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4/2014

진주혼

결혼기념일을 이야기할 때 1주년을 종이에 비유해 지혼(紙婚), 10주년은 주석혼(朱錫婚), 25주년은 은혼(銀婚), 50주년 결혼기념일은 금혼(金婚), 60주년은 금강혼(金剛婚) 혹은 회혼(回婚) 이라고 한단다. 세상에 존재하는 물질에 비유해 종이(紙)에서 은과 금을 거쳐 다이아몬드(金剛)까지 점점 더 단단해지며 희귀해지는 물질로 옮겨간다.

며칠있으면 사람들 입에 자주 언급되지는 않지만 진주(혹은 상아)혼이라 부르는 30주년.

결혼생활 거의 대부분은 아이들이 어려서, 아이들이 어느정도 커서는 편찮은 부모님이 계심으로,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둘 다 지치고 늙어, 두사람만 어딜 다녀오는 것이 엄두가 나질 않았었으나 이제라도 좀 이기적이 되어야겠다 싶어 금년엔 용기를 냈다.

<Day 1-3>
그래서 떠나온 첫 장소는 집에서 멀지 않은 버지니아비치라는 바닷가. 일해야 하는 걱정, 누굴 보살펴야 한다는 생각, 뭘 어떻게 해야 한다거나 뭘 하지 말아야 한다는 염려없이 그냥 뒹글거리다가 배 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시고, 배부르면 모래사장을 하염없이 걷고 하며 지내는 중인데 그러는 것이 괜히 불안하고, 일 안하고 놀고 먹는다고 뒷통수에 대고 누가 뭐라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떠나질 않는다.

오늘 아침은 눈이 조금 일찍 떠져서 아내가 일어날 때까지 베란다에 앉아 쏟아지는 아침햇살에 눈을 감고 잔잔하게 깨어지는 파도소리를 한참 듣고 있는데 옛날 생각이 영화장면들 처럼 지나가더라는...


17살 밖에 안된 앳되고, 한참 공부해야하는(고3) 처자였던 그녀를 밖으로 나데리고 다녔던 참으로 무책임했던 나, 그런 나를 싫은 기색없이 따라 나가지만 자신이 해야하는 공부는 열심히 해내던 모습, 나와 같은 과 친구였던 오빠와 하숙을 하며 부모님께서 보내주시는 빠듯한 지원이지만 알뜰하게 절약하며 거뜬히 오빠를 돌보던 모습, 대학진학을 하고 같은 또래의 학생들과 같이 가게되는 MT등은 나를 생각해서인지 스스로 포기하던 사람, 가끔 우리집이라도 방문해 부모님과 식사라도 할라치면 간단한 반찬거리를 사가지고 와 음식도 만들어 놓고 설거지도 하던 대학3-4년차, 미국으로 유학와 시집생활, 풀타임가게일, 풀타임 학교생활을 동시에 이어 나가면서도 군소리 한마디 없이 해내던  미국생활 초반, 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소천하실때 까지 최선을 다해 모시는 모습에 자식인 날 부끄럽게 하던 그녀...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그녀가 밑지는 장사같은데 다시 태어나도 날 만나겠다고 망설임없이 대답하는 그녀...

축하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Day 3-4>
버지니아비치를 출발해 5시간 반 정도 운전해 블루릿지마운틴을 넘어가게 되면 웨스트버지니아로 채 못가서 버지니아의 산속에 위치한 Hot Spring이란 마을이 나온다, 그 곳에 위치한 다양한 형태의 온천장들이 허리가 안좋은 아내에게 좀 도움이 될까 하는 바램으로 왔다. 비용은 좀 부담스러웠지만 앞으로 살아생전에 몇번이나 더 오겠냐 싶어 온천수로 된 실내외수영장등을 잘 갖춰논 Homestead란 이 호텔에서 여장을 풀기로. 오른쪽의 사진은 그곳에서 멀지 않은 Jefferson Pool. 워낙 역사가 짧은 미국이라 조금 오래된 구조물이나 장소는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보존 관리하는 이곳 사람들답게 Homestead호텔도 300년, Jefferson Pool도 250년간 잘 보존해왔다고 자랑들이 대단하다. 반만년역사를 가진 우리가 볼 땐 좀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하여간 도착당일 저녁과 다음날 아침에 걸쳐 내내 온천욕으로 시간을 보낼수 있어 좋았고. 때밀어주는 서비스도 있었으면 금상첨화였을 텐데 그게 내내 아쉬움으로...결혼기념으로 왔다고 하니까 100불짜리 음식쿠폰, 48불짜리 와인(메뉴를 보니), 카페에서 만드는 제대로 된 커피 2잔 등을 안겨주고 퇴실시간도 11시에서 오후 2시로 연기해 주는 등 받은게 많아 결과적으로 기존 호텔들보다 그리 많이 낸건 아니다 싶어 "격이 안 맞는 우리같은 사람들이 이런 고급스러운덴 뭣하러 왔누..."라고 내내 툴툴거리던 짠순이가 특히나 기뻐했다.

<Day 4-5>
2시간여 달려 둘째가 공부하고 있는 Charlottesville을 들려 둘째녀석을 불러냈다. 근래에 치과쪽으로 전공을 바꿔 스트레스가 심할텐데 이야기해 보니 잘 견뎌내고 있는듯 싶었고 같이 저녁을 맜있게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곳을 떠나 1시간 후 둘째가 온라인으로 찾아준 Glass House Winery를 찾아가 그곳에서 운영하고 있는 Bed & Breakfast에 체크인을 했고. 온통 포도나무밭으로 둘러싸인 한편 아담한 호수를 담은 이 산꼭대기의 집에서 운치있는 하루를 보내는데 가지고 간 랩탑에 뜬 속보에 나온 진도 수학여행선 참사가 눈에 들어와 온 저녁을 애를 태우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아내는 안타까와할 피해자 학부모들 생각에 내내 눈물만 흘리고. 투숙객들의 편의를 돕고 아침을 짓는 상냥한 아주머니가  내려 준 진한 향의 커피를 겸해 근사하게 차려놓은 아침상을 받아먹고는 떠나 2시간 후 그리던 집으로 돌아왔다.

10 comments:

  1. 축하드립니다. 저는 올해가 딱 10주년이니 20년 선배님이시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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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감사합니다. 아기들 잘 자라는 것 자주 들러 확인하고 있습니다. ^^
      10주년 축하드리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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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happy anniversary!!! we love you gu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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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hanks! Hope your baby is doing ok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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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Replies
    1. 고맙습니다. 고국에서의 적응은 완료하셨지요? ^^
      출판하신 책 이곳 미국에서 시판되면 알려주시기로 했던 것 잊지마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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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Replies
    1. 아,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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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세상이 진정으로 아름답게 보이는 행복의 문턱을 넘으셨습니다 !!
    언제나 건강한 아름다움과 함께 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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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런가요? 어쩐지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하더라니...^^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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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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