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2011

가슴시린 좌절감

어느 한국대학의 식당에 고급음식점들이 들어가게 되면서 기존의 학생식당 가격인 2000-2800원 보다 10배 이상 비싼 2만4000원에서 4만원까지의 메뉴를 제공하게 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어떤 학교는 1층에 고급식당, 2층에 기존 학생식당 해서 아예 층을 달리해 빈부의 아픈 격차를 겪게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단다.

도대체 이런 학교정책을 결정짓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이런 학생들의 후생에 관한 사항을 결정지을 땐 직접 수혜자가 되는 학생회의 대표들도 결정하는 과정에 같이 참여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뭐, 고급식당에서 나오는 추가수입으로 학생들의 복지를 향상시킨다는 사탕발림이나 뜻밖에 싸구려음식에 싫증을 느끼는 학생들의 불만이 많았다는 등의 변명이 있었겠지만 정말 짜증나고 화난다. 1층에서 값비싼 메뉴로 점심을 먹고 있는 학생들을 멀리 바라보며 2층으로 힘든 발걸음을 옮기는 학생들의 눈빛이 보이는 듯 해 가슴이 시리다. 얘들아 미안하구나... 없는게 부끄러운 일은 아닌데 너희들로 하여금 강제로 그렇게 느끼게 만들고야 만 우리 기성세대들 때문에...

좀 다른이야기긴 하지만 유학생활(메릴랜드주 볼티모어)을 하면서 점심시간에 찬물을 들이켜야 했던 때가 있었다. 좀 비장하게 들릴지 모르겠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점심 사먹을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잠을 쫒기 위해서였다. 낮에는 풀타임으로 학교생활을 하면서 밤에도 풀타임으로 새벽 1-2시까지 일을 하던때라 잠이 많이 모자라기에, 점심을 먹고 배가 부르게되면 수업시간에 자꾸 졸음이 오기때문에 점심을 걸러 장이 오그라들고 등이 꼬부라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배가 고파야 겨우 졸음을 이길 수 있었기에 일부러 그랬던 것.

물론 집에서 보내주시는 등록금과 생활비는 있었지만 그게 죄송해서 나름 개스값과 식비정도는 벌어서 써야 겠다고 결심한 후에는 일을 닥치는 대로 했었다. 한식과 중식을 겸해서 하는 식당에서 제일 오래 일 했는데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내 오고 상을 치우는 웨이터겸 버스보이. 한국사람들 웬 술을 그리 마시는지 주중에도 다 치우고 나면 늘 새벽이었다. 셔츠를 쥐어짜면 물이 나올 정도로 땀을 흘리며 몇백불어치 음식을 날라 내오고, 서브하고, 다시 다 치우고 나서 1불짜리도 아닌 25전짜리 동전하나를 팁으로 발견했을 때의 그 좌절감은 지금도 쉬 잊혀지지 않는다. 물론 그 때도 낮술이나 먹고 다니고 좋은 차 몰면서 일하지 않아도 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잘 모를지 몰라 설명하자면 보통 캐쉬어 같은 entry 레벨의 일은 법으로 정한 기본급이 있어서 누가 뭐래도 최소 시간당 $7.25-버지니아의 minimum hourly wage-을 받게 되는데 식당의 웨이터, 웨이트레스는 그렇지 않다. 주인은 시간당 $2.00정도를 주는게 끝이고, 나머지는 자기가 열심히 잘 서브해서 팁으로 채워야 하기에 그 삶이 고달프다. 물론 그렇기에 팁이 후한 고급레스토랑 같은 곳에서 일하면 시간당 $20-50불을 버는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서 그 이후 어딜 가건 식당에서 팁을 놓을 때는 꼭 15-20%를 주려고 애쓴다. 식구수가 많거나 교회부서의 모임 등 식대가 좀 많이 나올 때는 팁이 40-50불까지도 나와 다른 식구들이나 같이간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된다 말려도 그리 하고야 만다. 왜냐하면 그 서버는 그 만큼의 일을 했고 그 만큼의 대가를 받아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물론 인종차별적인 대접을 받았거나 드러나게 불친절했다면 그걸 응징하는 차원에서 박한 팁을 주어 표현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잘못하면 마땅히 줘야할 액수를 떼어먹는 도둑놈이 되기에 그것 또한 조심스러운 일이다.

ㅎ ㅎ 또 삼천포로 빠져 머리와 꼬리가 영 다른 이야기가 됐는데 좌우지간 결론은...우리 제발 식당에서 일하는 분들 눈에 피눈물나지 않게 팁좀 제대로 줍시다!

14 comments:

  1. 우리나라 대학 학원사업을 운영하시는 분들은 자기네 이익만 챙기는 무뇌 인간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단적으로 기사를 읽고 할 말이 없더라구요. http://goo.gl/pGUpK

    미국 팁 문화에 관한 글은 뿌와쨔쟈님의 http://goo.gl/LWRtX 를 읽고 좀 더 알게 되었는데, 제임스님은 상당히 후하고 좋으신 분입니다. 정말 후덕하신 분이십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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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캐나다랑 미국이랑도 약간의 차이가 나는 것 같아요. 의무라는 건 마찬가지지만, %가 살짝 차이가 나는 듯.

    미국은 15~20%가 일반적이라고 듣긴 했는데, 캐나다에서는 10% 이상이기만 하면 되고, 20% 주는 경우는 거의 못봤습니다. 그리고 캐나다에서는 팁을 적게 줬다고 누가 쫓아 나왔다는 얘기는 아직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얘기 몇번 듣긴 했는데, 모두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더라구요.

    세금이 메뉴판 가격에서 13%가 더 붙으니, 사실 팁을 10% 남짓만 줘도 절대 금액은 비슷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만...

    저 같은 경우는 일단 10%를 계산한 후에 우수리를 올리거나, 그 우수리가 너무 작을 때에는 1달러를 추가로 더하는 식으로 팁을 줍니다. 맘에 들면 15% 정도. 그리고 거의 순수한 서비스, 예를 들어 택시나 (거의 탈 일은 없지만..) 미용실의 경우는 팁을 20% 이상도 주고요.

    한국 식당에서 일하는 분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줌마들 단체로 와서 먹고 가면서 팁 달랑 1~2불 놔두더라고 이런 얘기도 듣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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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zizukabi 님,
    신입생입학행사에 관한 기사를 보고 왔는데 저도 할 말을 잊었습니다. ㅡㅜ

    그 글을 쓰신 뿌와쨔쟈님은 팁 관습을 상세하게 잘 알고계시는데 미국에선 서빙하는 사람들의 월급이 팁에서 나온 다는 사실을 모르시는 것 같더라구요. 안 줘도 그만인게 아니라서 요즘은 아예 영수증에 15%합산되어서 내게하는 식당도 꽤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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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Black and Berry 님,
    캐나다가 팁의 rate이 좀 낮군요. 아마 세금의 rate이 엄청 높은 까닭에 그런 모양입니다.

    우수리에 관해 정말 관대하게 하시네요. 종업원들이 주인으로 부터 시간당 1-2불의 월급을 받고 나머지는 팁으로 채우는 상황은 캐나다도 예외는 아닐 듯 싶습니다.

    예, 제가 그렇게 동전하나를 팁으로 발견했을 때도 아줌마군단 이었습니다. 한 20여명이 와서 거의 400-500불 먹고 갔었다는...그렇다고 서비스를 잘 못한 것도 아니었는데.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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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다른곳도 아니고 학교 식당에서 그러다니.
    기업에서도 상대적으로 느낄 그 감정 때문에 간부급 기업인들이 일반사원과 함께 식사를 하려고 하는대에도 말이죠

    저도 좀 삼천포로 빠지자면..

    한편으로 제가 대학다닐때에 친구들에게 한 말도 생각납니다.

    학교내에 좀 값나가는 스포츠카를 끌고 댕기던 사람들이 몇 있었는데
    학교 등록금도 너무 무거운 사람이 많은 상황에서 그들은 이리저리 구설수에 오르기 십상이었죠.

    그럴때면 전
    "저 사람은 돈이 있기 때문에 그걸 쓰는것 뿐이야.
    물론 그것에는 자기 과시나 허영심같은 것이 들어있기도 하지.
    하지만 그것의 자본주의의 원동력이 되기도 해.
    그리고 돈을 가지고 있는것 보단 쓰는것이 나으니까. 세상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출발점은 너무 다르지."

    라고 무의식적으로 반말로 말하고 선배들에게 구박을 받곤 했습니다. ㅎㅎㅎ

    여튼 그건 개인이야기이고.

    사회적 집단이나 단체는 그런 상대적 좌절감을 줄이도록 노력해야하는데

    학교 에서 그런 여건을 마련해주다니.
    걱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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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Oblivion 님,
    사실 가졌다는 사람들의 잘못도 아니지요. 말씀하신대로 상대적인 좌절감을 느낄 수 있는 여건을 없애지 않고 도리어 더 만든 사람들이 문제라면 문제일 겁니다. 아마 다니셨던 학교도 예외는 아닐 듯...기사를 보니 거의 트렌드로 가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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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오늘도 값없이 주시는 은혜를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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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안녕하세요^^ 글을 보니 제 유학시절 생각나는데요? 전 아껴쓰자 주의였고, 제 룸메는 좀 살던집에서 온친구라 생활비 문제로 다툼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결국 유학시절 후반부는 한국인이 아닌 인도애들과 주로 살았어요. 매일 커리 냄새를 맡으면서, 그것도 나름 잼있었던것 같아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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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taekun kim 님,
    바로 제게 꼭 필요한 말씀같습니다. ^^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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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belike_him 님,
    사람간의 작은 차이가 많은 불편함과 아픔을 주곤하는데 같은 집을 일정기간 같이 사용해야 하는 관계가 바로 그런 것 같습니다. 한동안 커리냄새를 풍기고 다니셨을 듯. ㅋ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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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제가 대학 다닐 때만해도 1,500원이면 부족하지만 한끼를 해결할 수 있었는데 요새는 밥+국+김치 사기에도 빠듯하다고 하더군요. 학생들의 소득원(아르바이트나 과외)은 거의 제자리걸음인데도 말이죠.

    그러다보니 학생간의 빈부 격차가 더욱 도드라지나 봅니다. 한쪽은 학업과 일을 병행해야하지만 다른 한쪽은 풍족한 용돈으로 별 어려움없이 학교를 다닐 수 있고요.

    미국생활에 관한 재미있는 팁과 감동적인 일화를 포스팅해주시는 것에 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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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Ooyallago 님,
    저도 그 시절이 기억납니다. 라면하나 사먹으면 250원 했고, 1500원하는 갈비탕은 지금은 아내지만 그 사람과 데이트할때면 가끔 못 이기는 척 따라가 얻어먹곤 했지요. 그것도 '나 이런거 별론데...사 주니 먹기는 먹는다'하는 표정으로. 아 물론 속으로는 눈물나게 고마왔지요. ㅎ

    빈부의 격차는 없어질 것이 아니지만 삶을 비관해 생을 마치려는 젊은이들이 요즘 많아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지요.

    좋게 봐 주시니 고맙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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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지금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저로서는 그저 존경스러울 따름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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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SW Yoon (尹聖雄) 님,
    그래도 여행도 즐기시고 오토바이로 질주도 하시는 등 나름 여유롭게 공부하시는 모습이 늘 좋다고 느끼는 중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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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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