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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0/2015

Love Letters

사무실로 쓰는 위층의 방을 정리하다가 오랜세월 그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던 것을 발견했다. 30여년 먼지가 뽀얗게 쌓인 투박한 가죽가방.

열어보니 신혼초 우리내외가 생이별을 하고 주고 받던 편지 수백통이 모두 그안에 들어있었다. 4학년 첫학기를 마친 상태에서 결혼해 혼자 미국으로 유학와 지내던 24살의 나, 그리고 결혼 후 우리 부모님이 계신 집으로 들어와 혼자 시집생활을 하며 학교를 다니던 21살의 아내가 1년여에 걸쳐 서로를 그리워하며 주고 받던 편지들을 각자가 소중히 가지고 있던 것. 

아내가 졸업후 전공을 바꿔 미국유학을 오게 되면서 상봉해 서로의 편지들을 모두 모아 이 가방에 넣어둔 것이었다. 오랜 세월 처박아두고 잊고 있었다는 건 다시 서로를 옆에 두고 볼 수 있게된 지라 그 편지들이 더 이상 소중하게 생각되지 않았던 것이리라. 떨어져 있을 땐 행여 서로를 잊어버리지 않을까 상대가 보낸 편지를 읽고 또 읽으며 애틋한 마음 뿐이었는데.

다음 주 가족들과 떠나게 되는 여행에 가지고 가서 아내와 같이 저녁노을 지는 바닷가에 나가 앉아 하나씩 꺼내 읽어봤으면 싶다. 30년만에 햇빛을 보게되는 그 녀석들이 과연 어떤 이야기들을 들려줄까...

There's been many complaints from my children about my blog postings because my children are able to read Korean letters but still not at the level of understanding what it means. So this translation is for them(as well as nieces and nephews who visit here every once in a while) so they have a chance of getting to know what my wife and I went through while we were young. Though, the following is not exact translation but should be close. Well, it's just not my nature pulling my hair out trying on a word-to-word translation!

Few days ago, while I was cleaning the room upstairs that I use for reading and writing, I found a dusty, old brown leather bag sitting on very top of the bookshelf. What's in there was quite a big surprise for me. They are the love letters my wife and I sent to each other back and forth for a year when we were young and separated.

Spending only 2 short months after we got married at the age of 24 and 21, I had to leave her for my study in the States and my wife moved in to my parent's house by herself and continued her study. We must have written to each other almost every 2-3 days, I believe, all the way through until we met again.

Upon her graduation, she came over to me as a foreign students with a different major. I still vividly remember the moment that we saw each other again. We were in each other's arms so tight for few minutes without saying a word. Oh, we rather did not want to waste even a half second trying to say things!

Then, we gathered all the letters we had kept while we had been separated, put them in this brown leather bag, and shoved it away thinking we didn't need them anymore because we had each other again to ourselves! Before we met in the States, these letters were so precious for both of us and enabled us to connect to each other's heart and kept us alive. I remember reading her letter as soon as it arrived in my mailbox, reading it again after the dinner, before going to the bed, and when I woke up, just over and over again. I even hated the national holidays so much because the postal service stopped running!

I am thinking about taking these letters to our family trip to the Outer Banks next week and reading them one by one with her sitting down on a beach under the sunset. These letters may tell us a lot of stories that we have forgotten as we open them...



5/02/2014

내가 말 못할까봐...

"엄마 내가 말 못할까봐 보내놓는다... 사랑해."

침몰한 여객선에 타고 있던 한 학생의 문자메세지라고 한다. 이렇게 멀리서 남의 일처럼 소식을 접하는 우리도 눈물이 나고 억장이 무너지는데 그 부모들은 어떨지 감히 상상이 안간다.

생각해보니 나라고 하나도 나은 입장은 아닌 것 같다. 오늘 밤 세수하고 양치질한 후 잠자리에 들 때 내일 아침에도 평소와 같이 눈을 뜨고 숨을 쉬고 있으리란 보장이 어디 있는가? 아침에 일을 나서면서 나갔던 그 모습 그대로 저녁시간에 다시 귀가할 수 있다는 걸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빠이 하면서 차를 몰고 떠난 아이가 목적지에 온전히 도착하리란 확신은 무엇에 근거를 둔 것인가?

이 글을 긁적이다가 전화를 꺼내들고 아이들과 아내에게 뜬금없이 문자를 날렸다.

"I love you!"

자주 이 말을 해줘야겠다. 그리고 가능하면 구체적인 행동으로 하나 하나에게 관심을 보여야겠다. 그냥 있어줘서 고맙다는 말도 해야지. 가족뿐만이 아니고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비판하고 미워하고  다른 사람들 잘못하는 걸 고치려 들기에는 너무나도 짧고 귀한 시간이 나에게 남아있다. (몇 초 후에 어떻게 나의 생이 마감될 지 모르니)

그 귀한 시간을 사랑하고 감사해하고, 위해주고 격려함으로 보내기로 작정하는 지금 이 시간...

4/12/2013

A father's love

집으로 들어서는데 큰 아이가 이층계단위에서 날 반긴다. 훌쩍거리기에 자세히 얼굴을 살피니 한참을 운 얼굴이다.

"무슨일이 있니?"
"응, 무슨일이 생긴 건 아니고 예전에 팔로우하던 블로그가 있었는데 그걸 다시 찾아가 읽으면서 너무 슬퍼서 울었어." 

그러면서 그 블로그를 소개해 주길래 가서 한동안 차분히 읽었다. 미 서부의 어느 곳에 사는 한 아빠가 몇개월 전 세상을 떠난 큰 아들의 암투병과 그 이후 나머지 가족들이 슬픔을 극복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는데...

초반부터 근래의 포스팅까지 읽어오면서 그 아빠의 아들을 향한 절절한 사랑과 그리움, 가슴아파하는 모습에 나 역시 엉엉 울고 말았다. "하나님의 뜻이 있으시지요..." 하지 않고 "왜, 사랑스런 그 아이를 데려가셨어요?" 묻는 아빠의 울부짖음에, 나머지 가족들이 자신들의 평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노력하는 중 상실감을 견디기 힘들어 하는 모습들에, 지체아 교사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서 힘을 받는 듯 하지만 시도때도 없이 몰려오는 그리움과 슬픔을 혹독하리 만큼 솔직하게 표현한 그 아빠의 글이 머리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영어권 가족이지만 한인임에는 틀림없는 듯. 여길 들리는 블로거이웃께서도 이 가족을 위해 기도와 위로 부탁드립니다.

4/15/2012

진주보다 값진 사람 (제목이 쫌 그런가?)

늘 좋은 건 부모님이나 아이들, 나에게 양보하던 이 사람이 이 날 만큼은 조기
왼쪽에 보이는 까만 잎새모양으로 만든 쵸콜렛을 "오늘 내 생일이니 이건 내꺼야"
하면서 입에 넣었다. "그래 이젠그렇게 자신을 챙겨가면서 살아!" 라고 난 속으로 되뇌었다.

얼마전 아내의 생일을 맞아 집에 달랑 하나 남은 아들녀석과 셋이 손바닥만한 미니케이크를 놓고 생일축하를 했다. 뭐 크게 해 줄 수 있는 것도 없고 본인도 그런 걸 극구 사양하는 터라 얌체처럼 케이크 하나 놓고 왕생색을 냈더라는...(이 케이크도 내가 산 게 아니고 아내가게의 메니저가 아내에게 선물했던 걸 아내가 집으로 가지고 와서 같이 먹은 것 뿐이라 더 미안)

이제 오십을 코 앞에 둔 여인으로서 좀 착잡한 마음이 드는 듯한 표정을 어렴풋이 읽을 수 있었는데...요즘 몸이 좀 안 좋아서 그런지 얼굴이 더 어둡다.

시부모님을 지난 28년간 모시고 두 분의 마지막 순간까지 정성을 다해 애를 써 준 아내가 참 고맙고도 고맙다. 시집살이를 시집살이로 생각하지 않고 이 집의 딸로서 진짜 자식인 외아들보다 더 잘 해 드리고, 힘든 일이 적어도 한 두 번은 있었을 텐데 남편에게 뭐라 단 한 마디도 하소연이라고는 한 적이 없는 이 사람을 생각만 하면 늘 떠오르는 성경구절... 잠언 31장 10-31절.

10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 값은 진주보다 더하니라
11 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핍절치 아니하겠으며
12 그런 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치 아니하느니라
13 그는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
14 상고의 배와 같아서 먼 데서 양식을 가져오며
15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서 그 집 사람에게 식물을 나눠 주며 여종에게 일을 정하여 맡기며
16 밭을 간품하여 사며 그 손으로 번 것을 가지고 포도원을 심으며
17 힘으로 허리를 묶으며 그 팔을 강하게 하며
18 자기의 무역하는 것이 이로운 줄을 깨닫고 밤에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19 손으로 솜뭉치를 들고 손가락으로 가락을 잡으며
20 그는 간곤한 자에게 손을 펴며 궁핍한 자를 위하여 손을 내밀며
21 그 집 사람들은 다 홍색 옷을 입었으므로 눈이 와도 그는 집 사람을 위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시대상을 모르는 분을 위햐여. 홍색옷: 두툼하게 짠 귀인들이 입는 겨울옷. 굳이 요즘식으로 번역하자면 "질좋은 오리털파커를 종과 가족을 구별하지 않고 모든 식구들에게 빠짐없이 입혔으니 추운겨울에도 염려하지 아니하며")
22 그는 자기를 위하여 아름다운 방석을 지으며 세마포와 자색 옷을 입으며
23 그 남편은 그 땅의 장로로 더불어 성문에 앉으며 사람의 아는 바가 되며
24 그는 베로 옷을 지어 팔며 띠를 만들어 상고에게 맡기며
25 능력과 존귀로 옷을 삼고 후일을 웃으며
26 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며 그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하며
27 그 집안 일을 보살피고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아니하나니
28 그 자식들은 일어나 사례하며(어머니가 보이면 모두 일어나 예를 갖추며) 그 남편은 칭찬하기를
29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여러 여자보다 뛰어난다 하느니라
30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31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을 인하여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

4/01/2012

어린 친구들의 위로

몇 주 계속된 병원생활과 장례를 치루느라 교회를 연속 걸러야 했는데 선생없이 지내야 했던 우리 반 아이들에게 참 미안한 마음이었다. 드디어 오늘 복귀해 아동부 예배를 아이들과 같이 드리고 분반공부를 함.

자라에 앉자 마자 아이들에 내게로 다가와 양쪽의 의자에 앉기도 하고 앞에 서서 하나같이 진심으로 슬픈표정들을 하고 말을 건넨다.

"선생님, 괜찮아요?"
"응"
"여기 아기곰 인형이 있는데 예배시간에 가슴에 안고 계시면 기분이 좋아지실 거예요, 자!"
"고마와"
15알 들어가 있는 귀여운 봉지
"전 이 Skittles를 먹지 않고 선생님 드리려고 갖고 왔는데 드세요."
"그래, 나중에 먹도록 할께."
"저도 우리 할아부지 돌아 가셨을때 마음이 아팠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선생님도 곧 괜찮아 질거예요."
"그래, 그럼 나도 금방 괜찮아 질꺼야."
"오늘 저 헌금할 돈 5불 가져왔는데 선생님 드릴께요. 선생님이 헌금하세요."
"응. 그러면 헌금할때 네가 한 손으로 한쪽을 잡고 내가 다른 한쪽잡고 해서 같이 내도록 하자."

예배후 전도사님이 다가와 조용히 말씀해 주신다.

"지난 주 예배시간에 생전 그런적이 없는데 난데없이 아이들이 선생님위해 같이 기도하자고 제안을 해서 같이 정말 간절히 기도했어요. 그리고 부모님들이 그러시는데 가정예배중 그 가정의 아이들이 선생님을 위해 온 가족이 기도해야 한다고 해서 기도했다는 가정이 여럿 있었구요. 아이들이 선생님 참 많이 사랑해요."

이제껏 나는 어른인 내가 아이들에게 사랑을 부어 준다고 생각했는데... 고사리손을 가진 이 아이들로 부터 내가 감당 못할 더 큰 사랑을 받고 있었다...

12/23/2011

Antonym of 'LOVE'

누가 그랬던가...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칠하기 전. 옆의 틀은 막대기를
맞붙여 만들었는데 가운데 홈에
스프레이 페이트를 뿌리면
직선이 제법 깨끗하게 나왔다
몇 주 전 교회에 있는 야외농구장에서 중고등부아이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농구하는 걸 펜스밖에서 구경하다 이제껏 눈에 띄지 않던 것이 눈에 들어왔다. 코트위에 그어져 있는 흰 줄이 거의 닳아 선이 윤곽조차 아예 없어져 버린 부분이 많았던 것.

갑자기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창피해졌다. 내가 기억하는 한 지난 3-4년 동안 한 번도 선을 새로 그어준 적이 없었던 것. 교회아이들이라 서로 양심적으로 게임을 하니 그렇지 어디 밖에서 내기라도 걸린 실제게임을 하는 상황이라면 애매한 선 때문에 싸움이 나도 크게 났었을 텐데...

칠한 후.
중고등부 자녀들을 둔 아빠들에게 이메일을 돌려서 선긋는 작업을 같이 하자고 해 2주전 직선은 모두 그었는데, 마침 칠도 떨어졌었고 원을 어떻게 그릴 지 대책이 서질 않아 작업을 정지했었다. 그리곤 오늘 오후에 시간이 조금 있길래 몇 가지를 사 가지고 작업에 나섬.

아무래도 페인트롤러가 제일 무난할 것 같아 시도해 본 결과 그냥 쓸 만 했다. 원래 제대로 하려면 전문으로 하는 회사를 불러 하거나(돈 천불은 줘야) 아니면 종이를 오려 만든 스텐실 제품(바닥에 테입으로 고정시키고 그 위에 스프레이페인트를 뿌리면 완벽하게 그려지는, 백오십여불)을 구입해 그리는 방법이 있는데 비용절감을 위해 직접그렸다.

Knee pad, 이것 없었으면 무릎에
물집이 생기면서 까졌을 것이 분명
혹 내년에라도 선을 다시 그어야 할 경우를 대비해 여기에 구입품목과 비용을 남긴다.
1. 칠: Striping Spary Paint(직선 긋는데 사용, White, 6 cans, $30), Striping Paint(원 긋는데 사용, White, 1Gal can, $17)
2. 도구: Sponge Paint Roller(3" wide, $3), Paint Tray(4" wide, $2)
3. 기타: 집에 있던 일회용고무장갑, Knee pad(오랜시간 바닥에 무릎꿇고 작업할때 사용하는)

아이들아 우리 어른들이 너희들에게 관심을 못가져서 미안하다. 앞으론 더 신경쓰마...

5/01/2011

교감

(약 3주전-4월초-엄마가 병원에 계실 때 있던 일)

혹 만나뵐 수 있을까해서 주일인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병원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주치의이신 이박사님께서 마침 방문해 주셨다. 심했던 패혈증이 이제 제어가 되기 시작했으니 일단 한 숨을 놓아도 될꺼라는 말씀을 해 주시는데 참 고마왔다. 주말엔 웬만한 의사들이 병원에 오질 않고 새내기 당직의사들만 몇 명 자리를 지키는데 토요일과 주일도 아침 저녁으로 돌보아 주신다.

오후엔 아버님을 모시고 아이들과 교회에 갔던 아내가 교회에서 병원으로 곧장 왔다. 정신을 못 차리시는 엄마의 손을 잡고 옆에 앉아 계속 눈을 떠보라며 애타게 부르시던 아버지. 결국 눈 한번 마주치는 걸 포기하시고 갈 시간이 되어 일어나시는데 안보이게 돌아서셔서 눈물을 훔치신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뵈는 아버지의 눈물...

식구들이 다 떠나고 두어시간이 흘렀을까? 엄마가 정신이 좀 드시는지 눈을 뜨셨고, 난 기회를 놓칠세라 물과 죽을 좀 먹여드렸다. 일단 뭐라도 몸에 들어가야 회복이 빠를테니. 그리고 아버지가 오셨었고 떠나시면서 눈물을 흘리셨다는 이야기를 해 드렸다. 그 이야기를 듣던 엄마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두 분 모두 단 한마디의 말씀도 없으셨지만 아버지는 엄마를 걱정하며 사랑하는 마음을 남기고 가셨고, 엄마도 말없이 그 마음을 가슴으로 받으셨다. 부부의 연을 지켜 오신 지 어언 60년. 두 분의 그 교감을 옆에서 목도한 건 앞으로 내 평생 간직할 귀한 경험이자 기억이 될 것이다...

4/27/2011

Korean Hero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이 발사한 로켓수류탄 한 발이 정찰임무를 수행하던 험비의 앞유리창을 깨고 들어가 윗쪽의 기총사수석에 앉아있던 한 흑인병사의 옆구리에 박혔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발된 로켓수류탄이 몸에 박힌채로 죽어가는 병사를 싣고 구조헬기가 있는 곳 까지 달려간 동료들의 무모함, 그 병사를 받아 야전병원까지 수송한 헬기조종사와 승무원들의 무모함, 그런 상황에선 모래를 넣은 백을 쌓아 올린 벙커안에 환자를 (살 가망이 없으니 죽게) 놔둬야 한다는 규율을 어기고  수술을 감행한 의사와 그 의사 도와주기를 자원한 사람들의 무모함 덕분에 이 병사가 살아났고 지금은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과 집에서 함께 지내며 회복중에 있다고 한다. 관련기사

그 용감한 군의관 John Oh 소령이 바로 한인1세대다. 3세때 미국으로 왔으니 한인 1세가 맞고 미육군사관학교를 나온 재원. 동영상중에 오소령은 그런 무모함을 감행한 이유에 대해 "살릴수 있다고 믿었고, 가장 큰 이유는 그 병사가 내 얼굴을 쳐다 보면서 말을 하고 숨을 쉬고 있어서 였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훔쳤다.

수술전 오소령이 집도의로서 다른 자원자(간호원, 폭발물전문가)들에게 한 짧은 한마디의 말, "(그 사람들이 오소령의 살아생전에 마지막으로 보게되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미리 말씀드립니다. 여러분과 지금 여기서 같이 일하게 된 것 정말 좋았습니다." 은 오소령자신이 몇 분 후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각오하고 있고 그 희생을 달게 감수하겠다는 의미다. 생면부지의 남을 위해 내 목숨을 버려야 한다는 그런 결정의 순간이 생각할 여유도 없이 내게 찾아온다면 난 어떤 결정을 하게 될 지 참 궁금하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내 계명이다.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린다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요한복음15장12-13

10/28/2010

아버지의 사랑

얼마전 Kris님께서 이 비디오클립을 소개해 주셨는데 여기에 올려본다.

이 세상의 어느 아버지나 자식에 대한 사랑은 남다르겠지만 이 분을 보면 '거룩'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건 나만의 느낌일까...? 흉내낼 수 없는 사랑이다. 그 백분의 일 만큼이라도 우리 아이들을 사랑할 수 있었으면...


9/03/2010

Living as if it's the last moment of my life

당신때문에 나 그 동안 너무 행복했어!”

어제 아내에게 한 말 이다. 주중에는 퇴근 후 가게로 와서 문 닫는 시간인 밤 8시까지 같이 있다가 같이 집으로 들어가곤 하는데 어제는 아내가 막내의 학교에 가서 돈을 내야하는 날 이어서 조금 일찍 들어갔다. 그런데 가게를 떠나는 아내에게 늘 하던 “이따가 봐!”나 “조심해 들어가!”를 안하고 생뚱맞게 이 말을 했다. 이 말을 들은 아내는 “고마와요. 나도 행복해요.”하며 환하게 웃으며 나갔지만 나의 엉뚱한 어투에 당혹한 표정이 역력했다. 어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길을 떠나는 듯 이야기 했으니 당연히 그랬을 것.

갑자기 이따가 다시 보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였다. 나이가 들어 가면서 죽음을 더 가깝게 느끼게 되어선가 아니면 점점 험해지는 운전자들에 비해 얌전하고 고지식하기만 한 아내의 운전 때문이던가…

이전에는 집에서 나설 때 어머니께 “다녀 오겠습니다!”하고 인사를 드리고 들어갈 땐 “잘 다녀왔습니다!” 하곤 했다. 그게 요즘엔 들어갈 땐 변한 게 없지만 나갈 땐 “저 갑니다!”로 바뀌었다. 다시 돌아 올 보장이 없는 게 맞다 싶어서…

그렇게 살아가길 원한다. 다시는 내일이 없을 것 처럼… 가족을, 지인을, 세상만물을 사랑하고, 감사해 하고, 귀해 하고, 위하면서 살고 싶다. 도대체가 미워하고 다투며 낭비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귀한 시간들이다…

8/21/2010

My precious, going away from home

아이가 내일이면 긴긴 방학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간다.

입학한 방학이 되어 처음 집으로 돌아올때는 집에 난리법석이 났었는데  대문에 웰컴홈 배너가 걸렸었고, 스테잌을 굽고 여러가지 이벤트가 준비되고 그랬다.

그런데그렇게 학교와 집을 오가는 횟수가 거듭됨에 따라 점점 강도가 시들해 가더니 이젠 왔니?”하는 정도가 되어버렸으니 좀 미안하다면 미안한 일 이다. -.-;;

이번에 돌아가면서 처음으로 자기 차를 가지고 가는데몇주 전에 오일을 교체하면서 얼핏 보니 앞바퀴 두개의 마모가 심해서 6개월 쓰면 갈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어제 아내가 애가 가기전에 그거 갈아줘서 보내야 하지 않겠냐고 묻는데 말을 들으니 너무나 당연한 얘긴걸 떠나기 이틀전인 여태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내가 한심했다.

아이 차는 스포츠카 라서 타이어가 색다르고 구하기도 쉽지 않은(당연히 값도 만만치 않은) 종륜데 그나마 타이어센터들이 이곳 지역엔 배가 부른지 토요일인 오늘 거의 닫는데 문제가 있었다. 새벽예배에 나오신 차량정비소 하시는 집사님께 사이즈를 말씀드리고 어떻게 안되겠냐고 부탁을 드렸더니 집사님이 리치몬드지역에 수배를 해서 타이어를 찾았으니 빨리 차를 가지고 오라고 하셔서 무사히 타이어를 달고 왔다. 토요일에는 문도 안 여는 분들인데 우리 사정 생각하셔서 정비소로 나오셨다는 거다. 죄송하고 고맙다... 서로에게 베푸는 성도들의 사랑이 어디가 한계인지 모를 정도로 크다...  

어제 밤에는 한참동안 목욕탕 대청소를 했는데 식구들이 한 밤중에  일 인가 했을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아이가 집이라고 오랜 만에 돌아오는데 것은 아니지만 아이가 집에 와서 처음하는 목욕을 반짝반짝하는 깨끗함 속에서 기분좋게 있게 하자고 마음먹었었는데 아이가 돌아오던 당시에는 그렇게 짬을 내지 못하고 말았었다. 그래 집에서 떠나기 전에 라도 그렇게 있도록 하자고 청소였던 .

써놓고 보니 웃긴다. 가장이라는 목욕탕청소야 기본으로 해야 하는 거고, 당연히 하면서 누굴 위해 특별히 하는 거라고 생색을 내고 있으니 말이다. 근데그냥 마음이 그렇다는 거다. 대접해 주고 위해주고 싶은데 특별히 사주거나 해서 표현할 있는형편도 못되는지라마음이라도

5/30/2010

Men Are from Mars Women Are from Venus

한 10년 전 쯤 이 책을 읽고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아내를 더욱 이해하게 됐고 아내도 읽은 후 날 더 많이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 책이다. 기억력이 대충 까마귀정도 밖에 안되는 내가 내용을 정리해 보려니 힘에 부친다. 하여 요약해 놓은 것을 뒤져 봤는데  온라인 한국서점인 "알라딘"에

"이 책은 남녀가 각기 다른 행성, 즉 남자는 화성, 여자는 금성에서 왔다는 가정하에 시작한다. 각기 전혀 다른 말과 사고를 하는 행성에서 왔지만 '지구'라는 곳에서 오랫동안 살고 적응해 오면서 그들은 그들이 원래 다른 행성에서 왔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그리고는 자기가 생각하는 것, 원하는 것을 상대도 원할 것이라고 믿는다. 여기에서 갈등이 시작된다. 남녀의 근본적인 사고의 차이, 소망의 차이, 표현의 차이 등을 모르기 때문이다.
남자가 왜 연인과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필요로 하는지, 여자는 왜 변덕이 심한 것처럼 보이는지 등, 남녀의 근본적인 차이를 다양한 실례를 통해 재미나게 풀어간다. 이 책을 통해 남녀의 차이를 이해 한다면 더 이상 연인과 티격태격 싸울 필요가 없다. 상대방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왜 저런 태도를 취하는지 이해한다면 사랑하는 상대에게 더 효과적으로 어필할 수도 있다.

남자는 화성, 여자는 금성, 이렇게 각기 다른 행성에서 왔기 때문에 우리가 서로에게 강한 매력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차이점이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상대방을 알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일으키면서 사랑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 진행되면서 상대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때문에 오해하고 다투고 결국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만다. 다르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무엇이 다른지 제대로 알고만 있다면."

라고 요약해 놓았다. 뚱딴지같이 이 책 이야기를 한 이유는 지난 금요일 메릴랜드에서 가정치유사역을 하고 계신 목사님이 오셔서 부부관계에 대해 강의를 해 주셨는데 비슷한 요점이기에 그 책이 갑자기 기억이 난 때문이다. 이미 사오십대에 접어든 부부라면 이미 온갖 풍파를 겪으면서 깨닫고 터득했을, 뭐 그리 새로울 것도 대단할 것도 없는 사실들 이지만. 아내와 남편의 필요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잘 모르기 때문에 갈등이 생긴다는...

            <아내의 필요 우선순위>       <남편의 필요 우선순위>

1순위:          관심과 사랑                           성생활의 만족
2순위:    대화 (공감해 주는 것)            각종 활동의 파트너
3순위:      정직 투명한 남편                      매력적인 몸매
4순위:          경제적 안정                    편히 쉴 수 있는 안식처
5순위:   가정에 헌신하는 남편      남편을 인정/칭찬해 주는 아내

아내와 생각을 나눠봤는데 순위의 순서가 조금 다르기도 하고, 빠져야 하는 항목이나 추가되어야 하는 것이 몇 있기는 하지만 크게 틀리지 않은 자료라는 데 동의했다. 그리고 그 강사는 이런 차이점을 잘 알고 배우자의 필요에 더 신경을 써주고, 다음의 두 가지 만 잘해도 부부가 서로에게 더 만족할 수 있다고 말을 맺었다.

1. 배우자(자식도 해당사항)에 대한 기대치가 높을 때 불행해 지고 갈등이 생김=기대치를 '0'으로 낮춘다. 현재 상태로(그 존재가치만으로) 감사해야.

2. “십리동행의 원칙” -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마태복음 5:41 = 무슨 부탁을 하면 기꺼이 청을 들어 주는 것. 억지로가 아니라 흔쾌한 마음으로.

우리내외가 젖살도 채 가시지 않은 스물넷 스물하나의 나이로 결혼생활을 시작했을 때 그 책을 읽었더라면, 이런 사실들을 알고 있었더라면 그 많은 고통과 번뇌의 시간이 불필요 할 수도 있었을 텐 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럼에도 아직 우리내외가 더 적극적으로 적용해야 할 사항들 이고 혹 다른 부부들에게도 도움이 될 까 해서 여기 적어보는데 포인트는 서로 상대에게 나의 필요가 이러니 채워달라고 요구하는 것 보다는 상대의 필요가 그런 것을 알고 내가 상대의 필요를 채워주려고 적극 노력하는 것에 있는 것 같다.

3/09/2010

Living together

오늘 저녁에 젊은 집사님 몇 분과 같이 교회에서 작업을 하기로 했다. 제 2의 프로젝터와 스크린을 뒷 벽에 설치하는 작업인데 잘못하면 밤을 꼴딱 넘겨버려야 할 지 도 모를 정도로 일이 쉽지 않게 생겼다. 뭐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고 꼬셔서 모두 불러내긴 했지만…

하지만 우리 젊은 집사님들과 이렇게 일을 하면서라도 교제하는 것이 늘 즐겁고 행복하다. 또 그들이 사랑스럽다 ㅎ ㅎ ㅎ. 30, 40대의 남자들을 놓고 사랑스럽다고 하면 좀 이상하게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정말 그렇다. 모두 동생같다. 길지는 않지만 내 삶에 있어서의 경험과 수많은 실수, 오르락 내리락 하던 부실한 믿음의 여정등을 그들과 나눔으로 해서 그들이 앞으로 겪어야 할 수많은 시행착오를 줄여 줄 수만 있다면 하는 소망이 있다. 한편으로는 그들로 부터 그들 만의 지혜, 깨끗함, 그리고 씩씩함을 내가 받기도 해 더 젊어지고 싶은 욕심도 있다.

여지껏 아쉽다고 생각해 온 것은 이 곳에 정착한 많은 1세대 젊은이들이 한국에 있는 젊은 사람들처럼 일단 성장하면 크고 작은 일터에 속해 배우게 되는 "팀으로 상생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다는 안타까운 사실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주장을 접을줄도 알고, 상사에게 복종할 줄도 알고, 자신의 주장에 대한 확신이 있지만 다른 사람의 의견도 존중해 줄 지도 알고, 더 나아가 서로 나름대로의 논리를 조심스럽게 펼쳐서 상대를 내 의견에 따라오게 만드는 등의... 

아마도 이민 1세들이 이곳에서 직장을 잡는 경우보다 대부분 자영업을 시작하게 되는 때문이리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자영업이 뭔가.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 없이 온갖 힘든 난관들을 헤쳐나가야 한다. 혼자 맨주먹으로 일어서야 하기에 자기 고집이나 독함이 없으면 성공하기가 힘들다. 그러기에 자기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되는 것이 좀처럼 굽힐줄 모르는, 다른 사람이 뭐라 하던 내 생각이 맞다는 고집이다. 

폐쇄성도 많이 보이는 모습이다. 그렇게 홀홀 단신 성공해야 했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늘 강하게 보여야 했다. 아프고 깨진 모습을 보이기 싫어 안으로 안으로 숨어든다. 그래서 말 붙이기도 힘들고 더더구나 터놓고 지내려는 다른 사람의 노력은 바로 튕겨져 나온다. 일정한 선 이상은 절대 허용을 안 하려고 한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과연 몇 사람이나 동의할 수 있는 이야긴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 자신이 없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과 더 자주 교제하며 이런 서로의 모난 곳을 깍아 주며, 서로의 상처를 싸매어 줌으로 아름다운 이웃, 동네, 세상으로 한 발자욱 더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8/21/2009

Honeymooning for 25 years and more

결혼한 지 25년, 그리고 연애기간을 더하면 한 30년을 아내와 같이 했다. 길다면 긴 세월이다. 헌데 아직 신혼같은 기분이다. 아내에게 그런 느낌이 아직도 드냐고 물어 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다. 아직 연애하는 것 같이 얼굴을 볼 때 마다 사랑스럽다.

반정부데모가 한창이던 80년대 초 어느날 밤 남대문에서 큰 데모가 있었다. 아직도 80년초 데모를 언급할 때면 늘 쓰이는 상징적인 사진들이 있다. 그 가운데 남대문광장 바로 앞에서 시내버스가 불타는 장면이 있는데 바로 그 시간 그 자리에 내가 한 친구와 같이 있었다. 같은 스쿠버다이빙팀소속 친구였는데 통금시간 경찰을 피해 이골목 저골목을 누비며 새벽녘에야 그 친구 자취집에 도착했다. 방으로 들어서니 대학입시를 준비하고 있던 고3 여동생이 돌아오는 오빠를 맞이 하면서 얼른 부엌으로 들어가 라면을 끓여 내왔다. 그것이 이 긴 인연의 시작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결혼할 때 난 24 그리고 아내는 21살 이였는데도 양가의 어르신중에 너무 어리다고 반대하신 분이 없으셨던 것이 우리에겐 참으로 다행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24+21살의 결혼은 파격적인 일이였다. 학교는 대리출석으로 때우면서 이틀이 멀다하고 사라져 하얀 눈 덮인 산꼭대기에 천막을 치고 며칠을 혼자 지내는가 하면 어느 이름없는 동해안 바닷가에서 잠수로 세월을 보내는, 영 사람구실 할 것 같이 보이지 않는 아들의 장래가 심히 걱정스러우셨던 탓에 서울대장학생아가씨에게 장가를 들겠다고 하니 웬 떡이냐 싶으셔서 아가씨마음 변하기 전에 빨리 치뤄버리자 하는 심정으로 우리 부모님이 서두르셨던 것 같다.

그 후 신방을 차리기가 무섭게 유학을 떠나 버린 신랑. 신랑도 없이 학교다니며 시집생활을 해야 했던 몇 년. 자신도 유학생으로 도미해 새로운 전공으로 학교를 다니는 동시에 나와 함께 가게를 꾸려가야했던 몇 년. 그 후 이제까지 내내 시부모님을 모시고 생활을 해 온게 결혼해 지내온 햇수와 같은 25년이다. 참 많이 힘든 생활이었을 텐데도 지금까지 묵묵하게 자기 자리를 지켜준 사람. 아이들을 낳아 이쁘고 건강하게 잘 키워준 사람. 가게에서 무거운 것을 오랫동안 들어온 탓으로 지금은 그 후유증인 허리통증으로 늘 고통스러워 하는 그 사람. 남편을 원망하거나 기죽일 소리는 단 한 번도 하지 않고 지금까지 지내왔다면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정말 그래왔던 사람.

오늘 아침에 큰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는 길에 딸아이와 이야기했다.
"I love your mom so much and I can't help it."
"I know that, dad. She, too, always says the same thing about you to me."
"I feel like I am still honeymooning with your mom. That feeling is as fresh and real as the day 1 of our honeymoon and hasn't changed a bit."

신혼여행 첫 날

그 아이가 깔깔대고 웃었다. 그런데 앞으로도 계속 그런 신혼같은 기분으로 살 꺼라고 딸아이에게 감히 이야기하진 못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그랬던 것이 내 노력이나 나의 의지로 가능했던 일이 아니고 앞으로도 그 분이 허락하시는 은혜가 아니면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