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0/2011

Fishing trip

한 지인께서 요즘 바닷가에 가면 물 반 고기 반 이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여느때 같으면 "아, 그래 재미있으셨어요?"하고 지나 갔겠지만 얼마나 재미있는지 평일에도 생각나면 바로 떠날 요량으로 아예 낚시채비를 해 갖고 다니신다며 차트렁크를 열어 장신구를 보여 주시는 데에 넘어갔다.

그렇지 않아도 아버님 일평생 유일한 낙이 바로 이 낚시질이어서 너무 늦기전에 한 번 모시고 가려하던 참. 오늘 하루 휴가를 내고, 어젯밤에 방에 들어가서 아침 10시쯤 출발한다고 말씀드렸더니 오늘 아침 8시부터 내복에 잠바까지 챙겨입으신 상태로 소파에 앉아 기다리시더라는...

아버님과 늘 가던 Pier가 이곳 리치몬드에서 편도 2시간여 걸리는지라 왕복 4시간을 불편하신 몸으로 꼬박 앉아계시는게 걱정스러워 떠나기 전 정말 괜찮으시겠냐고 여쭤보니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셨다. 금년 가을들어 제일 추운날씨에 바람도 몹시 불어 날을 잘못 택했다 싶었지만 그 곳은 좀 나으리라는 희망을 갖고 출발! 동쪽으로!

웬걸 집에서 떠날 땐 10월이었는데 도착하니 12월 날씨. 피어엔 서너사람이 낙싯대를 드리우고 멍하니 앉아있고, 입구에선 입장하는 우리에게 좀 미안했던지 입장료의 반값만 받길래 낚시가 안된다는 사실을 피어로 들어가기도 전에 딱 알아봤다. 주최측으로서도 안되는 게 뻔한데 돈을 다 받는게 미안했던게다.

위의 지인이 차를 열어 보여주면서 필살의 비밀병기라면서 소개해 준 가짜미끼를 며칠 전 사다가 모셔놓고 있었는데 드디어 시험할 차례. 지렁이처럼 만들었는데 뚜껑을 여니 냄새가 일품이다. 탁 냄새를 처음 들이마시는 순간 머리가 빙글 돌면서 아련히 옛 생각이... 목욕도 잘 안(못)하던 국민학교 시절 학교만 끝나면 매일 학교운동장에서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뚫린 운동화를 신고 날이 어둑해 질 때 까지 공을 차다가 집에 와 신발양말 다 벗어던지고 살짝 새끼발가락을 벌려 보면...눅진한 까만 '죽(액기스가 맞는 표현일거다)' 같은 것이 끼어있곤 했는데 손가락으로 쓱 흝어서 냄새를 맡아 보면서 몸서리치던 바로 그 진한 꼬랑내. 아마 그걸 동네마다 다니면서 모두 모아다가 밀가루같은 것과 반죽을 해 빚어 만든게 아닌가 싶다. ㅎ ㅎ (아니 뭐 이런 냄새나는 이야기를 시시콜콜 적어야 겠다는 의무감은 도대체...)

입질 한 번 못 느끼고 힘들게 앉아 계시던 아버님께서 1시간여가 지나자 딱 한 마디 하신다,
"먹자!"
뛰어가서 햄버거와 음료수를 사와서 둘이 맛있게 먹곤 다시 낚싯대를 드리우려 하는데...바로 날라오는 또 한 마디.
"가자!"

많이 힘드셨던 모양이다. 운전해 오는 내내 계속 주무시기만 하시는 걸 뵈니 죄송한 마음이 든다. 고기가 좀 잡히고 따스한 날을 택했었더라면 좋았을 걸...

16 comments:

  1. 비록 힘드시더라도 아침에 출발까지 기다리시는 시간이, 그리고 아들이 낸 휴가가 고마우셨을 듯 합니다. 저는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 아침 댓바람부터 오토바이를 타곤 하지요. 그렇게 쌓이는 추억들 소중히 간직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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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안녕하세요!
    제 블로그에 방문하신걸 보고 Oldman님 블로그에 방문하게 되었어요.
    가슴 뭉클하고 좋은글들이 너무 많으셔서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다보니 어느새 새벽5시가 되어버렸네요.^^
    앞으로도 가족분들과 행복하게 지내시길 바라구요 힘내세요!
    oldman님 글 통해서 많이 느끼고 또 배우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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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SW Yoon (尹聖雄) 님,
    꼭 소풍가려고 전날 밤부터 들떠있는 국민학생마냥 그렇게 기다리시더라구요. 한편으론 자주 그렇게 해 드리지 못한 것이 죄송스러웠구요. 학문을 계속 이어가야 하는 스트레스도 장난이 아닐 것 같네요. 님도 일본에서의 힘든 시간이 나중엔 소중한 추억이 될거라 믿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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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Byungsoo Kim(김병수) 님,
    아,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미드텀 시험을 치르시느라 계속 밤을 새우셨군요. ㅎ ㅎ 잠을 못 주무시는 걸 뵈니. ^^

    예, 힘 납니다! 반갑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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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밥먹고 있는데 막 그 냄새 상상하고 있네요.악악악! :( 사진속에 pier는 굉장히 평안해보이네요. 정말 고기가 많이 잡혔더라면 좋았을것을...그래도 간만에 아버지와 함께 하셔서 좋으셨을것같아요...날이 추워지죠? 감기 조심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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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Sun Ju Joyce Kim★ 님,
    아 하필이면 고때 밥을 드시고 계시다니...^^

    맞아요. 진짜 강태공은 고기가 아니라 시간을 낚는다는데 저희도 화창한 태양아래 먼 바다를 바라보면서 많은 걸 느끼고 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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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old man님의 아버님 사진을 보니, 한국에 홀로계신 제 친아버지 생각이 나네요...

    참 행복하시겠어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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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Fiat 님,
    그러시군요. 그래도 가끔 고국에 들리실 기회는 있으시겠지요? 예, 전 옆에 계시니 좋습니다. 잘 해드리지는 못하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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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did you take gpa fishing? i didn't think he would be able to make it so far. i wish i was t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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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Yes, I did!
    He was very excited and endured 4 hours of long trip back and forth. Even though we did not catch anything, we had good time together! Most of all, taking him out under the bright sun light was my main goa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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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작년에 1년간 유효한 fishing license랑 월마트에서 낚시 세트랑 사서 너댓번 낚시하러 가봤으나, 단 한마리도 못낚아본 관계로 이번 댓글은 패쓰~

    그나저나 아버님께서 기대가 많이 크셨나 보네요. 아침 8시부터 다 차려입고 기다리고 계셨다니.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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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Black and Berry 님,
    ㅎ ㅎ 그렇게 투자를 하셨는데 손맛을 못 보셨다니 유감입니다. ^^

    예, 소풍가길 기다리는 국민학생같은 모습이셨어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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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Oldman님, 글이 너무 좋습니다. 말로도 표현하지 못하는 걸 글로 넉넉하게 써놓으신 걸 보니, ㅎㅎㅎ 감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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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그날이 오면 님,
    ㅋ ㅋ ㅋ 누구와 얼굴 마주보고는 이런 이야기하기 힘들지요. 누가 보건 안보건 쓰는 이야기라 창피해도 쓰는거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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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제 블르그에 글을 남기신걸 보고 깜빡 놀랐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찾아 뵙습니다.
    안녕하세요. ㅎㅎ
    미네소타도 날씨가 추워지고 있기는 한데 예년에 비하면 아직 덜 추워져서 고기들이 입질을 잘 안한다고 하네요.
    좀 더 추워지면 친구랑 같이 얼음낚시를 가기로 했습니다.
    그때 또 사진이랑 같이 올려보겠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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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철수아빠 님,
    ㅎ ㅎ 누구나 자신의 사이트에는 누가 들어오겠나 싶어도 방문자 흔적을 뒤져보면 꽤 많은 방문객들이 다녀 간답니다. 댓글을 남기지 않고 눈팅만 하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티가 나지 않는 것 뿐이지요. ^^

    얼음낙시에 대한 포스팅을 꼭 보고 싶네요. 조심하시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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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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