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6/2014

막내

녀석이 군인이 자신이 원하는 길이라고 또렷하게 밝힌 건 채 7-8개월도 되지 않는 듯 싶다.

어릴때 꿈을 계속 유지하면서 결국엔 그 꿈을 이루고 마는 사람들이 가끔씩 있기는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나면서 그 꿈이 변해가는 건 차라리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싶다.  나역시 초등학교시절엔 부모님의 세뇌로(?) 나는 꼭 대통령이 돼야만 하는줄 알았고, 공이 안 보이는 깜깜한 저녁이 될때까지 코가 닳아 엄지 발가락이 다 삐져나온 신발을 신고 동네아이들과 하는 축구에 재미가 들 즈음에 차범근선수가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말레이시아에게 1:4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7분만에 혼자 3골을 연달아 넣어 동점을 만들었을 땐 훌륭한 축구선수로 그 꿈이 그 자리에서 바뀌었었다.

막내도 컴퓨터게임을 열심히 하던 국민학교와 중학교시절엔 컴퓨터게임을 만드는 게임프로그래머가 되겠다는(아마 이것도 제 어미가 녀석 머리에 슬쩍 넣어준 걸 게다) 꿈을 이야기하더니, 조금 자라서는 실제비행기를 운행하듯 여러 기기들을 컴퓨터영상을 통해 조작하는 비행훈련프로그램을 열심히 하며 파일럿이 되겠다고 심각하게 우리내외에게 이야기 한적도 있고.

그런데 그 꿈이 이제 군인으로 바뀌었다. 이번에는 막연히 군인이 되겠다고 말하기 전에 군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길이 있는지, 어떤 자격을 갖추어야 하는지도 많이 알아보고, 자기의 현재 성적도 돌아보는 시간이 있었던 것 같고. 해사(USNA)를 목표로 삼고 졸업과 동시에 해병대장교가 되겠단다. 근데 합격자들의 학교성적기록 및 SAT성적에 대한 통계를 보더니 이제까지의 성적으로는 지원조차 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는 집에 와서 밥먹는 시간도 아까와 할 정도로 무섭게 파고들기 시작했다. 물론 해사보다는 조금 들어가기가 쉽다는 육사(USMA, 우리가 West Point라고 부르는)를 차선책으로 정하고.

시간이 차츰 지나면서 성적표에서 가끔 보이던 C와 D가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고. 허나 문제는 이제까지 관리해 오지 않아 지금 아무리 잘해도 최종 졸업평균을 낼 때 결국은 녀석의 발목을 잡게 될 지난 성적들. 왜 진작 성적에 관심을 갖고 잘 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후회로 제 머리통을 두드리는데 안스러운 마음이 드는 한편 안심도 된다. 달리 뭐라고 이야기한 것도 없는데 이제라도 자기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모습에...

아들과 딸을 모두 해사에 보낸 지인이 계셔 어제 전화통화를 해봤는데 군사학교라 우리가 보통 관심을 두지 않아서 그렇지 매년 나오는 미전국대학순위에서 상위권이라는 그분의 말씀에 찾아보니 크게 틀린 말은 아닌듯 싶다. 그런데 지원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지역구의원들의 추천을 얻는 일이 쉽지 않고, 특히 팀스포츠를 2개 이상 이미 해오고 있었어야 했다는 이야기에 가슴이 턱 막혀왔다. 팀스포츠는 어렸을때 부터 많이 권해봤고 본인이 싫다는 걸 강제로 하게 하기 싫어서 자신이 좋아서 하는 권투만 시켜왔을 뿐인데... 합격자 대부분이 팀스포츠를 한 사실을 넘어 팀의 주장을 했었다는 통계가 있다고, 그런 이유는 군장교생활이 팀웍을 강조하고 지도자경험을 중시하기 때문이란다.

그래도 예외라는게 있으니 나름 열심히 준비하고 우리도 부모로서 의원들에게 연락하고 추천서를 부탁하는 일, 아이를 데리고 사관학교들을 방문해 견학을 시키고, 여름캠프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기특한건...동기부여를 준다고 그 집 자녀들의 연봉이 꽤 된다고 막내녀석에게 이야기해줬더니 콧방귀를 픽 뀌면서 하는 얘기는...돈 때문이 아니라고, 아빠가 자기를 너무 모르는것 아니냐고, 자기가 사관학교를 가려는 진짜 이유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젊음의 한 때를 바쳐보겠다는 마음때문이라는 거다. 쩝...그래...네 똥이 훨씬 굵다, 녀석아!

아빠로서, 어른으로서 아들보기가 창피했던 순간...

6 comments:

  1. so handsome peter! :)
    we'll have to hear all about it when we come home next 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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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I bet he has more than 3 days' worth story to tell you guys about! :)

      Can't wait till you and Andy come to visit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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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드님이 참 잘생겼네요. 듬직하시겠어요. 2세들이 잘자라 주는것이 참 고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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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감사합니다. 맞아요, 저희 부모는 하는 것도 별로없는데 아이들이 잘 자라주니 너무 감사하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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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정말 오래간만에 들러봅니다. 아드님이 군을 생각하고 계시는군요.
    저는 한국군에서 오래 복무하였지만, 결국은 군도 사회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긍정적으로 생각할 만도 한데, 일단은 말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가족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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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희내외도 한국에서의 군 이미지때문인지 아니면 미군의 잦은 중동파견근무로 부터 오는 위험때문인지 많이 꺼림직합니다. 하지만 본인이 원하는게 그것이니 그저 돕고 있지요.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귀국하신건지 댓글 올라온 IP주소가 서울 홍제동쪽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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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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