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직장으로 부터 이번에 새로 나온 iPhone 5를 받았다. 여지껏 쓰는 개인용 Droid Razr가 꽤 괜찮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전화를 며칠 써보니 좀 과장해서 '속아 살았다'는 느낌이다. 뭐 전체적인 성능은 아직 비교해 볼 시간조차 없었지만 평소에 Droid Razr를 쓰면서 "아이씨 이건 왜 이런 기능이 없는거야!" 하던 것 들을 차분히 모두 해결해 놓은 전화가 iPhone 5라는 생각. 대표적인 예가 회의나 교회예배중 깜빡잊고 소리를 죽이지 못했을 때. 소리를 없애기 위해 버튼을 두세번 누르지 않아도 되게 이녀석은 자그마한 스위치를 만들어 놓았다. HD화질의 비디오녹화도 깔끔하고, 나같이 뇌세포가 2/3는 이미 굳어버린 꼰대들이 쓰기에도 어렵지 않게 메뉴가 되어있고.
ii.
매년 이맘 때면 작지만 내가 담당한 학교들을 청소하시는 분들의 성탄선물을 마련해 드린다. 이번학기 들어 일하는 지역을 다른 직원과 맞바꾸느라 학교갯수가 늘어서 금년엔 선물이 28개. 최선을 다해 청소하는 이분들 노고 덕분에 내가 청결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선생들을 위해 학부모회나 교육부에서 시끌벅적한 년말잔치나 선물을 해 줄 때 이분들은 눈에 띌세라 안보이는 곳에서 숨어지내시기에 이분들도 마땅히 누군가로 부터 감사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시작한 일.
iii.
막내가 권투를 갔다 오는 길에 심각하게 털어 놓는다.
"아빠, 너무 허탈하고 허무해."
"왜? 뭐가 그리 허탈해?"
"무슨 목표와 기대를 갖고 지내다 그것을 이루고 나면 허무하고 또 다른 목표와 기대를 가져야 하기에 세상이 뭐 이런가 싶어."
"음. 예를 들면?"
"지겨운 학교에서 집에와서 쉴 생각만 하다가 막상 집에 와서 얼마간 있다가는 잠자고 나서 또 학교로 가야 한다는 것. 아빠가 준비하는 맛있는 저녁을 잔뜩 기대하면서 그 생각으로 하루를 버티다가 그 저녁을 먹고나서 배가 부르게 되면서 느끼는 허탈함. 뭐 그런 것들 말야."
"응, 아빠도 네 나이때는 그랬어. 그래서 훌륭한 사람들은 늘 '큰 꿈과 목표를 가져라!' 그러쟎아. 그래야 작은 목표와 기대가 금방 이루어져도 더 큰 꿈을 바라보고 허탈해 하지 않을 수 있는 건가봐."
뭐 이런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럼 내 꿈과 목표는 뭐냐고 아들놈이 물어 보면 뭐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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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6/2012
1/02/2011
새해 첫 주일오후의 단상
몸은 게으름을 피우고 싶어 늘어 지지만 그래도 새해 첫 주일인데 시작을 잘 해야 겠다는 마음에 시간이 허락하면 주일 오후에 나가곤 하는 그 자리에 갔다.
비가 와서인지 아니면 어제 먹은 설음식들이 많이 남아서인지 장보러 오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날씨가 좋을 땐 몰랐는데 그 가게 자동문의 센서가 비막는 지붕전체를 커버하고 있어 내가 지붕밑으로 비를 피해 들어가면 문이 열리고 찬바람이 가게안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지붕밖에서 내내 비를 맞고 서 있어야 했다. 날씨가 그리 추운 것도 아닌데 빗방울이 얼음같이 차겁게 느껴진다. 그런 와중에 이런 저런 생각이...
<하나>
내 속에서 두 목소리가 다투는 소리가 들린다. "야, 그렇게 한국가게 앞에 나와 전도하는 게 얼마나 효과가 있다고 그러니? 요즘 세상에 어디 그런 방법이 먹혀 든다고..." 그러면 다른 목소리가 "근데... 집에 누워 티비보는 것 보다는 이게 낫지 않겠냐?" 한다. "너, 그거 다른 교인들 보여주기 위해, 나 전도한다 광고하기 위해 나와 혼자 버티고 서 있는거지?"하니 다른 목소리가 이내 "아니, 나 이거 나 구원받은 것이 기쁘고 감사해서, 하루에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 만나 전하기 위해 하는 거지 누구 보라고 하는 거 아냐. 누가 본다고 날 상 줄 것도 아니고 뭐 부럽다고 할 것은 더더구나 아니고."
늘 이런 부정적인 목소리가 날 포기하게 하려 하고, 외식하는 자(hypocrite) 로 끊임없이 정죄한다. 삶이란게 원래 이런 갈등과 결단의 연속인가... 촛점을 잃지 말아야지.
<둘>
구역이 재 조정되어 젊은 부부들이 주로 있는 구역교사를 맡게 되었다. 워낙 똑똑하고 신실한 분들이라 부담이 적지 않다. 그 분 들을 가르친다는 것 보다는 같이 배워 나가며 같이 고민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성경말씀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는 요즘 안 믿는 사람들도 성경을 꿰고 있는데 믿는 사람으로서 성경말씀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 말씀을 아는 것에서 더 나아가 자신들의 삶의 현장에서 말씀 그대로 삶을 사는 것에 도전하고 또한 나 자신도 도전 받으며 갈 생각이다.
<셋>
우연히도 읽어오던 성경이 지난 2009년을 끝내는 마지막 날엔 구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서의 마지막 장 이였는데, 이번 2010년 마지막 날은 신약의 마지막인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장 이었다. 요한계시록은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속에 그 내용이 뚜렷하게 visualize되면서 두려움이 더해진다. 지금 온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 들도 예사롭지 않고.
후... 일년내내 신약만 붙잡고 씨름한 셈이니 그 양에 있어서 거의 세배나 되는 구약을 보려면 금년은 꾀 부리지 않고 부지런히 가야 할 듯.
아내에게 비옷을 하나 사 달래서 차에 지니고 다녀야겠다. 그래 오늘과 같이 비가 와도 떨지 않고 거뜬할 수 있도록...
비가 와서인지 아니면 어제 먹은 설음식들이 많이 남아서인지 장보러 오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날씨가 좋을 땐 몰랐는데 그 가게 자동문의 센서가 비막는 지붕전체를 커버하고 있어 내가 지붕밑으로 비를 피해 들어가면 문이 열리고 찬바람이 가게안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지붕밖에서 내내 비를 맞고 서 있어야 했다. 날씨가 그리 추운 것도 아닌데 빗방울이 얼음같이 차겁게 느껴진다. 그런 와중에 이런 저런 생각이...
<하나>
내 속에서 두 목소리가 다투는 소리가 들린다. "야, 그렇게 한국가게 앞에 나와 전도하는 게 얼마나 효과가 있다고 그러니? 요즘 세상에 어디 그런 방법이 먹혀 든다고..." 그러면 다른 목소리가 "근데... 집에 누워 티비보는 것 보다는 이게 낫지 않겠냐?" 한다. "너, 그거 다른 교인들 보여주기 위해, 나 전도한다 광고하기 위해 나와 혼자 버티고 서 있는거지?"하니 다른 목소리가 이내 "아니, 나 이거 나 구원받은 것이 기쁘고 감사해서, 하루에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 만나 전하기 위해 하는 거지 누구 보라고 하는 거 아냐. 누가 본다고 날 상 줄 것도 아니고 뭐 부럽다고 할 것은 더더구나 아니고."
늘 이런 부정적인 목소리가 날 포기하게 하려 하고, 외식하는 자(hypocrite) 로 끊임없이 정죄한다. 삶이란게 원래 이런 갈등과 결단의 연속인가... 촛점을 잃지 말아야지.
<둘>
구역이 재 조정되어 젊은 부부들이 주로 있는 구역교사를 맡게 되었다. 워낙 똑똑하고 신실한 분들이라 부담이 적지 않다. 그 분 들을 가르친다는 것 보다는 같이 배워 나가며 같이 고민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성경말씀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는 요즘 안 믿는 사람들도 성경을 꿰고 있는데 믿는 사람으로서 성경말씀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 말씀을 아는 것에서 더 나아가 자신들의 삶의 현장에서 말씀 그대로 삶을 사는 것에 도전하고 또한 나 자신도 도전 받으며 갈 생각이다.
<셋>
우연히도 읽어오던 성경이 지난 2009년을 끝내는 마지막 날엔 구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서의 마지막 장 이였는데, 이번 2010년 마지막 날은 신약의 마지막인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장 이었다. 요한계시록은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속에 그 내용이 뚜렷하게 visualize되면서 두려움이 더해진다. 지금 온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 들도 예사롭지 않고.
후... 일년내내 신약만 붙잡고 씨름한 셈이니 그 양에 있어서 거의 세배나 되는 구약을 보려면 금년은 꾀 부리지 않고 부지런히 가야 할 듯.
아내에게 비옷을 하나 사 달래서 차에 지니고 다녀야겠다. 그래 오늘과 같이 비가 와도 떨지 않고 거뜬할 수 있도록...
7/31/2010
목표를 정하고 – 잔디 3
![]() |
| 자세히 보면 선이 보인다. 지나간 자욱. |
그것 까지는 눈치를 챘는데 아무리 똑바로 걷는다고 걸어도 다른쪽 끝으로 가서 보면 항상 삐뚤빼뚤 지렁이가 기어 간 것 같이 자욱이 나곤했다. 가까이에서 봐서 그 정도지 멀리서 보기라도 하면 그 꾸불거리는 것이 더 가관이었다. “참 이상도 하다. 아직 흔적이 남아있는 지난 번 깍아나간 선을 따라서 걸으면서 좀 구불어져 있던 곳은 분명히 정정해 나갔는데 이번에도 역시 꼬불이네?” 했다.
어느 날 다른 시도를 해 봤다. 이제는 지난 번의 흔적을 따라 간다던가 몇 발자욱 앞을 보고 걷는 대신 다른쪽 끝에 어떤 목표를 설정하고 그걸 응시하면서 걷는.
처음엔 기계를 밀고 걸으면서 동시에 먼 곳에 있는 목표를 보는게 그리 쉽지 않았다. 하지만 차츰 그게 익숙해 지면서 옆에 전에 있던 선이 어떻게 나 있던, 땅이 이리저리 불규칙하게 되어있던, 내 주의를 산만하게 할 어떤 상황이 주위에서 벌어져도 그 목표 하나만 응시하고 나아가면 “죽” 뻗은 일직선으로 가게 되더라는…
우리의 삶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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