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대여섯 번에 걸쳐 스쿠버다이빙경험에 관한 이야기를 적어 볼 생각.
http://oldman-james.blogspot.com/2009/08/honeymooning-for-25-years-and-more.html 에 언급했던 것과 같이 아내의 오빠와 나는 내가 아내를 알기 이전에 이미 친구였다. 내가 스쿠버다이빙팀을 시작하고나서 그 친구를 꼬셔서 팀으로 끌어들였고 한 1-2년 같이 활동한 후에야 아내를 알게 되었다. 한 번은 갓 대학에 입학해 우리 팀에 가입하게 된 여러 대학의 신입생들을 나와 그 처남이 훈련시킨 적이 있는데 그 때 일어난 일이다.
숨 참는 것을 연습시키는 중 이었는데 처음 시작할 때는 대략 45초 정도면 더 참질 못하고 모두 뛰쳐 나온다. 그리고 횟수가 거듭할 수록 1분 20초, 1분 40초, 2분, 2분 15초 식으로 호흡을 중단할 수 있는 시간이 며칠도 아니고 몇 분 사이에 확 늘어난다. 현재 세계공식기록이 17분 정도니까 인간의 한계를 연장할 수 있는 능력이란게 엄청난거다. 한 열 댓명의 신입생을 입수시켜 고개를 박고 숨을 참게 했는데 2분 정도까지 참고 모두들 튀어 나왔다. 그런데 딱 한 명이 아직도 숨을 참고 있는거다. 시간이 2분 30초, 3분…이 넘어갔다. 그런데도 너무나 편해 보이는 자세로 둥둥 떠 있는데 순간 아차 싶었다. 그래서 처남과 난 서로 얼굴을 한 번 마주보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물속으로 뛰어 들었다. 고개를 들어서 보니 숨이 끊어진 것은 아니었고 한 30초 정도 지나 정신이 돌아 오는데 말이 엉기고 흥얼대는 것이 꼭 취한 듯 했다. 말로만 듣던 질소마취인 것 같았다. 원래는 수심 30미터 이상 잠수한 상태에서 신체내에 있던 질소가 혈관으로 녹아들어가 혼미해지고 몽롱해 지는 바람에 많은 잠수인들이 두려워 하는 건데 그렇게 얕은 수심에서도 체질에 따라 증세가 오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그 놀랐던 기억때문에 아직도 또렷이 기억나는 이대 정치외교과 김희선 이라는 녀석(김희선, 너 이름 여기에 오르내리는 것 억울하면 나한테 연락해라 ㅋㅋ). 워낙 독종이라 그런일이 일어 났었고 그 이후 2-3년을 형이라 부르며 가는 바다마다 우리를 따라 다녔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 당시 숨을 참다가 숨 참는 것이 점점 쉬워지면서 나중에는 참는 것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정신은 멀쩡한 상태로...
아 이렇게 숨참는 연습을 시키는 이유는 팀원들에게 스킨다이빙을 즐길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잠수에는 일반적으로 스킨다이빙(스노클링 이라고도 함), 스쿠버다이빙, 그리고 심해잠수가 있는데 스킨다이빙은 물안경과 스노클이라 부르는 입에 무는 짧은 호스, 물갈퀴를 하고 물에 들어가기에 숨을 참고 10여 미터 내외에서 잠수가 이루어 진다. 그래서 숨을 오래 참을 수록 물속에 오래 머물며 활동할 수 있다. 스쿠버다이빙은 공기통과 호흡기를 착용하고 한 30여 미터까지 들어가 공기가 다할 때 까지 활동 하고 심해잠수는 고압에 견딜 수 있는 특수한 장비와 배합된 특수한 공기를 사용한 전문가가 아니면 하기 힘든 잠수. 우리 같은 아마추어는 주로 스킨과 스쿠버를 하고. 그러고 그 학생의 호흡이 끊어졌어도 난 훈련이 혹독하기로 소문난 적심자사구조요원 자격증소지자였고(처남도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심폐소생술로 몇 분 안에 소생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리 큰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식겁했던 상황만은 틀림없었다. 아무리 빨리 끄집어 내도 심폐소생에 실패해 사망하는 예외도 항상 있기 마련이기에.
그래서 시작한 물질. 처남은 나보다 더 미쳐서 아예 그 길로 나섰다. 졸업하면서 정부의 독도 생태연구팀에 잠수요원으로 따라가고, 거기서 만난 교수가 그 친구가 너무나 맘에 든 나머지 자신의 학교 대학원에 입학시켜 같이 일하기 위해 있지도 않던 “해양생물학과”를 신설했다는 거짓말같은 이야기도 들었다. 그 길로 해양생물학 박사가 되더니 남극극지연구소의 소장을 여러번 거쳐 지금도 해양학자로 왕성하게 활동중이다. 근데 난 머지?...남 좋은 일만 하고. ㅠㅠ 하긴 처남은 남이 아니니까 좀 덜 억울해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