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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9/2025
2/20/2024
2024 Costa Rica - 1
늘 새와 곤충에 관심을 두고 근접사진을 찍으려 노력하는데 한군데서 이렇게 많은 종류를 그 짧은 시간에 대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꽃은 너무 종류가 많고 이름이 길어 기록하는 것은 이미 포기했고 그나마 새나 곤충은 종류가 꽃보다는 적어 왠만하면 이름을 찾아 적어보려고 한다. 이번에 출발하기 전 코스타리카에서 주로 발견되는 동물을 사진과 함께 적어넣은 책자를 사서 모습을 비교하며 이름을 찾아봤다. 새와 동물의 모습과 울음소리를 들려주면 이름을 정확하게 찾아주는 앱이 지난 몇년 간 있어왔다는 건 최근에 안 사실. 늘 뒤져서 살아가는 내 모습이 좀 한심하기도 하고...
장비:
Camera body - Nikon Z6ii
Lenses - 50mm prime(f/1.2), 200-800mm telephoto(f/4.5), 12-28mm(f/3.5), 24-70mm(f/4.0), 85mm macro(f/2.1 with 2x adap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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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y-headed Tanag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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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lack-cheeked Woodpeck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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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erries Tanager (Ma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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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lver-Throated Tanag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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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late-throated Redstar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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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own Pelic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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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gnificient Frigatebird(Male and Fema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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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owy Egr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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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hinga(Fema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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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estnut-mandibled Toucan (코스타리카 국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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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ored Aracari - 종이 조금 다른 Touc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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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arlet Maca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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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arlet Macaw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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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reen Hermit - 수많은 벌새의 한 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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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reen Hermit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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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reen Hermit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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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reen Hermit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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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olet Sabrew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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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olet Sabrewing 2 |
7/15/2013
빈 둥지 연습
그것도 독일로 가는 비행기표가 너무 비싸 싸구려 표를 구입한 덕에 이곳에서 3시간여 떨어진 BWI(Baltimore-Washington International airport)까지 데리고 가 태워보내야 했는데 보통 가격보다 천여불 싸게 구입했으니 그 정도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지않나 싶다.
신랑이 독일주둔 미육군병원에서 근무하게 되어 독일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한 조카가 여름방학을 이용해 아이들을 보내면 유럽여행을 시켜주겠다고 하는 바람에 보내놓기는 했는데 너무 부담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다. 매일 출근해 일해야 하는 조카사위의 잠을 방해하는 소리를 밤에 낸다거나, 아침에 일어나지 않고 게으른 모습을 보인다거나 예의에 벗어나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두 녀석에게 여러 번 일렀는데 잘 지켜질 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앞으로 3주가 넘게 우리 내외만 훵한 집에서 지내야 하는데 세 아이가 모두 출가해 우리 내외만 달랑 지내게 되는 미래의 상황을 잠시나마 겪어보고 연습하는 시간이 되겠다.
7/11/2012
야고보의 길
얼마 전 우연히 접하게 된 영화, The Way
마틴쉰이 배낭을 맨 모습만 덩그러니 나와 있는 티저포스터에 지루하고 단순한 영화가 될 게 뻔해 그냥 지나려다 워낙 마틴쉰형님의 광팬이라 '봐 주기로' 함.
지겹게도 말 안듣고 사이가 좋지 않은 아들과 살며 외로운 노년을 보내고 있는 안과의사 톰은 어느 날 프랑스로 여행을 떠났던 아들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프랑스로 떠난다. 아들의 싸늘한 시신을 확인하고 들은 사연인 즉슨 아들이 프랑스에서 시작하여 스페인까지 이어지는 Camino de Santiago라고(영어로는 The way of St. James라고도 알려져 있는데 우리말로 '성 야고보의 길' 정도라면 될라나) 알려진 순례길을 가다 사망 했다는 것. 그리고 아들의 배낭을 인계받은 아버지는 아들의 시신을 화장하여 상자에 담고 800여 킬로미터, 30여일이 걸리는 순례의 길을 노년임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나선다.
그 여정에서 만나는 다른 순례자들의 삶과 애환이 자신의 것과 교차되면서, 아들의 삶과 생각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고 결국에는 모두가 그 긴 여정을 마치게 되는 이야기. 순례자 대부분 원래의 결심과 목적했던 바를 성취하거나 마음속에 있던 나름의 무거운 짐을 내려 놓으면서...
영화를 마치고는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의 잔잔한 감동에 한참을 그냥 천정만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요즘 부쩍 말을 안듣기 시작한 아들녀석을 다시 생각해 보게도 되었고...
마틴쉰의 탈도 많고 말썽 많은 아들들 중 에밀리오 에스테베즈가 감독과 동시에 죽은 아들역을 맡아 마틴쉰형님께서 더 가슴에 와닿는 연기를 한 게 아닌가 싶다.
나도 나이가 더 들기 전 혼자 이 길을 걸어보고 싶다는 소망이 뭉글뭉글 올라오기 시작. 달포정도 잡고 말을 아끼면서 천천히 천천히... 길은 멀어도 격한 산행이 아니고 높낮이가 심하지 않은 길 이라니 다행이고 영화에서 본 그 풍광을 실제로 보게 된다고 생각하니 더욱 욕심이 난다. 남은 생애 동안 해 보자고 결심한 Bucket list 1호 되겠다.
마틴쉰이 배낭을 맨 모습만 덩그러니 나와 있는 티저포스터에 지루하고 단순한 영화가 될 게 뻔해 그냥 지나려다 워낙 마틴쉰형님의 광팬이라 '봐 주기로' 함.
지겹게도 말 안듣고 사이가 좋지 않은 아들과 살며 외로운 노년을 보내고 있는 안과의사 톰은 어느 날 프랑스로 여행을 떠났던 아들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프랑스로 떠난다. 아들의 싸늘한 시신을 확인하고 들은 사연인 즉슨 아들이 프랑스에서 시작하여 스페인까지 이어지는 Camino de Santiago라고(영어로는 The way of St. James라고도 알려져 있는데 우리말로 '성 야고보의 길' 정도라면 될라나) 알려진 순례길을 가다 사망 했다는 것. 그리고 아들의 배낭을 인계받은 아버지는 아들의 시신을 화장하여 상자에 담고 800여 킬로미터, 30여일이 걸리는 순례의 길을 노년임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나선다.
그 여정에서 만나는 다른 순례자들의 삶과 애환이 자신의 것과 교차되면서, 아들의 삶과 생각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고 결국에는 모두가 그 긴 여정을 마치게 되는 이야기. 순례자 대부분 원래의 결심과 목적했던 바를 성취하거나 마음속에 있던 나름의 무거운 짐을 내려 놓으면서...
영화를 마치고는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의 잔잔한 감동에 한참을 그냥 천정만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요즘 부쩍 말을 안듣기 시작한 아들녀석을 다시 생각해 보게도 되었고...
마틴쉰의 탈도 많고 말썽 많은 아들들 중 에밀리오 에스테베즈가 감독과 동시에 죽은 아들역을 맡아 마틴쉰형님께서 더 가슴에 와닿는 연기를 한 게 아닌가 싶다.
나도 나이가 더 들기 전 혼자 이 길을 걸어보고 싶다는 소망이 뭉글뭉글 올라오기 시작. 달포정도 잡고 말을 아끼면서 천천히 천천히... 길은 멀어도 격한 산행이 아니고 높낮이가 심하지 않은 길 이라니 다행이고 영화에서 본 그 풍광을 실제로 보게 된다고 생각하니 더욱 욕심이 난다. 남은 생애 동안 해 보자고 결심한 Bucket list 1호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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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urce: http://www.thoughttavern.com/camino-de-santiago/ |
여정은 위의 지도에서 보듯이 오른쪽에 위치한 프랑스 여러 지점에서 시작할 수 있지만 중간쯤 스페인으로 넘어 와서는 그 모든 길이 만나게 되어 한 길로 가게 된다. 그 여정의 왼쪽 끝에 위치하고 열두 사도의 한 사람인 성 야고보의 유해가 매장되어 있는 스페인의 Santigo de Compostela 대성당에 들리는 것으로 대장정이 마무리 되는 사도 야고보(James)가 마지막으로 걸었던 순례의 길. 9세기 부터 기독교도이건 아니건(아닌 경우는 그저 자기성찰을 위해) 많은 순례자들이 걸어 왔단다.
3/10/2011
일탈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난 특히나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중학교 다닐 때만 해도 전교에서 몇 등을 놓치면 죽을 것 처럼 공부만 하다가(극한 대비를 위해 좀 과장한 면도 없지않삼), 고등학교에 들어간 후 왜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지면서 그저 세상을 좀 둘러보고 배우고 싶다는 욕구가 갑자기 생겼다. 그래서 돈이 있을리 만무한 고등학교 1학년생이 엄마지갑을 뒤져 배낭, 버너, 텐트, 등산화 등을 몰래 사 모으기 시작했고, 어느 화창한 봄 날을 택해 무작정 여행을 떠났다. 그것도 방학이나 공휴일이 아닌 다른 아이들 다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평일에 집에는 한 마디 이야기도 없이.
없어진 나 때문에 당황하실 부모님, 학교담임선생님, 그리고 돌아와서 당할 꾸짖음 등의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고 내 머리속은 하얗게 비어 있었다. 청량리에서 기차가 출발했고, 덜커덩 덜커덩 거리는 기차의 장단을 들으면서 창가에 얼굴을 기대고 받는 봄 햇살이 너무나 따스한 가운데 난 "바로 이거야" 라는 생각을 하며 만족스런 잠으로 스르륵 빠져 들었었다.
그 첫 여행이 3일인지 아니면 4일동안 이었는지 확실히 기억이 나질 않지만 집으로 돌아온 후, 딸 넷에 아들 하나인 우리집과 학교에서의 난리는 상상에 맡기기로 하고 좌우간 그 이후 한달이 멀다하고 이런 일탈이 반복되었다. 후회도 두려움도 없었고 망설임도 없었다. 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학급등수(전교등수가 아닌)가 54/60 이라고 쓰인 성적표를 받아들고 내가 씩 웃었던 건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도저히 안되는데 아마 중학교때 받은 스트레스에다 그런 부담을 준 부모와 학교와 사회에 대한 철 모르는 어린녀석의 보복어린 감정에서 나온 것이었을 듯...
하지만 지금은 어렵고 힘든 일들이 앞을 가로 막을 때 마다 그 기억들을 되살리면 마음이 후련해지고 무슨 두려움이 있겠나 싶은 생각이 들며 다시 웃음을 되찾게 된다. '그래서 후회는 없었다' 라는 생각과 '우리 아이들은 그러면 안되쥐' 라는 몹시 이중잣대적인 생각을 동시에 하면서. ^^
여행을 떠나기 전 배낭에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넣으며 가슴이 두근거리던 기억, 한없이 달리는 열차와 고속버스를 스치며 지나가던 푸른 숲과 눈덮인 산, 거친 능선을 열 몇 시간을 타며 내가 내쉬던 거칠고 하얀 입김, 지나치는 사람도 하나 없고 마치 귀가 먹은 것 같은 고요함속에 늠름하게 버티고 서 있던 겨울 산, 눈위에 텐트를 치고 들어가 눈을 녹여 지은 밥과 호박, 양파, 된장 고추장 넣어 끓여 먹던 찌게, 길잃어 헤메던 산에서의 밤, 대피소에서 만난 낮선 사람들과의 대화와 사귐, 그런 기억들 말이다...
중학교 다닐 때만 해도 전교에서 몇 등을 놓치면 죽을 것 처럼 공부만 하다가(극한 대비를 위해 좀 과장한 면도 없지않삼), 고등학교에 들어간 후 왜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지면서 그저 세상을 좀 둘러보고 배우고 싶다는 욕구가 갑자기 생겼다. 그래서 돈이 있을리 만무한 고등학교 1학년생이 엄마지갑을 뒤져 배낭, 버너, 텐트, 등산화 등을 몰래 사 모으기 시작했고, 어느 화창한 봄 날을 택해 무작정 여행을 떠났다. 그것도 방학이나 공휴일이 아닌 다른 아이들 다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평일에 집에는 한 마디 이야기도 없이.
없어진 나 때문에 당황하실 부모님, 학교담임선생님, 그리고 돌아와서 당할 꾸짖음 등의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고 내 머리속은 하얗게 비어 있었다. 청량리에서 기차가 출발했고, 덜커덩 덜커덩 거리는 기차의 장단을 들으면서 창가에 얼굴을 기대고 받는 봄 햇살이 너무나 따스한 가운데 난 "바로 이거야" 라는 생각을 하며 만족스런 잠으로 스르륵 빠져 들었었다.
그 첫 여행이 3일인지 아니면 4일동안 이었는지 확실히 기억이 나질 않지만 집으로 돌아온 후, 딸 넷에 아들 하나인 우리집과 학교에서의 난리는 상상에 맡기기로 하고 좌우간 그 이후 한달이 멀다하고 이런 일탈이 반복되었다. 후회도 두려움도 없었고 망설임도 없었다. 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학급등수(전교등수가 아닌)가 54/60 이라고 쓰인 성적표를 받아들고 내가 씩 웃었던 건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도저히 안되는데 아마 중학교때 받은 스트레스에다 그런 부담을 준 부모와 학교와 사회에 대한 철 모르는 어린녀석의 보복어린 감정에서 나온 것이었을 듯...
하지만 지금은 어렵고 힘든 일들이 앞을 가로 막을 때 마다 그 기억들을 되살리면 마음이 후련해지고 무슨 두려움이 있겠나 싶은 생각이 들며 다시 웃음을 되찾게 된다. '그래서 후회는 없었다' 라는 생각과 '우리 아이들은 그러면 안되쥐' 라는 몹시 이중잣대적인 생각을 동시에 하면서. ^^
여행을 떠나기 전 배낭에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넣으며 가슴이 두근거리던 기억, 한없이 달리는 열차와 고속버스를 스치며 지나가던 푸른 숲과 눈덮인 산, 거친 능선을 열 몇 시간을 타며 내가 내쉬던 거칠고 하얀 입김, 지나치는 사람도 하나 없고 마치 귀가 먹은 것 같은 고요함속에 늠름하게 버티고 서 있던 겨울 산, 눈위에 텐트를 치고 들어가 눈을 녹여 지은 밥과 호박, 양파, 된장 고추장 넣어 끓여 먹던 찌게, 길잃어 헤메던 산에서의 밤, 대피소에서 만난 낮선 사람들과의 대화와 사귐, 그런 기억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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