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2/2010

천냥 빚

LA의 한국위성방송 회사로부터 도시락만한 리시버와 딱 우산크기만한 장난감같은 위성접시를 공급받아 한국방송들을 시청하게 된 건 약 10년전 쯤. 우리 내외와 아이들은 볼 시간이 없어 그렇지만 어르신들은 별다른 낙이 없으시니 온 종일 그 방송을 벗 삼아 지내신다.

비바람 불고 천둥번개라도 칠 땐 수신하는 전파의 질이 떨어지면서 방송이 계속 끊기는 바람에 굉장히 불편해 하시는데 지난 주말 큰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방송이 아예 안 나온다고 하셔서 들여다보니 리시버가 먹통이 돼서 전원이 전혀 들어오지를 않는거다. 바로 그 회사에 전화를 걸어 교환을 요청한 것이 지난 토요일. 아주 상냥하고 친절한 목소리의 여자직원이 말한다. “한국에서 먼저 저희 회사로 물건이 와야하고 거기서 다시 손님댁으로 부쳐야 하기때문에 한 2-3주 걸릴겁니다.” 고 했다. “아…..그래요….쩝.”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어르신께 말씀드렸더니 돌아버리겠다 하신다(ㅋ ㅋ 죄송합니다). 비올 때 잠깐 몇 분씩 안 나오는 것도 견디기 힘든데 어떻게 2-3주를 기다리냐고…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시다. 월요일인 오늘 다시 그 회사에 전활했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차분하고 역시 친절한 남자직원이 받음. 그래 어떻게 좀 빨리 보내줄 수 있는 방법이 없냐고 물었다. 그 직원 왈, “원래 2-3주 걸리는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제가 '러시리스트(rush list)에 손님을 넣어' 드리고, 기계가 도착하면 '특별히 빨리' 보내드리도록 조치를 취하겠으니 걱정마세요.” 한다. 얼떨결에 “아, 예 고맙습니다!”하면서 마치 뭐에 홀린 것 처럼 전화를 끊고 나서 생각하니...

나중에 통화한 남자직원이 정말 러시리스트에 우릴 넣어 줄 건지 아니면 심지어 그런 리스트가 존재하는 건지 아닌지도 난 모른다. 그리고 물건이 오면 특별히 빨리 보낼 재간이 있는지 그 역시도 모른다. 물건이 도착한다 해도 그게 러시였는지 아니였는지 내가 확인할 방법도 딱히 없고. 뭐 하나 달라진 것 없이 2-3주 걸리는 건 지난 번 여자직원과 통화했을 때와 마찬가지다. 근데 기분이 훨씬 낫다. 꼭 물건이 빨리 올 것 같고 좀 늦게와도 왠지 관대하게 이해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되어 버렸다. 상황과 답이 똑같은데 말을 저렇게 하지 않고 이렇게 하니 완전히 다른 답 같다. 마치 전 여자직원이 NO했는데 이 남자직원은 YES한 것 같은 기분. 차이라면 여직원은 역시 친절하게 있는 사실 그대로를 설명했고, 남직원은 있는 사실에 덧 붙여 '자신한테는 손님이 좀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강조한 정도라 해야 하나...?

그래서 이 사람 참 지혜롭게 말을 하는구나 하면서 속으로 웃었다.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이런건지... 속담사전을 뒤져보니 "Your tongue can make or break you" 이 영어속담중 제일 비슷한 표현같다.

6 comments:

  1. 새단장 하셨네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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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방금 '앗, 내가 잘못 들어왔나?' 했어요. ㅋㅋ
    새로운 분위기의 블로그, 좋아보이네요. 조금 전 점심을 먹기 위해 찾아간 레스토랑에서 종업원의 불친절한 태도가 마음에 안들어 빨리 점심을 먹고 나왔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길에서 과일을 파는 아저씨에게 딸기 한바구니를 사며 받은 아저씨의 미소는 3배나 비싼 점심밥보다 더 값졌습니다. ^^
    말로 천냥 빚을 갚을 수 있듯이, 따뜻한 미소로도 천냥 빚을 갚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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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Seulkily님,
    원래 이렇게 자주 바꿔줍니다. 한 가지 배경을 고집한다고 누가 상주는 것도 아니고...제가 찾아논 배경들을 올려 놓고 설명을( http://oldman-james.blogspot.com/search/label/Templates ) 해 놓았는데 사용해 보세요. 잘 됐네요 주로 여성적인 배경들이라 전 잘 안써요. ^^; 그리고 이건 옛 방식의 배경바꾸는 방법이고 요즘 구글에서 새로 시험하고 있는 배경바꾸는 tool도 산뜻합니다. 그건 http://draft.blogger.com 로 가시면 "Design"탭 밑에 있는 "Template Designer"에 있어요. 도움이 됐나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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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GON님,
    ㅋㅋ 제대로 오셨습니다. 맞아요 따뜻한 미소가 어느 때 보다도 필요한 지금이지요. 따뜻한 미소를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우리가 되도록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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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저런.. 땅이 넓어서 인가요, 마인드가 달라서 인가요.. 한국식 서비스에 익숙한 저로서는 이해가 잘 안되네요.. 2-3주라니요, 그것도 원래 그렇다니.. 흠.. 하긴, 아이폰이 국내에 도입될때도 애플의 독특한 서비스정책 때문에 혼란이 많았었죠. 지금도 여전히 그렇구요.. 하지만 그런게 'Global Standard'라니 받아들일수 밖에요.. (근데, 댓글이 님이 말하고자 하는 요점에서 많이 벗어나있는것 같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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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ㅋ ㅋ 저도 제 요점이 무엇이었는지 잘 모르겠다는...^^;; 그래요. 여기는 좀 별나요. 그렇다고만 하면 딱히 따지는 사람도 없고 그러니까...ㅡ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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