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잘 아는 사람은 대충 짐작을 하겠지만 명동에서 화양동 어린이대공원입구까지는 꽤나 먼 길이다. 지금 이 두 군데를 연결하는 버스가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버스를 타고 가도 한 30-40분은 걸리는 거리일꺼다. 근데 이 거리를 걸어서 간다면?
하나도 안 힘들었고 시간(아마 두세시간은 족히 걸렸을)이 어떻게 지나 가는지도 몰랐다. ㅎ ㅎ 왜냐하면 아내와 연애할 때 였기 때문. 꼭 연애뿐 아니라 중매로 만난 사이도 교제기간동안에는 모두 그랬을 것이지만 그녀 집 앞에 다다랐을 때 너무 빨리 온 것 같아 안타까울 정도였다. 내내 손을 잡고 걸었다. 언제 어디서 무엇때문에 만나도 꼭 손을 잡고 걸었다. 비가 오거나 눈이라도 올라치면 더 좋았다. 왜냐하면 우산쓰는 것 아니면 미끄러지는 것을 빙자해 더 찰싹 붙어 걸을 수 있었기 때문.
근데…요즘은…잘 안 그랬던 걸로 기억한다…왜냐하면 어떨 땐 내가 좀 겸연쩍게 느껴 졌었기에. 다른 사람들이 볼 때 너무 닭살이라고 할까봐… 근데 어제 가게를 같이 나오면서 생긴 일.
차에서 내려 가게 입구로 걸어가는 데 내가 몇 발자국 앞서 걷기 시작. 그런데 아내가 바짝 내 왼쪽 옆으로 다가서더니 자기 어깨를 툭 내 어깨에 부딪친다. 그래서 무심결에 바지주머니에 찔러넣고 있던 왼손을 꺼내 아내의 손을 잡았는데 아내의 표정이 눈부시게 환해진다. 그와 동시에 갑자기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한 가지가 떠올랐다. 그래, 이 위치가 바로 그 위치야!
연애할 때는 아내를 보호한답시고 왼쪽 인도로 걸어갈 때는 아내가 왼쪽에 서게 했고, 오른쪽 인도에서는 아내가 오른쪽에 서도록 해 내가 꼭 찻길쪽으로 걸었었다. 하지만 결혼식에서 주례하는 분 앞에 서는 순간 부터는 아내가 왼쪽에 섰었고, 그 이후 26년동안 어디를 걷게 되던지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아내가 줄곳 왼쪽에서 걸었던 바로 이 사실을 늘 무심코 지나치다가 갑자기 어제 그 순간에야 깨달아 진 것이다. 둔한 놈...
이것 뿐이 아니다. 어떤 일에도 어떤 상황에서도 나에게 대한 신뢰를 변치않고 지켰던 사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한 팀이 있다. 선수는 딱 한 명, 치어리더도 역시 한 명. 선수는 그리 잘 싸우지도 못하고 노상 져서 들어 오는데... 치어리더는 전혀 개의치 않고 펄쩍펄쩍, 앞으로 뒤집고, 뒤로 뒤집고, 풍차돌기, 짝짝짝. 피부가 검어지는 것도, 혀가 바싹 타들어가 거북이 등처럼 갈라지는 것도, 입술이 말라 터지는 것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 벌건 땡볕아래서 쉬지 않고 목이 터져라 그 못난 선수를 향하여 잘한다고 소리 지른다...그래서 어깨가 축 쳐저서 들어오던 선수가 어느새 마치 개선장군이 된 것 같은 기분으로 자기 벤치로 돌아오게 하는...
그런 그 사람을 생각하면 겸역쩍은게 뭐 그리 대수랴. 밖에서 손 잡아주는 그런 간단한 동작하나로 저렇게 빛나도록 환해지는 얼굴을 볼 수 있는데…"이 사람, 이제보니 완전 푼수네!" 혹은 ”별 것 아닌 것 갖고 아예 소설을 쓰세요”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는데… 그 짜증섞인 야유도 난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는...ㅎ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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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여 전 올렸던 포스팅인데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나 자신에게 조차 잊혀 졌던 글. 꽃다운 스물 한살에 북적거리는 대가족의 꼴찌로 들어오게 해 일평생 고생만 시키고 이젠 좀 편하게 살게 해줄 때도 됐건만 아직도 그 고생을 못 벗어나 미안하고, 그래서 아내에 대한 마음이 점점 애틋해 지는 요즘... 좋았던 그 옛 시간들을 되돌아 보려 다시 올렸습니다.
미소짓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
ReplyDelete물론 그런 경험이 있으시니 미소지을 수 있으신 거겠지요. ^^;
Delete"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은 언제인가?"
ReplyDelete"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다"
-레프 톨스토이-
소중한 시간.. 소중한 사람.. 후회없이.. 아낌없이.. 사랑하시길..
톨스토이가 그런 말을 했군요. 예, 그러겠습니다!
Delete다른 글들보다도 더욱 이글은 안봐도 그만, 봐도 그만이 아닌 글이군요. 부디 그 마음 오래 간직하시길 바랍니다^^
ReplyDelete말씀하신 대로 오래 오래 간직하겠습니다. ^^
Delete저도 꼭 지켜주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현재 우리 앞에는 넘어야 할 큰 산이 있지만, 그 사람을 지켜주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ReplyDelete두 분의 사랑 오래오래 행복하게 나누시길 바랍니다. 부러움으로 시작하는 하루군요. =)
아! 다치신 곳은 좀 괜찮으신지요? 빠른 쾌유빌겠습니다.
ReplyDelete그런 마음이 계시니 넘으셔야 할 큰 산도 별문제가 아닐꺼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친 다리는 이제 95% 회복되어 제가 생각해도 꾀병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입니다.ㅋ ㅋ 감사합니다.
Delete겨우 글 하나 달랑 있는 제 블로그에 다녀가셨네요. 어떻게 오셨나 신기하면서도 또 감사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찾아왔다가 따뜻한 글들 너무 잘 읽고 갑니다.
ReplyDelete제 첫 블로그 이웃이세요 :)
영광입니다. 현재까지 저와 관심사 한 가지가 같네요. 가지고 있는 직업상 네트웍이 문젠지 아니면 컴퓨터가 문젠지 분별하려고 저도 많이 뜯습니다. ㅋ ㅋ
DeleteOh. I had lived near 화양리 (송정동). 장안국민학교출신입니다. 혹....
ReplyDelete앗! 그럼 한 두 번은 지나쳤을...^^ 처가는 원래 경주에 있는데 처와 처남이 하숙을장안동쪽에서 했었더랬습니다. 인연이라면 인연이군요. ㅋ
Delete담담한 수필 같으네요
ReplyDelete글 쓰고싶게 만드십니다
저도 님의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덕분에 호주구경도 잘 했구요. ^^*
Delete이 글이 여럿 몽롱하게 합니다. 과거로, 추억으로, 돌아볼 사랑으로, ㅎ~....by anemos
ReplyDelete그러셨군요. 마음에 떠올리면 양쪽 입가가 위로 올라가게 되는 그 누군가가 모두에게 있지요. ^^
Delete오늘은 좀 피곤했는데 모처럼 찾아뵙고 나니까 파란 하늘을 보는 것처럼 참 좋습니다.
ReplyDelete힘드신 하루이셨군요.선교사님 늘 건강하셔야 할텐데...
Delete구글 블로그에 오래간만에 들어왔다가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을 읽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은 참 행복합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서로에 대한 사랑이 변하지 않고 같이 살아가는 부부를 보면 보는 사람도 미소짓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그 아름다운 시간들을 더욱 더 행복하게 살아가시길 기도합니다.
ReplyDelete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그 관계를 귀히 여기며 빌어 주신 복을 감사히 누리겠습니다. 늘 올리시는 음악 잘 듣고 있지요. ^^ 건강하세요!
Delete아내의 손을 님처럼 꼭 잡아본 적이 좀 오래되는것 같아 읽다가 감동이 되었습니다
ReplyDelete오랜만에 들어와 보네요 늘 구수한 인간향취가 나는 님의 글에 감동입니다
한가지 기도부탁을 드려도 될지요.
이곳 한국에서 작을 수 있지만 하나님의 역사가 진행되는것 같습니다.
그곳에서의 작은 성원이 큰 기적을 만드는데 역사되실 것을 기대하며..
2011 년 미.코 이성혜 관련(http://healthlung.blogspot.kr/2012/11/2011.html)
반갑습니다. 하나님 비전을 품은 자녀가 미스유니버스에 참가하게 되는 것 결코 작은 일이 아닌 듯 합니다. 하루에 열번씩 '추천' 클릭하고 있습니다. ^^
Delete여기에 들리는 분들 계시면 가셔서 투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