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posts with label 조카. Show all posts
Showing posts with label 조카. Show all posts

10/02/2014

한 생명의 탄생을 기다리며

어젯밤 독일에 사는 조카로 부터 전화가 왔다.

남편과 함께 분만을 위해 병원으로 갔는데 한시간쯤 전 양수가 터졌으니 조만간 산통이 시작되지 않겠냐는 것. 이곳 식구들 모두에게 알리고 아기와 엄마가 무사할 수 있도록 같이 기도로 기다리고 있는 중. 나에겐 하나같이 다 소중한 조카들이지만 유난히 이 아이와 이 아이의 언니에게 마음이 좀 더 쓰이는 건 어렸을적 부터 아빠의 도움없이 엄마혼자 힘들게 키웠고 아이들이 거친 세상에 치이면서도 꿋꿋하게 자신들의 삶을 잘 개척해 나왔기 때문이리라. 그런 아이들을 지켜보는 기쁨이 크고, 눈물로 드리는 딸(아이들 엄마, 나에겐 누님)의 간구를 외면치 않으시는 그 분이 너무나 감사하다.


청혼을 받으며 기뻐하던 녀석의 모습

http://oldman-james.blogspot.com/2010/12/proposal-ring.html








결혼식에서 꽤나 근사했던 두 아이

http://oldman-james.blogspot.com/2012/06/blog-post_18.html










독일로 떠나기 전 들려 주고갔던 선물

http://oldman-james.blogspot.com/2012/07/blog-post_15.html







독일에서 보금자리를 차리고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












잠시 귀국하여 우리집을 방문한 내외

http://oldman-james.blogspot.com/2014/03/blog-post_28.html








이 글을 쓰는 동안 7파운드 6온스의 건강한 아기를 낳았다는 소식과 함께 따끈따끈한 사진을 보내왔다. 산모와 딸 Addie (meaning: child of Adam) 모두 건강하다는 소식.

계속 기도하마.

경사났네, 경사났어!!!!!!!!!!!!!!!!!!!!!!!!!!!


3/28/2014

반가운 손님

독일에 가있던 조카와 조카사위가 떠나간지 2년만에 돌아왔다.

조카사위가 35세 생일을 맞아 쌍둥이형제와 생일을 같이 치루기 위해 방문했고 우리집에서 이틀밤을 지내고 오늘 오후에 조카의 시댁식구들와 합류하기 위해 메릴랜드로 올라가게 된다.

오랜만에 이곳에 있는 가족들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가지는 한편 애타게 기다리던 첫아이 임신이라는 기쁜소식을 알려줘 모두를 환호하게 만들었다.

더불어 독일에서 지원해놓고 왔던 직장에서 국제전화로 전화인터뷰를 하자고 어제 연락이 왔고 근래에 임신하게 되었다고 솔직하게 밝혔는데도 부득이 그쪽에서 같이 일을 하자고 해 여기있는 동안 여러 경사가 겹쳤다.

잠깐 보고 헤어져야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다음에는 우리가 독일로 방문을 해서 보게 될 수 있
게되길 바라며...건강한 아이 쑥 잘 낳아 행복하게 잘 살그레이.

예전에 적었던 조카관련 포스트:

http://oldman-james.blogspot.com/2010/12/proposal-ring.html

http://oldman-james.blogspot.com/2012/06/blog-post_18.html

http://oldman-james.blogspot.com/2012/07/blog-post_15.html


7/15/2012

뜻밖의 선물

얼마 전 결혼식을 올린 조카가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인사차 우리집엘 왔다.

독일에 있는 미군병원으로 발령이 난 신랑을 따라 일주일 후면 독일로 떠난다고 주말을 이용해 와 하룻밤을 묵고 감. 예전에 교제 중 둘이 놀러 왔을 때는 내가 눈치를 줘 방을 따로 쓰게 했는데 이젠 떳떳하게 한 방을 사용하도록 했고. ㅎ ㅎ

짐을 모두 싸서 부치고 이젠 옷가지만 조금 든 가방 몇 개 남았다고 하면서 자기가 예전에 쓰던 카메라를 내어 놓는다. 신랑이 최신형 카메라를 얼마 전 결혼선물로 사줘서 사진을 즐겨 찍는 나에게 아버지날은 지났지만 선물로  예전 카메라를 주고 떠나고 싶단다. 빽빽하게 사연을 적은 아버지날 카드도 겸해서... 날 아버지로 여기면서 따르고, 조언을 해 줄 때마다 순종해 준 녀석이라 카드의 내용도 눈물없이는 볼 수 없었다.

자랑 한 번 해야하지 않겠나 싶다. 앞으로 블로그에 실리는 사진의 질도 좀 향상되리라 희망하면서...

고맙다! 그리고 예쁘게 잘 살 줄 믿는다!

6/18/2012

아름다운 결혼식, 즐거운 여행

조카의 결혼식 참석을 위해 온 식구가 2박3일간의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러시지 못한 한국식구들을 위해 조금 적었다.

날씨도 계속 화창한 가운데 그리 덥지도 않았고, 예식준비나 피로연준비도 완벽했고, 예식 자체나 피로연도 실수나 불상사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되어 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마음이 참 좋다. 아내와 우리 아이들 셋도 오가는 여정이나 머무르는 동안 서로를 만끽하는 가운데 시종 깔깔대며 즐거운 휴가로 다녀왔다.

양쪽 어머니들의 한복차림을 제외한 모든 것이 철저하게 미국식으로 진행됨. 가족들의 일정은 예식 전날 시작되어 예식 다음 날 마무리 되었고, 장소도 18세기에(257년 됐단다) 지어진 컨트리클럽의 야외에서 진행되어 색다른 느낌이었음. 리치몬드에서 운전해 3시간 반 정도 걸리는 메릴랜드주의 한적한 산 속에 위치.

<예식 전날>
아침 11시: 신랑신부, 양가부모, 신랑신부 들러리들, 칼을 들고 Arch를 만들어 신랑신부가 통과하게 할 육군병원동료군의관들이 식장에 모여 일체의 순서를 3번 정도 반복함.

저녁 6시: 시내의 고풍스러운 식당에서 리허설에 참석했던 모든 인원이 저녁식사를 같이 함. 예식 당일 짧은 멘트와 함께 건배를 제의하게 될 사람은 딱 3명(Bride's maid of honor, Groom's best friend, Father of the bride)으로 정해져 있기에, 이 저녁식사 시간을 통해 신랑과 신부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싶은 친구들은 모두 나와 온갖 즐거웠던 추억들과 칭찬들을 이야기했는데 얼마나 재미있고 짓궂게 하는지 모두들 배꼽을 잡으며 즐거운 저녁식사 시간을 보냄.

<예식 당일>
저녁 6시: 모든 하객들이 정원에 자리한 가운데 바닥에 뿌려진 장미꽃잎들을 밟으면서 신랑, Groomsmen들, Bridesmaids들이 먼저 행진해 들어간 다음 아빠를 대신해 내가 조카를 입장시킴. 간단하게 식이 끝나고 성혼이 되었음을 선포. 나가는데 육군장교예복차림에 칼을 치켜 들어줘야 할 신랑동료들이 칼을 올리지 않고 막아선 채 뽀뽀를 한 번 더 하지 않으면 지나가지 못한다고 능청을 떨어 결국 뽀뽀를 하고 지나감. 그러고 나가는 신부의 엉덩이를 칼로 한대 탁 치는 것도 전통이란다. ㅎ ㅎ


이 장면에서 왜 그리 눈물이
 나던지...아름다와서 그랬나...
저녁 7시: 밖에 설치된 텐트에 피로연이 준비되어 있었고, 하객들이 자리한 가운데 가족과 신랑신부가 입장. 잘 준비된 식사가 무르익어 갈 무렵, Bride's maid of honor인 우리 큰 아이가 멘트를 하고 건배를 제의하는 것을 시작으로, Groom's best friend인 쌍동이 형, 그리고 내가 신부아빠의 자격으로 멘트를 하고 건배를 제의 했다. 그토록 조카의 결혼식만큼은 지켜보고 싶어 하셨던 할머니할아버지 이야기를 언급하던 순간엔 조카가 펑펑우는 걸 볼 수 있었고... 그 이후론 파티모드. 놀다 한밤중에 배가 고플까봐 아예 한쪽 구석에 버거킹에 주문해서 배달받은 햄버거 150개를 산처럼 쌓아 놓고, 각종 음료, DJ의 음악, 가터밸트 벗기기, 꽃 던지기, 츰 등으로 신나게 놀며 밤을 새는 젊은이들을 뒤로 하고 우리 구세대는 슬그머니 피로연장소를 빠져 나왔다.

<예식 다음날>
같은 호텔에 거의 모든 가족과 하객들이 의도적으로(호텔에서 식장까지 셔틀버스를 운행했기에) 묵었는데, 신랑신부가 9:30부터 11:30까지 식당에 머무면서 전날 참석했던 가족, 하객들과 아침식사를 같이 하고, 떠나기 시작하는 사람들을 한사람 한사람 안아주며 감사의 말을 다시 해 주는 동시에 배웅하는 것 역시 참 좋았다고 느꼈다.

예식순서지에도 할머니할아버지를 추모하는 글을 일부러 적었고, 건물들어가는 입구에도 두분의 사진을 곁들여 추모하는 테이블을 만들어 놓을 정도로 각별했던 조카의 할머니할아버지 사랑을 엿볼 수 있었음.

<이 부부의 앞으로의 일정>
신혼여행을 하와이로 갔다가 와서는 짐을 모두 싸서 독일로 부치게 되고, 독일에 있는 미국병원에서 몇 년 근무하기 위해 7월 초순에 떠나게 된다고 한다. 군에서 주거비용을 엄청 지원해줘 군의관들은 대부분 큰 저택에서 살게 된다고 하는데, 미국이나 한국식구들이 놀러 오면 특별(?) 대우를 해 주겠다는 다짐을 받았음. ㅋ ㅋ ㅋ

얘들아, 행복하게 잘 살거라!  내가 피로연때 너희들에게 부탁한 말 잊지말고. (Have God in common. Then He will bond you together and bless your marriage!)

컨트리클럽의 전경

정원의 식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멀리서 본 식장

피로연이 열릴 텐트

텐트내부의 피로연 테이블셋업

신부대기실에서



First kiss
Saber Arch

First dance
Cake cutting
우리 큰딸이 직접 진흙을 굽고 깍아서 만든 케익 데코레이션
신부가 던지는 부케를 기다리는 처녀들

조카의 garter belt를 벗겨내는 신랑

garter belt(양말대님)을 초조히 기다리는 총각들
한술도 못 먹었겠지만 마냥 행복한 신랑신부
Party time!
 


밤새 이어지는 파티

12/28/2010

Proposal Ring

전화 너머로 들뜨고 행복한 조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자친구와 몇 시간 전에 아이스스케이트링크에 갔었는데 거기서 발견한 사진사(남자친구가 미리 고용해서 처음부터 숨어 쫓아 다니며 계속 사진을 찍었다고)에게 남자친구가 커플사진을 부탁하더라는. 그러더니 느닷없이 무릎을 꿇고 청혼을 했다고 한다. 예쁜 반지와 함께.  참 끈질기게도 나쁜 소식만 들려오던 이 해 였는데 마지막에 답답한 가슴을 탁 트이게 하는 이런 좋은 소식이 들려올 줄이야. 이번 크리스마스에 조카와 남자친구와 함께 왔었는데 남자친구가 날 은밀히 불러서는 며칠 있으면 자기가 청혼할 건데 아빠가 안 계시니 조카가 늘 아빠처럼 생각하는 삼촌께 먼저 말씀드린다고 비밀스럽게 알려줘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 얘야 나도 기쁘구나...

감회가 새로와 지면서 옛 일 들이 떠오른다. 아빠(매부라 부르기 싫어 이렇게)가 가정을 버리고 떠난 후 빚만 잔뜩 떠 안은 누나와 두 여조카만 달랑 남았을 때 학교에서 우등을 하던 이 아이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 할 정도로 충격을 받고 오랜 방황을 해야 했다.

간신히 자신을 추스린 이 아이가 대학에 갈 결심을 하고 대학등록금을 걱정할 때 우린 도와줄 형편이 못되어 눈물을 삼켜야 했고, 이 아이는 결국 복무하면 대학학비를 지원해 준다는 공군에 자원입대를 했다. 신병훈련소 졸업식이 있다고 연락이 와서 누나와 함께 텍사스로 갔을 때, 훈련소에서 일방적으로 지급하는 얼굴을 반쯤 덮는(아이가 워낙 작고 가냘퍼서) 큼직한 까만 뿔테 안경 밑으로 햇볕에 새카맣게 그을은 그 아이의 얼굴이 보이자 난 정신없이 뛰어가 그 아이를 와락 끌어 안았다. 그 아이가 그 때 뚝뚝 흘리던 닭똥같은 눈물을 난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아이도, 나도, 제 엄마도 한참을 부둥켜 안고 울기만 했었다.

지금은 제대하고 두달에 한 주말을 국가방위군으로 근무하면서 나머지 시간엔 메릴랜드주립대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는 중. Walter Reed미 육군병원 심장전문의인 그 친구와 꽤 오랜 시간 교재해 오고, 집에도 놀러오곤 하더니 급기야 청혼에 도달한 것.

아직은 청혼만 이루어 진 거라 좀 이른 감이 있지만 이제껏 고생한 것에 비해 몇 배로 남부럽지 않게, 행복하게 잘 살거라! I love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