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2012

Boxing training

이제 아들에게 내가 직접 복싱을 가르치는 것에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source: http://www.bebodysmart.com/
지금까진 젊은 시절에 몇 년 했던 킥복싱의 기본동작을 가르쳐 주고 스파링도 하면서 대충 지내올 수 있었지만, 이젠 아들녀석 주먹에 힘이 불끈 실려 훈련용 미튼을 끼고도 녀석의 강한 펀치에 손이 아파 견딜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끔 내 몸을 쳐 보라고 하면서 가드를 내려 주기도 하는데 몸으로 맞는 펀치는 더 끔찍하게 아파 복부를 한 대 맞기라도 하면 숨이 턱 막히면서 무릎이 스르르 꺽일 지경.

그래 리치몬드지역에 있는 권투트레이너란 트레이너는 모조리 연락해 알아보게 되었는데... 대부분 선수생활도 안해 본 사람들이 색깔만 트레이너랍시고 대충 흉내만 내는 형국이다. 그런다가 한 사람의 훈련장엘 아들을 데리고 찾아가게 되었는데 이거 진짜다 싶은 생각이 듦.

Jerry라는 이름의 흑인 트레이너. 다운타운에 있는 빈민가에서 국민학교 체육실을 빌려 정부의 보조를 받아 가면서 대부분 엄마가 누군지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는 불쌍한 동네 아이들을 모아 무상으로 가르치고 있었다. 자신과 다른 트레이너들도 모두 비슷한 환경에서 온갖 사고뭉치로 자라났고 권투를 시작하게 되면서 자신들의 삶이 바로 잡아졌다고, 그래서 이 아이들에 대한 책임을 느낀다고 설명해줬다.

벽에 붙여논 사진들을 보니 이 분을 통해 버지니아주 아마추어챔피언, 전미국 아마추어챔피언이 여럿 나왔고 연습하고 있는 학생들 중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친구들이 몇 눈에 띄였다.

아들녀석이 첫 날은 그냥 구경삼아 가는 거니까 하면서 맨발에 샌달을 질질 끌고 가길래 안되겠다 싶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니 양말과 운동화를 신고 가자고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상견례가 끝나자마자 녀석을 바로 훈련생들 속으로 밀어 넣었다.

ㅋ ㅋ 우리 아들 그 날 얼굴이 허옇게 되도록... 굴렀다. 난 신병훈련소에서 유격훈련때 받은 "앞으로 굴러, 뒤로 굴러"가 한국에만 있던 걸로 알았는데 이 코치도 똑같은 방법으로 굴리더라는...

복싱기술 외에도 기본적인 정신상태, 훈련에 임하는 태도, 아껴서 꼭 필요한 말만 하는 방법, 어른과 상대방에 대한 예의 등을 눈물이 쏙 빠지도록 무섭고 호되게 가르친다. 한 번 들어서 못알아 듣는 녀석 뒤통수에는 빨래판 같은 그의 손바닥이 광속으로 날라오고... 이 아이들 커서 잘못되는 아이는 없을 것 같다.

향긋한 방향제를 뿜어대며 바닥이 대리석으로 반짝거리는 일반 체육관같지 않고 땀내가 넘치다 못해 쉰내가 코를 마비시키는 후줄근하고 어두운 도장(전기 아끼느라 백열등 딱 몇 개 켜놨다), 백퍼센트 까만 아이들 속에 혼자 노란둥이여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날로 그만 두겠다하지 않을까 슬쩍 물었다.

"해보니 어때?"
"아빠, 나 태어나서 이렇게 쎄게 운동해 본 거 처음이야.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어. 근데...나... 여기 매일 올꺼야" 한다.

글쎄... 그 작심이 얼마나 갈 지는 좀 두고 봐야 헐 껴...

24 comments:

  1. 즐거운 감상이군요. 처음 체육관에 들어갔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근성이란 만들어지는 거라고 굳게 믿는 저는, 포기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아드님의 모습을 좀더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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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렇지 않아도 운동을 하면서 근성이 길러지기를 바랬는데 테니스는 본인이 그리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 포기했고...권투엔 하고자 하는 투지가 있는 것 같아 기대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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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고향이 충청도셨나요? 마지막 말에 낮익은 사투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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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ㅎ ㅎ 고향은 서울인데 블로그에서 가끔 충청,전라,경상,평안도 사투리를 써 보기도 한답니다. 어느지역 사투리던 늘 구수하고 정감이 넘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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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그 작심이 3일이 아니라 어느덧 1년 되고 눈떠보니 3년 되고 정신 차리니 아무튼 오래 되어서 언젠가 아드님과 함께 알콩달콩 사이좋게 손주에게 복싱의 재미를 가르쳐주시는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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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좋은 제안이고 아들이 손주에게 가르치는 그 모습을 제 머리속에 상상만 해도 흐뭇해 지네요. ^^ 제발 좀 끈질기게 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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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우와. 너무 기대되요!!!!!! :D
    그 트레이너 이야기는 꼭 영화같구요...
    아드님이 끝까지 잘 배웠으면 좋겠어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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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도 들으면서 영화같다고 생각했습니다. ㅎ
      훈련이 끝나면 모두 둥그렇게 손을 잡고 트레이너가 감사기도를 잊지 않고 드리더군요.

      앞으로 녀석의 훈련모습도 올릴 생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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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사람 마다 다르겟지만....

    개인적으론, 제 딸이 조금 더 자라면, 일단 금전교육을 먼저 시킬까 생각 중입니다.

    자산이나, 주식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는 청소년들이 별로 없는데...

    한국인들 처럼, 가족간에 돈 얘기를 안하고, 어른들끼리만 쉬쉬하는 경우도 별로 없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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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 좋은 생각입니다. 가정의 경제적인 상황을 아이들도 같이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늘 합리적이고 우리 기존세대가 취약한 부분을 일깨워 주시니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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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글을 읽으면서 문득 밀리언달러 베이비가 떠오르더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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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클린트이스트우드 아저씨가 감독한 영화는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봤는데 왜 기억이 안 나는지 모르겠네요...함 찾아서 다시 봐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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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새 해 인사가 너무 늦었네요.

    가족 모두 어떤 일이 오더라도 서로의 소중함을 잊지 않을

    언제나 그러시겠지만

    가족 모두에게 그런 심신의 아름다운 성장이 가득한 사랑풍성한 한해 되시길 바랍니다.

    ㅎㅎ 전 아들에 입장에서 아버지에게 권투를 배웠습니다.
    아버님께서 검도랑 권투를 하셔가지고 좀 아프게 배웠는데요
    미트가 없던것도 그렇지만 도저히 아버지를 상대로 진지하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후에 한군대 찾아서 다니다 스파링을 하게 되었었는데
    3라운드 뛰고 체력고갈이 됬던 기억이 납니다.
    나름 건들건들하면서 페이스 조절을 했는데 말이죠
    게다가 상대방이 절 봐줬구요 ㅎㅎㅎ
    "왜 기초체력 연습이 중요한지 알겠지?!"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그러기에 아드님 느낌도 전해집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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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랜만의 나들이시네요. ^^ 님도 건강하고 힘찬 금년이 되시길 빕니다.

      아버님께서 운동을 좋아하셨던 모양이군요. 원래 부자지간엔 뭐 '기술전수'가 잘 안되요. ㅋ ㅋ 운전가르치는 건 더더욱 싸움으로 끝날 것 같고...

      저도 줄곳 운동을 하던 터 인데도 난생 처음 1라운드를 뛰었을땐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것도 상대방 없이 혼자 스텝을 밟으며 주먹을 허공에 날리는 쉐도우박싱을 하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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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ㅎㅎㅎ아드님에게는 좋은 경험이 될듯하네요.
    육체적 고생이 의외로 정신도 발달 시키는 경우가 많잖아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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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ㅎ 맞아요. 극기를 통해 아이가 조금이라도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좀 꾸준했으면 하는 바램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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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Replies
    1. 아이구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ㅎ ㅎ 글로 쓰기에 좀 미화된 면이 없지않아 있지요. 근데 님의 블로그에 답방하려고 링크를 누르니 주소불명이네요. 개인프로화일을 함 확인해 보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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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횡재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구하라 그리하면 얻을 것이라"
    아빠의 정이 찡하게 느껴지네요..., 그 땀 냄새가 그립습니다. 저는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우리 아버님은 나에게 그런 경험을 전해주셨는데...
    저는 아이에 미안하고 아이의 할아버지에게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둘러댈 핑게가 없네요.
    좋은 아빠, 너무 아름답습니다. 아이는 그 아름다움을 느낄 것입니다. 아빠,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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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이가 아무리 커 버렸어도 님이 살아계시는 한 어떤식으로든 기회가 있지 않을까요? ^^

      말도 마세요. 아름다움은 커녕 제가 웬수로 보일겁니다. 코치가 시간에 늦는 것과 결석하는 것 정말 싫어해서 제가 아들녀석을 달달 볶거든요. ㅋ ㅋ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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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잘 읽었습니다... 멋지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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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마와요. 님의 블로그도 늘 들려서 좋은 정보를 얻고 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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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댓글 달아주신 거 보고 아무 생각없이 들어와 보게 되었습니다. 글이 참 좋네요. 잘 읽었습니다. 멋있어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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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감사합니다. 저도 자주 들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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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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