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6/2011

사내만들기

이제 몇 달 후면 고등학교로 진급하는 막내녀석.

석달이나 되는 긴긴 여름방학을 저렇게 방치할 것이 아니라 좀 생산적인 일에 투입해야겠다는 이야기를 아내와 했다. 일반 미국가정에서는 사내녀석들이 중학생만 되면 시키는 잔디깎는 일을 맘 약한 우리내외는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 진학을 앞 둔 지금까지 못 시키던 중이라 이제라도 그러기로.

논리가 빤한 녀석이 어떤 급료를 기대해야 하냐고 물을 게 확실해 그것도 아내와 입을 맞췄다. 운전시작하게 되는 16살에 어짜피 차가 필요하니 차 구입할 돈을 조금씩 적립해 준다는...('돈을 조금씩 적립해 준다'는 키워드에 주목. ㅎ ㅎ 차를 덜컥 사준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요즘 날이 많이 더운 관계로 낮시간을 피해 드디어 오늘 해지기 두시간 전 쯤 데리고 나가 휘발유를 채우는 것, 날높이를 조정하는 것에서부터 속도조절에 이르기까지 이것저것을 보여주고 잔디를 깍게 했다.

난 옆에서 trimmer로 잔디깎는 기계가 미치지 못하는 곳을 다듬거나 edger로 콘크리트인도와 잔디의 경계를 끊어 주는 일을 하고 있었고. 한 10분 지나 어떻게 하고 있나 둘러보는데... ㅋ ㅋ ㅋ ㅋ 이건 뭐 듬성듬성 건너뛰어 깎은데 보다 안 깎고 지나친데가 더 많다. 어떤 곳은 집 한채 지을만한 면적을 통째로 지나쳤다. 힘이 좋으니 아예 뛰어다니면서 깎는건 무척 부럽다만...

다 깎았다고 자랑스럽게 다가와 시동을 끄는 녀석을 향해 "한 번 휘 둘러보고 오지 않을래?" 했더니 "이게 뭔 소리여?" 하는 표정. 뛰어가서 뒷마당을 둘러보고 오더니 자기 이마빡을 제 손바닥으로 한대 탁 친다. 그리곤 군소리없이 시동을 다시 걸고 달려가는 녀석의 뒷 모습을 보며 속으로 흐믓한 생각이 들었다.

"책임맡은 일을 해 내는 것, 그게 바로 사내가 되기 위한 수업 101 이다 이 녀석아!"

14 comments:

  1. 군소리 없이 다시 하는 아드님의 모습은 역시나 부모님이 교육시킨 결과겠지요? 걸음마를 늦게 하든 일찍 하든 결국 함께 걷는 세상인데, 자신의 정원을 가지고 애정을 느끼며 잔디를 깎는 그날까지 너그럽게 봐 주시는 것도 괜찮을 듯 하네요. 물론 그럼에도 지금의 교육기조를 유지하시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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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muhahahha - I LOVE IT! Peter is growing up and gaining some responsib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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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저희도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집안 배큠을 시키기 시작하여서 덕분에 남편의 일이 약간 덜어졌었지요 ^^

    어쨋든 잘 교육하고 계시네요.

    미네소타에서 대학을 다닌 우리 딸 하는 말이 "캘리포니아에 사는 자기 친구들은 (거의 동양인) 다 "spoil" 되었다고... 저도 그랬으면서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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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SW Yoon (尹聖雄) 님,
    아마 아이자신도 너무 하는 일 없이 지내다보니 좀 미안해서 군소리 않고 하는 걸 껍니다. ^^

    말씀하신대로 너그럽고 느긋하게 같이 가겠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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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Eunie,
    hehe, my role just has changed from the slave to the slave dri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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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샛별 님,
    앗, 그것두 시켜야겠네요. ㅋ ㅋ

    비슷한 상황입니다. 저희 큰딸과 둘째딸이 늘 막내를 놓고 하는 말입니다. 지들도 spoil된 건 마찬가지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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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일반적인 미국 가정에서 사내아이들을 위해 시키는 일이 잔디깎기라니... 아파트 거주가 많은 한국 가정의 아이들에게는 먼나라 일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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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안드로키퍼 님,
    그것 말고도 집안에 있는 쓰레기 모아다 내다버리기, 위의 샛별님이 말씀하신 카펫청소하기 등 일을 만들라면 얼마던지 만들 수 있겠죠? ㅎ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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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든든한 아드님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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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Jaemin 님,
    감사합니다. 아닌게 아니라 요즘 먹고 잠만 자는 바람에 발육이 전부 위로 늘어나는 것에 집중되고 있는 중입니다. 방학 끝날 때 쯤이면 제 키를 넘어설게 분명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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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오래간만에 들어왔읍니다.여긴 계속비고 날씨도 덥습니다....언제나 들어와보면 가족의 화목함이 느낄수있어좋고 저또한 언제나 화목한 가정을 누릴수 있었으면하는게 바램입니다...주위에 보면 말만 가족이지 각자 바뻐서 얼굴보기도 힘든 경우를 많이 봐서..
    언제나 글잘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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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좋은 부모님이시네요..
    자식에게 유산보다 더 소중한 것은 삶은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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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柳吾錫 님,
    이곳도 폭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특히나 제가 살고있는 버지니아주 리치몬드는 습하기로 유명해 불쾌지수가 엄청 높지요.^^

    오히려 제가 님의 블로그를 들릴 때 마다 부러운 생각을 하곤 합니다. 가족이 함께 텃밭을 가꾸시는게 모습도 보기 좋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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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tommy, shin 님,
    그럼 딱 제 조건하고 맞네요. 물려줄 유산도 없으니 그저 사는 방법이나 가르쳐 주는... ㅎ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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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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