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5/2014

사람 병신만드는 문화적 차이

얼마 전 한 고등학교에서 서버를 점검하고 있는 중 이었다. 그 학교의 교감 (Assistant Principal)하나가 서버실로 날 찾아왔다. 혹시 한국말을 할 줄 아냐고. 그렇다고 했더니 좀 도와달란다. 사무실로 따라 갔더니 선생하나와 한국학생하나가 기다리고 있었고, 한국에서 온 지 몇 달 되지 않은 학생이라고 하는데 얼굴이 울상이다. 원래 내 일은 교무와 완전히 분리되어 내가 학생과 관련해 도움을 줄 일도 받을 일도 없게 되어 있다. 도리어 괜히 학교와 학생간의 일에 끼어드는 것을 늘 경계하도록 훈련을 받는 편이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어떤 학생이 온라인으로 무슨 성인사이트에 갔었는데 선생이 목격하고 그 학생쪽으로 달려가니까 얼른 브라우저를 닫고 로그아웃을 해 버려 징계를 위해선 증거가 필요하다고 교장이나 교감이 서면으로 정식요청하면 난 서버에 기록된 그 학생이 들렸던 사이트의 리스트를 주면 끝이다. 나에게 며칠 정학을 줄까 아니면 몇 주 정학을 줄까 물어온다면 대답은 “난 모르니 너희들끼리 결정해.” 해야지 “전번에 보니까 어느 학교에서는그런 경우 3일 정학을 주던데?”식으로 간섭하게되면 나중에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학생이 한국애라 처음부터 그냥 난 몰라라 할 수 없었다.

화가 많이 난 선생이 씩씩대며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는데 다음과 같다. 전날 숙제를 내 줬고 오늘 숙제를 검사하는 날 이었다고. 이 학생이 숙제를 내어놓질 않길래 물었단다. “You haven’t done your homework, have you?”(숙제 안 해왔지, 그치?) 그러니까 학생이 대답하길 “Yes”(한국에서 하던대로 "예, 안해왔어요"라는 의미로)했단다. 그래서 그럼 좀 보자고 선생하 재촉하니까("Yes"란 대답은 미국에서는 숙제를 해왔다는 대답이니까 당연히) 보여주질 못하고 있더란다. 그래서 같은 방법으로 다시 물었고, 학생은 역시 Yes라고 답하곤 여전히 숙제는 제시하지 못하더란 것이다. 그 여선생이 화가나도 무지났다. 아이가 자기를 다른 학생들 앞에서 무시하고 장난치는 걸로 생각하고 그 아이를 끌고 교감실로 찾아간 것이 사건전말.

아이에게 물었다.
“얘, 이름이 뭐니?”
“xx인데요?” “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줄 수 있겠니?”
“선생님이 숙제 안 해왔지, 그치? 해서 전 예 맞아요 안해왔어요 라고 대답한 것 뿐이데 자꾸 화를 내면서 숙제를 내 놓아 보라고 하는데 답답해 미치겠어요. 사실 숙제도 하기 싫거나 시간이 없어서 안 한게 아니예요. 숙제 자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해도 안되고 집에서 형이나 누나같은 번역해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도 없구요. 나 정말 숙제를 남들 처럼 잘 해오고 싶은데…”

나도 처음 미국에 와서 몇 번 겪었던 일이라 아이에게 간단하게 설명을 해 줬다. “앞으로는 한국에서 대답하던 방법은 잊어버리고 숙제를 안 해 왔으면 No, I did not do homework. 라고 하고, 해 왔으면 Yes, I did.라고 해야 한단다.”

선생과 교감에게 같은 질문에 정반대의 대답을 하는 문화적차이가 있는 걸 설명했더니 눈이 동그래지며 놀라는 표정이다. 앞으로도 새로 오는 한국학생들이 이런 문제를 겪을 텐데 그때마다 다른 선생들에게 잘 설명해 달라고 부탁하고 그 아이에게는 내 명함을 하나 건네 줬다. 잘 모르는 게 있으면 전화하거나 이메일로 물어보라고. 얼굴이 다시 밝아지는 그 아이를 보니 조금 마음이 놓였다. 한국에선 공부 잘 했어보이는 아인데…여기선 이런 황당한 경우를 당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모든 면에서 뛰어나게 잘 할꺼라는 건 알고 있지만 한 동안 피치못하게 이런 경험을 여기저기서 겪어나가야 하는 그 아이가 안쓰러웠다.

(년전에 올렸던 글)

23 comments:

  1. 문화적 차이 때문에 고생한 아이가 안쓰럽긴 한데요... 부정문으로 물어볼 때 대답하는 법은 중학교 때 배우지 않나요? 그 정도의 영어도 안 되면서 고등학교를 미국으로 온 건 좀 무리가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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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근데... 저같이 중학교때 맨날 틀린 답을 썼던 사람은 시간이 지나도 정답을 모르기에 나중에도 한참 걸렸다는...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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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미국서 태어난 우리집 애들도 엄마가 묻는 말에 영어식으로 대답해 종종 지 엄마를 화나게 만들곤 합니다. 문화차이는 미국에 사는 한국가정에도 이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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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희와 비슷하군요.ㅎ ㅎ 우리 부모가 아이들에게 맞추면서 살아야 하는 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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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게시물 조금 읽자 마자 'Yes/No의 대답을 잘못 했을것 같다'라고 직감 했습니다. 뒤늦게 나마 영어 공부하면서 느꼈던게, 아~~ 이런게 많이 틀리구나 했었거든요. 어찌 보면 사소한 차이인데 당사자들은 얼굴까지 붉히는것 보면 정말 많은 차이가 있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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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ㅎ ㅎ 눈치가 빠르시군요. 그 선생이 화난게 장난이 아니더군요. 정말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는 표현이 더 맞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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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This is not directly related to the (yes/no) story. In a movie, 'Inglorious Bastard', a British spy in Germany was meeting with his colleagues at a bar where many German soldiers were drinking..... He ordered a whiskey with three glasses by showing his three fingers up in front of a German officer. Because of that action, he was noticed to be a spy.
    Since then, I realized that finger language (for counting or other symbolic gesture) is different from one culture to another. If you have foreigners nearby you, it might be fun to see them how they count with the fing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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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맞습니다. 저도 그 영화를 보면서 독일어도 잘 하고 그래서 그냥 넘어가는 줄 알았는데 손가락으로 숫자를 표현하는 그 문화적차이 때문에 들통이 나서 아깝게 많이 죽었죠. 미국사람들은 검지(index finger)부터 시작해 중지(middle finger) 약지(ring finger)로 세어나가는데 비해 독일사람들은 엄지(thumb)부터 세어나가는 걸 그때 알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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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크학, 이건 정말 말 그대로 사람 병신 만드는 문화적 차이네요. 후덜덜. 사실 저도 아직 헷갈려요.;아니, 잘 모르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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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ㅋ 위에서 겨울아이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모두 중학교때 죽어라고 배운 것인데 실제로 말로 쓱 물어보면 적용이 그리 쉽지 않다는... 아 물론 미국생활 혹은 영어에 익숙한 분들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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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전 첨에 Do you mind...? 로 묻는 말에 긍정으로 답한다는 생각으로 Yes로 대답했다가 당혹스러웠던 적이 몇 번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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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맞아요. 미국에 살기 시작하면서 몇 번은 이런 경험이 모두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한두번... 그 잘못된 대답으로 분위기가 썰렁해지는... ㅎ 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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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회사에 외국인 엔지니어들이 제법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한국어,일본어등이 뒤섞여서 회의가 진행될 때가 종종 있는데 위 상황과 정반대의 일이 벌어질 때도 있습니다.

    "마이크, 그 샘플 분석 아직 안됐지?"
    "No."
    "됐다고? 그런데 보고서 왜 제출 안했어?"
    "No...아..아니 Yes."
    ".......또 헷갈렸냐?"
    "Yes...아..아니 No...음...어느거 써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깔깔깔 데굴데굴. 뭐, 이런 상황이죠. 중요한 것은 그러한 언어 문화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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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 재미있네요. 서로 어느정도는 반대로 대답할꺼라는 것을 미리 예상하고 대화를 진행하는군요. ^^ 그런 재미있는 상황도 있겠지만 실제로 일을 심각하게 의논해 나갈때는 좀 답답한 부분도 있겠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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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에고.. 정말 oldman 님이 아니었으면 그 학생 적응 못할 뻔 했습니다. 참 다행이네요. 선생님도 선생님 나름대로 힘들었을테고요. 참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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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여간 저나 그 학생이나 그 시간, 그 자리에 있었던게 다행이었던거죠. Jaden님도 그런 경험이 처음엔 있으셨을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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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우리나라에 사는지라 직접 영어를 쓰면서 생활해본건 극히 짧은 시간이러서 경험은 딱히 없지만.. 어떤 기분인지는 이해가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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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러시군요. 근데 프로필을 뵈니까 IT쪽에 계시네요? 제가 그래서인지 방문하시는 분들이 거의 그쪽에 계신다는 걸 요즘 발견했습니다. 프로그래밍, web apps, mobile apps등을 망라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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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읽는동안 저도 잠깐 헷갈렸네요..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과 외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의 차이는 시간과 노력으로 극복이 가능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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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ㅎ 맞아요. 살다보면 매일 반복하다보면 그저 몸으로 익숙해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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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저는 아직도 헷갈린답니다. 그러다보니 간혹 Yes, I don't, 혹은 No, I did 처럼 말하곤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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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ㅋ ㅋ 국가적으로 통일을 하라고 그럴까 생각중 입니다. 영어권나라들이 모두 한국식이 맞으니까 그렇게 하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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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쉬운 분은 쉽겠지만 어려운 사람은 아직도 어렵다는...ㅡㅜ 저 역시 그아이에게 이렇게 해라 하고 말해줬지만 제게 누가 갑자기 부정의문문을 던지면 속으로 0.3초 정도 답을 계산을 해 본 다음 대답을 하곤 하죠.ㅋ ㅋ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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