는 동안에 워렌티를 많이 파는 바람에 하루 몇 시간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풀타임직원들을 제치고 그 매장에서 선정하는 우수판매사원으로 여러번 뽑혀 상으로 선물을 받아오기도 했었다. 매장 총매니저가 불가사의 하다고 할 정도로 엄청 팔았단다.

무엇이 그런 차이를 만들었을까? 오늘 곰곰 생각해 보다가 나름 떠오른 건...

나는 내가 팔고 있는 제품을 믿고 있지 않았고 그래서 파는 흉내만 냈던 것. 정말 그게 뭔 도움이 되랴 싶은 생각으로 꽉 차 있었고 고객에게 설명을 하면서도 “뭐, 안 사도 그만이야.” 하는 마음으로 임했었다. 그러니 고객에게도 어필이 되지 않았을 테고.

그 아이는 워렌티가 손님에게 궁극적으로 큰 도움이 되리라는 믿음이 있었고, 그 워렌티의 유익함에 대해 적극적으로 설명했고, 그렇게 함으로서 자신이 그 손님을 돕고 있다는 마음을 진심으로 가지고 있었으니(물어본 적이 있는데 이 아이의 마음상태가 정말 그랬었다) 손님들이 두 번 생각도 하지 않고 “아, 이거 꼭 필요한 거구나.” 하면서 권하는 워렌티를 1년치도 아니고 2년 혹은 3년치나 샀던 것이다.

난 과연 내가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옳다고, 궁극적으로는 나에게 유익을 가져오고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게 될 것 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하고 있는걸까? 우리의 직장에서 하고 있는 일에 대해 ,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것에 대해,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자녀에 대해, 심지어는 가지고 있는 신앙에 이르기까지 두루 점검하고 다시금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8/02/2009

독특하고 다양한 아이들 - 2 of 3

아이 셋이 얼마나 다른지 아내와 나는 늘 놀라곤 한다. 각기 개성과 취향, 성격이 비슷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키우면서 지루하지 않았던 듯 싶다. 이 사진은 둘째 딸 아이의 방 삼면을 찍은 건데 보다시피 좀 독특하다.

Lil Wayne를 무척 좋아해 Wayne의 공연이라도 이 곳 리치몬드에서 열릴라 치면 찾아 가야 직성이 풀리고, 목적이 뚜렷해서 그 목적을 위해서라면 온갖 노력을 쏟아 붓는다. 예를 들어 친구들과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기 위해 운전연습을 무섭게 해 법적으로 면허취득이 가능하게 되는 바로 첫 날 면허를 받아 냈고, 사고 싶은 것 들을 마음대로 사는 자유를 누리기 위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일자리를 구해 열심히 일을 한다(얼마나 갈런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다른 애들에게 지기 싫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친구집에 가서 자는 날이면 새벽에 엄마나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집에 가고 싶어" 하고 하소연 하는 아직도 baby같은 사랑스러운 아이. 보라색, 녹색, 회색 콘택트렌즈를 번갈아 끼고 나타나 아빠를 놀래킨 적도 여러번. 하여간 "unique"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