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2010

편식

주일학교 우리반 아이들을 위해 뭘 좀 만들어 가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새벽 5시 쯤 눈이 저절로 떠지면서 아침 내내 부엌에서 부산을 떠는데 식구들이 깰까 발소리를 죽이지만 주방기구를 만짐으로 해서 나는 딸가닥거리는 소리는 어쩔수 없어 소리에 민감한 아내의 잠을 설치게 하곤 한다.

무슨 전문가(우리 큰 아이)처럼 밀가루에서 부터 시작하는 건 아니고 이미 모든게 들어가 있어서 우유와 계란을 넣고 휘저으면 그냥 모든게 끝나는 제품들을 항상 서너개는 팬트리에 가지고 있어 그걸 쓴다. 휘저어 반죽이 끝나면 머핀틀에 알맞게 붓고 오븐에 넣기만 하면 15분 쯤 지나 Blueberry머핀, Banana-Nut머핀, Carrot-cake머핀, Lemon-Poppy Seed머핀 등이 맛있게 구워져 나온다.

어떨 때는 아이들이 머핀에 식상할까봐 Phillsbury에서 나오는 깡통만 따면 크로상반죽이 이미 되어 있는 걸 사용해 Crescent Dog이라는 걸 만들기도. 깡통을 따서 반죽을 좍 펴놓은 다음 핫독 frank 하나, 치즈 반쪽 올리고 김밥 말듯이 둘둘 말아서 베이킹팬위에 놓아 오븐에 굽는데 아마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일께다. 그리곤 핫쵸콜렛을 타서 보온병에 담으면 준비가 끝나는데 우리반 아이들이 다 오고 한 아이 정도 새로 더 오는 걸 가정해 꽤 큰 걸로 샀다. 뜨겁게 한 5-6시간 유지하는 것을 보니 안쪽이 진공유리로 된 보온병이 확실히 좋긴 좋다.

근데 꼭!!!!!!!!!!!!!!!!!!!!!! 이건 이래서 안 먹고, 저건 저래서 안 먹는다는 녀석이 생긴다. -.-;  그럴 땐 내 잃어 버린 ‘새벽 잠’이 생각나면서 쫌 손해 본 것 같고 섭섭한 마음도 든다(아, 그래도 예쁩니다 ㅎ). 이번에도 한 아이가 그랬는데 오늘은 섭섭한 마음보다는 갑자기 우리집 여성들이 생각나는 거다.

내가 맛이 어떻다 하게 되면 정성껏 음식을 차려내는 아내가 이런 기분이겠구나 하는… 또 있다. 좀 부끄러운 이야긴데…난 어떻게 된게 젖은 돼지고기는 먹질 않는다. 삶은 돼지고기, 편육, 돼지고기 넣은 찌게 등은 이 나이가 되도록 먹어보질 않았다. 그렇지만 노릇하게 잘 구운 돼지바베큐나 로스구이, 혹은 바삭바삭한 베이컨은 잘 먹는다. 내가 봐도 참으로 별난 편식이다. 우리 어머니가 밥상에 먹음직하게 삶은 돼지고기와 김치를 내 쪽으로 밀어 주시면서 “얘, 이 김치에 김칫속 듬뿍 얹고 새우젓에 찍은 고기 한 점 놓아 한 입 먹어보렴!” 하실 때 마다 난 “엄마, 저 이거 원래 안 먹는 거 아시잖아요?”하면서 눈썰미를 찌푸리곤 했다. 우리 엄마도 굉장하시지…이걸(돼지고기 권하는 것) 내 오십평생 해 오셨다는 거 아닌가... 난 단 한 번도 이걸 그냥 받아먹지 않았었고. 참… 미련한 놈이다. 우리 엄니가 얼마나 섭섭하셨을까...

내가 만들어 간 걸 맛있게 먹지 않은 녀석때문에 내 자신을 돌아보는 이득이 있었다. 다음엔 어머니가 그러실 때 넙죽 받아먹어야지…

14 comments:

  1. 어떻게 이런일이..? 보쌈, 족발, 머리고기는 한국인이라면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없이 즐겨먹는 최고의 영양만점 음식들이고 김치찌게에는 돼지고기가 들어가야 구수하고 얼큰한 맛이 살아나는데.. 특히, 막 김장을 한후 새김치에 삶은 돼지고기를 싸서 먹는 맛이란~~ 그런 저로서는 이해가 좀..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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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주일학교 아이들이 선생님 주머니를 괴롭히는 것은 여기도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저희 아이들도 어릴 적에는 주일학교 선생님에게 피자 얻어먹고 그랬는데 말입니다. 주일학교 선생을 하는 사무실 직원도 아이들에게 뭐 사주느랴고 용돈이 다 나간다고 하더군요. ㅎㅎ

    직접 빵을 만들어서 나누어 주시다니 정말 정성과 재주가 비상하십니다. 저야 라면하나 달랑 끓일 줄만 아는데 말입니다.

    편식이라고 하니 생각나는 것이 저는 남의 집에 가서 음식을 잘 먹질 않아요. 음식점에 가면 잘 먹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친구집에 가면 물에 밥 말아먹고 오곤했는데. 아직도 제 친구 형이자 제 선배이신 분이 말씀하시는 것이 "너 아직도 물말아 먹냐?" 그런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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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그렇지 않아도 소주 한잔 생각난다고 아내에게 문자 보내니 수육/불고기/삼겹살구이 중 고르라고 회신이 와서 고민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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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댓글 남겨주셔서 방문해보았는데 주일학교에서 선생님으로 섬기고 계시는군요.자주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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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tomyou74님,
    글쎄 이해가 안 가실 거라니까요? 저도 답답합니다.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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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zizukabi님,
    자기 아이들도 아닌 아이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주일학교선생님들 마음은 그곳이나 여기나 마찬가지 겠지요. 그러니 자기 용돈을 써대는 건 당연하고...

    그 편식도 많이 독특하네요. 그런데 기뻐하십시요! 저희 아버님이 그렇습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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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최기영님,
    행복하신 고민이네요. 그렇게 생각난다고 문자만 치면 척 메뉴를 고르게 해 주시는 부인께 박수를 보냅니다. 장가 잘드셨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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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궁시렁 궁시렁님,
    반갑습니다. 오래 주일학교선생을 하던 아내를 좀 쉬게 해 주려고 시작한 일인데 좋아하는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ㅎㅎ 방문해주셔서 고맙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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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친구중에 '물에 빠진 닭'은 안먹는다며 닭죽이나 삼계탕 거부하는 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차갑게 조리하는 고기류를 잘 안먹죠. 수육을 차가운 샐러드 재료로 쓴다던지..(무슨..냉채 라고 했던거 같은데..ㅡㅡ;;) 취향이란 것이 바로 이런것 아닐까요.. 그리고 저 크로아상 롤.. ㅠㅠ 정말 맛있어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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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우리 집사람도 물에 빠진 소,돼지고기는 안먹습니다... ㅠㅠ
    냄세가 난다나 뭐다나..ㅋㅋㅋ

    저야 중고등부이니...학생들이 한창 자랄때라서 그런지 먹는걸 참 좋아라 합니다^^
    애들과 분식, 아스크림 등등 먹고 집에가면...또 같이 식사를 해야하거든요,

    주중에는 출근을 일찍하고, 퇴근을 너무 늦게해서, 가족들과 같이 먹을 시간이 없어서 주말에는 억지로라도 같이 먹습니다. 하하

    제가 살이 안빠지는 이유중에 하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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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아무리 즉석음식이라지만 정성이 들어가지 않으면 만들수없겠지요. 주일학교 학생들이 부럽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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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June님,
    누구나 그렇게 조금씩 다른 취향(편식보다 훨씬 듣기가 좋네요 ㅎ)이 있는 것 같군요. 아, 맛은 있는데 여기 핫독프랭크는 좀 짜요. 그래서 만들때 길이로 반을 쪼개서 쓰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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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Kris님,
    아, 그거 맞아요! 제가 안먹는 이유도 바로 그 냄새입니다. 비슷한 사람 또 있다고 말씀드려 주삼. ^^

    그렇게 노력하시는 아빠신 것 같아 보기 좋습니다. 그렇다고 중고등부 아이들하고 너무 드시지는 마시고요. ㅋ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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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goodjay님,
    이곳에 들리시는 일이 계시면 직접 만들어 드리겠슴다! ㅋ ㅋ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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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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