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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2013

A father's love

집으로 들어서는데 큰 아이가 이층계단위에서 날 반긴다. 훌쩍거리기에 자세히 얼굴을 살피니 한참을 운 얼굴이다.

"무슨일이 있니?"
"응, 무슨일이 생긴 건 아니고 예전에 팔로우하던 블로그가 있었는데 그걸 다시 찾아가 읽으면서 너무 슬퍼서 울었어." 

그러면서 그 블로그를 소개해 주길래 가서 한동안 차분히 읽었다. 미 서부의 어느 곳에 사는 한 아빠가 몇개월 전 세상을 떠난 큰 아들의 암투병과 그 이후 나머지 가족들이 슬픔을 극복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는데...

초반부터 근래의 포스팅까지 읽어오면서 그 아빠의 아들을 향한 절절한 사랑과 그리움, 가슴아파하는 모습에 나 역시 엉엉 울고 말았다. "하나님의 뜻이 있으시지요..." 하지 않고 "왜, 사랑스런 그 아이를 데려가셨어요?" 묻는 아빠의 울부짖음에, 나머지 가족들이 자신들의 평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노력하는 중 상실감을 견디기 힘들어 하는 모습들에, 지체아 교사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서 힘을 받는 듯 하지만 시도때도 없이 몰려오는 그리움과 슬픔을 혹독하리 만큼 솔직하게 표현한 그 아빠의 글이 머리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영어권 가족이지만 한인임에는 틀림없는 듯. 여길 들리는 블로거이웃께서도 이 가족을 위해 기도와 위로 부탁드립니다.

3/24/2010

Sleeping in a car

둘째가 며칠 전 일을 갔다와서 나와 아내에게 느닷없이 이런 말을 한다. “여지껏 내가 속한 모든 상황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지냈는데, 오늘 새삼스럽게 모든 것이 감사한 일 뿐이라고 느껴졌어요. 밤이면 돌아가 누울 수 있는 집, 엄마 아빠가 있다는 것, 풍부한 먹을 것, 이야기 나눌 수 있는 형제들이 있다는 등등…”

“????” 아내와 나는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서로 눈만 말똥 말똥 얼굴만 마주보고 있는데 그 아이가 말을 이어갔다. 일하는 Bestbuy에 늘 환하게 웃는 얼굴인 씩씩하고 착한 애가 하나 있는데 그 날에야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 들려줬다는 거다. 미시건주의 전형적인 백인 노동자부부 사이에서 태어 났는데 부모가 알콜중독에다가 마약을 하면서 술만 들어가면 이 아이를 늘 때리고 학대를 했단다. 그래서 그 때 왼쪽 눈을 맞아 다쳤는데 전혀 치료를 해 주지 않아 지금은 왼쪽 눈이 거의 실명된 상태고. 그러던 어느 날 취한 채 차를 몰고 가던 부모가 사고로 모두 죽고 물려받을 재산도 없이 혼자만 남게 되었다. 거기다가 자기가 늘 가서 애를 봐주던 집에 도둑이 들었는데 경찰이 자신의 지문이 집안 여기 저기에 남아 있다며 도둑으로 몰아 잡아 넣는 바람에 몇 달 감옥신세도 져야 했고… 이 곳 리치몬드로 와서 하루 두 군데 Bestbuy 와 Arby restaurant에서 일을 하면서 입에 풀칠을 하는데 밤에는 들어 갈 집이 없으니 늘 차를 Walmart 뒤에 세워놓고 잠을 잔다는 것이다. 샤워는 친구들 집에서 운 좋으면 가끔 해결하고…

딸아이가 그 말을 해 준 이후로 지난 며칠 간 이 아이의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물론 그 이야기들이 모두 사실인지, 아이가 실제는 어떤 아이인지 아직 자세히 모른다. 그리고 세상에 이 아이보다 못한 상황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훨씬 많을꺼고, 내가 그 사람들 모두에게 어떻게 해 줄 수 없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아이를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을까…생각은 해 봐야 되지않나 싶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어떤 지 들어보고도 싶고.

3/19/2010

왕짜증 나는 경우 2

짜증나고 화나게 만드는 것 한 가지씩 말해보라고.했을 때, 한 아이가 대답한 말이 있다. “화 나는 일이 너무 많아 다 이야기 못하겠어요!”란다. 이 말을 하면서 눈가위가 벌개지고 막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아 이야기 해 보라고 하지는 않았다.

어린 5학년 나이에 부모님을 떠나 이 곳 미국이모집에서 두 동생과 생활하는 이 아이. 얼마나 학교에서 힘들 지 상상이 간다. 한국에서는 똑똑하다고 인정받고 친구들도 이 아이 곁으로 몰려들었을 만한 아이. 여기서는 말이 되질 않아 선생이나 다른 아이들로 부터 완전 바보취급을 받아야 하니 말이다. 물론 이런 적응기간이 그리 오래 가지는 않는다. 1년 남짓 지나면 학교에서 성적으로나 인기로나 꼭대기에 자리 잡게 되는게 일반적 수순이다. 하지만 한국과 마찬가지로 이 곳 아이들도 자기들과 조금 다른 아이를 대할 때 몹시 잔인하다. 그룹으로 놀리고 멸시하고 상처를 준다. 여기선 특히나 인종차별적인 요소가 거기에 보태어져 더 하다.

내가 26년 전 이 땅에 처음왔을 때의 기억이 새롭다. 유학이라고 공항에서 부러워하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멋지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왔는데, 그래도 한국에선 영어 잘 한다고 모두들 그랬었는데, 첫 강의시간 후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교수가 하는 소리를 한 마디도 못 알아 들었다. 물론 과목이 수학이나 영어문법(한국사람이 훨씬 이 과목들에선 강하다)이 아니고 미국역사에다가 교수도 남쪽 사투리가 심하고 말을 빠르게 하는 분 이었기에 더 그랬을꺼다. 한 6개월은 학교 가는 것이 고통스러웠고 싫었다. 물론 1년 후 부터는 강의를 교수와 같이 주도해 나가는 입장이 되었지만.

그래서 그 아이와 동생들을 볼 때 더 가슴이 아프고 안타깝다. 얘들아, 조금만 더 참고 인내해라…선생님도 기도할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