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posts with label 직장. Show all posts
Showing posts with label 직장. Show all posts

2/19/2016

우리가 그토록 믿고 의지하는 것들

어제 내가 관리해야 하는 학교중 한 학교에서 외부에서 들어오는 메인 네트웤라인이 다운되는 바람에 그곳에서 하루를 보내며 느꼈던 것.

지난 주말에 그 지역에서 천둥번개가 치면서 정전이 되었었고 그로 인해 Verizon전화회사에서 공급해주는 광섬유 접속기기에 이상이 생겨 인터넷이 먹통이 되었던 것. 전기는 복구가 되어 교실에 그럭저럭 불은 들어오지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기에 선생들은 평소처럼 자신들의 노트북을 사용해 유툽등 온라인자료를 사용해 수업을 진행하지 못하고 칠판과 손, 그리고 입을 사용해야 했던 것.

불편했던 건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중앙관리소에서 인터넷을 통해 관리하는 냉난방장치와 냉온수조절장치 그리고 전화가 그 예. 인터넷이 복구될때 까지 이 추운 겨울에 학생들과 직원들은 난방이 안되는 상태로 지내야 했고, 화장실 변기에서는 김이 펄펄나는 뜨거운 물이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냉온수 조절도 역시 먹통이 되니) 변기에 앉아 볼일을 보곤 엉덩이를 데이는 사람은 없었는지 궁금할 정도.

현대화니 뭐니 해서 앞서간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라는 걸 뼈저리게 느낀 하루.

5/01/2015

3D 프린터

근무하는 학교중 한 중학교에서 3D프린터를 구입하곤 사용은 커녕 설치도 채 못해 나한테 좀 도와줄수 없냐고 부탁이 들어 왔다. 그것에 관해 좀 배워볼까하는 마음으로 그러마 했고.

가서 보니 정말 프린터만 넙죽 배달되어있고 설치설명서, PC용 설치 프로그램, 사용설명서 등이 전혀  따라오지 않았다. 얼마전 다큐멘터리에서 본 Makerbot회사제품인데 메스컴에서 떠드는 것 처럼 "인재들이 모여서 혁신적인 제품을 만드는"지는 몰라도 참 책임감없고 대책없는 회사다.

이메일을 통해 tech담당자로 부터 단답형의 회신이 한번 오는데 꼬박 1주일이 걸리는 싸움을 두달간 벌여 간신히 프로그램다운로드를 할 수 있었고, 나머지는 내가 직접 성공과 실패를 거듭해 익히면서 사용메뉴얼을 학교에 만들어줬다.

근무하는 고등학교의 CAD(Computer Aided Design) lab들은 대부분 $20,000-$40,000 정도 나가는 3D프린터들을 하나씩 보유하고 나름 잘 만들어진 메뉴얼이 프린터회사로 부터 따라 오는데 이 중학교에서 구입한 것은 $1,200 하는 싸구려라 그런지...

시험삼아 프린트한 것들을 올려본다. 복잡하지 않은 모양들이라 하나 만드는데 45분-1시간 정도 소요됐고, 호루라기는 안의 빈공간에 공모양의 알을 만들어 불면 실제로 알이 안에서 구르면서 제대로된 소리를 내더라는.




9/18/2014

19금 토크

적을까 말까 많이 망설이다가 나처럼 미국에 살면서 이런 황당한 경우를 당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좀 낮뜨거울수도 있는 이 이야기를 쓴다.  미성년 아이들은 모두 가라.

몇주전 내가 속한 팀원들이 한 고등학교에 모두 모여 작업을 하는 일이 있었다. 그 학교의 CAD Lab에 있는 30여대의 설계용 컴퓨터에 건축설계전문프로그램인 AutoDesk란 프로그램의 설치작업을 하던 중.

한 컴퓨터에서 그 작업을 하고 있던 동료하나가 하는 말.

동료1: "어, 왜 컴퓨터에서 소리가 안나는거지?"

: "그럼 사운드드라이버를 다시 설치해 봐!"

동료2: "맞아, 그 컴퓨터기종은 소리가 안날때 사운드드라이버 재설치가 정답이야!"

동료1(몇분 만지더니): "설치했는데 왜 소리가 나지 않는거지?"

: "설치하고서 테스트를 해봤어?"

동료1: "아니?"

:  "아니, 이런 친구를 봤나? 소리파일을 하나 찾아 스피커로 소리가 나는지 확인을 해봐야 할 것 아니야?" 라고 말하면서 사용한 영어가 "Make some noise!" 였다.

동료1, 2, 3, 4, 5 (일제히 빵 터지면서): "우하하하"

모두들 뒤집어지며 한 3분을 숨을 못 쉴 정도로 끼끼 대더라는...

동료3: "제임스, 너 우리중 제일 젊잖고 허튼소리 안하는 친구인지 알았는데 이제보니 괴짜구나?!! 우헤헤"




정말 왜들 그러는지 몰랐고 난 눈만 멀뚱거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모두들 아무일 없었다는 듯 작업계속. 작업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가서 옆에 앉은 친구들에게 살짝 물어봤다. 

: "야, 아까 내가 'Make some noise'라고 했을때 왜들 웃은거니?"

동료4: "아, 그거? 푸흐흡"

동료5: "너 정말 몰랐구나? 그 말 잠자리에서 쓰는 말이잖아? 상대에게 '신음소리좀 내 봐!' 하는"

(얼굴이 벌개지며): .....



7/15/2014

사람 병신만드는 문화적 차이

얼마 전 한 고등학교에서 서버를 점검하고 있는 중 이었다. 그 학교의 교감 (Assistant Principal)하나가 서버실로 날 찾아왔다. 혹시 한국말을 할 줄 아냐고. 그렇다고 했더니 좀 도와달란다. 사무실로 따라 갔더니 선생하나와 한국학생하나가 기다리고 있었고, 한국에서 온 지 몇 달 되지 않은 학생이라고 하는데 얼굴이 울상이다. 원래 내 일은 교무와 완전히 분리되어 내가 학생과 관련해 도움을 줄 일도 받을 일도 없게 되어 있다. 도리어 괜히 학교와 학생간의 일에 끼어드는 것을 늘 경계하도록 훈련을 받는 편이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어떤 학생이 온라인으로 무슨 성인사이트에 갔었는데 선생이 목격하고 그 학생쪽으로 달려가니까 얼른 브라우저를 닫고 로그아웃을 해 버려 징계를 위해선 증거가 필요하다고 교장이나 교감이 서면으로 정식요청하면 난 서버에 기록된 그 학생이 들렸던 사이트의 리스트를 주면 끝이다. 나에게 며칠 정학을 줄까 아니면 몇 주 정학을 줄까 물어온다면 대답은 “난 모르니 너희들끼리 결정해.” 해야지 “전번에 보니까 어느 학교에서는그런 경우 3일 정학을 주던데?”식으로 간섭하게되면 나중에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학생이 한국애라 처음부터 그냥 난 몰라라 할 수 없었다.

화가 많이 난 선생이 씩씩대며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는데 다음과 같다. 전날 숙제를 내 줬고 오늘 숙제를 검사하는 날 이었다고. 이 학생이 숙제를 내어놓질 않길래 물었단다. “You haven’t done your homework, have you?”(숙제 안 해왔지, 그치?) 그러니까 학생이 대답하길 “Yes”(한국에서 하던대로 "예, 안해왔어요"라는 의미로)했단다. 그래서 그럼 좀 보자고 선생하 재촉하니까("Yes"란 대답은 미국에서는 숙제를 해왔다는 대답이니까 당연히) 보여주질 못하고 있더란다. 그래서 같은 방법으로 다시 물었고, 학생은 역시 Yes라고 답하곤 여전히 숙제는 제시하지 못하더란 것이다. 그 여선생이 화가나도 무지났다. 아이가 자기를 다른 학생들 앞에서 무시하고 장난치는 걸로 생각하고 그 아이를 끌고 교감실로 찾아간 것이 사건전말.

아이에게 물었다.
“얘, 이름이 뭐니?”
“xx인데요?” “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줄 수 있겠니?”
“선생님이 숙제 안 해왔지, 그치? 해서 전 예 맞아요 안해왔어요 라고 대답한 것 뿐이데 자꾸 화를 내면서 숙제를 내 놓아 보라고 하는데 답답해 미치겠어요. 사실 숙제도 하기 싫거나 시간이 없어서 안 한게 아니예요. 숙제 자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해도 안되고 집에서 형이나 누나같은 번역해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도 없구요. 나 정말 숙제를 남들 처럼 잘 해오고 싶은데…”

나도 처음 미국에 와서 몇 번 겪었던 일이라 아이에게 간단하게 설명을 해 줬다. “앞으로는 한국에서 대답하던 방법은 잊어버리고 숙제를 안 해 왔으면 No, I did not do homework. 라고 하고, 해 왔으면 Yes, I did.라고 해야 한단다.”

선생과 교감에게 같은 질문에 정반대의 대답을 하는 문화적차이가 있는 걸 설명했더니 눈이 동그래지며 놀라는 표정이다. 앞으로도 새로 오는 한국학생들이 이런 문제를 겪을 텐데 그때마다 다른 선생들에게 잘 설명해 달라고 부탁하고 그 아이에게는 내 명함을 하나 건네 줬다. 잘 모르는 게 있으면 전화하거나 이메일로 물어보라고. 얼굴이 다시 밝아지는 그 아이를 보니 조금 마음이 놓였다. 한국에선 공부 잘 했어보이는 아인데…여기선 이런 황당한 경우를 당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모든 면에서 뛰어나게 잘 할꺼라는 건 알고 있지만 한 동안 피치못하게 이런 경험을 여기저기서 겪어나가야 하는 그 아이가 안쓰러웠다.

(년전에 올렸던 글)

12/19/2013

12월의 단상

1. 처음 블로그를 시작했을 땐 방문자가 거의 없어 마치 일기장 적듯이 느낀 대로 본 대로 속에 있는 생각들을 나름 솔직하게 글로 담았었지 않나 싶다. 허나 이젠 블로그가 페이스북이나 구글플러스 등과 연동해서 돌아가면서 부터는 방문객이(주로 지인들) 꽤 늘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야기 하는 것이 조심스럽고 많이 움츠려 든 상태. 결국은 그냥 일상적인 사실만을 열거하는 쪽으로 가야 하는건가...고민이라면 고민이다.

2. 막내가 2주간의 겨울방학숙제로 1000조각짜리 퍼즐을 완성해가야 한단다. 둘째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역시 같은 선생이 같은 과제를 내어줘서 온 식구가 달라붙어 완성했었는데 처음 그 과제를 받아왔을때는 별 이상한 과제도 다 있다 싶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온 가족이 오손도손 모여 이야기도 나누고 즐거운 시간을 가지도록 하는 선생의 배려였다는 걸 깨달았었다. 이번에도 역시 같은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게되어 좋다. 하지만 1000조각...장난이 아니다.

3. 미국으로 이민와서 알게 된 후 지난 27-28년을 같이 한 동갑내기 친구들 대여섯이 부부동반으로 한 가정에 오랜만에 모여 저녁을 먹었다. 모이기만 하면 늘 내 자가 너희들 자보다 더 길다고 외치던 녀석과 그걸 지지않으려고 반박하고 흉을 잡느라고 새벽 두세시까지 티각태각하던 녀석, 그래서 다른 친구들과 배우자들을 늘 피곤하게 하시던  두 녀석이 이번에 보니 철이 많이들 들었다. 전자의 녀석이 "이제보니 많이 가지는게 다가 아니더라"는 고백을 진지하게 했는가 하면, 믿음에 대해선 콧방귀만 뀌던 후자의 녀석이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죽음'과 '신'이라는 단어를 쉴 새 없이 사용하며 신앙에 무의식적 관심을 보이는 걸 보니 얼마 안 가 친구들이 모인 식사자리에서 "기도합시다!"를 곧 외치지 않을까 싶다. 그런 두 녀석을 보니 마음이 참 좋다.

4. 살다보면 많은 아픔이 있지만 같이 오랜기간 신앙생활을 하다가 피치못할 여러 이유로 떠나는 믿음의 친구들을 보내는 일이 마음을 많이 아프게 한다. 새해부터는 다시 못보게 될 거라는 한 가정을 생각만 하면 일이 손에 잡히질 않고 가슴이 먹먹해지며 눈이 시려온다. 내가 많이 사랑하고 든든해 하던 내왼데...하도 골똘히 그 생각만 하다보니 흰머리도 부쩍 는 것 같고. 

5. 최종 운전면허시험을 잘 통과한 막내의 정식면허증이 도착했다. 그래 토요일 하루를 잡아 은행에 데리고 가 체킹구좌를 열어주고 앞으로 차에 넣는 개스나 간단한 지출에 카드를 사용하되 아껴서쓰고 쓸데없는 지출이 없도록 본인이 책임을 져야한다고 일렀다. 세차장에도 가서 내가 타던 차의 안팎을 같이 청소하고 차키를 완전히 넘겨줬더니 하는 말 "이차 정말 내꺼야, 이젠?" 그러더니 궁금해진 모양이다. "그럼 아빠는 뭘 타고 다닐려고?" 그래서 "1991년형 혼다"라고 했더니 자기에겐 신형차를 주고 아빠는 22년된 차를 탄다는 소리에 좀 미안한 표정. 됐고 제발 안전주행만 해다오.

6. 직장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중. 그 중 하나가 최근 승인된 3천만불 정도의 예산으로 카운티내 모든 학교에 있는 3만여 컴퓨터를(desktop and laptop)를 싸고 간단한 Chrome tablet으로 3년에 걸쳐 교체해 나간다는 플랜. 그에 따른 고장이나 부품교체등을 위한 depot를 (외주해서)별도로 운영한다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나와 동료들의 미래가 불투명해 지는 듯. 새로 IT 디렉터로 온 젊은 녀석이 장래의 더 좋은 직장과 좋은 자리를 위해 '엄청난 예산절감'이라는 업적을 자신의 이력서에 꾸겨 넣으려 바둥대는 것이 눈에 보이는 듯 하다. 그런 과정에서 누가 잘리고 누가 피해를 보던 눈깜빡 한 번 안하고 질러 버릴 위인이라는 걸 이미 알아버려서 더 짜증스럽고. 현재의 직장을 선택할 당시 공기업에서 일하는 것이 사기업에서 일하는 것 보다는 급료도 적고 보너스도 없어 매력이 없어보였지만 그래도 사기업처럼 간헐적으로 몰아치는 감원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라 생각하고 망설이지 않았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변하고 있다. 

8/31/2013

여름의 끝자락에서

1. 직장에서 개인소지품을 정리하는데 조그마한 봉지가 손에 든 물건들 사이에서 툭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뭔가 하고 자세히 보니 지금의 직장에서 근무 5년차가 되었을때 기념이라고 주었던 걸 그냥 쳐박아 뒀던 기억이 나는 자그만 배지. 5년차 뿐만이 아니고 10년차, 15년차...25년차까지도 똑같은 이 싸구려 배지를 무슨 큰 상 주듯이 주더라는. 그때 생각에도 너무 무성의하다 싶어 수여한(?) 사람앞에서 버리긴 뭐하고 해서 사무실로 돌아와서 아무데나 휙 던져 놓았던... 어디 달라스토어에서 한꺼번에 몇백 개 구입해 매년 나눠주는지 싶다. 이번엔 쓰레기통에 진짜 넣었다.


2. 처음 당뇨와 혈압진단을 받은 다음, 운동과 식사조절로 복용하는 약을 반으로 줄인 후에도 수치를 유지할 수 있게되어 두번 째 의사를 방문했을 때 원래 조제해 준 약을 내 임의로 줄였노라고, 그리고도 그 전 수치를 유지할 수 있노라고 이야기 했더니 의사가 자기도 좋게 생각한다고 했다. 덧붙여 그럼 더 열심히 체중을 줄이고 섭취하는 음식을 더 살펴 아예 약을 끊는데까지 가보자고 해서 그리 하겠다고 함.
이후 체중을 15파운드정도 감소시켰고 모든 약을 중단한지 지금 3주째. 당과 혈압수치는 계속 정상을 유지하고 있다. 요즘은 같은 양의 운동을 해도 체중이 쉽사리 내려가지 않는 한계점에 도달한 듯 싶어 선배님들의(?)조언을 듣고 싶다.


3. 둘째와 막내가 유럽에 다녀온 후 사다준 조그만 기념품. 코딱지만한 성냥인데... 둘째의 설명이 웃긴다.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고 난 후 이 성냥하나를 켜서 끌 때 거기서 자욱하게 나는 황냄새로 공간을 채우고 나온다는 것. 그쪽에선 전기소비를 줄이기 위해 화장실에 환기팬이 없나?...


4. 고국의 학교시스템이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여기선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 교육감이 있고, 그 바로 밑으로 학교교장들을 관리하는 디렉터, 학교건물들을 관리하는 디렉터, 테크놀러지를 담당하는 디렉터등 몇 디렉터들이 있다. 그 테크놀러지디렉터가 바로 우리 부서의 수장이다. 그 밑으로 3계단 정도 내려온 바닥에 내가 있고... 얼마 전 있었던 일. 교육감이 모든 교사들을 모아놓고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자리에서 음향에 문제가 좀 있었던 모양. 이 새내기 테크놀러지 디렉터가 관련 수장으로서 교육감에게 창피함을 느꼈었는지 나중에 제 애비뻘 되는 메니저들을 불러 모아놓고 F자로 시작하는 온갖 상욕을 해대며 성질을 부렸다는 이야기를 돌아돌아 전해 들었다.

갑자기 얼마 전 본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가 생각나면서... 건강이 회복되어 다시 돌아온 진짜 왕이지만 정말 개떡같은 광해를 계속 상전으로 계속 모셔야만 하는 한편, 가짜 왕이지만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하늘같았던 그리고 진짜 왕보다 더 왕다운 하선을 떠나 보내야만 하는 극중 허균이 느꼈던 비애를 그 메니저들이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거지같은 녀석. 하버드박사면 뭐하냐.

3/29/2013

태극기

어느 학교를 방문하던지 그 학교 학생들이 그린 그림이나 공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며칠 전 한 국민학교의 서버들을 점검하고 다음 학교로 이동하던 중 복도에서 무심코 벽에 붙은 그림들을 슥 스쳐 지나가다가  "응, 저게 뭐지"하면서 대여섯 발자욱 다시 돌아가 보게 된 그림. 어느 학생이 그린 그림인지는 몰라도 태극기가 조그맣게 그려져 있다. 국민학교 학생으로선 제법 잘 그린 수채화안에 자랑스럽게 자리한 태극기...참 오랜만에 보는 태극기다.

태극기를 자세히 들여다 보니 태극의 색깔위치와 모양, 사괘의 모양이 정확한 걸 봐서 한국어린이가 아닌가 싶다.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된 아이가 고국과 친구들을 그리며 그렸을까? 아니면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가 집에서 잘 배워 자기 부모의 나라국기를 이렇게 멋지게 그려낸걸까?

시민권인터뷰 할 때 "미국과 한국이 전쟁을 하게 된다면 미국쪽에서 총을 잡고 참전하겠냐?"는 가혹하고 너무나 당연한 질문에 머뭇머뭇 "예..."라고 대답한 놈이 무슨 낯짝으로 태극기 타령인가 싶지만 가끔 광복절 행사 등에서 태극기를 보게 되거나 애국가를 부르게 될 때 코끝이 찡해 지는 건 어쩔수 없다.

2/14/2013

Few thoughts

i
학교에 있는 둘째딸 한테서 어제 문자가 왔다.
"아빠, 나 오늘부터 나쁜말을 삼가고 밤 10시 이후에는 먹지 않기로 작정했어."
왜 밑도 끝도 없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 곰곰 생각해 보니 바로 Ash Wednesday였더라는. 많은 크리스천들이 수난절이 시작되는 이 날에 자신들의 행동을 조심하고, 즐기고 좋아하는 것들을 삼감으로서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고난의 의미를 되새겨보자 하는데 그런 이유에서 그 문자를 보낸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문자를 보냈다.
"우리 딸의 발자취를 따라 나도 커피와 아침식사를 삼가지, 그럼."
그래 우리 같이 부활절아침까지 잘 견뎌보자꾸나, 딸아.

ii
지난주 목요일 직장에 굉장히 심각한 일이 있었다. 누군지 아직까지 나선 사람도 없고 고의인지 실수인지도 모르는 상황이지만 어떤 직원이 전체 네트워크를 다운시키는 참사(?)가 발생. 20,000여대의 컴퓨터에 있는 네트워크카드를 모두 작동불능으로 만드는 명령을 내보낸 걸로 보이는데 문제는 이미 모든 컴퓨터가 소통불가능한 상태가 되었기에 단 한번의 명령으로 그걸 모두 회복하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IT부서의 전인력이 토요일과 주일에 모두 출근해 모든 컴퓨터를 한대 한대 복구시켜야 했다. 2003년 8월 중순 미동북부와 캐나다일부를 암흑으로 만들었던 대정전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 정전으로 6천만이 넘는 수요자들이 길지는 않았지만 7시간여를 어둠속에서 지내야 했는데 나중에야 그 원인이 어느 전기공급회사의 제어실에서 사용하는 소프트웨어의 사소한 버그 하나로 드러났었다. 점점 문명의 이기에 대한 의존도가 늘어가면 갈수록 우리자신을 공황에 빠뜨릴 수 있는 risk도 함께 늘어나는 듯.

iii
발렌타인데이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여쭙고(?) 발렌타인데인줄 알고 있었냐고 하니 뭘 해줬으면 좋겠냐 물어보기도 전에 쵸콜릿이나 꽃한송이 일지라도 하지말라고 정색을 한다. 그 이야기를 여러 번 반복하는걸 보니 그냥 그래보는 것이 아니고 진심이다. 쓸데없는 낭비를 삼가자는 말은 맞는데 발렌타인데이에는 받는 사람의 기쁨도 있지만 주는 사람의 '뭐라도 해줬다는' 안도감 역시 중요한 듯 하다. 그래 뭐라도 하기는 해야 될지 싶은데...아 그래, 지난 가을에 집주위의 관상목들 가지치기를 해 주지 못했는데 마침 지난 주말에 일한 것을 대신해 오늘 내일에 걸쳐 쉬니 그 노동으로 대신해도 되지 않을까? 발렌타인선물로 노동이라니 좀 너무 빈민스럽고 웃기긴하다.

8/11/2012

다시 새로운 도전

바로 작년 요 맘 때쯤 우리가 속한 교육구에서 제일 큰 고등학교를 맡을 만한 사람이 없으니 좀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고 망설임없이 떠 맡았었다. http://oldman-james.blogspot.com/2011/06/blog-post.html

전임자가 해 놔야 될 일 들을 안 해 놓은 것, 하지 말아야 할 일 들을 해 놓은 것이 너무 많아 그것 들을 바로잡고 되돌려 놓느라 많이 힘든 지난 일년을 보냈다. 그런 일년간의 노력으로 인해 이젠 좀 쉬엄 쉬엄, 쾌적하게 일을 해 나갈 바탕이 겨우 마련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중.

근데 어제 다시 연락이 오기를 우리 집과 가까운 학교들을 맡고 있는 동료직원 하나가 자신이 현재 속한 팀의 구역을 벗어나 현재 내가 담당하고 있는 학교가 있는 지역으로 옮겨 왔으면 하는 의사표시를 메니지먼트에 정식으로 했는데, 자신들도 내가 다시 옮길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 혹시나 해서 연락해 본다는 것이다. 다시 학교를 옮길 의향이 없냐고...

이야기를 듣고는 생각할 필요도 없어 바로 대답을 했다. "Nope!"

지난 번도 메니지먼트에서 사정을 해서 수락을 했고, 고생고생 끝에 이제 좀 자리가 잡히고 할 만 하게 만들어 놨는데 내가 왜 가겠냐고. 주말을 지나면서 생각해 보긴 하겠지만 아마 그렇게 되진 않을 것 같노라고 이야기 하고 대화를 맺었다.

그리곤 바로 그 직원이 속한 팀의 팀장에게 연락을 해 한 번 만나 식사를 하자고 연락하고 휴일인 오늘 아침 집 근처 식당에서 같이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왜 그 친구가 그러는지 그 배경을 솔직하게 이야기 해 달라고 하니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다른 팀원들이나 학교 교장 교감들 혹은 교직원들과 갈등이나 문제가 있는 건 아니고 얼마전 사고로 양다리가 절단된 아들이 하나 있는데 부인도 일을 하는 맞벌이 부부라 점심시간에는 그 친구가 집으로 가서 자신의 점심도 먹고 아들 점심도 챙겨 주면서 잠깐 돌봐 주고는 온다는 거다. 문제는 그 친구의 집이 내가 맡은 학교 근처 인데 반해 정작 일터는 우리집 근처라 편도 25분 이상의 시간(당연히 나도 출퇴근 시 그 만큼의 시간이 걸림)이 걸린다는 데에 있었다. 만일 나와 학교를 맞 바꾸면 그 친구의 집이 직장에서 5분 거리가 되니(나 역시 집에서 5분 거리) 급하게 운전해 왔다갔다 하지 않고도 아이를 잘 돌볼 수 있게 되는 상황.

그 팀장은 내가 이제껏 맡은 학교에서 수고해 얻은 결과를 이제는 내가 누려야 하는 걸 알고 있기에 내가 싫다고 하면 다른 구역을 알아 보겠으니 절대 부담갖지 말라고 한다. 이 팀장은 같은 크리스천으로서 가끔 만나면 서로가 가진 문제를 위해 기도도 서로 해주고, 나처럼 주일학교 교사이자 골수 공화당, 그리고 자녀들에 관한 조언을 서로 주고 받던 사이라 그의 팀으로 가 일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전혀 없었고, 아내도 그런 일에는 당연히 동의해 줄 걸 알기에 그 자리에서 바로 대답을 해 줬다.

"그 친구가 그런 상황이라면 더 생각해 볼 필요도 없구먼. 언제 바꿀까?"
"Whoaaatttt! I am so lucky to have you in my team, man!"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환경에서의 일은 내겐 신선한 도전이고 차라리 즐거움이다. 그리고 그 젊은 친구가 마음편히 아들을 잘 돌볼 수 있게 된다는 것, 잘 훈련되고 정돈이 된 학교에서 힘 안들게 일할 수 있게 된다는 생각에 나 역시 저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

다만 내가 새로 맡게되는 학교들에서 어그러진 것을 재정비하고 10여명의 교장들과 교감들, 그 학교들에 딸린 350여명의 교사들을 잘 협조할 수 있게 길들이고 인격적으로 한사람 한사람 알아 가야만 하는 일(IT담당자가 이런다면 누구나 웃기는 이야기라고 할 지 모르겠지만 난 그렇다. 나의 서비스를 받는 엔드유저를 나는 인격적으로 알고 있기를 원하고 그래야만 진정한 서비스가 이루어 질 수 있다고 믿는다)이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걸 어쩌랴...

12/01/2011

People in the shadow

지난 6년간 매 12월이면 해온 비슷한 내용의 선물이지만, 근무지를 옮기고나서 처음 만난 분 들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기에 기분이 조금 다르다.

맡은 학교들을 청소하시는 분들을 세어보니 모두 스물일곱분. 연말연시면 학교에서나 학부형회에서 선생님들 수고하셨다고 시끌벅적하게 먹이고 선물을 안겨주곤 하는데, 그런 와중에 무슨 죄지은 사람들처럼 조심스럽게 그림자속에만 숨어 지내는 분들이 바로 흑인 청소부아주머니와 아저씨들.

Bag마다 선물과 다음과 같이 적은 카드를 만들어 넣었다.

You may feel like you are not as much appreciated as the teachers are in this time of the year but you are very much so by me…I hope you have a great time of celebration and joy!

그래도 날 알아주고 고맙다고 하는 사람이 있네...? 라고들 생각하면서 따뜻한 성탄을 맞이 하셨으면 좋겠다. ^^

11/23/2011

Thanksgiving

추수감사절을 맞이해 외지생활을 하던 아이들과 다른 식구들이 하나 둘 집에 도착했고, 아내가 준비한 Thanksgiving저녁식사를 온 가족이 함께 한 후, 이젠 다시 하나 둘 자신들이 속한 곳으로 떠나는 중이다.

Source:
http://blog.jocosiding.com/fun-
facts/thanksgiving-fun-facts/
혼자 멍하니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 있을 수 있는 시간들이 좀 있었는데 그 시간들이 어색하긴(뭘 하고 있어야 하거나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으니) 했어도 지난 일년을 천천히 돌아볼 수 있었다. 감사했던 일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한동안 손가락으로 꼽다가는 너무 많아 포기했고...

그리고는 이내 나를 어렵고 힘들게 하는 일들이 생각났다. 아니 생각이 났다기 보다는 늘 마음속에 담고 다니면서 수시로 꺼내어 괴로워하고 나 자신을 괴롭혔다는 표현이 맞을 듯. 헌데  갑자기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런 일들 조차도 감사해 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신병훈련소에서 받던 모진 훈련이 훈병에게는 야속해 보이고 힘들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늠름한 군인으로 거듭나지 않던가? 잘못하는 아이들을 매질과 훈계로 가르치지만 그 아이들이 결국에는 반듯하게 자라나지 않던가?

이런 도전을 내 자신에게 해 보자 다짐해 본다. 나를 어렵게 하는 일 들을, 사람들을, 환경을 이젠 감사함으로 받자. 나의 조막만 한 두뇌로 그 분의 master plan을 지금은 이해할 수 없지만 담금질을 통해서 나의 모난 곳을 깍아 내시고, 내 눈으론 볼 수 없는 내 얼굴에 묻은 검정을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보게 하시는 그분께서 결국에는 나를(지금의 좌절까지도) 선한 곳에 사용하시리란 것을 알기에 감사드린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18)

6/10/2011

직장 그리고 작은 변화

내가 속한 Technology Dept.의 디렉터가 갑자기 보자고 해서 무슨 일 인가 했다.

약속을 하고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본 즉슨 버지니아의 교육district 전체에서 제일 큰 고등학교를 전담하고 있는 직원이 자진해서 보직변경신청을 냈다고 한다. 이유는 자기의 부인이 다음학기에 자신이 현재 근무하고 있는 그 학교 교장으로 부임해 오기에 conflict of interests가 생겨서란다.

그래서 하필이면 왜 내가 그 학교를 맡아야 하냐고 물었고, 디렉터의 대답은 메니저들을 다 모아 놓고 장시간 의논을 했는데 technical aspect나 customer service skill을 모두 보더라도 그 일을 감당할 적임자가 나밖에 없다고 의견이 모아졌으니 웬만하면 맡아 달라는 칭찬섞인 부탁이었다.

말이 부탁이지 명령에 가까운 부탁이라 아예 흔쾌히 받아들이는게 낫겠다 싶어 담담하게 딱 두마디 했다. "제게 주어진 새로운 기회로 알고 받겠습니다. 가능하면 빨리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해서 차질이 없도록 노력하지요."라고. 미적대지 않고 시원한 대답을 들어 그 자리에 있었던 디렉터와 메니저들의 기분이 좋았던 듯 하다.

일부러 '좀 내키지는 않지만 하라니깐 하겠다'는 표정을 살짝 짓긴 했지만, 내심 '휴, 잘됐다!'한 건 오히려 내 쪽 이었다. 언젠가 포스팅에도 잠시 언급을 했지만 지금의 내가 속한 팀의 수퍼바이저 친구가 요즘 점점 더 노골적으로 시비를 걸어오는 중이기에... 유일한 흑인동료에게서 근래에 알게 된 사실은 그도 비슷한 인종차별적인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는 것.

다행히 새로 옮겨가는 팀의 책임자는 게중 털털하고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편이라고 소문이 나서 좀 낫지 않을까 싶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8/26/2010

하소연 들어 줄 이 와 실제 도움을 줄 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굉장히 사랑한다.

주로 학교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 그 원인을 찾아내 해결하고 사용자들이 서버나 인터넷, 컴퓨터를 원활히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게 나의 주 임무다. 문제가 생길 때 마다 사무실에 앉아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사람들의 일에 비해 그 문제의 성격들이 엄청 다양하고 비슷한 케이스가 거의 없어 하루가 지루하지 않고 재미가 있다. 사용자들도 자기들의 문제점을 해결해 주면 펄펄뛰면서 기뻐하고 감사해 한다. 그러니 마치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갖다주는 산타할아버지 미워하는 사람이 없듯이 그런 대접을 받는다. 또 원래 내가 좋아하는 일을 돈까지 받고 하니 그것 역시 복이고.

근데…날 주관하는 사람이 처음부터 편견을 가지고 무시하고 과소평가하려는 건 참 힘들고 마음이 아프다. 나의 능력이 있고 없고를 떠나 인종적인 편견이 뒤에 숨어있는 듯 해 더 힘들다. 몇몇 속깊은 마음을 나누는 동료들에게 하소연을 하면 기꺼이 들어준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다. 몇 번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을 하곤 나중에 많이 후회했다. 아내에게도 가끔은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곤 한다. 그럼 나보다 더 아파하고 분노하면서 위로를 해 준다. 그리고는 이미 자신의 몫(걱정거리들)을 머리에 한 광주리 이고 있는 아내가 내 것 까지 그 위에 더 쌓아 올리고 많이 힘들어 하는 걸 보게된다. 그래서 그것 역시 마음이 편치않다.

그래서 깨달은 것 하나. 하나님 앞에 무릎꿇고 기도로 나가는 것이 사람에게 나아가 하소연 하는 것 보다 훨씬 좋은 방법임을 알았다. 그가 실제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분 이기에. 그러면 그 분노와 미움, 억울함을 슬며시 나를 아프게 하는 그 사람에 대한 연민으로, 다시 웃을 수 있는 기쁨에 찬 마음으로 바꿔 주신다. 다시 넉넉하고 행복한 마음으로…도대체가 나의 의지로는 가능하지 않고 이해도 되지 않는 일이지만 그렇게 바뀌게 된다... 그리고 그대로 남아있는 현실적인 문제는 더 열심히/정직하게/묵묵히 일 하고 있노라면 서서히 그 사람이 날 더 이해할 수 있게 일이 생기면서 진실이 드러나고 조금씩 인정받게 도와주시는 손길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좋은 분을 다른 사람들에게 더 권하고, 알리고 싶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 시편121:1- 8

6/03/2010

"일" 과 "먹는 일"

내 눈에는 대충 두 가지 유형의 사람들이 주위에 보이는 것 같다. 일하기 위해 먹는 사람과 먹기위해 일 하는 사람. ㅎ ㅎ 나는 당연히 후자다. 일하기 위해 먹는 숭고함이 나에겐 없으니. 점심시간이 훨 지난 2-3시 까지도 열정을 가지고 자기가 하던 일을 계속하면서 점심을 미루거나 심지어 안 먹고 건너뛰는 사람도 종종 눈에 띈다. 대단하다. 그런데 존경스럽지는 않다. 왜냐하면 난 점심시간이 되면 땡 하는 동시에 하던 일이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도 모두 떨구고 먼저 먹어야 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먹기위해 일 하는, 오로지 집의 식탁에 음식을 올리기 위해 일 하는 사람...그런데... 좀 너무 먹는듯 싶다...^^;;

사무실냉장고에는 샌드위치만들어 먹을 재료들이 "꽉" 차 있다. 허니 햄, 스모크 터키, 볼로니 등의 런천 미트와 양상치, 마요네즈, 머스터드... 해서 매 번 샌드위치를 신선하게 만들어서 점심을 대신한다. 근데 오늘 그것을 만들어 한 두입 베어물고 나서 멍하니 쳐다보게되는 순간이 있었는데 갑자기 내가 좀 너무하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거다. 그래서 그 규모를 만천하에 공개해서 이게 과연 너무 먹는 건지 아닌지 한 번 묻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이게 내가 평소에 만들어 먹는... 이름하여 3"(옆의 cm로 보니 한 7cm 쯤) Double Decker with Double Meat, Double Vegie and Double everything!


5/28/2010

청년에서 사회인으로

얼마 전 뜻 밖의 반가운 전화가 한 통 왔다. 나 누구누군데 기억하냐고. 처음엔 생각이 나질 않더니 잘 생각해 보니 주정부에서 일 할 때 Information Systems전공 대학졸업반학생들 중에 System Administrator가 되는 것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매 년 몇 명씩 나에게 맡겨져 1년간 견습을 하고 졸업과 동시에 떠나가곤 했었는데 그 중 하나였던 친구였다. 졸업 후 Verizon이라는 전화회사에 취직을 했었고 바로 얼마 전 이 지역의 지역담당자로 발령이 나서 왔는데 나에게 점심을 꼭 한 번 사고 싶다고 했다. 참 세월이 무상하다. (근데 이 녀석 말만했지 그 다음에 어디서 만나자는 연락은 없다. 고얀 놈 ㅋ. 하지만 뭘 바란 것은 원래 아니였으니까. ^^;;)

견습당시엔 다 아들, 딸 같아서 노상 데리고 다니며 네트워크 관리, 시큐리티 등에서 부터 엔드유저들을 대하는 태도등에 까지 내가 알고있는 모든 사항들을 가르쳐주고 점심시간이면 데리고 나가서 밥도 사주곤 했다. 가끔 집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라도 할라치면 집이 멀리 있는 친구들은 방학동안 기숙사에 죽치고 있어야만 하기에 전부 불러 들여서 먹이면 뛸 듯이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그저 자신들의 집에서 연말을 보내는 것 같이 지내게 해 줄려고 했던 일인데 아내도 그런 아이들을 정성껏 챙겨주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 얼굴들이 가물 가물하게 잊혀질 때 쯤 되면 하나 둘 연락이 오곤 한다. 이번에 장가 가는데 꼭 참석해 달라거나 집을 샀는데 집들이에 와 달라는 등의 연락. 그 중 에도 그 옛날 자기들이 학생으로 있으면서 먹는 것도 시원치 않을 때, 먹어도 먹어도 배 고플 때 내가 밥 사줬던 기억이 아직도 나서 이번에 취직이 되고 돈벌이를 시작했으니 나 한테 꼭 밥 한 번 사주고 싶다고 하는 전화가 제일 많다. 한 녀석은 이 곳 리치몬드 시장의 컴퓨터를 한 번 봐주고 눈에 들어 시장보좌관직을 꿰차고 시장이 바뀐 지금도 영구직으로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밥 먹으면서 해서 한 바탕 같이 웃기도 했다.

학생들 마다 제각기 특성이 있어 뛰어나게 총명하다거나 아니면 미련, 혹 부지런하거나 아니면 빤질 빤질 게으른 녀석 등 제 각각 이었는데 사회인이 된 지금은 모두 자기 밥벌이를 나름대로 잘 들 하고 있으니 이런 걸 보고 세상이 공평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불공평하다고 해야 하나…엄청난 차이가 있었는데 지금은 큰 차이없이 다 들 잘 살고 있으니 말이다. ㅎ ㅎ ㅎ. 그리고 나름대로 깨달은 진리 하나. 먹는 건 역시 나눠 먹어야 세상이 따뜻해 진다는...

5/25/2010

Tea moments

사무실이 위치한 고등학교의 교장이나 교감들(이 학교엔 3명)이 상의할 게 있다고 사무실로 방문하면 미국사람끼리면 용건만 나누면 끝 일텐데 우리네 정서가 어디 그런가. 간단한 손님대접이라도 없으면 뭔가 좀 허전하다. 그래서 박하눈깔사탕을 그릇에 담아 놓고 들게 하거나 얘기가 좀 길어질 것 같으면 차를 끓여 대접하기도 한다.

몇 해 전 크리스마스에 조카 하나가 선물한 차가 있어 끓이는데 향기가 꽤 좋다. 차를 전문으로 파는 집에서 사 왔다는데 라일락, Camomile 등의 꽃 대여섯 가지와 오렌지와 유자를 말려 갈은 것을 넣어 만든 ‘퓨전 차’(사진 오른쪽-오른편) 란다. 지난 해 $4.99주고 산 싸구려 전기주전자에 정제된 물을 넣으면 1분도 되지 않아 물이 끓기 시작하는데 전원을 끄고 나서 조금 물을 식힌 후(참고-끓는 물에 바로 차를 넣으면 차가 쓴 맛이 나게 된다. 티백으로 된 차라도. 차를 넣고 끓이는 것은 더더구나 아니고.). 조카가 선물한 퓨전차 조금과 내가 늘상 즐기는 쟈스민잎(사진 오른쪽-왼편) 조금을 그물로 된 Tea ball에 넣어 우려 내 대접하면 너무나들 좋아한다. 늘 정신없이 돌아가는 학교의 한 외진 구석에 느긋하게 앉아 차 한잔 마시는 뜻 밖의 여유를 갖게 되는게 좋은 모양. 나도 그런 이유로 차를 하지만…혹 이사람 일은 안하고 맨날 이러고 앉아 있는 것 아닌가 할지 모르지만 다 합쳐서 3분도 걸리지 않는다는...

아쉬운 건 지난 번 아내가 잠깐 사무실로 방문 왔을 때 차 끓여 내 준다는 생각을 미처 못하고 그냥 이야기만 잠깐 나누다 보냈었는데... 집에서는 항상 나와 같이 주최측이다 보니 아마 손님(?)이라 생각이 안 들어서 차 생각을 못했었던 모양이다. 다음번엔 꼭 차 한잔 대접해야지. 귀해도 보통 귀한 손님이 아니쥐...ㅎ ㅎ

5/21/2010

적색경보

갑자기 “Code Red”라는 방송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 나왔다. 지난 버지니아텍참사 이후로 미국의 모든 학교시스템에선 철저한 교육을 통해 안전을 강화했는데 그 하나가 경보코드의 일반화와 신속대처다. Code Red는 제일 급한 경보로 학교건물내에 비상상황이 발생한 것. 선생과 학생들은 제일 먼저 교실문, 창문을 걸어 잠그고 불을 끈다. 그리고 문과 창으로 부터 떨어져 웅크리고 앉아 일체의 소리를 죽이는 일명 'Lock down'을 한다. Code Yellow는 학교가 위치한 동네인근에 비상상황이 발생한 것으로 은행강도, 탈옥 그런 것에서 부터 총성이 들린 것 정도까지를 포함해 경보를 발생하고 학교내 활동은 정상적으로 유지하면서 학교 정문과 건물출입문봉쇄 정도로 끝난다. Code Green은 이제 모든 상황이 끝났으니 다시 정상으로 돌아간다는 해제경보다.

Code Red라는 단 한 마디가 방송으로 나오니 학교 전체가 캄캄해 지면서 쥐 죽은 듯 고요해지는데 30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갑자기 개 짖는 소리가 나면서 여러 명의 경찰관이 뛰는지 문 밖 복도에서 구둣발소리가 요란하다. 아마 어떤 녀석이 코케인이라도 학교에 가지고 들어와서 다른 아이들에게 자랑을 했지 싶다. 여기 아이들은 모두 아다시피 신고정신이 투철하다. 바로 그 첩보가 선생들에게로 들어가 교장에게 알려지고, 교장이 바로 결정을 내리곤 적색경보와 함께 경찰견을 불러 들인다. K9을 불러 들일때는 마약이나 총이다. 평소에 고등학교에는 2 명의 결찰관이 상주하고 있고 이런 경우 병력이 추가된다. 대개는 약을 버렸어도 약냄새가 손에 남아있는 학생에게까지 개가 쫒아 들어간다. 가끔 총을 갖고와 이런 경우도 몇 번 있었고…

점점 세상이 이렇게 간다. 지금 캘리포니아에서는 대마초 합법화를 놓고 머리가 터지게 들 싸우고 있다. 대마를 편두통, 천식등의 약용으로 허락한 것은 이미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고. 한편으론 남자 두 사람이 학교 커리큘럼의 일환으로 국민학교 교실에 들어와 눈이 초롱 초롱한 아이들에게 남자 둘이 혹은 여자 둘이 부부로 사는 것이 정상이라는 것을 가르친다. 나중에 학부모들이 알고 뭐라고 항의라도 할 라 치면 “그렇게 편협하고 배타적인 사고로 안일하게 살면 안된다” 고 혼 나거나 아니면 아예 “성차별” 혹은 “Hate crime”으로 되려 고소를 당하기 일쑤고 백이면 백 다 지게 되어 있다. 왜냐 하면 바로 얼마전 대법관으로 임명된 남미계 여판사를 포함해 연방대법관들의 대부분이 ‘동성애’ 와 ‘낙태’ 친성향인 사람들로 싹 갈렸기 때문에 아무리 꼭대기로 항소를 해서 올라가도 소용이 없다. 어린 학생하나가 “엄마가 다른 여자와 사는데 전 여자와 여자가 그러는 건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해요.”하고 학교에 있는 전문상담가에게 상의를 해오면 전문가는 “얘, 그건 네가 아주 잘못생각하고 있는 거고 위험한 생각이란다. 얼마던지 여자와 여자 , 남자와 남자가 같이 부부로 살 수 있는 거란다.” 하고 설득을 해서 치료(?)를 받게 하는 것이 새로 나온 학교심리상담메뉴얼에 나와 있다고 도대체 이 짓을 어떻게 하냐고 한 숨 쉬는 카운셀러를 만난 적이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 동성부모에게 연락해 얘가 이런 얘기를 학교에서 했으니 집에서 잘 지도교육 바란다고 권면하는 것이 추가로 나와 있다니… 그 애는 집에 가서 죽도록 맞겠지…그리고 부부는 여자와 여자, 남자와 남자여야 한다고 학습이 되겠지...

우리나라는 모르겠다. 꼭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원래 유교적인 정서가 더 큰 우리네는 이런 걸 당연히 틀렸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지만 원래 기독교적인 기반을 가지고 나라를 시작했던 이곳 미국의 평범한 국민들은 요즘 뭐가 옳고 그른건지 당최 헷갈리는 가운데 지극히 적은 수 의 사람들이 평등의 법을 등에 업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득세를 하고 있다. 걱정이다.

4/22/2010

Turtlegate

몇년 전 쯤 이런 일이 있었다. 학교들을 방문해서 네트웍이나 서버에 문제가 없나를 확인하는 중 이었다. 석달여 되는 길고 긴 여름방학의 중간 쯤 이었다고 기억하는데 한 학교의 도서실을 지나는데 무슨 악취가 났다. 방학중에는 건물이 비어 냉방도 하지 않기에 뭔가 싶어서 문을 따고 들어가 봤다.

둘러 보니 큰 어항이 하나 있는데 내가 다가가는 기척이 나니까 그 어항안에 있던 손바닥만한 거북이가 내 쪽으로 쏜살같이 기어오는 거다. 악취는 바로 거기서 나는 거였다. 어항안의 물이 그동안 증발해 1-2센티미터정도 밖에 남지 않았고 그나마 거북이의 소변이 반 정도는 되어 보일정도로 물 색깔이 노랗다 못해 갈색이었다. 지독한 암모니아냄새때문에 숨을 참고 들여다 보니 거북이조차 그 물에 머리를 담그지 못하고 머리를 물 밖으로 바짝 들고 다니는 것이 힘겨워 보였다. 그 거북이가 내 쪽으로 달려와 벽에 앞발을 대고 서서 나를 가만히 올려다 보는데 좀 살려달라는 듯 애처로워 보이는 거다. 누가 키우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참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화가 났다. 방학과 동시에 자기 집으로 옮겨 가든가 아니면 정기적으로 들려서 관리를 해 주던가 해야 하는게 상식인데…달포나 되는 기간을 먹이는 커녕 물 한번 갈아주지 않고…

그래서 두 번 생각하지도 않고 플래스틱통에 깨끗한 물을 담아가지고 와서 거북이를 넣었다. “Now what?” 같이간 동료 두 사람과 여러가지 생각들이 오갔다. 이렇게 통에 담고 새 물을 넣어주긴 했지만 우리들 역시 집으로 가지고 가서 데리고 살다가 개학후 다시 가져오거나 아니면 주기적으로 방문해서 돌봐주는 방법에는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의견이 둘로 갈렸다. 하나는... 죽더라도 그냥 다시 어항에 넣어주고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우리 일 만 마치고 떠나가자는…혹 나중에 도서관사서가 돌아오면 문제가 될 확률이 크니까. 다른 하나는 문제가 되더라도 근처에 있는 연못에 풀어주자는…

근데 왜 나는 꼭 문제가 되는 쪽으로 결정을 내리게 되는 걸까?…ㅜㅜ.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내가 책임지기로 하고 근처에 있는 연못으로 갔다. 풀어주자마자 뒤도 안돌아 보고 깊은 물속으로 헤엄쳐 사라져 가는 거북이를 보고 다른 동료들이 더 좋아했던 것 같다. 박수까지 치며…

개학 후 그 학교에 난리법석이 났다. 거북이가 사라졌노라고. 정신적인 충격까지 받았다고 뻔뻔스럽게 이야기하는 도서관사서를 교장과 함께 찾아가 달래고 나서야 문제가 해결됐다. 그 이후 우리 IT부서에서는 이 일을 “Turtlegate”라고 부르면서 나만 보면 “거 정말 시원하게 잘했다” 혹은 "거북이 아직 그 연못에서 잘있냐?"며 아직도 농담을 건넨다. 심지어는 짓궂게 거북이인형에다 메세지를 목에 달아 선물하는 친구도 있었고. 여름방학이 가까와 지고 책상위에 놓인 그 거북이인형을 무심코 보고 있자니 그 때 그일이 다시 생각나 혼자 피식 웃었다.

3/04/2010

현재기상상태: 아직 먹구름...

어제 원래 내가 속해있던 팀 동료들과 점심을 먹었다. 화두는 당연히 감원쪽으로 흘렀고 서로 오랜 만에 만나 즐겁고 반가운 시간이 되야 하는데 여섯 명 중 제일 늦게 들어온 2명이 감원대상이 될 수도 있다기에 그렇지 못했다. 주정부에서 심각한 예산부족으로 우리가 속한 카운티교육구청이 필요한 예산을 채워주지 못하는 상황이란다. 그래서 IT분과에서 총 8명이 감원되야 한다는데 그 중 이 두 친구가 유력해 진 모양. 연락하면 모두들 반갑게 나와서 한 바탕 즐겁게 떠들면서 이야기들을 나누곤 하던 것이 일년에 두어번. 어젠 불러낸 내가 괜히 미안할 정도로 무거운 모임이 되어버렸다.

어젯 밤, 연방정부의 많은 부서에서 나와 필요한 직원들을 뽑기 위해 현장에서 면접을 할 수 있도록 Job fair를 자기들이 주선 했노라고 여기 주지사를 지냈던 Mark Warner 상원의원 사무실에서 이메일이 왔다. 참 우연이다. 그래서 이 두 친구들에게 알려줬더니 한 친구가 정색을 하며 가겠다고 한다. 하루 휴가를 내서 이 친구와 함께 가 주기로 했다. 그렇지 않아도 궁극적으로는 연방정부로 옮겨 은퇴를 준비할까 하는 생각으로 나 역시 자리를 알아보던 참이었는데… 주정부와 카운티정부에서 일 해 봤지만 은퇴연금이나 은퇴후 건강보험등은 연방정부가 훨씬 나은 까닭이다. 하지만 당장 감원걱정이 없는 나 보다는 그 친구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 그 친구의 한국인부인과 귀여운 어린 두 딸의 얼굴이 어른거리며 걱정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