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2/2012

생각의 편린들

하나.

금년 들어 잔디를 처음 깎았다. 퇴근하고 아버님 병원에 가기 전 잠깐의 시간을 이용해 후다닥. 봄에 잔디를 처음으로 깎는 것엔 여름에 늘 깎는 것 과는 달리 조금 특별한 의미가 있단다.

겨우내 성장을 멈추고 동면 비슷한 상태로 있던 잔디가 날씨도 따뜻해지고 비도 내려서 땅에 수분이 충분해 지면 이제 본격적으로 자랄 준비가 되는데 그런 잔디의 허리를 사정없이 잘라주는 것이다. 그것도 날카로운 작두나 면돗날 같은 것으로 상처를 최소화해서 자르지 않고 잔디깎는 기계의 무딘 날로 잘리는 면이 으깨지는 상처를 주면서...그래야 잔디가 겨울의 움츠림에서 깨어나 활발하게 성장을 하기 시작한다는 거다.

돌아보면 지난 상처들이, 그리고 힘든 시간들이 모두 상처로 남지 않았고 그 힘듦이 지금까지 남아있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상처가 주는 유익이라고 해야 되나...그리고 잔디에 유익하기에 사정없이 잘라 주는 내 모습을 보면서 간혹 우리에게 어려움을 허락하시는 그 분의 마음을 어렴풋이 느낀다고 해야 하나...



둘.

며칠 전 밤에 방으로 들어가 보니 아내가 컴퓨터 앞에 앉아 무슨  힐링 뭐라는 프로그램을 온라인으로 보며 눈이 퉁퉁 부어 훌쩍거리고 있는 걸 보게 됐다. 평소 아내에게 웬만하면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찾아 보는 걸 장려하는 편이다. 미국사는 가정주부들이 도대체가 낙이 없는 것을 알기에, 남정네들도 마찬가지지만. 그저 직장이나 가게, 집, 아니면 교회. 딱 세 장소에서 그냥 소처럼 일에 치여 산다. 고국에서 처럼 친구들을 만나 골프를 나간다거나 찜질방을 간다거나 아니면 근사한 데서 수다떨면서 점심을 먹는다던가 하는 재미가 없기에 아내에게 늘 미안하다.

그러니 그런 시시한 예능프로그램이라도 찾아서 보면 나름 낄낄대며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 카타르시스를 통해 감정의 찌끼를 정화하고 배설하는 것이 유익할거다 싶어 적극 권하곤 했다.

근데 다 보고 나서는 엉뚱한 말을 휙 던지고 방을 나간다. "차인표가 당신과 너무 닮았어. 살아가는 모습이". 이게 무신소리?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연예인이라면 부정적인 삶과 많이 가깝지 싶은데 내가 과연 무슨 잘못한 것이 있어 그랬을까...궁금하다...



셋.

며칠 전 까지는 아버님이 눈을 뜨고 계시는 것만 봐고 좋고 감사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이제 많이 회복이 되셔서 소고기를 잘게 다진 병원식도 드실 정도고, 말씀도 명확히 잘 하시고, 걸어다니지만 못하실 뿐 300프로 나아지셨다. 근데...옆에 앉아 있으면 주문을 하기 시작 하시는데 정신이 다 없다. "야, 얼음물!"하셔서 뛰어가서 새로 얼음물을 만들어 입에 대어 드리면 쫙 들이키시고 난 자리에 앉는다. 약 15초 지나면 "야, 눈꼽좀 떼어줘!", 약 30초 후 "야, 간호원에게 진통제 놔 달라고 해!"

이제 슬슬...진력이 나려고 한다. ㅋ ㅋ ㅋ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간사할 줄이야...

10 comments:

  1. 늘 즐거이 읽으며 자주 문안을 못드리네요. 바쁘고 조금 힘든 삶속에 한 줄기 바람처럼 시원하게 기쁘고 잘 읽고 있습니다. 나도 이렇게 살아야지 생각도 하면서요.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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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굉장히 바쁘시게 지내시는 모양입니다. 만드신 찬송가/성경 앱은 아직 다운로드가 가능합니까? 전 아직 스마트폰은 없지만 여기에 들리시는 블로그이웃들 중에 관심이 있을 분들이 계실텐데...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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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ㅎㅎ
    잘 읽었습니다.
    근데 제 생각은 차인표가 올드맨님을 닮은것 같군요.
    아버님이 건강히 회복되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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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글쎄 제가 아는 차군은 광대뼈가 유난히 날카롭고 눈이 좀...그래서 저보다 훨씬 덜 생긴 걸로 알고 있는데요. ㅎ ㅎ ㅎ

      저도 저희 아버님건은 싫증이 나려고 하면서도 좋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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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오래 알아뵙진 못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위트가 살아나고 계십니다.ㅎㅎ
    낮에 가족이 없어 심심하니 잠만 자고 밤이면 멀뚱대며 저를 불러 이불 젖었어, 물 엎질렀어 하던 그이가 저절로 떠오릅니다.ㅎㅎ
    차인표와 닮으신 점은 아마 고양이 타입의 여자를 좋아하시는 점?ㅎㅎㅎ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옆에 사람이 더 힘내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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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서 뵈니 참 오랜 세월 기쁨으로 그 일을 감당하셨더군요...

      아 전 제 아내같은 토끼 타입입니다. ㅎ ㅎ

      말씀대로 이제 긴 rehab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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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농담이었구요~
    전래동화를 보면 결과적으로 호랑이를 설득하고 이기고 극복하는 역할은
    고양이가 아니라 토끼였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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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아버님 건강 회복 소식 축하드리며, 늘 그렇듯 좋은글 읽고 갑니다.
    그리고 제 친구 블로그에 다녀가셨더군요. 힘들어하는 그친구에게 응원의 메세지 남겨주시고 대단히 감사합니다. ^^
    3월의 끝자락에서 서울에는 봄을 시샘하는 눈발이 날리네요... 하하
    항상 건강하시고 응원, 기도하겠습니다.

    아! 한가지 여쭤볼게 있는데... 그분을 더 알기 위해서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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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직 두 분 늘 응원하고 있답니다.

      그 분 전기를 읽으시죠? 성경.
      개인상담도 가능하지요? 기도. ^^

      말씀을 대하기 전에 항상 이해를 도우시는 성령님께 도움을 구하세요. 활자의 뒤에 숨어 있는 걸 알게 하시는 건 그 분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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