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5/2010

정찬성이라는 청년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 방과후 터덜 터덜 걸어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서울운동장 뒤의 으슥한 골목길을 지나는데 한 30여명 되는 고 2-3으로 보이는 떼거리가 길을 막아섰다. 그냥 못본 척 하고 지나려는데 1학년짜리가 건방지게 너무 크다는(중3때 이미 179cm였으니까. 그리고 고틍학교 교복에는 목에 I, II, III 식으로 학년이 적힌 하얀 핀을 달고 있었다) 트집을 잡으며 다짜고짜  덤벼들어 때리기 시작하는 거였다. 한 30분을 전부 달라붙어 때리다가 때마침 어른들이 지나가는 덕분에 모두 튀고 겨우 죽는 것은 모면했다. 피투성인채로 벌벌 기어서 그 길로 찾아간 곳이 신당동육교앞에 있던 킥복싱체육관. 나 오늘부터 킥복싱을 배우려니 등록하게 해 달라고 해서 바로 그 날 부터 한 2년간 수련했던 것 같다.

이런 배경으로 해서 텔레비젼에서 보여주는 격투기를 관심있게 본다. 그런데 오늘 우연히 비쩍마른 동양인이 UFC에서 한참 잘 나가는 Leonard Garcia라는 선수와 치르는 경기를 보게됐다. 이름을 자세히 보니 "Chan Sung Jung"이라고 표기. 당연히 자세를 고쳐 앉아 보기 시작했다. 이 선수가 워낙 신인이고 Garcia가 워낙 유명한 선수여서 그런지 심판들이 무리해서 1:2  정선수가 진 것으로 판정을 내렸지만 경기내용은 정선수가 많이 나은 것으로 보였다. 둘 다 놀라운 힘으로 마지막 1초까지 싸우는 바람에 UFC격투기사상 이런 굉장한 경기가 없었다고 아나운서들이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판정때도 관중들의 야유가 Garcia를 축하하는 박수소리를 완전히 묻어버렸다. Garcia자신도 경기후 소감을 말해달라는 아나운서의 부탁에 약간 겸연쩍은 듯이 어깨를 으쓱하며 "내가 심판이 아니니 뭐...난 그저 열심히 싸웠을 뿐이지요."라고 함으로써 자신조차도 판정결과가 의외였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이 청년이 앞으로 더 높은 자리를 향해 올라가는 모습을 볼 기회가 있을 것 같다. 열심히 빨리 정상에 올라, 빨리 벌고, 빨리 그 세계에서 빠져 나가도록 하여라. 몸이 축나고 상하기 전에... 미국팬들이 붙여준 별명이 "Korean Zombie"란다. 정말 징그러울 정도로 뒤로 물러서지 않고, 클러칭 한 번 하지 않고, 가격을 당해도 쓰러지지 않고 앞으로만 앞으로만 저돌적으로 치고 나가는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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