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0/2015

한밤중에 찾아온 손님

나를 좀 만나봤으면 좋겠다고 하는 전화 저쪽의 목소리에 머뭇거림이 느껴졌다. 전화를 끊고 나서 생각해 보니... 여자친구의 아버지에게 전화하려면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건데.

그리곤 오늘 밤 혼자 우리집을 찾아왔다. 늘 큰 딸아이와 함께 오던 것과는 달리. 아내가 차를 내오고 이런저런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나누다 그 친구의 어색한 시간을 줄여주자는 생각에 "왠일로?"라는 질문을 아예 일찌감치 던져줬다.

망설임없이 "따님을 사랑하니 결혼하게 해주십시요"라고 바로 나왔다.

대충 짐작은 했지만 막상 그 소리를 들으니 뭐라고 대답해야하는 건지 잘 몰라 우리내외는 잠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리곤 어색함을 간신히 누르고 "그래, 그러렴"이라 대답했고 아내도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나도 좋단다"라고 했다.

평소에 우리내외끼리 그 아이가 똑똑하고, 열심히 교회를 섬기는 부모님 밑에서 신앙생활을 잘 하며 자라왔고, 딸아이에게 자상하고 진실하게 대하는 것 같고, 성격이 온순하고, 마라토너로서 극기와 인내는 증명된 셈이고, 직장과 직장에서의 위치도 그만하면 됐고, 나름 잘생겼고...하며 사위로서는 더할나위 없겠다 이야기해 오던 터라 '먹여살릴 준비는 갖춰놓고 그런 생각을 하느냐' 아니면 '딴짓 안하고 잘 살수 있겠느냐'등 여자부모로서의 걱정섞인 까탈스러운 질문들은 생략했다.

아내가 내온 유자차의 향기를 맡으며 몇 모금 더 들이키니 어느 정도 마음이 안정된 듯 해 이야기를 꺼냈다. 큰 아이가 엄마뱃속에 있을때 부터 우리내외는 그 아이의 배우자를 위해 기도해 왔노라고. 그리고 이제 그 기도의 응답을 받은 것 같아 기쁘다고. 그랬더니 자신의 부모님 역시 오랜 시간 자신의 배우자를 위해 기도해 오셨다는 이야기를 한다.

모두 아침일찍 출근해야하는 처지들이라 오래 이야기는 못하고 보내려는데 부탁을 한다. 곧 프로포즈를 하려 하는데 그때까지는 딸에게 모른척 해주실 수 있느냐고.

문을 나서는 그 아이에게 다시 물었다. "Are you really sure about this?"

웃자고 한 말이지만 인생에 있어서 제일 큰 결정중의 하나를 이 아이가 내린 것은 분명하다.


2 comments:

  1. 난 그냥 니들 일은 니들이 알아서 하라고 할것 같음.

    내가 할일은 그냥 결혼식 참석 정도.

    그게 서로에게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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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plies
    1. 저도 그렇게 단호하고 과감했으면 좋겠네요... ㅎ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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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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