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8/2018

등 떠밀려서

지금 생각해도 처음 시작을 순수하지 못한 의도로 시작한 봉사였다.

어느 날 교회 담임목사님께서 “우리교회가 돌아오는 토요일에 리치몬드밀알에 가서 점심을 대접하고, 제가 말씀을 전하게 되는데 아드님을 데리고 한 번 가셔서 견학도 하시고 아드님이 맘이 내킨다고 하면 자원봉사를 시켜보시지 않으시겠어요?”라고 물어오셨다. 그렇지 않아도 대학입학원서 쓸때 사회봉사경험여부와 봉사시간을 기입하면 대학에서 입학사정하는 사람들의 눈에 띄어 훨씬 유리하다는 다른 부모들의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던 터라 목사님한테 ‘등 떠밀린’ 기분으로 녀석을 데리고 따라갔다. 한 번 참석해 보더니 계속와서 봉사하기로 결심한 녀석에게 라이드를 주느라 나도 덩달아 밀알사랑의 교실에 매주토요일마다 참석하게 되었고.

사랑의 교실에 참석해 점심만 축내던(저, 엄청먹습니다) 나에게 어느 날 밀알 목사님께서 조심스럽게 물어오셨다. “많은 장애우들이 차편이 없어서 오고 싶어도 못 오는상황인데 라이드자원봉사를 해보시지 않으시겠어요?” 헉! 아들녀석에게 차가 생겨 이젠 같이 안와도 되겠다 싶었는데...세상에 이런 일이...

그렇게 시작한 것이 길지는 않지만 벌써 몇해가 지났다. 그러면서 나와 아들녀석 둘 다 이전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장애인들과 그 가족들이 겪어야 하는 아픔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고, 특히 녀석에게서 변화가 생기는 게 눈에 띄기 시작했다. 자기 자신밖에 생각할 줄 모르던 녀석이 식구나 친구들을 조금씩 배려하기 시작하는 모습, 참을성 제로였던 아이가 자기가 담당해 보살피는 장애우를 사랑의 캠프까지 따라가 밤잠을 설치며 보살피는 걸 옆에서 직접 지켜볼 수있었던 건 충격이요 기쁨이었다(나 역시 뉴저지에서 매년 열리는 사랑의 캠프에 버스운전사와 배식담당으로 참석하기에).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을 자신이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자신감이 학교생활태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 성적이 부쩍 오르는 기이한(?) 현상도 생겼고.

나는 나대로 아들녀석에게 맞먹는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목사님과 리더들이 시키는 철저한 훈련을 받고 장애우들의 특징, 성격, 증세, 복용하고 있는 약,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등의 파악과 암기를 통해 단어의 뜻도 모르던 ‘Autism’이나 ‘Down Syndrome’ 등을 이젠 다른 사람들이 물어보면 더듬거리면서라도 설명해 줄 수 있게 되었고, 몸담고 있는 직장에서 장애학생들을 보면 이젠 뛰어가 이름을 불러주며 인사도 나누고, 수년 전 교회에서 겪었던 어려운 일로 인해 나에게 생겼던 극심한 대인기피증이 조금씩 치유되기 시작하는 경험도 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사람이 무서워 교회친교시간에 밥도 주차장에 나가 혼자 먹었다면 누가 믿을까?). 지금은 대중앞에 나가 말하는 것이 편할정도로 바뀌었으니 그 기피증이 완전히 극복된 것 맞지싶다.

이렇게 우리 부자는 밀알에 나가서 좀 돕는 흉내만 내고 오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어도, 그 분은 우리를 그렇게 그냥 놔두시지 않았다. 불순한 우리 부자에게 거꾸로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정말 타산이 맞지 않는 은혜를 허락하셨으니 말이다.

사랑의 교실에 가면 먼저 예배를 드리고 점심식사를 하게된다. 한달 전 까지는 먹고 난 그릇과 접시, 수저들을 봉사자학생들이 씻어왔는데 여기저기 신경써야할 곳이 많은 그들이 설겆이를 하면 쓰겠나싶어 우리 남성성인봉사자들이 설겆이를 맡기로 했다. 지난 주 식사가 끝나고 그릇들을 씻고 물기를 닦고 부엌을 나와 장애우들과 봉사자들이 어우러져 운동을 하는 모습을 멀찌감치 바라보며 뜬금없이 마음속으로 이런 질문을 했더랬다.

“여기 와서 최선을 다해 정성과 사랑으로 섬기는 학생봉사자들과 성인봉사자들, 그리고 환한 얼굴로 같이 뛰노는 장애우들을 보니 좋으시죠?”

이어 이런 대답이 들리는 듯 했다.
“그래, 난 장애친구들과, 굶주린자, 헐벗은자, 목마른자, 병든자, 갇힌자, 고아와 과부들 걱정에 매일 밤을 꼬박 새운단다. 내가 그들을 너무 사랑하는데 내 손과 발이 되어서 그들을 보살펴 줄 멀쩡한 자녀들은 턱없이 부족해 속상하단다. 이제 내 마음을 조금 알겠니? 그래 바로 저 모습이 천국의 모습이란다.”

눈물이 핑 돌며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들어 아무도 없는 부엌으로 다시 뛰어 들어갔다.
나에게 있어 그 분을 알아가는 건 아직도 한참이나 먼 길 이고 현재진행형이다.

<2015년 6월 밀알소식 세계판에 실린 간증>

1 comment:

  1. 안녕하세요. 정말 몇년만에 댓글을 달아 봅니다. james님도 이 게시글이 정확히 1년전 게시글이라 블로그를 더이상 운영하지 않으시는 것 같기도 합니다. 기억 하시려는지 모르겠네요. 저는 작년에 미국으로 이민와서 조지아주에 살고 있습니다. 조만간 뉴저지로 올라갈 것 같기도 한데... 어쨌든 문득 생각이 나서 이렇게 흔적 남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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